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5
악녀는 두 번 산다 164화
신하들은 황공하여 입도 열지 못했다.
“하, 기가 막히는군.”
그 편지에는 황제가 노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우선 리아간 공작가 자체가 문제였다. 이리저리 돌려 말하고, 사죄하며 용서를 구하고는 있다.
그러나 소개해주었다는 양잠농이 진짜로 작은 농가 여인일 리는 만무하다. 결국 리아간 공작 부인과 에이멜 왕비가 함께 사업을 하려 했다는 뜻이다.
이미 하고 있었거나.
그 사업이 평범한 것일 리 없었다. 나라 전체가 직물 산업으로 먹고 살고 있는 이언츠 왕비도 아니고, 에이멜 왕비와 비단 사업에 관해 할 이야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보다도 황제는 그런 계획에 대해 조금도 들은 바가 없었다. 리아간 공작가에 그런 자유를 허락한 바도 없었다.
하물며 타국과의 무역이 집중된 남부의 상황을 생각해보건대, 밀무역까지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에 황제가 이 사실을 그냥 알았다면, 리아간 공작가는 그 자체로도 책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리아간 공작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황제가 남부의 관할을 맡기기 위해 손수 선택한 자였다.
외척을 제거하겠다며 황후의 친정을 몰살한다는 큰일을 감행하고서, 그 뒷마무리를 위해 선택한 자이기도 했다.
감히 로렌스 따위가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신하가 조심스럽게 사실을 알리며 권유했어야 할 일이었다.
“고정하십시오, 폐하. 리아간 공작이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짐이 이럴 줄 알았다. 짐이 이럴 줄 알았어. 그냥 기다리면 짐이 어련히 알아서 상속을 도와주었을까? 리아간 공작의 혈통이 닿아 있다고 해서 그런 소인배를 골라 그 자리에 앉힌 짐의 죄다.”
황제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얼굴은 붉었고, 입이 마르는 듯했다.
“고정하십시오. 옥체에 해가 되십니다.”
시종장이 미지근한 꿀물을 가져와 황제의 손 근처에 놓았다. 황제가 컵을 낚아채듯 하여 벌컥벌컥 들이켰다.
재무부 관료 벨론이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고 고개를 숙였다.
“에이멜 왕실 내부에 사정이 있었습니다. 리아간 공작도 거기에 휘말린 거겠지요.”
“이 먼 수도에 있는 경도 아는 그 속사정을 바로 옆에 있는 리아간 공작은 몰라서 이런 일을 당한단 말인가?”
황제가 또다시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다른 쪽에 일렬로 앉아 있는 군부 관료들을 바라보았다.
이 회의에 참석한 다른 관료들이 대부분 황제의 오래된 충신인 것에 반해, 군부 관료들은 누구의 줄을 잡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모두 출석해 있었다.
황제가 물었다.
“남부 정벌군은 어찌 되었느냐?”
“아직 남부 가도로 진입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얀에게는 소식 전해졌나?”
장군들이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남부 정벌군이 이대로 남부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황제의 명령을 새로 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황제가 노하고 있는 사건을 나서서 말할 용기 있는 자가 좀처럼 없었다.
황제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세드릭이 말했다.
“소식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전령을 보냈습니다.”
“그래? 가얀이 뭐라 하더냐?”
“아직 전령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마 가얀 경도 이미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 남부의 군사 정보는 모두 남부 정벌군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
황제가 후 한숨을 내쉬고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그 렉센이라는 자는 어찌되었느냐?”
“본래 서부의 하급 귀족이었던 자입니다. 살던 곳을 떠나 수도에 왔던 것까지 확인되었습니다.”
“잠적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진 않습니다. 연고지에 말하기는 수도로 간다고 하고, 수도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는 동부의 장원을 사서 이사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대답한 재상부 관리가 보고서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일단 동부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단시간에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워낙에 연고 없는 곳으로 간 데다가 재산이 많은 자도 아니라 어디 시골로 들어갔다면, 수소문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듯합니다.”
“방법이 없다니!”
“황송합니다, 폐하. 그러나 동부의 장원 거래는 추적하기 어렵습니다.”
황제가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그것은 동부의 땅을 갈라먹은 대지주들이 토지대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농장의 규모를 중앙정부에서 정확히 알지 못하게 하고자 했다.
토지 거래가 신고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토지의 진짜 주인과 장부상의 주인이 일치하는 일이 오히려 적었다.
장부상에 있는 이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적도 대단히 많았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을 정도로 큰 거래가 있거나, 매우 유명한 특산물이 나는 수도원이나 와이너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상에는, 귀족이나 큰 상단간의 결혼으로 인해 지참금이 움직이는 경우에나 신고되었다.
그러니 하급 귀족이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사들인 땅은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그 사실이 황제에게 동부 지방의 상황까지 한꺼번에 떠올려 머리 아프게 했다.
린이 말했다.
“찾아내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확인해봤지만, 그 데어리라는 자가 렉센과 결혼한 것은 불과 작년의 일인 듯합니다.”
“뭣?”
“작위를 사들이는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원의 결혼 증명서는 작년에 작성된 것입니다. 이혼과 결혼이 동시에 성립되었으며, 연고지에서는 전처와의 이혼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더군요.”
