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3
악녀는 두 번 산다 153화
세드릭의 말에 황후가 대답했다.
“네가 오겠다고 했을 때에 문 닫아놓고 안 열어준 적이 없는데 괜한 소릴.”
“앞으로는 자주 찾아뵈려고 합니다. 이 사람 살펴줄 어른이 달리 없으니, 황후 폐하께서 좀 마음 써 주십시오.”
“결국 그 이야기 하러 온 게로구나.”
황후가 피식 웃었다.
“염려마라. 내 달리 기댈 사람도 없으니, 있을 때에 잘 보살펴야지.”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차라도 마시고 가지 않고?”
“의사가 정한 시간이 있어서 이제 집에 가봐야 합니다. 쓰러졌던 게 불과 3주 전의 일이고요.”
“하긴. 아직 한참 조심해야 할 시기이지.”
황후가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리고 황후에게 공손히 절했다.
“소식 드리겠습니다.”
“별달리 기별 주지 않아도 잘하고 있을 줄로 믿겠다. 그리고 늦었지만,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축하 선물도 이미 보내주셨는걸요.”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황후가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아르티제아는 다시 한 번 절하고 밖으로 나왔다.
세드릭이 물었다.
“몸은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답답하면 조금 걸을까요? 요즘 집에서는 당신이 움직이기만 해도 하도 야단들이라 걷기도 어려우니까.”
“황후궁이 조용하긴 하죠.”
아르티제아가 그렇게 말했다.
황후궁의 정원은 조용했다. 그 사이에 봄도 깊어 날이 더울 지경이었다.
마르타 백작 부인의 살롱도 지금은 닫혀 있었다. 어차피 친목이 중심이라 정치적으로 어지러울 때까지 열 만한 이유가 없었다.
살롱을 열었던 목적도 달성한 다음이었다.
둘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르티제아 쪽이었다.
“어떠셨나요?”
“어땠느냐니요?”
“황궁에서 오셨잖아요. 폐하께서 말씀하신 게 있을 법한데.”
세드릭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해야 할 이야기가 몹시 많았다. 아이에 대해서도, 그녀에 대해서도, 그리고 세드릭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나 세드릭은 재촉하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준비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도는 여느 때의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눈물의 흔적도 사라졌다.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들은 이제 망설임 없이 기뻐하며 아르티제아를 챙겼다. 겉만 보기에는 아르티제아도 아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아르티제아는 새벽마다 눈을 떴다. 세드릭이 밤중에 옆자리가 비었음을 깨닫고 일어나보면, 그녀는 커튼을 열어놓고 어두운 창밖을 끝도 없이 내다보고 있곤 했다.
세드릭은 그녀가 결심을 했는지 안 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낮에 태연한 것은 다만 참고 있는 것뿐이리라. 과거에 통곡을 참아냈던 것처럼.
세드릭은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다. 아직도 자신이 그녀에게 진짜로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되지 못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티제아가 다시 물었다.
“말씀하시기 어려운 일인가요?”
“아닙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세드릭은 그냥 그렇게 말했다.
“정무장관직을 제안하시더군요.”
정무장관이란 공식적인 관료 조직에 포함되는 직책이 아니었다. 황명을 직접 받아 그를 대신하여 정무를 수행하는 경우에 내려주는 직책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황족이 나랏일에 관여할 때에 보통 받는 관직이기도 했다.
명예직이 아닌 데다가 지위의 고하로 따지자면 재상과 동위였다. 모든 관료가 정무장관의 지시를 명령으로서 받아들여야 했다.
세드릭은 놀랐다.
그가 정무장관을 제의받은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서부군 재건과 몬스터 웨이브 토벌을 명받았을 때에도 그냥 황제 특사라는 명칭과 함께 군사 부절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황제가 이런 제안을 한 것이 무척 의외였다. 견제하고, 배제당하는 쪽이 익숙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네. 슬슬 뭔가 직책에 관한 말씀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세드릭 님은 너무 많은 일을 하게 되셨어요.”
그는 시위대에게 너무 많은 약속을 했다.
인신매매 조직을 뿌리 뽑겠다는 약속 정도는 에브론 대공이라는 이름으로 임시로 지휘해도 된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과 아동 보호 문제는 달랐다. 이것은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내정에 관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중책을 맡기려면, 그에 걸맞은 직책도 주어야만 한다. 다른 신하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제대로 된 조직에 포함시키지 않고 권한을 주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잖아요.”
