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7
악녀는 두 번 산다 166화
앨리스가 마차에서 아르티제아를 부축해 내려주었다.
“피곤하시죠?”
“조금.”
그다지 많이 움직인 것 같지도 않은데, 마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있었던 것만으로도 몸에 영향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지친 기분으로 후원의 뒷길을 천천히 걸었다. 밤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앨리스가 물었다.
“카멜리아 후작 영애를 내치실 건가요?”
“그렇게 보였니?”
“네. 카멜리아 후작 영애는 마님 밑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 같았는데, 마님은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거라고 선을 그으셨잖아요.”
“스카일라의 본심이 어떻든 간에, 입장 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마님은 대공비이시잖아요. 왜 아랫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작위에 따른 형식적인 지위의 고하와 진짜 세력 관계는 서로 다른 거니까.”
루덴 후작이 카멜리아 후작가를 복속시키고, 황제가 리아간 공작가를 장악한 것처럼 할 수도 있긴 했다.
그러나 만일에 스카일라가 아르티제아의 밑으로 들어온다면, 그것은 지금 루덴 후작가가 카멜리아 후작가를 종속시키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스카일라가 처음 아르티제아를 찾아왔던 것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별개로, 이제 와서 단순히 주인을 갈아타는 상황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앨리스가 복잡 미묘한 얼굴을 했다.
“왜 그러니? 내가 스카일라를 거두었으면, 했니?”
“아뇨. 절대 싫어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마님을 해치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영애도 용서할 수 없어요. 하지만 마님은 그것 때문에 선을 그으신 게 아닌 것 같아서요.”
“스카일라가 쓸모가 많긴 하지.”
로이가르 대공가의 심부에, 그것도 대공비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얻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카멜리아 후작가를 공신 가문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
아르티제아는 제안을 했고,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스카일라가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여 결정할 것이다.
그 제안에는 신의가 아니라 기만이 깃들어 있다.
아르티제아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서 목숨을 제외한 모든 걸 빼앗을 것이다.
그중에는 당연히, ‘자녀가 카멜리아 후작 가문을 온전히 계승하여 적계의 혈통이 되는 것’이라는 후작 부인의 소망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스카일라가 당당한 적녀로서 후작의 작위를 상속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피곤한 상태였지만, 아르티제아는 돌아와 손발을 씻고 나서 침실이 아니라 서재로 향했다.
“헤일리를 불러오렴.”
명령을 들은 하녀장이 지체 없이 밖으로 나갔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헤일리는 놀라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외출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중한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뭔가 후속 처리를 위해 자신을 불렀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일 밀려서 자지도 못했을 건데.’
헤일리는 휑한 눈밑을 손끝으로 살살 누르며 생각했다.
리시아가 돌아와서 사교계 쪽 교제 문제를 대신 맡아주고, 아르티제아가 임신으로 인해 칩거하고 있다고 해서 그녀의 일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아르티제아를 대신해서 저택의 안살림을 맡아보아야 했다. 그리고 저택의 방첩 활동과 군사 문제가 아닌 부분에서 에브론 대공령과의 소통 문제도 맡았다.
결국 프레일이 일의 일부를 떠넘기는 데에 성공한 셈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편안한 잠옷을 입은 채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넘겨보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 헤일리를 바라보았다.
“밤늦은 시간에 미안하다, 헤일리.”
“아닙니다, 비 전하.”
헤일리는 아르티제아가 내려놓은 서류가 무엇인지 알았다. 책상에 붉은 비단실과 금실을 섞어 자수를 놓은 천으로 싼 서류함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들어 있었던 것은 혼전 계약서와 결혼 증명서일 것이었다.
아르티제아가 헤일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마커스가 곧 차를 내왔다.
“지금 오히려 늦은 편이지만, 이제 유모를 결정해야 할 것 같아서 불렀어.”
“네, 말씀하세요.”
헤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부인이 자녀를 혼자서 기르는 법은 없었다. 젖어미와 별개로 유모를 두어 양육 전반을 책임지게 했다.
정략적인 의미가 큰 결혼이라면, 남편의 가문에서 시녀를 새로 뽑아 유모로 삼기도 했다.
시녀 모두가 함께 보살핀다지만,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이 책임질 필요가 있다.
보통은 언니나 이모, 고모가 시녀이자 아이의 유모로서 함께 보살펴 주었다.
아르티제아처럼 몸이 약하다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아르티제아에게는 유모로 삼을 만한 시녀가 없었다.
리시아는 나이가 어리다. 헤일리는 아르티제아보다 연상이었지만, 아이를 기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뭐, 조카들 본 적은 있으니까 약간은 관여하게 될 거라 생각했었지.’
헤일리는 이렇게 마음 편한 기분으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혼전 계약서의 내용을 좀 알고 있니, 헤일리?”
“두 분 사이에 태어난 장자는 에브론 대공가를, 말자는 로산 후작가를 계승하도록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더 있다면, 재산을 비롯하여 다른 자산은 관습에 의하여 상속하게끔 되어 있고요.”
“그래. 하지만 아마…… 내게는 이 아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헤일리는 어색하게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의사도, 나이 든 집사들도, 하녀장도,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더 하나라도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빌고 있었다.
