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4
악녀는 두 번 산다. 154화
지금도 분위기가 그랬다.
황제는 그를 개인적인 공간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집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로렌스보다 재상 린과 근위 기사 가얀이 먼저 와 있었다.
물론 로렌스는 황제의 집무실에도 종종 오갔었다. 이곳에서 다른 신하들과 만나거나 황제가 간단히 명령을 내리거나 재상과 의논하는 것을 지켜본 적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3주 만의 만남이었다. 그것도 밀라이라가 그렇게 된 이후에 첫 만남이다.
좀 더 사적인, 부자간의 시간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명백히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황제는 무릎 꿇는 로렌스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미간을 엄지와 검지로 눌렀다.
가얀이 물었다.
“편치 않으십니까? 의사를 부를까요?”
“됐어. 일이 끝나야 쉬지.”
“옥체가 상하십니다.”
“머리 좀 아픈 게 뭐 대수라고.”
황제가 그렇게 대답할 때까지도 로렌스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라, 로렌스.”
“예.”
로렌스는 일어서서 공손히 황제의 정면 자리를 비켜섰다.
그는 자신이 미움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3주 동안에는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세드릭이 끼어들어 주도권을 가져가 버렸다.
로렌스는 밀라이라의 아들인 이상 그 시점부터는 그녀의 재판에는 개입할 수 없었다. 개입하려면 훨씬 더 일찍, 아르티제아가 중재안을 제시할 그 시기에 했어야 했다.
그 시기에는 사원과 로이가르 대공의 말을 받아 적는 언론, 황제의 눈치를 보는 정부 사이에서 막후교섭으로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드릭이 끼어든 시점부터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세드릭이 시민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공정한 재판을 약속해 버렸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그 약속이 지켜지는지 아닌지를 지켜보았으며,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지켜볼 것이었다.
그 와중에 밀라이라의 아들인 자신이 노출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이점이 없었다.
세드릭의 인지도와 명성이 치솟는 동안 자신은 떨거지처럼 저택에 갇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지지하던 관료와 군부 인사들이 손바닥 뒤집듯 세드릭에게 돌아선 것에는 더욱 울화통이 터졌다.
그러나 당분간은 몸을 숙이고 조용하게 지낼 작정이었다.
황제가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무얼 하고 지냈느냐?”
황제가 물었다.
“집에서 조용히 반성했습니다.”
“네 누이동생은 한 번 만나봤느냐?”
“위문편지와 축하 선물만 보냈습니다. 방문은 집사가 거절의 뜻을 전해 왔습니다. 몸 아프고 예민한 시기에 남자 형제가 불편하게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요.”
“네가 평소에 다정한 오라비였다면, 어찌 불편하겠느냐?”
황제가 혀를 찼다.
만나서 하는 첫 이야기가 아르티제아에 대한 것이라니, 로렌스는 어이가 없었다.
최근에 황제가 아르티제아를 조금 총애하기는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쓸 만한 귀부인이라는 입장으로 서였다.
황제는 대놓고 밀라이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아르티제아에게 빗대어서 비난한 것이었다.
그러나 로렌스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가족과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했다. 어머니도, 동생도, 늘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도 별개의 삶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에 안다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대화할 때에는 순간순간 깨닫고 적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황제의 말에 오히려 가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자신이 세드릭과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닌 것을 황제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인데 말이다.
아르티제아가 임신했다고 해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세드릭에게 후사가 생겼다는 것에 속이 뒤집어졌다.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 세드릭과 싸운 뒤로 생겨난 이름 모를 증오는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속을 파먹어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친해질 수 없었던 이유가 마치 거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로렌스는 그것을 눌러 삼키느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쯧.”
황제가 노골적으로 들리도록 혀를 한 번 더 찼다.
공연히 가얀이 송구스러워했다.
“짐은 이번에 세드릭을 정무장관에 임명할 생각이다.”
“예?”
로렌스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황제가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포상은 해야 해. 시위대를 충돌 없이 해산시킨 데다가 사원이 일으킨 문제에 대해서도 무사히 종결짓지 않았느냐.”
“그것이 포상할 이유가 됩니까? 폐하의 위엄에 기대고서도 시위대를 압도하기는커녕 아첨하듯 헛된 약속을 하여 해산시킨 것에 불과한데요.”
“네 어미를 끝까지 보호하지 못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황제가 말했다. 표정이 퍽 누그러져 있었다.
로렌스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밀라이라의 일로 황제를 원망하거나 상처 입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황제가 고작해야 시위대 따위에게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인가.
세드릭을 통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결국 황제는 밀린 것이었다.
심지어 세드릭은 황제 대신 나아가 시위대 앞에 무릎 꿇기까지 했다.
이것이야말로 무능한 것이 아닌가?
