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1
악녀는 두 번 산다 170화
아르티제아는 머뭇거렸다. 대체 어디가 안 좋은 걸까 걱정되었다.
헤일리가 말했다.
“워낙 건강 체질이니까 걱정 마세요. 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한가 봐요.”
“그렇구나.”
“리시아도 이래저래 많이 바쁘긴 했죠. 수도 생활이 익숙하지도 않을 거고요.”
그건 정말로 그랬다.
과거에도 리시아는 수도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남의 눈에 노출되는 일도 적고, 소문과 엄격한 궁정 생활, 적으로 둘러싸인 환경에 압박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천성에 이 환경 자체가 맞지 않을 것이다.
“의사선생님 뵈러 가라고 했어요. 너무 염려 마세요.”
“그래.”
“건강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비 전하 쪽이 백배 조심하셔야죠.”
아르티제아는 쓰게 웃었다.
“사람은 혹시 또 모르는 일이잖니.”
리시아가 시들어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세드릭도 기억이 돌아왔다. 리시아가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지금은 돌아오지 않았어도, 앞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고통스러웠던 마음의 병까지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이 두려웠다.
‘부디, 모든 사람의 기억이 돌아와도 리시아만은 아니길.’
리시아 자신을 위해서라도.
세드릭과 리시아의 관계가 이제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세드릭의 말을 믿기로 했다.
세드릭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내로 원한 것이 아르티제아뿐이라고 말했었다.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리시아와의 약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켜주기 위해서, 리시아가 활동하는 데에 에브론 대공가의 지원을 편하게 끌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든가, 사원에서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서라든가…….
이성은 여러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풀어준 것은 아니었다. 죄스러움이 여전히 쓰리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보자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믿고, 용서받았다는 사실도 온힘을 다해 믿어보자고.
「아이는 당신 것이 아닙니다.」
세드릭은 간밤에 그렇게도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을 떨었다. 자신이 당연한 것처럼 아이를 제 맘대로 하려고 했다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밀라이라와 똑같은 짓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결국.
낳기도 전부터 그럴 뻔했다는 사실에 아르티제아는 무서워졌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이 명령한 대로 그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애써볼 것이다.
그때까지 아무 생각도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17. 실각
퍽!
로렌스의 머리에 맞은 찻잔이 깨졌다.
붉은 찻물이 흘러내려 로렌스의 머리와 얼굴을 적셨다.
남부 정벌군의 진영에서 가얀에게 체포되어 끌려온 그대로 황제의 앞에 불려온 것이었다. 먼지 슨 뺨 위에 찻물이 지저분한 얼룩을 만들며 흘러내렸다.
“어찌 이리 어리석으냐!”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짐이 어련히 네게 줄 것을 다 주었을까! 네가 짐을 무시하고 역심을 품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아바마마!”
로렌스는 정말로 억울했다.
호덴 자작을 남부로 보낸 것은 사실이었다. 리아간 공작을 끌어내려 황후의 환심을 사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에이멜 왕비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다.
리아간 공작을 끌어내린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방향성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이 생긴 적이 없었다.
심지어 호덴 자작은 그 남부까지 내려가고서도 쓸 만한 정보 하나 구해오지 못했다.
이것은 그 시점에서 아르티제아가 선대 리아간 공작 부부와 연분 있는 사람 대부분을 피신시키거나 잠적시키고, 황후의 옛 친구들을 탄신연에 초대하여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으되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호덴 자작은 무능하다고 크게 책망 당했었다.
로렌스는 답답한 마음으로 말했다.
“제가 에이멜 왕비를 암살하라고 시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리아간 공작가를 대상으로 무언가 꾸며볼까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퍽!
이번에는 티스푼이 로렌스의 이마를 후려쳤다.
로렌스는 손으로 이마를 한 번 닦아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격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상대는 황제였다.
로렌스는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 줄 아느냐?”
“아바마마.”
“리아간 공작은 짐이 손수 골라 그 자리에 앉힌 자이다. 짐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충실하지 않은 자였습니다.”
“그 충실하지 않음과 불충함을 벌할 수 있는 것은 짐이다. 네가 아니라!”
황제의 얼굴이 노기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십 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짐의 신하였단 말이다! 리아간 공작이며, 공신이다! 네가 뭐라고 감히 공작을 끌어내려!”
“그러면 제가 어찌 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황후 폐하의 환심을 사는 일은 아바마마께서도 지지해주신 일이 아닙니까?”
황제가 벌떡 일어섰다가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았다. 혈압이 치솟아 눈앞이 아뜩했던 것이다.
“폐하!”
시종장이 달려들어 그를 부축했다.
황제가 눈을 한 번 꽉 감았다 떴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시종장이 물컵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황제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렇게 어리석으냐? 현명하고 또 현명하게 처신해도 모자랄 일을, 그렇게 단선적으로 해결하려 해?”
