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8
악녀는 두 번 산다 167화
세드릭은 사흘 만에 귀가한 것이었다. 그만큼 이 사건의 여파가 큰 셈이었다.
“티아는?”
겉옷을 벗어 안스가르에게 맡기며 세드릭은 거의 습관 수준으로 물었다.
“아직 안 주무십니다.”
“다행이로군.”
한동안은 수도를 떠나 있어야 할 테니 가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으니 그것에 관해서도 아르티제아와 의논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카드리올이 개입된 일이다.
그날에는 눈이 뒤집혀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북부까지 찾아왔던 것치고 카드리올은 너무 수월하게 물러났다.
그날 밤에 아르티제아와 카드리올 사이에 무슨 협의가 이루어진 게 틀림없었다.
‘왕비 암살인가…….’
세드릭은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는 아르티제아가 서재에 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접니다, 티아.”
안에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드릭은 문을 열었다.
헤일리가 창백한 얼굴로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다가 세드릭이 들어오는 소리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세드릭은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헤일리가 세드릭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아르티제아는 고요하게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드릭은 그런 얼굴을 오래간만에 본다고 생각했다. ‘로산 후작’의 얼굴이었다.
“다녀오셨어요?”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계속 연락 주셨잖아요. 국가 중대사가 생겼으니 당연한 일인 걸요.”
세드릭은 그녀에게 다가섰다.
사흘 만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황궁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선뜻 손을 내밀어 안을 수 없는 무언가가 아르티제아에게서 느껴졌다.
“곧 다시 나가보셔야 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가얀 경이 파발을 보냈습니다. 로렌스를 체포했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놀라지 않는군요.”
“그러는 세드릭 님은 제가 놀라지 않는 것에 놀라지 않으시고요.”
그랬다.
세드릭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남아 있던 식은 차를 끌어당겨 따라 마셨다.
“폐하께서 많이 노하셨겠지요?”
“예. 아마 당신이 바라는 만큼 충분히 노하고 계실 겁니다.”
세드릭은 짧게 대답했다.
아르티제아가 책상에서 일어나 그의 건너편 자리로 왔다.
세드릭이 말했다.
“당신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만……,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군요. 가얀 경을 대신해서 남부 정벌군을 맡게 되었습니다.”
아르티제아도 이 소식에는 놀랐다.
“아예 남부로 내려가시게 된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저는 남부의 지리를 전혀 모르고, 해전에는 더더욱 경험이 없으니까요. 아마 중앙군에서 남부 출신의 장수를 뽑아 올려 기용할 겁니다.”
“그러면 임시로군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이 남부까지 내려가는 것은 아르티제아도 원치 않는 바였다.
이 일에는 이 이상 손을 대서 좋을 것이 없었다. 세드릭과 카드리올이 다시 마주치는 것도 별로 반갑지 않았다.
카드리올이 적당한 승전을 거두고 빠져주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세드릭이 끼어들면, 본격적인 전쟁이 되고 만다. 그러면, 계획이 모두 어그러지고 말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르티제아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전쟁이 걸린 일이다. 수도에서야 누가 군권을 쥐느냐, 병력이 얼마나 소모되었느냐, 물자가 얼마나 더 필요하냐 하는 숫자로 셈하는 일이지만, 전쟁터가 될 남부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
세드릭도 세드릭대로 생각에 잠겼다. 무슨 말부터 해야 좋을지 생각한 것이었다.
이미 해버린 일에 대해 추궁할 마음은 없었다. 이 일이 불러일으킬 파장은 이미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
아르티제아가 무엇을 노렸는지, 왜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만 이야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르티제아가 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녀 혼자 이런 일을 책임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제 세드릭도 손을 전혀 더럽히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옳음을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음모와 모략을 꾸밀 재주는 없었으나, 하다못해 자신을 위해서 저질러지는 일들을 알아야 했다.
이 일이 시작된 것은 아마 자신이 전혀 아무것도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때부터일 것이다. 지금 와서 중단하는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당분간이라도 위험한 일은 피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다.
그때 문득 세드릭의 눈에 결혼 증명서와 혼전 계약서가 담겨 있던 함이 눈에 들어왔다.
“티아.”
“아.”
아르티제아가 그의 시선이 어디에 닿았는지 깨닫고 신음했다.
그녀가 당황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혼전 계약서를 정리하여 다시 함에 넣었다.
“헤일리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까?”
“유모를 고를 생각이었어요.”
세드릭은 숨을 크게 토했다.
지금까지 묻지 못했던 말에 갑작스럽게 답을 얻은 셈이었다.
“낳기로…… 결정한 겁니까?”
“……네.”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세드릭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가가 아르티제아를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그러다가 팔에 힘을 주어서 꽉 안았다.
“고맙습니다.”
