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9
악녀는 두 번 산다 159화
“티아?”
세드릭이 의아하게 그녀를 불렀다.
아르티제아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도저히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아예 그 자리를 피할 작정이었다.
그전에 세드릭이 먼저 일어서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르티제아는 동요를 억누르려고 애썼다.
“몸이 안 좋습니까?”
“아뇨. 할 일이 생각난 게 좀 있어서요. 위층에서 쉬고 싶어요.”
아르티제아는 아무 생각도 없이 주워섬겼다. 아직 그녀는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세드릭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가볍게 보듬어 안았다.
“이야기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있어요.”
아르티제아는 몸을 굳혔다. 그리고 힘을 주어 세드릭을 밀어내려 했다.
그때 고맙게도 프레일이 선룸으로 들어왔다.
프레일이 잠깐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30분 후에 올까요?”
“아닐세.”
아르티제아가 세드릭의 손을 뿌리쳤다. 세드릭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프레일은 어깨를 움츠렸다. 세드릭이 뭐라 한 것은 아니지만, 방해꾼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다.
“무슨 일인가?”
“비 전하께 손님이 있습니다.”
“당분간 티아는 아무도 만나지 않기로 했을 텐데.”
“옛 친구가 동부에서 보낸 소식을 가져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르티제아가 표정을 가라앉혔다. 냉정함이 돌아왔다.
옛 친구라 함은 라이 피젯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를 동부로 피신시킬 때에 아르티제아는 한 사람을 찾아내는 임무를 마지막으로 맡겼다.
빨리 찾아내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몸을 숨긴 채 생활하면서 수월하게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는 빠르게 제 역할을 다한 모양이었다.
“옛 친구요?”
세드릭이 되물었다. 프레일은 약간 난처한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에게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전 가봐야겠어요.”
“…….”
세드릭은 아르티제아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뺨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몸만이 아니라 마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신경 쓰면 피곤해지는 법이니까.”
“……네.”
“달리 제게 할 이야기는 없습니까?”
아르티제아는 약간 망설였다. 세드릭이 말하는 게 라이가 보냈다는 소식에 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사소한 인사 이야기인지, 혹은 보다 중요한, 어쩌면 지금 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의에, 잘 다녀오세요.”
아르티제아는 그 중 두 번째 것을 택해서 말했다.
세드릭이 미소를 지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외면하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뱃속에서 뽀글거리는 듯한 느낌이 또 났다. 기포가 심장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
프레일은 라이 피젯이 보낸 사람을 에브론 대공저까지 데리고 들어왔다.
임신하기 전이라면, 외부인을 저택 안으로까지 들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택을 벗어나 안전가옥까지 이동하는 것이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둘은 조용한 후원을 가로질러 별채로 향했다.
후원의 조경을 새로 할 때에 아르티제아는 별채도 수리하게 했다.
그리고 길을 숨겼다.
얼핏 보면 그냥 후원에 오솔길을 여러 갈래로 조성하여 산책이 즐거워지도록 배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특정한 길을 골라 이동하면 키 큰 수풀에 가려지게 되어 있었다.
길이 완성된 지금은 밖에서 망원경으로 들여다보아도 누가 출입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본채에서 별채까지는 지하로 뚫은 길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었다.
곧, 길을 아는 사람이라면 본채부터 후문 밖으로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와 유사한 비밀통로가 세 개 더 있었다. 그중 하나는 노골적인 형태의 비밀통로였고, 다른 하나는 진짜 비상용이었다.
“눈을 가려서 데려왔으니, 어디로 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할 겁니다.”
신뢰할 수 없는 자에게 비밀통로를 이용하게 한 것을 아르티제아가 내키지 않아 할까 봐 프레일은 변명하듯이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별채 앞에서 프레일이 건네준 베일을 쓰고, 머리를 대강 훑어 그물망에 넣었다.
옷 위에 검은 망토를 가볍게 둘렀다.
상대가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의 신분을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다’라고 확신하는 것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이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별채의 특색 없는 응접실에 안대로 눈을 가린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젊었고, 용모는 평범했다. 얼굴은 햇볕에 탔다. 거친 손이 온 몸에 절어 있는 지독한 피로가 긴 여행 탓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아르티제아는 남자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 남자의 여동생 쪽이지만, 용모만 보아서도 확실히 찾던 사람이 맞았다.
프레일이 아르티제아에게 두 개의 봉투를 건네주었다.
하나는 라이가 이 남자에게 쥐여 보낸 소개장이었다.
『찾으시는 자가 완전히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경계하시는 측에도 곧 소식이 알려질 겁니다.
부모는 이미 사망하였으며, 여동생 쪽은 일찍 결혼하여 남편의 집안에 소속되었습니다. 평범한 상인 가문입니다.