“그렇지요.”
“무엇보다도 폐하는 당신의 권위 밖에서 에브론 대공이 시민과 소통하기를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황명을 제게 내렸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시민의 지지를 궁극적으로 폐하 당신의 것으로 하시려 한다는 뜻이로군요.”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월하게 미소를 짓지는 못했으나 미세하게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세드릭의 대답이 흡족했던 모양이었다.
“받아들이실 건가요?”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까?”
“폐하와 지금 싸울 상황은 아니니까요. 어쩌면 이 시점에서 중단하고 북부로 되돌아가시는 쪽이 나을 수도 있어요.”
“…….”
“에브론에서 하시던 일을 중단하고 급히 오셨잖아요. 무엇보다도,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전장에서 깃발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집중적으로 공격받게 됩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에요. 준비가 너무 부족합니다.”
아르티제아가 진지하게 말했다.
세드릭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아르티제아가 말하는 이치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북부로 돌아간다면, 당신도 함께 가주겠느냐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올 뻔했다.
만일에 모든 것을 중지하고 한동안 몸을 수그리고 있어야 한다면, 아르티제아도 함께 그러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함께 북부에 가서 1년이든 2년이든 쉬면서 미래를 구상해도 된다.
삶은 길다. 미래는 더욱 길다.
정정한 황제가 2년 사이에 갑자기 쓰러져 죽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제국의 정치 지형은 크게 변했으나 그것은 아르티제아가 한 일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북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래도록 먼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세드릭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당신 옆에서 떠나지 않을 겁니다, 티아.”
“세드릭 님…….”
“당신이 하려는 일에 제가 관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을 혼자 두고 멀리 갈 생각도 없고.”
아르티제아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세드릭의 팔을 꽉 잡았다.
세드릭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고 내가 말했었지요?”
“…….”
“그리고 이미 저는 시민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어겨서는, 훗날 권력을 얻더라도 치세를 제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런 작은 약속조차 어기는 자를 누가 믿고 따르겠습니까?”
“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릇된 일을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조금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린 재상이 제게 제국의 정치란 폐하의 뜻을 저울추로 삼아 민의를 달아내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대답했다.
“훌륭한 표현이네요.”
“예. 예전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
세드릭이 말을 이었다.
“섣불리 폐하와 맞서서 뭔가를 바꿔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몸을 숙인 채 충실하게 폐하가 바라는 역할을 다할 작정입니다.”
“네.”
“미래를 위해서 상황을 파악해둔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려고 합니다.”
“정무장관직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으신 거군요.”
“당신이 제가 에브론으로 가야 하는 다른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요. 물론 이유가 있다면, 경청하겠습니다. 그래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지 않고 생각해보겠다고만 답하고 왔습니다.”
아르티제아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북부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세드릭이 거기 있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그가 중앙 정계에 머물러 흙탕물 튀기는 음모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세드릭의 말이 옳았다. 신망은 세드릭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다. 시민의 앞에 무릎 꿇고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스스로 그것을 내팽개치는 일이다.
이왕 정계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어야 했다.
“세드릭 님의 말씀이 옳아요. 뜻하시는 바가 있는데 제가 막아서는 안 되지요.”
“이해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세드릭이 부드럽게 말하고 아르티제아의 팔을 다시 잡아 이끌었다.
“그리고 저는 당신도 쉬기를 바랍니다.”
“…….”
“큰일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는 휴식이 필요할 뿐더러, 이 이상 노출되면 위험합니다.”
“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그럴 작정이었다. 황제의 눈이 주시하는 동안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로이가르 대공 쪽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모로 상황을 소강시킬 필요가 있었다.
당분간은 임신으로 몸이 아픈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들었다고 할 작정이었다.
그래도 이미 놓아둔 포석들은 마음대로 움직여 일을 진행시킬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음모도, 아첨도, 계산도, 모두 이렇게 확실한데.
정작 해야 할 말은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세드릭이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낳을 테니 행복하게 키워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목구멍 밖으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제게 그렇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 *
그 시각에 황제를 알현하고 있었던 것은 로렌스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바마마.”
로렌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
3주도 넘게 그는 황제를 만나지 못했다.
밀라이라의 재판이 있었던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낸 편지도 당도하지 않았다. 황제가 그것을 읽지도 않고 치우게 했다는 것을 로렌스는 알고 있었다.
로렌스로서는 당혹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황제가 늘 다정한 부친이었던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꾸짖음을 듣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거절당하는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