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2
악녀는 두 번 산다. 171화
제국 내부적으로는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사실 남부에서는 렉센 부인이 무엇 때문에 에이멜 왕비를 암살했는가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카드리올은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아르티제아가 부린 수작일 것이다. 캐내는 게 에이멜 왕국에 유리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국왕이 비탄에 잠겼으며, 이 순간 에이멜 왕국군에 대한 전권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아간 공작가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손에 쥐었다는 것도.
“단숨에 쳐 없애지 않으실 겁니까?”
카드리올의 부하는 그렇게 물었다. 초반의 기세에 비해 카드리올이 정작 리아간 공작가를 공격하지는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것이었다.
“제국과 진짜 전쟁을 할 건 아니니까.”
카드리올은 리아간 공작가를 에워 싼 군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리아간 공작가를 쳐서 제거하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제국이랑 진짜로 전쟁이 되면 골치 아파져. 자존심을 너무 건드리면 안 돼.”
무엇보다도 어차피 리아간 공작가의 자산을 전부 차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육지에서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적당한 시점에서 꼬리 말고 퇴각할 거야. 제국의 체면이 있는데, 우리 쪽에 명분이 있다고 해서 손 놓고 처분을 기다려줄 리는 없겠지.”
물론 지금 당장 제국 황제가 기민하게 반응하기에, 이곳은 너무 멀었다.
부하가 다시 물었다.
“크라테스 제국의 분노를 사는 게 걱정되십니까?”
“그레고르 황제가 늙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황제야.”
카드리올이 발끝에 걸린 돌멩이를 제기처럼 장난삼아 차올렸다.
“늙은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무서운 일이지. 그 늙은이가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손에 쥐고 있다면. 그렇다 해도 그전에 도망가면 그만이긴 하지만.”
“모처럼 얻은 명분입니다.”
“제국 남부를 통으로 빼앗는 건 어차피 불가능해. 얻을 만한 건 다 얻었어.”
카드리올은 싱글거리며 웃었다.
리아간 공작 부부가 그렇게 탁월한 능력은 없었지만, 그런 대로 남부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세력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는 것은 그만큼의 자신감도 생겼다는 뜻이다.
그런 공작 부부를 몰락시키고 나서, 그다음 이곳을 차지하게 될 제국의 권력자는 누가 될까?
황후가 다시 나설 리는 없고, 큰 뿌리가 잘려나간 옛 리아간 공작가가 다시 설 수 있을 리도 없었다.
황제가 새로 골라 보낸 신하가 단 시간에 온갖 소국이 뒤얽힌 복잡한 남부 사정을 휘어잡을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그 사이에 남부의 세력 판도를 뒤집어 버릴 것이다.
벌써 카드리올은 그러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왕실 내의 정적을 제거하고, 왕국군의 전권을 손에 넣었으며, 실의에 빠진 부왕 대신 실권을 차지했다.
왕세자 책봉도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크라테스 제국은 당분간 내부 정비에 바쁠 것이다. 그 사이에 실익이란 실익은 다 빼먹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로산 후작이 벌써 거기까지 사람을 심어뒀을 줄은 정말로 생각지 못했어.’
암살범 이야기가 아니다.
카드리올은 이번에 에이멜 왕국과 제국 남부에 심어진 아르티제아의 조직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황후의 친지를 빼돌리고 소문을 없앤 그 솜씨는 여전히 범상치 않았다.
기억이 돌아왔을 때로부터 따지자면 아직 세월이라고 할 만한 시간조차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역시 그녀를 납치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을까?’
카드리올은 그런 생각을 조금 하다가 피식 웃었다.
억지로 데려온다고 해도 아르티제아는 자신의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로서든, 책사로서든.
뭐, 숨겨 놓고 혼자 들여다보는 것도 보물을 즐기는 방법이긴 했겠지만.
‘애석한 일이지.’
부하의 말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전서구가 날아갑니다. 잡을까요?”
“내버려둬. 진짜로 리아간 공작가를 쳐서 없앨 게 아니니, 자꾸 공작이 헛소리를 해줘야 제국 내부도 어지러워지겠지.”
“제국에서 정말로 군대를 보낼까요? 남부 정벌군이 편성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보내올 때쯤에는 우리는 이미 도망치고 없을 거야. 새삼스럽게 적전도주를 수치스러워할 만한 몸도 아니잖나.”
“그건 그렇습니다.”
“리아간 공작의 똥줄에 제대로 불을 붙여 보자고. 그 영감이 겁먹은 얼굴, 생각만 해도 유쾌하잖아.”
“그럼요.”
부하들이 낄낄대고 웃었다.
본디 이웃나라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은 법이라지만, 리아간 공작가와 에이멜 왕국은 더욱 더 그랬다.
리아간 공작가는 에이멜 왕국을 도적떼 무리로 보았다.
에이멜 왕국에서는 리아간 공작가를 멍청이로 보았다. 바다에서는 힘도 쓰지 못하는 주제에 거들먹거리며 남부 지방의 종주 노릇을 하려는 것이 같잖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실제로 도적떼가 아니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 * *
유니스 백작 부인이 황제를 알현한 것은 로렌스가 돌아오고 나서 일주일쯤 뒤의 일이었다.
이 알현은 시종장이 주선한 일이었다.
리아간 공작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가 날아왔다.
