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
악녀는 두 번 산다 16화
“로산 후작가 자체가 목적이라면 나보다 더 안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골라도 될 겁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로산 후작가의 주인은 영애입니다. 실질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로산 후작가의 후손은 영애 한 사람뿐이니까요.”
“네. 그렇지요.”
“이 상속은 신과 사원이 보호하는 것입니다. 폐하라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네. 사실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해서 폐하께서 무리한 정치적인 부담까지 지시지는 않을 테지요.”
“결국 영애가 필요로 하는 건 트러블이 있는 동안에 영애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편이지요. 그런 상대로서 선택하기에는 나는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영애가 원하는 게 권력과 영광이 아니라면, 영애가 나와 결혼하여 제위 계승전에 뛰어들 이유는 없습니다. 황후가 되고 싶다면 또 모르겠으나, 이혼을 하겠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아르티제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2년 후의 이혼을 말한 것은 리시아 때문이었다.
리시아는 아직 어리다. 그렇지만 2년 후에는 활짝 핀 장미처럼 탐스러운 미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20살의 생일에 신탁을 받는다.
《너는 나를 대신하여 어렵고 힘든 자를 보살피라.》
대사원에 내려온 신탁은 본래 그것이었다.
신탁이 내린 것은 거의 1백여 년 만의 일이었다.
리시아는 신탁을 받으면서 동시에 성녀가 되었다.
신심 깊은 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고, 신을 믿지 않는 자들조차도 놀라워했다.
그녀는 온힘을 다해 성녀로서 살았다. 밑바닥에 손을 내밀고 죽어가는 자를 구했다.
아바 강의 수해로 인해 전염병이 돌았을 때에 그녀는 수행원 몇 명만 데리고 그 한복판에 뛰어 들어가 오염된 우물을 정화하고 사람들을 치료했다.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서부 지역이 지옥처럼 변했을 때에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준 것도 그녀였다.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그보다 많은 희망을 주었다.
그녀는 성력으로 다친 이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고친 것은 아마도 병이나 부상보다 마음이 더 많을 것이다.
제국민의 소망은 성녀에게 모였다.
그녀가 정치에 손을 담근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녀는 심지어 사교계에 나타난 적도 없고, 수도에 있었던 적도 거의 없었다.
귀족들 중에 그녀를 지키고 도운 것은 오로지 세드릭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황제도, 사원의 대주교도 아니라 성녀를 자기들을 이끌어줄 사람으로 여겼다.
백성의 믿음은 천심이 된다.
때문에,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따르는 마음이 폭발하여 결실을 만들어 내기 직전에 새로운 신탁을 조작했다.
《성녀는 황후가 되리라.》
정말로, 백성들이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그것은 황실과 사원의 권위를 한꺼번에 제자리에 되돌리는 일이었다. 황실은 잃어버린 정당성을 성녀를 통해 얻게 되었고, 사원은 세속의 권력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까지 계승 싸움은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다.
황제의 총애도 로렌스의 출생을 넘어서지는 못했으며, 로이가르 대공의 권력이 황제의 총애를 압도하지도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아르티제아가 퍼뜨린 거짓은 두 사람 사이의 싸움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어떤 여자가 황후가 되리라는 것은, 곧 그 여자의 남편이 황제가 된다는 뜻이다.
그레고르 황제도, 로렌스도, 로이가르 대공도 그런 신탁보다는 자기 손에 쥐어진 권력을 믿었다.
아르티제아는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 황제는 신탁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온 나라 백성이 선하고 아름다운 성녀가 황후가 되리라고 믿으니, 아무도 그 믿음을 배신하지 못했다.
리시아와의 결혼은 로렌스의 정통성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한 조각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세드릭에게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게다가 본래 리시아와 세드릭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놓아두면,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져 결혼할 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이혼해야 했다.
신탁이 내려오기 전에. 리시아가 성녀가 되고, 세드릭이 그녀를 돕고,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싹트기 전에 이혼하기를 원했다.
세드릭은 성실한 사람이다. 신탁이 내려온 뒤에 이혼을 하고 리시아와 결혼하라고 하면 그러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자기가 섬기는 주군에게 성녀를 얻고 싶어서 이혼을 했다는 꼬리표를 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세드릭에게 지금 말할 수는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망설였다. 세드릭이 그것을 알아채고 말했다.
“말할 수 없습니까?”
“속이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전하를 제외한 다른 자가 황제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황후가 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대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주셔도 무방합니다.”
“영애는 제국을 위해서 몸을 불사를 작정인 것 같군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었다.
“저보다 그런 말에 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레브 가에 도착한 마차가 멈췄다.
마부가 행선지를 자세히 말해달라고 똑똑 마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아르티제아는 창문을 세 번 두드려 마부와 하녀에게 거리를 두고 떨어지라고 신호했다.
그리고 세드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세드릭이 말했다.
