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3
악녀는 두 번 산다 172화
아말리에는 그날 회의실에서 발언했을 때에, 지금의 사태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로렌스를 돌봐주려 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황제에게 반역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발언이다. 증거가 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말리에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태연했다.
황제의 눈 밖에 날 각오는 되어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세드릭이 황제가 되리라고 믿었으며, 그렇게 만들 작정이었으니까.
좌천이든 해임이든, 혹은 황제가 생각보다 더 역정을 내어 유배형 같은 것을 내리더라도 무방했다.
그레고르 황제는 지는 해였다. 그리고 새로운 해가 뜨기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아르티제아만이 아니라 세드릭에게도 자기 존재를 인식시켰다. 이번의 일로 입지도 다진 셈이었다.
약간의 고난이 닥치더라도 새 황제의 논공행상이 모두 보상해줄 터였다.
황제는 그녀의 예상대로 화를 냈다. 그러나 아말리에를 처벌하지는 못했다.
에이멜 왕국과 전쟁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군부가 동요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게다가 연루된 것이 아말리에 하나가 아니었다. 당일 회의에서 아말리에의 발언을 듣고도 대부분 의심하지 않았다. 아말리에의 말처럼 상신하는 자도 없었다.
충분히 할 만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그들을 모두 동죄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않아도 쓸 만한 사람이 적은 상황에서 수하에 믿을 만한 신하가 더더욱 남지 않게 된다.
아들에게 잘못된 진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까지 충실해온 신하를 내칠 수는 없었다.
그 아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욱더.
‘후우…….’
생각할수록 골이 아파서 황제는 관자놀이를 짚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는 아말리에가 권력을 탐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로렌스의 주변에 사람을 붙여주려 했을 때에 선뜻 그 뜻을 받들기도 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그녀의 태도가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로렌스를 손쓸 수 없는 자로 판단했다는 뜻이었으니까.
황제는 아말리에에게 근신을 명하고 그 일을 끝냈다.
아말리에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뢰기 황공하오나, 폐하, 로렌스 경은 감사하는 마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퍼.」
「설령 제가 충심으로 간언하고 로렌스 경이 간언을 받아들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없는 사람이 공신인들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그러니 자신은 로렌스의 공신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아예 없노라고 아말리에는 말을 맺었다.
그날 아말리에가 한 말이 모두 황제의 머리를 아프게 했지만, 마지막에 말한 그것처럼 가슴에 비수처럼 박힌 것도 없었다.
로렌스가 자신이 가진 힘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는 말과 합쳐지면, 더욱 더 그러했다.
황제는 목이 타서 물잔을 끌어당겼다.
궁의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니, 시원한 물이라도 실컷 마셨으면 좋겠는데, 시종장은 그것도 좀처럼 내 주지 않았다.
밀라이라가 몹시도 그리웠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황제가 미지근한 물을 두 잔 연달아 마시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갈증이 나시면 꿀물을 좀 드릴까요? 피로회복에 좋은 약재와 허브를 꿀에 넣어 잰 것이 있어요.”
“음. 네가 가져왔느냐?”
딱히 꿀물이 마시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딸의 정성이라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서 황제가 물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말했다.
“피오나가 만든 거예요. 요전에 피오나가 모르텐 소남작을 만나러 갔었거든요. 모르텐 소남작이 에브론 대공비를 위해서 만들고 있기에, 어울려서 같이 해봤다더군요.”
재료도, 병도 모두 다 갖추어져 있는 상태에서 알려주는 대로 부어 넣기만 했으니 별달리 피오나가 만들었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피오나는 꽤나 뿌듯해했다.
그래도 황제는 웃음을 머금었다. 피오나는 그에게는 첫 손녀였다. 무얼 해도 귀여웠다.
“모르텐 소남작을 싫어하는 것 같더니, 곧잘 어울리는 모양이로구나.”
“애들에게는 모르텐 소남작이 하는 일들이 새로워서 흥미로운 것 같아요. 하긴, 하녀들이 할 법한 일을 손수 하는데도 이상하게 보기 좋은 영애이지요.”
유니스 백작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시종을 불러 꿀병과 따뜻한 물을 가져오게 했다.
황제는 유니스 백작 부인이 직접 타준 미지근한 꿀물을 손에 들고 잠시 시선을 허공에 던졌다.
그리고 이제까지 연관 지어 생각한 적이 없는 이름을 떠올렸다.
그것은 꿀물과 모르텐 소남작 리시아에게서 아르티제아에게로 넘어간 생각이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세드릭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느냐?”
“세드릭이요? 좋은 사람이죠.”
유니스 백작 부인은 깊은 생각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황제가 느릿하게 꿀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다시 물었다.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거라. 세드릭이 보좌에 앉으면, 너희 가족은 평안히 지낼 수 있을 것 같으 냐?”
“아바마마…….”
유니스 백작 부인이 황망하여 안마하던 손을 멈추고 황제의 곁으로 돌아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제의 입에서 후사를 논하는 일에 세드릭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딸이라고 해서 감히 함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의 등에서 땀이 났다.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것을 묻는 건가 싶었다.