“작위를 사들인 후에 시골로 보내 버렸다는 이야기로군.”
“데어리 포드 자체는 수도 출신입니다. 루덴 후작가의 방계 가문에서 상급 하녀로 일하던 자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데어리의 일생이 낱낱이 해부되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데어리의 언니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 그것을 피해 서부로 갔지만 사고사로 사망한 것.
그 뒤 실의에 잠긴 부모 중 한쪽은 실의로 지병이 악화되어 죽고, 다른 한쪽은 마음의 병이 들어 살아도 죽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까지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재무부 관료가 보고했다.
“재산 형성 과정은 지금 추적중입니다.”
“그 계집이 스스로 그 재산을 만들었을 리 있느냐?”
황제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 계집이 혼자서 이런 일을 했겠느냐? 리아간 공작가와는 아무런 은원도 없는데.”
“은원이라 하면 오히려 로이가르 대공이나 루덴 후작과 있을 듯합니다.”
“보나마나 어떤 놈이 그 계집의 원한을 갚아준다고 꾀어 이용한 것이겠지. 정말 어리석구나.”
황제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로이가르 대공을 노리고 한 일인가? 리아간 공작가를 함정에 빠뜨리는 게 로이가르 대공을 공격하는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 가?
애당초 데어리 포드가 이용당한 것이라면, 그녀의 배후가 정말로 목표로 삼은 것이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녀가 단순히 계획의 부품으로 이용당한 것인지, 나름대로는 그 계획을 납득했기 때문에 행한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주변인을 잡아다 고문이라도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이다.
황제는 그 일을 일단 제쳐놓고 물었다.
“황후는 뭐라 하더냐?”
“리아간 공작 부부는 황후 폐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니 다시 묻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시종장의 대답에 황제는 크게 혀를 찼다.
“황후를 만나러 가봐야……. 아니다.”
혹, 황후가 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비로소 옛일을 잊어버리고 긍정적으로 살기로 한 듯한 황후가 새삼 그랬을 것 같지 않았다.
페셔 자작가의 자손을 황후궁에 들였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 아이들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
예전의 황후라면 그것을 알면서도 이런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아니면, 어쩌면 황제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관료들은 낮은 귀엣말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침묵한 채 보고서를 다시 살피기도 하면서 황제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회의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폐하, 남부 정벌군의 가얀 경이 보낸 전령입니다.”
“들여라.”
황제가 손가락을 따가닥 튕기며 말했다. 무언가 새로운 소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령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모습 그대로 망토만 벗고 있었다. 그가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고, 품에서 붉은 봉인이 된 봉투 하나를 꺼내 받들어 올렸다.
황제는 거침없이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빠르게 글월을 훑어 읽었다. 도중부터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다가, 마침내는 온몸을 떨었다.
이마 끝까지 시뻘건 혈색이 치밀어 올랐다. 시종장이 황급히 황제를 부축하며 말했다.
“고정하십시오, 폐하!”
“내, 내, 이놈을 그냥!”
황제가 편지를 그 자리에서 반으로 찢었다. 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시종 하나가 얼른 바닥을 기며 그 편지를 주웠다.
“남부 정벌군이 돌아올 거다. 로렌스를 체포해서.”
“로렌스 경을요?”
아무것도 모르는 린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벨론을 비롯하여 몇몇 관료들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로렌스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대강의 정황을 깨달았던 것이다.
황제가 노기 서린 얼굴로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내뱉었다.
“여기 연루된 자가 하나둘이 아니군.”
“황공합니다. 설마 이런 일이…….”
“키쇼어.”
“예.”
“당장 가서 호덴 자작이라는 놈을 붙잡아 들이고, 그놈의 일가친척, 친구, 저택의 세탁부까지 모조리 구속하도록.”
“예.”
키쇼어가 벌떡 일어나서 묵례를 올리고 회의실을 나갔다.
황제는 그다음에는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넌 이런 일에는 관련 없겠지. 오늘밤 중으로 내려가 남부 정벌군을 대신 수습하고 있어라.”
“오늘밤에 말입니까?”
“그래. 당장. 그리고 가얀에게 로렌스를 데리고 빨리 돌아오라고 해.”
“남부 정벌군은 그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리아간 공작가를 구원해야 한다. 에이멜의 카드리올이 이런 명분을 쥐고 범인을 잡았다,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날 리 있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전 수전을 치러본 적이 없습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황제가 다시 말했다.
“그걸 모르겠느냐? 너더러 바로 정벌군을 맡아 에이멜과 싸우라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으니 군병들이 동요하고 있지 않겠느냐? 가얀에게 남아 있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임시로 네가 맡으라는 뜻이다. 네 명성이 있으니 군병들도 사기가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겠지.”
“그러면, 집에 들러 아내를 보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드릭이 그것을 말한 것은 황제가 혹시 아르티제아를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다면, 그는 세드릭이 아르티제아를 만나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해라. 이쪽에서 무언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소식을 전하게끔 하마.”
“황공합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세드릭이 일어서서 한쪽 가슴에 주먹을 대어 군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하퍼.”
“예, 폐하.”
“짐을 따라와라. 할 이야기가 많겠지.”
아말리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속에 앞뒤로 빽빽하게 몬스터 무리에 포위되었을 때 같은 긴장이 차올랐다.
회의는 그것으로 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