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4
악녀는 두 번 산다 163화
세드릭은 그날 밤에 귀가하지 못했다. 편지만 한 통 전해졌다.
『리아간 공작령에서 올라온 급한 전갈 때문에 퇴궁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겠습니다. 긴 하루가 될 듯하니, 푹 잠들기를 바라겠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그 편지를 접었다가 촛불에 가져다대었다. 짤막한 편지는 금세 재가 되었다.
프레일이 말했다.
“군사 정보망으로도 동일한 소식이 오늘 들어왔습니다. 전령이 급보를 가지고 황궁으로 갔습니다.”
“그렇군.”
“아마 남부로 내려가고 있는 정벌군에는 며칠 전에 소식이 전해졌을 겁니다. 아직은 군사기밀입니다.”
“로이가르 대공측은?”
“아직 모를 겁니다. 군부 쪽에 사람을 심어놓았다고 하더라도 하루 이틀은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르티제아가 미리 에이멜 왕국군의 동향을 주시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도 이렇게 소식이 빨리 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제2보가 당도한 것은 그날 밤의 일이었다.
에이멜 왕비가 암살당한 것은 16일 전의 일이다. 리아간 공작 부인의 소개를 받아 왕비를 알현한 렉센 부인 데어리 포드가 독살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에 에이멜의 왕자 카드리올이 군세를 일으켰다. 리아간 공작가에 왕비 암살범을 보낸 이유를 묻겠다는 것이었다.
에이멜 왕국군은 마치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전광석화로 제국 남부의 항만 두 개를 점령했다.
본래부터 크라테스 제국의 해군은 에이멜 왕국군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총력전이 된다면 국가 규모가 다르니 제국이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해전이라면 무조건 에이멜 왕국의 승리였다.
카드리올 왕자는 여세를 몰아 리아간 공작가로 진격했다. 리아간 공작가는 항만을 빼앗겼다는 소식에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포위당하고 말았다.
급보를 쥔 파발이 뜬 것은 이 시점의 일이다. 아르티제아의 정보망이 에이멜 왕국과 리아간 공작령에서 정보를 수집하여 보낸 것도 거의 동시였다.
“후회하십니까?”
“후회?”
프레일의 물음에 아르티제아가 되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제2보로 온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 거기에는 렉센 부인 데어리 포드의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적혀 있었다.
데어리는 왕비를 독살한 현장에서 사망했다.
왕비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같은 찻주전자에서 따라낸 차를 한 잔 더 마신 것이었다.
시녀의 비명을 듣고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호위가 달려왔을 때에는 이미 피를 토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무척 침착했던 것이, 그 정보를 유출한 시종이 받은 감상이었다.
사실, 그 차를 데어리가 먼저 마셨기에 왕비가 믿고 따라 마신 것이기도 했다.
아르티제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스럽긴 하군. 이런 지혜와 용단을 함께 가진 사람은 구하기 어려워. 이렇게 소모해 버릴 인물이 아니었는데.”
자신이 너무 과거의 기억에 의거해서 사람을 판단했다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그녀가 데어리 포드를 소모품으로 쓴 것은 결국 이전의 삶에서 데어리가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이유뿐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아까워. 살아 있었다면, 스카일라와의 사이를 중재할 가능성도 있었을 터인데.”
아르티제아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다. 데어리는 가장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위치에 있었다. 명령을 보냈을 때에 스카일라는 아직 아르티제아에게 ‘친구’라는 명목도 얻지 않았을 때였다.
“대신 복수해주실 생각이십니까? 데어리 포드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프레일이 물었다.
“그리고 데어리 포드는 로이가르 대공이 몰락하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복수의 대상에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들어 있는 것을 빤히 아는데, 모르는 체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지 않은가?”
아르티제아는 잠시 침묵했다가 천천히 말했다.
“책사는 신용이 있어야 한다네.”
했던 말을 없던 것으로 하거나 약속을 어기고 배신하는 것은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비책이다.
그런 것은 수하에게 할 일이 아니다. 가장 위협적인 동맹 세력을 대상으로 할 일이다.
“살아 있었다면, 빼냈을 거야.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 대한 복수 대신 다른 보상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볼 수도 있었겠지.”
“비 전하.”
“하지만 데어리는 죽었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해냈는데, 약속한 보상을 주지 않을 수는 없지.”
아르티제아는 언제나 수하에게 약속한 대가를 정확히 치렀다.
그게 돈이라면 돈을 주었고, 아픈 가족을 치료하는 것이라면 천금을 들여서라도 약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복수도.
그래야 조직이 유지된다. 계속해서 목숨을 바치고 비밀을 지키며 일하는 사람이 생긴다.
일벌백계와 마찬가지로 보상 역시 제대로 해주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조직에 결속력이 생기고 충성심이 생겨나는 법이다.
자신이 특별히 약속을 소중히 여겨서 그러는 게 아니다.
프레일이 말했다.
“비 전하께서 죽으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에이멜 왕비를 암살하라고 했을 때에 이미 죽으라고 말한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아르티제아가 대꾸했다.
데어리는 에이멜 왕국에 아무런 연맥이 없다. 그것을 만들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암살하려면, 알현하여 그 자리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죽는 것까지 계산하고 계셨습니까?”