황제가 꿀물 잔을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라. 짐이 트집을 잡아 널 내치기라도 할까 봐 그러느냐?”
“제가 함부로 말씀드릴 일이 아니라…….”
“너희에게도 관계없는 일이 아니지 않으냐?”
황제가 한탄하듯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짐이 로렌스를 후사로 삼겠다고 말했을 때에 너희들에 대한 염려가 어찌 없었겠느냐? 비록 짐이 너도 그렇고, 네 동생도 그렇고, 이런 문제에 함부로 끼어들어 가문과 가족의 일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자를 사위로 골랐고, 또 너희에게 뜻을 두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기는 했다만, 그래도 또 어찌될지는 모르는 법이다.”
황제가 말했다.
“로렌스가 너희에게 살가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가 섞인 형제가 아니냐? 너와 네 자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로렌스를 이 자리에 올려놓았으면 마음 편했으련만.”
부족한 로렌스의 정통성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신민의 지지라도 있어야 한다.
로렌스 스스로 정통성을 얻어올 기량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이라도 끌어다 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신하들의 인심까지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앞일이 막막했다.
평생에 걸쳐서 쌓아올린 권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워 보였다. 넘겨줄 자식이 없으면, 제아무리 크고 단단한 성곽이라도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결국 누군가에게 물려주기는 해야 했다.
“하지만 로렌스가 저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황제는 중얼거렸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말문이 턱 막혀 쉽사리 다시 열지 못했다.
피가 섞인 형제인 로렌스가 계위하면 안전할 거라니. 황권을 앞에 두면, 형제자매의 목숨 같은 것은 대단치 않다는 것을 그레고르 황제 자신이 증명하고서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을 직접 황제에게 할 수는 없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저는 로렌스와 정말 친하지 않아요. 또……, 아바마마께는 말씀드린 적 없지만, 로렌스의 생모와는 정말 크게 싸운 적도 있어요.”
“음…….”
“그것에 비하면 세드릭이 차라리 안심되는걸요. 세드릭과도 별로 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기 권력 때문에 저희 가족을 위협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황제가 침음에 잠겼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가슴이 벌렁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귀여움은 받았지만, 한 번도 황제에게 중요한 의논 상대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작년에,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아르티제아가 말한 적이 있었다.
「폐하는 현명하시고, 주위에 견해를 구할 만한 사려 깊은 신하도 많이 있지만, 가족과 아무 의논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아바마마께서는 총애한다고 해서 자식이나 애인의 부탁을 국사에 반영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아뇨.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안심할 만한 사람에게 내밀한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은 사람의 본능 같은 것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냥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고,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이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 듣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그때에 자신이 시뜻하게 대답했던 것이 아쉬워졌다.
그때에는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좀 더 캐물었더라면, 도움이 되는 조언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르티제아는 이렇게도 말한 적이 있었다.
「폐하께 거짓을 말하지 마세요, 유니스 백작 부인. 폐하는 의심이 많은 분이고, 사람의 진심을 잘 꿰뚫어 보시니까요.」
유니스 백작 부인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거짓을 고할 수는 없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아르티제아와 교제하면서 자신이 말하는 거짓말과 술책들이 얼마나 어설픈지 절실히 깨달은 바 있었다.
주름진 눈가 너머로 황제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서운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느냐?”
“무얼요?”
“생각해보면 너희들이나 로렌스나 입장은 똑같은데도, 너희들을 후사로 삼겠다는 말을 짐이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서운하게 여긴 적이 없다 하면 거짓말이고요.”
황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제가 그럴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그러하냐?”
“네. 전 분명히 아바마마를 실망시켰을 거예요. 그것보다는 이렇게 속 편히 예쁨 받는 쪽이 좋아요. 아바 마마께서 제게 야심 없고 부귀한 남편을 골라주신 이유도 이해했고요.”
자신은 지난 1년 동안 물밑에서 일어난 일의 절반도 채 감당하지 못했으리라고 유니스 백작 부인은 생각했다.
당사자였다면, 아마 그 많은 음모의 존재를 알아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게도 자식이 있어요, 아바마마. 이제 제가 바라는 것은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신 뒤에 저 애들이 아바마마의 손녀라는 사실이 잊혀질 때까지 안전하게, 지금처럼 부귀하게 지내는 것이에요.”
황제는 그 밑에 깔린 뜻을 알아들었다.
황제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로렌스를 후계 구도에 올림으로써 계승법과 관습이 흐트러졌다.
그레고르 황제 자신이 선황후의 양자로서 계위하기는 했으나, 본래는 사생아였다는 상황까지 더해졌다.
사생아라 해도 피가 이어지고 총애가 깊다면 계위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로렌스와 견주어지며 위협당한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딸들까지 위험해질 것이다.
로렌스와 밀라이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그들을 살려둘 리가 없었다.
황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세상사 참 우습지.”
“아바마마…….”
“오랫동안 정을 주어도, 신뢰를 쌓고 충성을 받아도, 가르치려고 애써도, 마지막에 믿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타고난 성품이 좋은 사람이라니.”
황제가 남은 꿀물을 마저 들이켰다. 그리고 안락의자에 몸을 묻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