하지만 알긴 했어도, 아르티제아 자신이 그런 말을, 이렇게 태연하게 하는 것을 듣기는 몹시 민망했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그래서…… 세드릭 님에게 혼전 계약서를 고쳐달라고 부탁할 작정이야.”
“네?”
“장자와 말자의 순서를 바꾸어, 이 아이가 로산 후작가를 상속하고, 이 아래로 다른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가 에브론 대공가를 상속하게끔.”
“그게 의미 있는 말씀인가요? 비 전하께서 복중 아기씨를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아기씨가 외동으로서 에브론 대공가와 로산 후작가를 당연히 둘 다 상속하게…….”
말하다 말고 헤일리는 경악한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대공 전하께서 다른 곳에서 자식을 얻었을 때를 대비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모를 일이야, 헤일리. 세드릭 님이 부정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도 내가 무사하라는 법은 없잖니?”
“미리부터 그런 생각을 하시면 안 돼요.”
“긍정적인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너는 잘 알잖니.”
아르티제아가 차분하게 말했다.
“세드릭 님은 아직 젊어. 냉정하게 말해서, 내게 만약의 일이 생기더라도 옆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어. 이건 가정사가 아니라 정치 문제야.”
“……네.”
헤일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해주는 것을 대공가의 가신으로서 감사하게 여겨야 마땅했다.
하지만 혓바닥 안쪽이 까끌까끌했다.
“비 전하께서는 늘 모든 경우를 상정하여 대응책을 마련하시기를 원하시니까요. 아기씨가 비 전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물려받았으면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에브론 대공가와 로산 후작가를 함께 상속한다면, 아무래도 로산 후작가는 합병되어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이 혼전 계약서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자 상속자를 나누고 있다. 아르티제아가 지키고자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로산 후작가에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으로 해두기로 했다.
에브론 대공가에서 로산 후작가를 분리시킬 작정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에게는 미안한 부탁을 하고 싶구나.”
“네.”
“이 아이는, 에브론 대공가의 아이가 아니라 로산 후작가의 아이로 키워질 가능성이 높을 테지만, 네가 보살펴줬으면 좋겠다.”
“네?”
헤일리는 경악하여 반문했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녀가 표정을 감추려 할 때면 대체로 그런 것처럼, 헤일리는 아르티제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게 설마 저를 유모로 하고 싶다는 말씀은 아니시죠?”
“왜 아니겠니?”
“멜 언니가 아니라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옳았다.
멜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바른 성품으로, 이미 자기 아이를 몇이나 낳아 키웠다.
조르딘 가문에서 유모를 택하려 한다면, 멜을 택하는 게 맞았다.
단순히 에브론 대공가 출신의 유모를 원하는 거라면, 다른 후보가 얼마든지 있었다.
“멜은 조르딘 백작으로서, 대공비의 시녀장이야. 이 아이가 후계자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멜의 슬하로는 보낼 수 없지.”
“전 미혼이에요. 자식을 낳아본 적도, 아기를 키워본 적도 없다고요.”
비상식적일 뿐더러 무리였다.
유모는 아기 엄마에게 부족한 경험을 채워주어야 했다. 귀한 가문의 귀한 아이다. 굳이 경험도 없는 양육자를 택할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널 신뢰해서야.”
“차라리 리시아에게 부탁하세요. 리시아가 착하고 선하고, 게다가 비 전하께서도 리시아의 성품을 좋아하시잖아요. 걔라면 정말 사랑스럽게 키워줄 거예요.”
“난 그것을 바라지 않으니까.”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아이가 잘못 자랄 때에 망설임 없이 꾸짖고, 방향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바르고 엄한 양육자를 원하는 건 아니야.”
“비 전하.”
“세상을 잘 알고, 융통성이 있고,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 왜 그러는지 알고 있고…….”
아르티제아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가 기만해도 속지 않고 그보다 한 발 앞서서 알아챌 수 있는 혜안과 만약의 경우 처분할 수 있는 단호함이 필요해.”
헤일리는 그녀가 말하는 것이 아르티제아 자신이 가진 자질과, 자신의 가족이 가진 기질을 동시에 물려 받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를 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 전하.”
“이게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걸 알고 있어, 헤일리.”
아르티제아가 푸른 눈동자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드릭 님에게 양육을 맡길 수는 없어. 그분은 아이를 믿어 줄 테니까.”
그리고 설령 자신이 살아 있다 해도, 역시 키울 수는 없었다. 제대로 양육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너라면……, 정이 있으면서도 객관적으로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테지. 올바르다는 게 무엇인지 잊어버리지도 않을 테고.”
“비 전하…….”
“강요하는 건 아니야. 말했다시피 이 아이는 에브론 대공가의 아이가 아니라 로산 후작가의 아이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 나에게 거기까지 해 줄 의리는 없다는 것도 잘 알아.”
“…….”
“그래도 세드릭 님의 아이이고, 결국에는 에브론 대공가와도 깊은 인연을 갖게 될 테니까. 그 이상의 신분이 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어려운 부탁인 것은 알지만, 나쁜 인간이 되지 않도록…… 보살펴줬으면 좋겠어.”
헤일리는 숨만 삼키고 대답하지 못했다.
“천천히 생각해.”
아르티제아가 말했을 때였다.
창밖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세드릭이 귀가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