그러나 명분은 에이멜 왕국에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왕비 암살의 범인을 찾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 요구를 받아들여 리아간 공작가를 조사하게 해서는 체면이 서지 않는다.
게다가 명분이 어떻든 감히 에이멜 왕국 따위가 군병을 일으켜 제국의 항구를 점령하고 리아간 공작가를 공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부군을 모아들이고 중앙에서 정벌군을 보내어 전쟁을 하는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해적을 토벌하는 것과, 타국과 전쟁하는 것은 다르다. 하물며 명분이 저쪽에 있으니, 군사의 사기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리아간 공작가가 있는 남부까지는 먼 길이다. 순풍이 불어도 스무 날은 걸렸다.
당장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모자랐다. 정보가 있다고 해도 여기에서 대응책을 결정하여 내려 보냈을 때에, 그것이 시의적절한 것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애당초 리아간 공작에게 남부의 통치를 관할시킨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음 정보를 기다리고 대책을 논의하느라 황제는 격무에 시달렸다.
게다가 아들에 대한 실망으로 실의해 있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시종장이 그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딸과 손녀들을 초청한 것이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거실로 들어섰을 때에, 황제는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라벤더 향이 실내에 가득했다. 안마사가 황제의 두피를 마사지하고 있었다.
황제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피로가 드러나 있었다. 두통도 있는 듯, 감은 눈가가 조금씩 떨렸다.
며칠 사이에 몇 년은 늙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피곤해 보이세요, 아바마마.”
“피곤하고말고. 피곤하지 않을 수 가 있겠느냐?”
황제는 주름진 눈가를 손으로 누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너희를 보니 훨씬 낫구나. 이리 온, 할아비에게 키스해다오.”
유니스 백작 부인의 두 딸이 주춤주춤 황제에게 다가가 두 뺨에 키스했다.
황제는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황제가 안마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마사가 황제의 손에 따끈따끈한 물수건을 올려주었다.
황제가 그것으로 얼굴을 한 번 닦았다.
“괜찮으세요, 아바마마?”
“몸이 확실히 옛날 같지 않아.”
“제가 어깨를 좀 주물러드릴까요?”
“그럴까?”
황제가 웃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사뿐사뿐 황제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안마가 안마사의 것보다 시원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황제의 기분에는 훨씬 나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탄식했다.
이럴 때에 귀여운 자식이 믿을 만한 후계자이기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제까지도 때때로 황제는 그렇게 탄식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정국 안정을 염려한 것이고,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 당장 짐을 반으로 나누어 질 후사가 절실했다.
“심려가 깊으신 모양이에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도 자식을 키워보았으니 이제 알지 않으냐? 세상사 자식 키우는 것만큼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없어.”
황제가 눈을 감은 채로 신음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제가 헛웃음을 웃었다.
“너도 로렌스에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로렌스가 우둔한 애는 아니죠.”
유니스 백작 부인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황제는 그 대답 안에 숨은 의미도 이해했다.
황제로 섬길 만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면, 유니스 백작 부인은 그렇게 무덤덤하게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두려워했어도 이보다는 조심스럽게 대답했을 것이다.
로렌스가 그리 빼어난 자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인망이 없을 줄은 몰랐다.
인망이 없으려면 공포라도 심어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아둔한 것은 짐이었구나. 짐 혼자 아등바등한 거였어.”
황제는 아말리에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황공하오나 폐하, 로렌스 경이 아둔하고 어리석지는 않으나 간언을 받아들일 만큼 관용 있는 성격도, 조언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한 분도 아닙니다.」
잘 보좌해주기를 바랐는데, 왜 허튼 조언을 했느냐는 황제의 질책에 아말리에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제가 황후 폐하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리아간 공작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거라고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폐하의 뜻을 거역하고 리아간 공작을 실각시키라는 의미였을 리 있겠습니까?」
「하퍼.」
「로렌스 경이 현명했다면, 폐하께 먼저 허락을 구하러 왔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한 발언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겠지요.」
「로렌스를 시험했단 말인가?」
「그 자리에는 폐하의 충신이 여럿 있었습니다. 만일에 정말로 불충한 제언이 있었다면, 폐하께서 이미 알고 계셨을 겁니다. 저라도 상신했겠지요.」
아말리에는 냉정하게 말했다.
「로렌스 경은 자기가 가진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정확히 모르거나, 폐하의 위광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황제는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그러면서 귀에 달콤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자신이 일단 옳다고 생각한 견해는 내려놓을 줄을 모르죠.」
아말리에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아랫사람들의 조언 중에 비위에 맞는 것을 골라 택할 뿐이고, 제대로 판단할 줄 모릅니다. 이번이 아니라도 언제든 이런 실패를 저질렀을 겁니다.」
「짐이 모든 것을 물려주겠다고 했어. 경은 마땅히 로렌스를 보살펴 주었어야 했네.」
「저는 따를 분을 찾는 거지, 보살필 사람을 찾고 있지 않습니다, 폐하.」
「하퍼.」
「따를 만하기에 폐하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아끼시기에 로렌스 경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했습니다.」
아말리에는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저는 군인입니다, 폐하. 목숨이 오가는 곳에 있는 자이지요. 앞에 수만의 군세가 있어도, 내려오는 명령이 옳음을 믿고 무작정 뛰어들 수 있어야 하고, 그러라고 제 수하들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하퍼.」
「보살펴야 할 자가 내리는 명령을 어찌 따르겠습니까?」
아말리에는 좌천되어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