“제위를 논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봅니다.”
“네.”
“그러나 우선 당장 서부군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영애의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손을 마주잡고 있는 이상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영애를 보호하고, 영애는 에브론 대공가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될 겁니다. 그것으로도 괜찮습니까?”
“네. 그리고 이혼은…….”
“2년 후의 일은 2년 후에 생각합시다.”
“그것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완전한 신뢰 관계가 구축될 때까지, 곧바로 교환할 수 있는 계약물부터 확실하게 주고받는 게 좋겠지요.”
아르티제아가 그렇게 말했다. 세드릭은 답답한 마음으로 아르티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세드릭이 그렇게 말해서 아르티제아는 등을 긴장시키고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지킬 수 없는 조건이 제시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했다. 거짓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얼버무릴 것인가.
그가 요구하는 것이 정직성이라거나 음모를 꾸미지 말라거나 그런 말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드릭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주변 사람이 다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만일에 영애가 나와 함께하려고 한다면, 그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겁니다.”
“네. 잘 알고 있어요.”
“아는 것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는 건, 영애 자신도 다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세드릭이 그녀의 뺨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라리 때리고 오십시오.”
아르티제아는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세드릭이 그녀를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전 뺨을 때리는 것보다 먼저 한 대 맞은 뒤에 소송을 걸고 소문을 내서 상대방 평판을 짓밟는 걸 더 좋아해요.”
“다치거나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네. 알았어요. 전하의 염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웃음을 다 거두지 못한 채 대답했다.
세드릭은 웃음에 허물어진 그녀의 얼굴이 진지한 얼굴보다 훨씬 보기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소를 깊게 했다.
“그러면, 저도 조건으로 청할 것이 한 가지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페셔 자작가의 가보로 성녀 올가의 심장이라고 하는 보석이 있어요. 그걸 청혼 선물로 주세요.”
아르티제아가 다른 것도 아니라 보석을 청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세드릭은 놀랐다.
“페셔 자작가의 가보를…… 말입니까?”
“네. 그러시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해하기 쉬우실 거예요.”
아르티제아는 부드럽게 말했다.
“성녀 올가의 심장을 손에 넣은 뒤에도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게 청혼해 주세요.”
세드릭은 더 질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티제아가 마차의 문을 열려 했다.
세드릭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막았다. 그리고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는 아르티제아에게 미소만 지어 보이고 자기가 문을 열고 먼저 내렸다.
그러고 나서 아르티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머뭇거리면서 그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그러자 세드릭이 그녀를 훌쩍 들어 내려주었다.
“아.”
“숙녀가 먼저 내리는 법은 없습니다.”
“네……. 그렇지요.”
아르티제아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가슴 안에서 작은 물고기가 팔딱팔딱 헤엄치는 것 같았다.
내려선 길은 좁고 질척질척했다. 각다귀 같은 어린애들이 몰려들어 손을 내밀었다.
“한 푼만 주세요!”
“자비를 내려주세요, 귀한 아가씨!”
“신이 가난한 자를 먹인 빵의 개수만큼 천국에 아가씨의 자리를 마련해두고 있을 거예요!”
앨리스가 서둘러 검은 망토를 꺼내어 아르티제아에게 입혀 주었다. 아르티제아는 망토의 후드를 깊이 눌러썼다.
“그런 옷을 미리 준비하고 다닙니까? 원래 오늘 여기에 올 예정은 아니셨던 것 같은데.”
“머리카락 색이 눈에 띄어서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마부가 고함을 질러 각다귀떼를 쫓아냈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 한 사람만을 동반해서 빠른 걸음으로 그 길을 벗어났다.
레비 가의 뒷골목을 보통 남자 한 둘과 함께 지나가는 것은 큰 모험이다.
하지만 세드릭은 보통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제국의 방패를 다스리는 사람이었지만, 그 자신이 제국 제일의 무장이었다.
아르티제아가 자신을 검고 소박한 망토로 가렸지만 귀족 여자임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드레스의 실루엣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동행자 역시 귀족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호위를 떼어놓자마자 5분 만에 강도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드릭이 퍼뜨리는 기세에 억눌려 아무도 나타나지 못했다.
아르티제아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세드릭은 사방에서 긴장하여 숨죽인 자들이 있는 것을 느꼈다.
“누굴 만나러 가는 길입니까?”
“대대로 로산 후작가를 모셔오다가 선대 로산 후작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쫓겨난 집사예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제게는 믿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아마 어머니에게도, 제게도 원한이 있으실 테지만……, 로산 후작가에 대대로 충성해온 집안의 분이니 제가 물려받은 핏줄의 힘을 믿고 찾아가 보려고 해요.”
“그렇군요.”
세드릭은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 보았다.
로산 후작가 같은 부유하고 전통 있는 귀족을 대대로 모신 집사가 몰락하여 이런 곳에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