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7
악녀는 두 번 산다 147화
“리시아가 왜 여기에 있지?”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헤일리에게 콜튼 수사에게 빨리 연락하라고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소식이 가는 데에 며칠, 또 소식을 받고 오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도저히 사나흘 사이에 당도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님께서 쓰러지신 날에 당도하셨어요. 콜튼 수사님께서 대부인의 소식을 들은 날에 바로 결정하셨던 모양이에요.”
“…….”
“사원에서 마님 편이 되어드리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앨리스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안으로 모실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지금은 들이지 안않을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더 많이 쉬어야 했다.
한동안은 에브론 대공가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쉬었으면 하는 것이 앨리스의 본심이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리시아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도.
아르티제아는 잠시 생각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리시아가 만나고 싶어 하는데 그것을 거절한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한숨을 내쉰 것은 만나기 싫다거나 껄끄러워서가 아니었다.
“정말로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구나.”
“거절할까요? 리시아 님도 마님이 피곤하시다고 하면 물러가겠다고 했어요.”
“아니야. 들어오라고 하렴.”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하고 소피와 마커스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나가 있고.”
“마님.”
“괜찮아. 무어 별일이 있을 것도 아니니까.”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컨디션은 오히려 쓰러지기 전보다도 더 좋았다.
“그리고 앨리스, 넌 리시아에게 들어오라고 하고, 헤일리와 프레일 경에게 내가 찾는다고 전해.”
“마님, 더 쉬셔야 해요.”
“쉬어도, 상황파악 먼저 하고 쉬는 게 낫겠어. 서두를 건 없고, 하던 일 끝나면 오라고 해.”
앨리스는 더 반박하지 않았다.
“그럼, 그때도 제가 옆에서 모실게요.”
“그래, 부탁한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시아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아르티제아의 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등에 키스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비 전하.”
“리시아…….”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아르티제아는 이름을 불러놓고, 목이 메었다.
“죄송해요.”
아르티제아가 말이 없자, 리시아가 그녀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뭐가?”
“명하신 것을 지키지 못하고 멋대로 와버려서요.”
“콜튼 수사님이 오셨다면서. 내가 네게 맡긴 일은 콜튼 수사님의 보좌였으니, 네가 그렇게 생각할 것 없어.”
“비 전하는 저한테 너무 관대하세요.”
리시아가 말했다.
“곁에 있어 드리지도 못했고, 시키신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으니 꾸짖으셔야 마땅해요.”
“그러지 말고 일어나.”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잡아서 일으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직 그정도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시선의 각도가 아르티제아가 기억하던 것과 정반대였다.
자신이 앉아 있고, 리시아가 그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것은 아르티제아를 괴로운 기분으로 만들었다.
“난 괜찮아.”
“괜찮지 않으신 것처럼 보여요.”
“괜찮아.”
아르티제아는 다시 말했다.
리시아는 늘 말했다.
「괜찮아요.」
하얗게 변한 입술을 하고서.
그런데 자신이 어떻게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리시아의 손을 잡아 일으키려고 했지만, 리시아가 좀 더 고집을 부렸다.
아르티제아는 문득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리시아는 놀라지 않았다. 과거에도 이 눈물을 본 것 같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 낳아도 된다고 생각해?”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충동적으로 물으면서도 참으로 의미 없는 질문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리시아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에게 용서를 받거나 허락을 받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세드릭을 훔친 것도, 그녀를 고통스럽게 죽게 했던 것도, 그녀의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대량 학살자라는 것도, 극악무도한 모사꾼이라는 것도 변하지 않는다.
추악한 핏줄을 타고났다는 것도 여전했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를 위로했지만, 그녀는 그것만으로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함께 생각하자고 했다. 그 말이 고마웠다. 하지만 이것은 그 이전의 문제였다.
이 아이를 낳아도 좋은가 어떤가.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의 문제 이전에 그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리시아에게 묻는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서 축복과 용서를 받는다 해봤자, 아르티제아 자신의 얄팍한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리시아의 말은 허용도, 축하도, 위로도 아니었다.
“낳고 싶으신 거죠?”
“내가……?”
아르티제아가 멍하게 리시아를 바라보았다.
“네, 사랑해주고 싶으신 거라고 생각해요.”
리시아는 조금 난처한 듯하지만, 확신하는 태도로 말했다.
“원하지 않으셨다면, 두려워하시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아르티제아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나 리시아의 말은 옳았다.
