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2
악녀는 두 번 산다 162화
아르티제아는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셨다. 시선은 수고운 홍색으로 우러난 찻물에 두었다.
남에게 마음을 읽히지 않기 위해서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찻잔이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지 모르는 이는 귀부인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튼 궁금하긴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카일라는 로이가르 대공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너무 크지 않은 승리 말이다.
그것은 승리할 가능성을 높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희망이 없다’라고 단언하게 되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사리 물을 수는 없었다. 묻는다는 것은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이고, 스카일라의 ‘친구’로서의 역할을 다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괜찮은 선택일지 아닐지 아직 잘 알 수 없었다.
스카일라가 말했다.
“비 전하께서 로렌스 경이 아니라 에브론 대공 전하를 옥좌에 올리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빙그레 웃었다.
“금시초문이로군요. 설마 로이가르 대공 전하나 루덴 후작께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아닙니다. 로렌스 경이 정무장관이 된 것은 폐하의 변덕스러운 어심 탓이니까요. 이것은 누구도…….”
스카일라는 잠깐 머뭇거렸다. 아르티제아라면 짐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이었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일이었을 테고요.”
아르티제아는 미소한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카일라는 그녀가 짐작했었을지 아닐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비 전하께서 원래 바라셨던 상황이 지금의 결과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킴 주교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아르티제아를 그 정도로 적극적으로 제거하려고 했던 것은 아마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루덴 후작은 세드릭이 황제에게 이 일을 역모로 다루어 달라고 청한 것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러한 변수를 모두 제외하고 생각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아르티제아의 중재안이 받아들여졌다면, 밀라이라는 수도의 로산 저택에 남게 되었을 것이다. 로렌스는 황후를 생각해서도 좀 더 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를 지지하는 사교계의 세력들은 구심점인 밀라이라를 잃고 흩어졌을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일에 성공한 대가로 황제에게 적절한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황제가 총애하는 귀부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혔을 수도 있었다.
황후가 조용하고, 밀라이라가 없어진다. 황제의 딸들은 큰일을 할 만한 그릇이 못 된다.
그러면 그다음 황제의 뜻을 받아 사교계를 움직이는 것은 누가 될까?
그것은 노려볼 만한 자리였다.
에브론 대공비는 그냥도 황후와 로이가르 대공비에 뒤이어 제국 세 번째의 귀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교계를 다스릴 자격은 충분했다.
그다음 후원자적인 입장에서 로렌스의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누이로서 충성을 바치는 것과는 완전히 역전된 관계였다. 이는 황제를 세우려는 자라면 마땅히 노릴 만한 자리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아르티제아이다. 세드릭이 아니라.
루덴 후작은 이 같은 추론을 거쳐 아르티제아 자신이 권력을 획득하려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에브론 대공에게 의지하여 야심을 만족시킬 수 있을 리 없어. 에브론 대공령에서 존경과 존중을 받는다 해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았을 테지.」
「네.」
「대공비는 밀라이라의 딸이야. 황제의 총애와 비공식적인 권력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도 잘 알고 있을 테고, 그게 얼마나 막대한 힘인지도 알 테지.」
「하지만 지금 에브론 대공이 정무장관이 되었잖아요?」
「그건 실질이 없는 자리다. 에브론 대공은 이미 명예도, 지위도 갖고 있지 않으냐? 대공비가 원한 것이 실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지는 권력이라면, 실망했을 것이다.」
루덴 후작은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게다가 설령 에브론 대공에게 그런 권력을 준다고 해도 유용하게 써먹을 리가 만무하지.」
그는 세드릭이 관료의 신망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는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시민들이 로렌스와 세드릭을 나란히 두고 견주며 말하는 것에도 아무 관심 없었다.
어차피 백성들이 입방아를 찧어 보았자 전부 한때의 일이다.
루덴 후작은 민의를 신경 쓰는 것을 어리석은 일로 여겼다.
권력 다툼은 귀족의 세력싸움이다.
백성의 인망 같은 것을 모아 어디에 쓰겠는가? 그런 것은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황위 계승은 정통성에 의거한다.
백성이 지지한다, 그 사람이 차기 황제가 되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려도 아무 의미도 없다.
그레고르 황제의 정통성을 인정한다면, 세드릭은 무조건 로이가르보다 계승권이 낮았다.
제국의 계승법에 따르면, 백치가 아닌 이상 무조건 작위와 그에 딸린 재산은 적종으로 상속되며, 장자, 차자의 순서대로 이어진다.
만일에 적자가 없다면, 그다음은 동생이다. 동생도 없다면 장자가 낳은 적손에게 이어진다.
그러므로 황제의 동생인 로이가르 대공이 먼저이고, 조카인 세드릭은 그다음이었다.
현재 시점에서 감히 그레고르 황제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세드릭이 인기를 얻더라도 모두 의미 없는 것이다. 로이가르 대공에게는 당면한 문제가 아닌 셈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거기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루덴 후작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아르티제아는 스카일라의 말을 흥미롭게 들었다.
로이가르 대공과 루덴 후작의 생각을 전해 듣는 것 자체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스카일라가 줄다리기는커녕 조건 제시조차 그만두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로 한 듯하다는 점이었다.
현명한 일이었다.