로렌스 자신이었다면, 감히 황제의 권위를 침해하고 재상부 앞에까지 몰려든 시위대 따위는 근위대를 풀어 처리했을 것이다.
주모자 몇을 잡아들이고, 토끼 몰이하듯 몰면 금세 해산했을 게 분명했다.
황제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다, 로렌스. 백성이라는 것은 우둔하고나 약하지만, 그러니 오히려 더 그 흐름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다.”
“…….”
“그렇다고 해서 이만 한 일에 피바람을 일으킬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예.”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하는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대신 고개를 숙이고 책임을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신하는 얻기 어렵단다.”
“예.”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면서도 로렌스는 마음속으로는 반발했다.
황제는 세드릭이 자신에게 무슨 폭거를 행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화해하기 그른 사이였다. 근본부터 서로 용납할 수 없었다. 설령 아르티제아가 중간에 끼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로렌스의 심정을 알지도 못하고 말했다.
“이건 널 위한 일이기도 하다, 로렌스.”
“…….”
“넌 자질이 모자라. 세드릭은 물론이고, 로이가르보다도 못하다.”
“…….”
“폐하…….”
가얀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황제의 말이 로렌스의 성정을 건드릴까 봐 우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거칠 것 없이 말했다. 고작해야 아들의 마음을 해치는 게 두려워 좋은 말로 포장하고 돌려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짐의 아들이다.”
“……예.”
“짐이 가장 아끼는 자식이고, 가장 중한 것을 물려주기로 결정한 아들이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아바마마.”
“널 세드릭과 동시에 정무장관으로 임명할 거다.”
“예?”
“물론 순서는 세드릭이 먼저다. 세드릭이 제1 정무장관, 네가 제2 정무장관이 되는 셈이지.”
로렌스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이미 의논이 된 일인지, 가얀과 린은 표정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조용히 시립해 있었다.
사실 공적도, 직책도 없는 로렌스에게 정무장관직을 그냥 주기란 황제로서도 껄끄러운 일이었다.
그 때문에 세드릭을 제1 정무장관에 임명한 것이었다.
세드릭에게 포상을 하고, 직책을 주어 중앙의 관료 제도에 끌어들인다는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로렌스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동시에 임명한다면, 상대적으로 직책에 대한 중요성은 줄어들고 사촌인 두 사람이 나란히 임명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해질 것이었다.
“그리고 짐은 널 남부 전권 대사로 보낼 생각이다.”
“예.”
로렌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황제가 말을 이었다.
“여기 가얀이 너와 함께 갈 것이다. 해적을 토벌하고, 요즘 어지러운 남부의 밀무역 문제를 처리하게 될 거다.”
‘하라.’라고 명령하지 않고,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 일을 실제로 행할 것이 로렌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로렌스가 그 정도의 군공을 세울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산을 비롯하여 유능한 신하를 여럿 딸려 보낼 작정이었다.
그들이 공적을 세우고, 그것을 로렌스의 것으로 포장하면 된다.
그다음 밀라이라의 사건이 잊힐 때쯤 화려한 개선식과 함께 귀환하는 것이다.
그렇게 로렌스에게 명성을 얻게 한 다음 관료와 귀족원의 이름으로 황태자로 추대하면, 불완전하나마 정통성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세드릭은 수도에서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고 있을 것이다. 짐의 뜻을 이해하겠느냐?”
“예.”
로렌스가 감격한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손짓으로 로렌스를 가까이 불렀다.
로렌스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황제의 옷자락에 입을 맞추었다.
황제는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해야 한다. 네가 잘해야 네 어미도 산다.”
“예.”
“이게 짐이 네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이니라.”
황제가 말했다. 로렌스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가얀과 린은 시선을 맞추었다.
린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체념 섞인 태도였다.
가얀은 그것을 보고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제일 골치 아픈 문제를 떠맡은 것은 가얀 자신이었다.
남부가 어지러운 것은 뿌리 깊은 문제였다. 그것을 그냥 처리하라고 해도 어려운 일인 판국에 로렌스까지 떠안을 생각을 하니 골치 아팠다.
무엇보다도 누구에게 줄을 대느냐 하는 것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마음은 세드릭에게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말리에와는 입장이 달랐다.
황제는 근위 기사들에게 보다 높은 충성심을 요구한다. 후계 다툼에는 끼어도 좋으나, 황제의 뜻을 헤아려가며 해야 했다.
황제가 이 정도로 강력하게 로렌스를 밀어줄 뜻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황제를 따라야 했다.
아직 황제는 정정하고 강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얀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지금 자신이 공적을 모조리 로렌스에게 몰아준다 해도, 훗날 로렌스가 보좌에 앉은 뒤에 그 공을 알아 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