아무 감정이 없었다면, 자신은 필요에 따라 아이를 낳든가 낳지 않든가를 결정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고민이 개입할 요소가 없었다. 최적 효율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당위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 원하지 않는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는 편이 모두에게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불안의 싹은 일찍 자르는 것이 옳다.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월등히 높은 변수를 놓아둘 이유는 없다.
제 자식이라고 해서 지금까지 그녀가 체스말로 다루어온 모든 목숨들과 달라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낳을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설령 세드릭이 양육하고 앨리스가 사랑해준다고 해도, 그 아이의 천성이 자신을 닮아 냉혈한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원하니까 괴로운 것이다.
제 아이를 가져보고 싶었다. 갖고 싶어도 얻지 못했던 그 가족이라는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제 아이를 낳아 저와는 다르게 키워보고 싶었다.
세드릭과의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였다. 사랑해보고 싶었다.
혹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더더욱.
제 마음을 더듬더듬 하나씩 되짚어 보아 그 사실을 깨닫고,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숙였다.
“이상해.”
“뭐가요?”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않을 수가 있는 거지?”
아르티제아가 리시아를 직접 만난 것은 스물넷이 되어서의 일이었다.
서부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의 삶과 고통은 그녀를 성숙하게 했고, 에브론 대공령에 닥쳤던 전쟁과 고난은 그녀를 담금질시켰다.
그때에 이미 리시아는 완성된 성녀였다.
다시 만나보았을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천진난만한 면모가 있었다.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었다.
이대로 변하지 않게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새삼스럽게 자기 따위가 애쓰는 게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시아의 눈은 늘 옳았다. 그리고 그 눈으로 지켜보아온 세상은 그녀를 성녀로 기를 것이다.
자신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 만들어내는 어떤 생각들도 리시아의 눈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미안해.”
“뭐가요?”
“내가 세드릭 님을 사모하게 되어서, 미안해.”
아르티제아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없어져야 할 목숨이 사라지지 않고 남았으니, 이번에야말로 쓸모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결국 전과 똑같았다.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자신은 끔찍하게 이기적인 건지.
아르티제아는, 자신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세상을 망치는 것도 개의치 않았던 그때와 똑같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하여 죄스러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리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참 이상하네요. 저는 비 전하와 그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데.”
“……리시아.”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지 알 것 같아요.”
리시아가 팔을 뻗었다.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잠깐 비 전하를 안아드려도 될까요?”
아르티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시아는 대답을 들은 듯이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아르티제아가 놀라지 않도록 충분히 느린 동작으로 그녀를 잠깐 끌어안았다.
“비 전하께서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시는지, 걱정하시는지, 저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
“그렇지만 제게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게는 아무것도 잘못하신 일이 없으시니까요.”
리시아가 다정하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이것도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지켜주겠다고 말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보호받고 만다.
리시아가 아르티제아의 어깨를 한 번 다독이고는 포옹을 풀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손을 잡은 채 말했다.
“건강하고 훌륭한 아이를 낳아서, 아주 잘 키우실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축복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유의미한 축복일 것이다. 진짜 성녀의 축복이었으니 말이다.
* * *
한편, 헤일리와 프레일은 앨리스의 부름을 받고 와서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비 전하께서 발작을 일으키셨었다면서요?”
“듣기만 했어요. 어차피 와볼 시간도 없었던 거 프레일 경도 알잖아요?”
헤일리가 퀭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저보다는 하녀들이랑 친하시잖습니까?”
“앨리스나 소피나 다들 좋은 아이들이긴 하지만, 친정 하녀와 남편 가문 출신 시녀 사이에는 큰 강이 흐르는 거나 다름없다고요. 리시아가 예외인 거고요. 갠 누구한테나 사랑받으니까.”
헤일리가 불평했다.
“그러는 경이야말로, 대공 전하의 근황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요?”
프레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그의 눈 밑에도 시커먼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전들 거기까지 손이 닿겠습니까? 군부 인사들이 은밀하게 접촉해오는 것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죽을 지경입니다. 제 짬에 장군들을 상대하는 게 말이 됩니까?”
“어쩌겠어요? 그런 일은 평생 안 할 것처럼 지내오신 대공 전하를 원망해야지.”
헤일리가 한숨을 내쉬고, 프레일이 투덜거렸다.
“에브론에 진짜 인재가 너무 없는 거 아닙니까? 알긴 했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동감이긴 한데요……. 그래도 프레일 경이 저보다 힘들겠어요? 전 비 전하의 명을 어겼다고요.”
헤일리의 말에 프레일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 제가 더 비참한 상황이라는 걸 그렇게 쉽게 인정하지 말란 말이에요.”
“사실인데 어쩌겠습니까?”
헤일리가 그에게 펜을 집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