다른 혈족에 관한 소식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동봉하여 보내는 것은 이곳의 사원에 보관되어 있던 부모의 호적과 당사자의 출생증명서 사본입니다.』
아르티제아는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어 내려놓고, 말했다.
“눈을 풀어드리게.”
프레일이 남자의 안대를 풀어주었다.
남자가 눈을 굴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두리번거리는 것이 결코 귀족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등을 펴고 당당하게 행동하려 했다. 궁금증과 당혹감이 얼굴에 짙게 배어 있었다.
귀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제게 약점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예법 교육을 받은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일 것이다. 그 뒤에는 줄 곧 평민처럼 노동하며, 제 손으로 제 밥벌이를 해왔으리라.
그러니 아르티제아는 그의 부모가 자식에게 옛 영광을 잊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부드럽게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남자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복수심과 야망이 없다면 이곳까지 소개장을 들고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카멜리아 소후작님.”
자신이 왜 찾았는지 알 거면서, 남자의 몸이 움찔 경련했다.
카멜리아 소후작이라고 불린 남자, 이안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여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를, 아십니까?”
“그야 물론 알고 있지요. 직접 들고 오신 이 서류가 무엇인지 모르십니까?”
“…….”
이안은 엄중하게 봉인된 서류를 열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자신이 카멜리아 가문의 적손이 아니라면, 낯선 남자가 무엇 하러 그의 빚을 갚아 주었겠는가? 또 왜 하필 자신에게 적지 않은 금전을 주고 수도까지 서류를 가져다주라고 심부름시켰겠는가?
서류를 전달받은 곳에서 눈을 가리게 하고 자신을 마차에 태웠을 때에도, 푹신한 카펫을 밟았을 때에도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카멜리아 후작가 때문에 자신을 불러들인 것이라고.
이안의 어머니는 선대 후작의 장녀였다. 루덴 후작가에서 손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 카멜리아 후작은 그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어머니는 낙마하여 죽었다. 겉으로는 사고 같았다. 하지만 그게 암살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후처에게 눈이 어두운 선대 후작뿐이었다.
그 뒤에 아버지는 이안과 이안의 여동생만 챙겨 밤에 달아났다.
그게 이안이 5살 때의 일이다.
이안은 삼촌과 사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그렇게 달아난 자신들도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아마 살아남았어도 그리 편안한 인생을 보내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누구십니까?”
이안은 생각한 끝에 그 질문을 쥐어 짜냈다.
그는 수도 사정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귀부인들의 얼굴을 잘 알 리 만무했다.
“틀렸습니다, 소후작님.”
“틀렸, 다니요?”
“저는 소후작님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여기까지 모셔왔습니다. 소후작님이 먼저 제게 요구할 입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안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차피 제가 필요해서 호의를 베풀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리고 제가 필요한 이유는 지금의 카멜리아 후작가에 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일 거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부인은 저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만으로도 이미 이용하고 계십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 오게 될지조차 몰랐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제가 먼저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르티제아는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이안은 내친 김에 마저 말했다.
“또, 부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부인이 행하는 일이 호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앞에 있는, 얼굴을 가린 귀부인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한단 말인가?
어쩌면, 카멜리아 후작 부인 본인이 분쟁의 싹을 뽑기 위해 자신을 불러들인 것일지도 몰랐다.
카멜리아라는 이름을 잊어버리라고 말하면서도, 평생 한으로 쌓아온 아버지가 늘 말하곤 했다.
「희망을 갖지 마라. 복수할 생각도 하지 마. 혹, 로이가르 대공이 몰락한다 해도, 루덴 후작이 같이 몰락한다 해도, 그래도 이제 와 우리가 어찌할 수 있겠니?」
「아버지.」
「부귀는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마음의 평안보다 중한 것은 아니더구나. 그런 복마전에 돌아가 봐야 무엇 하겠니? 이 아비는 그냥 너와 네 동생이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만 바란다.」
이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나 지금 와 생각해보면 달랐다.
어린 이안이 희망이라거나 복수라는 단어가 가지는 진짜 의미를 알고 있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그 두 가지 단어를 잊은 적이 없었다.
결국 그의 아버지도 카멜리아 후작가를 되찾는 것을 ‘희망’으로 여겼던 셈이었다.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르티제아가 미소하는 기척이 베일 너머로도 느껴졌다.
“생각이 깊은 분이시로군요.”
“부인.”
“어리석은 것보다는 생각이 많은 편이 낫지요.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갖지 못한 것을 이미 잘 파악하고 계시는 듯하니, 솔직하게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제 목적은 카멜리아 후작가를 어지럽히는 일입니다. 무너뜨리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가문의 명예에 해를 입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고 싶군요.”
이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는 말씀은……, 카멜리아 후작가를 차지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