이안이 나타난 시점에서 스카일라의 쓸모는 애매해졌다.
지금까지 스카일라가 바라던 것이 로이가르 대공이 승리하되, 너무 큰 승리를 거두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영애는 루덴 후작님과는 다르게 생각하나 보죠?”
“짧은 기간이나마 제가 황후궁에 다니며 비 전하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스카일라가 말했다.
“저는 스스로 그리 어리석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 전하께서 저의 얄팍한 심산으로 잴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글쎄요. 영애는 터무니없이 나를 높이 평가하는 모양이로군요.”
“비 전하께서는 권력을 목표가 아니라 도구로 여기는 분이시지요.”
스카일라가 말했다.
“또, 냉혹한 분이기도 하고요.”
“…….”
“저는 비 전하께서 로산 후작 대부인의 일을 꾸몄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대부인과 로렌스 경을 진짜로 축출하기 위해서요.”
“……지금 얼마나 위험하고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나요?”
“증거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도 의심할 따름이지, 외할아버지나 이모부님께 말씀드리지는 못했어요.”
스카일라는 조금 한심스럽게 생각했다.
만일에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증거나 완성된 논리 없이도 로이가르 대공이나 루덴 후작과 다른 견해를 말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스카일라도 로이가르 대공이 패배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저는 비 전하께서 처음부터 로렌스 경과 황후 폐하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줄 마음이 없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붉은 보석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셨지요. 소문은 실질보다 크게 퍼졌고요.”
“글쎄요. 노력했는데, 잘되지 않은 것뿐일지도 모르잖아요. 소문은 언제나 통제할 수 없는 법이고요.”
“그러면 머리 장식은 왜 미리 따로 준비하셨나요? 로렌스 경이 에스코트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아신 것처럼.”
그것이 스카일라가 이 일을 눈치챈 첫 번째 계기였다.
아르티제아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벨몬드 가의 헤젤 영애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에 헤젤 영애와 약간의 교분을 쌓았거든요.”
“헤젤 영애가 아니라 다른 어느 누구라도, 재능 있는 젊은 숙녀가 자신의 재능을 떨치기를 망설이고 있다면, 등을 밀어주었을 거예요.”
아르티제아가 약간 눈썹을 치켜세웠다.
“영애는 지금 그것을 근거로 내가 황후 폐하를 미끼로 삼아 어머니를 함정에 빠뜨렸다고 주장하려는 건가요?”
“이것이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비 전하. 어머니에게조차 말씀드리지 않은 일입니다. 누구에게도 근거라고 할 수 없어 마음에만 품었던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가 어찌하여 신복하기로 마음먹었는가를 말씀드림으로써 의심이 사라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스카일라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비 전하께서 이모부님을 위해서 로렌스 경을 축출하려고 했을 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감정적인 이유로 그리하셨을 리도 없습니다. 그러니 남은 이유는 에브론 대공 전하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지금의 결과를 보면, 완벽하지는 못해도 꽤 훌륭한 상태가 아닌가. 아르티제아는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짐짓 화난 얼굴을 했던 아르티제아가 표정을 다시 일변시키고 편안한 자세로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좋아요, 영애의 말이 옳다고 가정해보죠.”
“네?”
“어디까지나 가정이에요. 그래서, 그게 사실이라면 영애는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거죠?”
아르티제아가 여유로운 태도로 물었다.
스카일라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아르티제아는 가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스카일라가 말하는 것은 가정이 아니다.
위험부담은 오로지 스카일라 혼자 가진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모두 로이가르 대공측의 정보를 누설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카멜리아 후작가가 에브론 대공 전하의 치세를 여는 데에 한손을 보탤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영애가 약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영애는 아직 카멜리아 후작도, 후작 부인도 아니니까요.”
“네. 하지만 이안 카멜리아보다는 제가 훨씬 더 쓸모 있을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신중한 태도로 스카일라를 살폈다.
그녀는 어디까지 각오하고 있을까?
스카일라는 보통의 귀족 영애와는 다르다. 최소한 어머니와 가까운 친척들을 모조리 배신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카일라가 정말로 그 정도로 배신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당연히 이안보다 훨씬, 월등히, 쓸 만한 칼이었다.
그때였다.
응접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마님, 앨리스입니다.”
“들어와.”
아르티제아는 스카일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들어온 것은 앨리스였다. 그녀는 긴장한 듯 창백해진 얼굴로 다가와 아르티제아의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남부에서 편지가 왔어요.”
아르티제아는 그 편지를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뜯었다. 몹시 기다리던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남부의 정보 조직에서 급보로 보내온 소식이었다.
『에이멜 왕비, 독살로 사망. 에이멜 왕국군, 리아간 공작령에 상륙. 렉센 부인, 자결.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는 순서대로 급보하겠습니다.』
스카일라는 지금까지 온화하면서도 무의미한 미소를 걸고 있던 아르티제아의 입매가 무표정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무슨 소식인가 궁금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편지를 접으며 일어섰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세요.”
“비 전하.”
“오늘 할 이야기는 모두 끝났습니다. 돌아가세요, 스카일라 영애. 필요한 일이 있다면 부르겠습니다.”
아르티제아는 축객령을 내렸다. 그리고 서둘러서 그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