그 한 마디에 들어 있는 온갖 감정을 아르티제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치솟는 감정으로 목이 막혔다.
고마웠다. 이제 그도 나름대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을 텐데도, 여전히 사랑해주고 있다.
그러니 그 마음에 부응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세드릭의 체취가, 체온이 몸을 녹이듯 마음을 녹이려 들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래서 숨을 멈추고 그를 밀어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전에.
이것은 그녀가 느끼는 감사와 사랑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그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어요.”
“티아.”
세드릭은 약간 당혹하며 그녀를 놓아주었다.
고개를 든 아르티제아의 얼굴은 조용하고 창백했다.
“혼전 계약서를 수정하고 싶어요.”
“그건 이미 무효인 게 아니었습니까?”
“2년 계약은…… 없던 일로 하자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속에 관한 계약까지 무효인 건 아니잖아요. 애당초 무효로 하기로 한 부분은 계약서에는 들어 있지도 않았는 걸요.”
세드릭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그는 그 혼전 계약서를 마음에 둔 적이 없었다. 작위 보유자끼리 결혼을 하게 되면 대부분 쓰니까, 형식적으로 쓴 것이었다.
아르티제아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진짜 결혼으로 성립할 줄 몰랐기 때문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을 진짜 결혼으로 하자고 청혼한 이후에는 이 계약서가 실행될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무효다 아니다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상속 문제는 부부가 논의하여 결정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아이가 더 생길 가망이 희박하다면, 더욱 더 그랬다.
“말씀해 보십시오.”
세드릭은 일단 듣기로 했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이 아이에게 로산 후작가를 상속시키고 싶어요.”
“아이가 더 태어나지 않는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아뇨. 제 말뜻은, 이 혼전 계약서에서 처음 목적한 대로 에브론 대공가와 로산 후작가의 상속을 분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에요.”
“그 아이에게 에브론 대공가를 상속시키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까? 로산 후작가만 상속하도록?”
“네. 제게는 아이가 더 없을지도 모르니…….”
“티아.”
아르티제아는 지난 사흘 동안 생각하여 만든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세드릭이 다 듣지도 않고 잘라 끊었다.
“결론적으로 당신 혼자의 자식으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로군요.”
세드릭은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억지로 억누르는 티도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형언할 수 없이 짙고 어두운 감정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 감정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고 싶어요.”
“그건 안 됩니다.”
세드릭이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자신을 생각해서, 아이를 원하지 않으니 낳지 않겠다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아니잖습니까?”
“세드릭 님.”
“로산 후작가를 핑계로 대지 마십시오. 당신이 로산의 이름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드릭 님.”
“그 아이가 내 자식이 되지 못하게끔, 아니, 엄밀하게는 에브론의 혈통에 당신의 피가 섞이는 일이 없게끔 하겠다, 이런 뜻 아닙니까?”
“…….”
아니다, 라는 거짓말이 선뜻 입술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세드릭이 자기 생각을 다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드릭이 말했다.
“당신이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압니다. 나는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만일에 정말로 타고 난 천품이 손쓸 수 없이 나쁘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도 될 일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게 되면 나중에 정통성 문제가 생기게 돼요. 이건 제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세드릭 님이 아니라.”
장자를 배제하고 그 아래의 아이에게 상속하려고 하면 분쟁이 생긴다.
만일에 세드릭이 재혼해 있다면, 더욱 문제는 커질 것이었다. 죽은 전처의 자식보다는 황후의 자식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 때 문이다.
아이에게는 심지어 외가도 없을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정통성을 회수하는 것에 대해 스카일라에게 조언했다. 그것은 그녀의 자식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황제의 적장자라면, 죽음으로밖에는 배제되지 못한다.
“그리고 에브론 대공령의 영민과 제국민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계위 다툼 때문에 또다시 분쟁이 생겨 날 싹을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늘 경청하는 세드릭이 두 번째로 말을 끊었다.
“당신 지금, 내게는 다른 자식이 또 생길 것이라고 당연하게 가정하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까? 그것도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
세드릭의 검은 눈동자가 달구어진 석탄처럼 노기를 띠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바라보며 머리가 아득해졌다.
세드릭이 말했다.
“당신이 낳을 아이가 내 자식의 전부이며, 그 아이가 장자로서 내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될 겁니다.”
“세드릭 님.”
“나는 아이 문제에 대해 거의 대부분 무조건 당신 뜻을 존중할 거지만, 이건 양보 못합니다, 티아.”
“그럴 수는 없어요. 이 아이를 에브론의 후계자로 만들 수는 없다고요.”
아르티제아는 반쯤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세드릭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괴로워서 가슴 언저리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왜 그럴 수가 없습니까? 당신이 에브론을 멸망에 몰아넣은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까?”
아르티제아는 경악하여 눈을 크게 뜨고 세드릭을 돌아보았다.
세드릭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