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1
악녀는 두 번 산다. 151화
하인이 소식을 전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세드릭은 아주 조용히 들어왔다. 동반하고 있는 것은 부관 하나뿐이었고, 하인은 따로 거느리고 있지 않았다.
들어오면서 소리를 내거나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살롱의 손님들이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존재감이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얼굴을 굳혔다. 세드릭이 울화가 나서 달려온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정치는 명분으로 하는 것이다.
세드릭에게는 그를 비난할 명분이 없었다. 아킴 주교가 죽음으로써 로이가르 대공을 역모죄로 엮을 수 있는 증거는 사라졌다.
그러나 세드릭이 하고자 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복수라면, 달리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감정에는 증거도, 명분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세드릭이 살롱 입구에서 망토를 벗고 칼을 풀었다. 그리고 그것을 하인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왔다.
로이가르 대공은 짐짓 표정을 밝게 했다.
“이게 어쩐 일이냐, 세드릭? 살롱 같은 곳에는 드나들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마치 오늘 황궁에서 열린 심문 같은 것은 모른다는 듯한 태도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정말로 공식적으로는 모르는 척하려고 작정하고 있기도 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좀처럼 그러기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세드릭이 느릿하게 다가오자 위압되고 말았다.
결국 인간도 동물이다.
적대적인 상대가 물리적 거리를 좁혀 마주해 오자 본능적으로 육체적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짤막하고 근거 없는 상상과 달리 세드릭은 얼굴을 일그러뜨리지 않았다.
대신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 그러면 조용한 별실로 갈까? 갑작스러운 방문이지만, 우리 처형이 그 정도 배려는 해주실 수 있을 거다.”
로이가르 대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안도하며 말했다.
싸우자고 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시간도 늦었고, 그렇게 오래 걸릴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그러면 뭐라도 마시겠니? 마침 훌륭한 스파클링 와인을 땄는데. 그렇지 않아도 후사를 얻은 것을 축하하려고 했는데, 잘되었구나.”
세드릭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로이가르 대공이 건네는 잔을 받아 들었다.
“그렇다면 마음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마땅히 축하해야지. 지금은 네 아내의 몸이 좋지 않으니 축하연은 조금 늦추더라도, 경사가 아니냐? 이제야말로 에브론 대공가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구나.”
로이가르 대공이 잔을 들었다.
세드릭이 사양하지 않고 그가 권하는 대로 잔을 비웠다.
그리고 부관에게 눈짓했다. 부관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흑단목 상자를 받들어 올렸다.
“이렇게 축하를 해주시니, 제가 가져온 것이 마침 답례품이라는 핑계까지 얻을 수 있을 것 같군요.”
“그게 무엇이냐?”
로이가르 대공이 당혹하며 물었다.
세드릭의 태도가 그가 생각하고 있던 어떤 경우와도 달라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생각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도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드릭이 손수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결투용 권총 한 쌍이 들어 있었다.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진 그 단발총 두 자루는 우아하고 아름다워 예술품처럼 보였다.
세드릭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니, 성능도 확실할 것이다.
“세드릭.”
로이가르 대공은 얼어붙은 목소리로 세드릭을 불렀다.
이것을 정말로 선물의 의미로 주었을 리 없다. 선물이 아니니, 결투 신청이다.
세드릭이 도로 뚜껑을 덮어 로이가르 대공의 하인에게 내밀었다. 하인이 머뭇거리며 로이가르 대공을 바라보았다.
로이가르 대공은 받아두라고 지시하지 못했다.
세드릭이 로이가르 대공을 향해서 말했다.
“저는 전쟁터도 아닌 곳에서 피 흘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숙부님. 그렇게 겁먹은 얼굴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흣.”
로이가르 대공은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파랗게 질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심호흡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수습하려 애썼다.
그러나 막혀 있던 숨은 단번에 뚫리지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은 목이 졸린 듯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숙부님.”
세드릭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님도, 숙모님과 사촌동생들을 무척 사랑하시니 제 심경을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드릭.”
“예전에 숙부님이 말씀하셨지요. 어쨌거나 제일 가까운 혈연이라고.”
로이가르 대공은 세드릭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숙부님이나 저나 비록 가족답게 살아본 적은 한 번도 없고, 각자 자기 목숨, 이름 하나 건사하기에도 바빴지만요. 살다 보면, 도저히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기도 하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늦게나마 서로 책임을 다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만일의 경우 숙모님과 사촌동생들을 돌봐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제게 만일의 경우가 생겨도, 역시 숙부님이 제 아내와 자식을 돌봐주시기를 바라고요.”
로이가르 대공의 머릿속이 뒤엉켰다.
말이야 그럴듯했으나 진짜로 그런 친척 관계가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황실의 혈통이고, 권력은 제로섬 게임이다.