“…….”
“네가 무슨 트집이라도 잡아 리아간 공작을 끌어내렸다 치자. 황후가 고작해야 그 일을 고맙게 여겨 널 양자로 삼아주었을 것 같으냐? 황후가 그렇게 쉬운 사람으로 보이던?”
“…….”
“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질 못하느냐?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가장 중한 것이 무엇이냐?”
황제가 쏟아내듯이 말했다.
“네가 가장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는 것도 그것이고, 가장 수월하게 파기할 수 있는 약속도 그것이었다.”
황제가 과거형으로 말했다.
“지금 당장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고, 그 대가로 환심을 산다니, 장사치가 하는 짓과 다를 바가 뭐냐?”
“아바마마.”
“그런 건 네가 할 일이 아니라 네 아랫사람이 할 일이다. 네게는 그런 일 하나 대신해줄 사람도 없더냐!”
황제가 또다시 언성을 높였다.
시종장이 황급히 그를 말렸다.
“폐하, 진노를 가라앉히십시오.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후우.”
황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팔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는 의자에 늘어지듯 주저앉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지난 2주 가까이 쉬지 않고 회의를 하고 보고를 받기는 했다. 그러나 황제는 아직 정무를 보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것은 육체적 피로라기보다는 정신적인 피로였다.
“아무튼 넌 이제 국사에서 손을 떼라.”
“아바마마! 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안다. 호덴 자작이 실제로 남부에 가서 뭔가를 한 건 아닌 것 같고, 실제로 네가 호덴 자작에게 딸려 보낸 수행원 구성을 보면 상호 감시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도 알고 있다.”
“예.”
“하지만 호덴 자작이 남부로 내려갔을 때에 그 렉센 부인이라는 계집에게 뭔가 지시가 나간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황제가 책상 위에 있던 서류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호덴 자작과 그 수행원들의 행적을 샅샅이 파헤친 보고서였다.
호덴 자작이나 중요한 수행원들에게서는 수상한 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하인들 중 몇몇이 행방불명 상태였다.
어떤 자는 말구종이었고, 어떤 자는 단순 잡역부였다.
각자 이런저런 이유로 일을 그만 두었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 와서 뒤를 캐 보니 가족까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그중 누군가가 렉센 부인에게 접촉했음이 틀림없었다.
지금 호덴 자작과 다수의 수행원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구금당해 있었다.
“이건 네 책임이다.”
“아바마마께서도 제가 하지 않았음을 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책임은 결과에 대해 지는 것이다.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이런 기본적인 것까지 가르쳐야 하는 거냐?”
황제가 내뱉듯이 말했다.
“설령 네가 음모에 빠진 것이라 해도 이 일은 네 책임이다. 아랫사람을 제대로 단속 못한 것도 책임이다.”
“아바마마!”
“시끄럽다! 썩 돌아가 근신하고 있어! 넌 지금 자칫하면 전쟁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단 말이다!”
로렌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억울하고 분했다.
“남부 정벌군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제 네가 알 바가 아니다.”
황제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마를 짚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종장이 눈동자를 굴리며 로렌스에게 눈치를 주었다. 이 이상 황제의 진노를 사지 말라고 말이다.
로렌스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돌렸다. 무례한 태도였다.
그만큼 화가 치밀기도 했지만, 이제 황제에게 아부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집무실 밖으로 나오는데, 그와 함께 이곳까지 온 가얀이 그때까지 거기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말리에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찻물을 뒤집어쓰고 티스푼에 맞아 이마 한쪽이 붉게 변한 로렌스의 몰골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로렌스의 입가가 비틀렸다. 갑작스 럽게 깨달은 것이었다.
“세드릭이군.”
“…….”
가얀도 아말리에도 동요를 드러낼 만큼 처신에 서투르지 않았다.
하지만 로렌스는 확신했다.
“준비성 철저한 작자들이 갈아탈 말도 없는데 이런 짓을 저질렀을 리가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
“군인이라는 게 다 그렇지. 후회하게 될 거야.”
로렌스는 빈정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둘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일부러 여유 넘치는 태도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심정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울분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목 끝까지 고인 것 같았다.
그는 남부 정벌군에 세드릭이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가얀이 그를 체포하여 도로 수도로 돌아오기로 했을 때에 퍽 불안해했던 남부 정벌군의 병사들은 세드릭이 도착하자마자 안정되었다.
세드릭 밑에서 직접 싸워본 자가 많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문 정도는 다들 들어 알고 있었다.
세드릭이 있으니 지지 않을 싸움, 적어도 지휘관의 어리석은 짓으로 개죽음당하지 않을 전장이 될 것이라고 믿은 것이었다.
이번 사건 자체보다도 세드릭이 관여하는 것이 그를 더욱 분기 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