“죽지 않더라도 데어리는 붙잡혔어야 했어. 그래야 그 뒤를 캐어 다음 단계로 연결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왕비를 암살한 후 붙잡힌다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아마 데어리도 그렇기 때문에 함께 죽는 것을 선택했으리라. 데어리는 고문을 견디는 법을 익힌 전문적인 간자가 아니다.
자백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데어리는 자신에게 목숨을 팔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었으니, 아르티제아는 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실 나는 데어리가 도망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네.”
“상당히 큰돈을 주셨으니까요.”
“돈과 명예는 결심을 무디게 하지. 심지어 데어리는 재능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르티제아는 감상적인 태도로 말했다.
프레일은 조금 망설였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미리 물어봐둬야 할 것이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쉬고 싶다고 해서 쉬어도 되는 몸이 아니었다.
“그러면 스카일라 영애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칼로 쓰도록 하지.”
아르티제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데어리가 직접 로이가르 대공을 찌르는 비수는 되지 못했으니, 스카일라가 그렇게 되어도 좋지 않겠는가?”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프레일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 * *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가얀이었다.
그는 곧바로 군대를 돌렸다. 가얀의 명령을 받은 기사들이 향한 곳은 로렌스의 막사였다.
로렌스는 경악하여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가얀 경? 감히 지금 황명을 받고 남부 전권 대사로 내려가는 나를 공격해?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반역이 아닙니다.”
가얀이 묵직하게 말했다.
“저는 제국의 안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판단되는 경우, 폐하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체포·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얀 경!”
“렉센 부인이라는 이름이 기억납니다.”
가얀이 말했다.
“호덴 자작이 경의 심부름으로 남부에 다녀왔었던 적이 있지요.”
로렌스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왜 그 이야기가 지금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호덴 자작이 왜 남부로 내려갔는지 잊으셨습니까? 리아간 공작을 끌어내려 선대 리아간 공작 부부의 한을 풀어드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도리어 리아간 공작에게서 대접을 잘 받고 온 모양이었지만.”
“그 회의에는 경도 있었지 않나?”
로렌스가 기가 차다는 듯이 되물었다.
가얀이 말했다.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결정하지 않았고, 실행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 일 자체에 대해 조언하지조차 않았으니까요.”
로렌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가얀은 거침없이 말했다.
“리아간 공작 부인의 소개로 에이멜 왕비를 알현한 여자가 왕비를 암살했습니다. 그러나 리아간 공작 부부가 이렇게 드러내놓고, 폐하께서 명하신 일도 아닌데 암살 같은 것을 시켰을 리 있겠습니까?”
“가얀 경.”
“이건 당연히 누군가가 리아간 공작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설계한 겁니다. 그리고 저는 로렌스 경이 그런 계획을 세웠고, 사람까지 보냈던 적이 있는 것을 압니다.”
“터무니없어!”
“폐하의 신하된 몸으로서, 이 나라의 근간을 지키도록 명받은 근위 기사로서, 그 회의장에 있었다고 하여 모르는 척할 수 있겠습니까?”
“후환이 두렵지 않나?”
“염려 마십시오. 폐하께 상신할 뿐입니다. 아무 죄도 없다면 염려하실 일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후환을 걱정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가얀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로렌스를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남부 정벌군의 총책임자가 비록 로렌스라고는 해도 실권은 전혀 없었다. 기사들은 망설임 없이 가얀의 말을 따랐다.
가얀은 군대를 수도로 돌렸다.
그때에 남부 정벌군은 아직 중부 지방을 다 벗어나지도 못한 채였다.
준비가 오래 걸렸던 것에 반해, 이대로 군을 돌려 수도로 돌아가는 것에는 채 보름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가얀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사건의 전후를 완전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회의에서 있었던 발언들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아말리에가 세드릭에게 돌아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아말리에가 교묘하게 뒤틀린 조언을 했다는 것도.
가얀은 그 조언의 목적도, 결과도 몰랐다. 그러나 무언가 모략이 숨어 있다는 사실만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했던 것이다.
십중팔구 호덴 자작을 파보면 암살범과의 연결고리가 나올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연결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는 내심으로 감탄했다.
아말리에는 아르티제아가 염려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을 전했었다. 황제의 명을 따르면서도 돌아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것이 아르티제아가 기다리라고 했던 그 일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침몰하는 배에서 내리려면, 가장 먼저 보트에 타야 한다.
가얀은 황궁을 향해 지급 전서구를 띄웠다. 그다음 파발을 보냈다.
이 파발이 당도한 것은 바로 남부에서 리아간 공작의 탄원서가 황궁에 닿은 것과 같은 날이었다.
* * *
숨죽인 침묵이 겁에 질린 회의실 안에 떠다녔다.
황제가 손에 쥐고 있던 편지를 꾸깃 쥐었다.
『……늙은 신하는 정말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내가 에이멜의 왕비 전하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의 장신구이며 옷 같은 이야기를 하며 친교를 쌓는 사이였을 따름입니다. 소개한 자가 불측한 마음을 품었으리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 여자는 포목상과 두루 교분이 있는 양잠농으로, 에이멜의 왕비 전하께서 비단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에 소개해드렸을 뿐입니다. 실로 억울하고 기가 막혀 폐하의 자비와 구원을 청할 따름입니다…….』
그가 그 편지를 책상 위에 집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