로이가르 대공 자신이 먼저 아르티제아를 공격함으로써 세드릭의 지지를 받는다는 선택지는 멀어졌다.
거기에 세드릭이 역모죄로 대응했으니, 지금 그들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골이 깊었다.
로이가르 대공의 머릿속에서 루덴 후작가와 로산 후작가, 로렌스와 황후에 대한 생각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세드릭은 궤변가가 아니다. 그러나 저 말을 문장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결투용 권총을 먼저 내밀고 하는 말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숙부님.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아실 터이고, 또 저를 믿으셔도 된다는 사실 또한 아실 테니까요.”
세드릭이 그렇게 말했다.
재촉하는 통에 하인이 결국 권총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세드릭이 가볍게 로이가르 대공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황급히 로이가르 대공의 곁으로 다가왔다.
“전하.”
“믿어도 된다는 말이 이렇게 소름 돋게 들리긴 처음이군.”
로이가르 대공이 권총 상자를 다시 열어 보았다.
세드릭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제 아내를 다시 건드리면, 이 권총을 쓰게 되리라는 것이 그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무력한 자신의 아내와 달리 아르티제아는 절대로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될 상대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상자 뚜껑을 다시 닫았다. 자신의 손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는 것에 분노가 솟았다.
그는 이제까지 황제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위압되었던 상대가 없었던 것이다.
* * *
세드릭이 귀가한 것은 자정도 넘어서의 일이었다.
에브론 대공저의 담벼락을 둘러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경비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담 안으로 들어서면, 본채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안스가르가 세드릭을 맞이했다.
“늦으셨군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회의 중에 간단히. 티아는?”
“주무십니다.”
“점심, 저녁은 제대로 먹었고?”
“예. 목욕하신 후에는 기분도 많이 나아지신 것 같습니다.”
“다행이로군.”
세드릭은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아킴 주교의 문제 때문에 갑갑한 마음이 들긴 했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암살이라면 더더욱.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은 그런 음모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도망치려고 해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은 이제 죽을 만큼 잘 알고 있었다.
간단히 찬물로 몸을 씻어낸 다음 그는 자신의 침실로 갔다가, 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아르티제아의 방 앞에는 평소처럼 알폰스가 서 있었다. 옆에는 긴 의자를 놓고 마커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혹 아르티제아의 몸이 불편해질 때를 대비해서였다. 안스가르는 옆 방에 의사와 간호사도 상주시켜 놓았다.
세드릭은 알폰스에게 말했다.
“별일 없나?”
“없습니다.”
“수고하네.”
알폰스가 고개를 숙였다.
세드릭의 호위로 따라온 기사들이 알폰스의 옆에 섰다.
세드릭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창에는 얇은 커튼만 내려져 있었다. 달빛과 담벼락에 세워 놓은 횃불 빛들이 뒤섞여 침실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세드릭은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아르티제아의 눈꺼풀이 움직거렸다.
호흡도 미세하게 달라졌다. 잠이 깬 것 같았다.
그는 침대에 앉아 잠시 기다려 보았다.
아르티제아는 잠에서 깨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어쩌면 깨었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세드릭은 천천히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희미한 불빛에도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갔다.
“…….”
세드릭은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만일에 아르티제아가 잠들어 있다면, 깨우게 될 것이다. 잠들지 않았는데도 눈뜨고 싶지 않아 그러는 것이라면, 억지로 말을 걸면 마음에 무거운 것을 더해줄 것이다.
둘 다 염려되었다.
아르티제아에게는 긴 하루였을 것이다. 이제 겨우 평온하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괜한 말로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대신 아르티제아의 옆자리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뒤에서부터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르티제아가 몸을 움찔 굳혔다. 역시 잠들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세드릭은 작은 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처음 안아보았을 때만큼 몸이 차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긴장한 것은 그때와 똑같았다.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도, 결국 그때로 되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는 다시 낮게 말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손을 가볍게 덮듯이 잡고 머리에 입술을 대었다.
아르티제아는 잠시 긴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 그렇게 있지는 못했다.
이불 안이 금세 더워졌다.
아르티제아는 또 눈물이 나려고 해서 애써서 참았다.
지금 것은 진짜로 이유가 없었다. 정말이지, 특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가슴부터 뱃속까지 몸 안의 장기가 제멋대로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것을 알아챈 것처럼 세드릭의 손이 그녀의 눈가를 가볍게 덮었다.
쿵쿵거리고 심장이 뛰었다. 세드릭의 박동 소리는 그녀의 것보다 훨씬 강했다.
그래서 그 소리에 파묻히듯이 금세 아르티제아는 자신을 잊었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좀 더 그녀를 당겨 안았다.
이 밤만이라도 편안하길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