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4
악녀는 두 번 산다 173화
전쟁은 크라테스 제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군수물자가 문제였다.
남부에서 정벌군의 물자를 책임지기로 한 것은 리아간 공작가였다.
중부에서 거기까지 대량의 물자를 가지고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해적 토벌을 주기적으로 주청하곤 했던 것이 남부였기 때문이었다.
그 리아간 공작가가 에이멜 왕국군에게 제압당해 있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남부군도 그랬다. 체제가 잘 돌아갔다면, 남부군은 리아간 공작가와는 별개로 단일한 움직임을 보여 에이멜 왕국군을 요격하기 위해 나서야 했다.
그러나 리아간 공작과 친밀한 남부군 지휘관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드리올은 마치 남부군의 군수 창고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요소요소를 공격하여 물자 공급을 방해했다.
결국 중앙에서 모든 상황을 정리할 총책임자를 내려 보내야만 했다.
“이제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신료들은 매일 황제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에이멜 왕국을 일벌백계하여 다시는 제국의 영토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쟁이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에이멜 왕국에 대한 제재 조치는 경제적인 제재로 충분합니다. 무역을 전면 중단하고, 이언츠 왕국을 비롯하여 남부의 소왕국들에게 에이멜 왕국과의 교류를 일절 금지하는 교지를 내리십시오.”
“영토를 침범당하고, 황후 폐하의 친정을 멸문당한 나라를 어느 왕국에서 대국으로 인정하여 그 말을 따른단 말입니까? 제국이 제국인 것은 모든 나라를 제압하고도 남을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이멜 왕국을 쳐서 이기는 건 그렇다 칩시다. 막대한 물자를 소모해서 승전한다 하더라도 리아간 공작가가 멸문당하면, 어차피 체면이 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전파와 주화파의 싸움은 팽팽했다.
데어리 포드를 둘러싼 진상 조사는 그것과 별개로 이루어졌다.
에이멜 왕국을 상대하는 것은 크라테스 제국의 체면과 명분을 중심에 놓고 해야 할 일이다. 제국은 결코 왕비 암살이 제국과 관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대외적인 것은 그렇더라도 사실을 알아두어야 했다.
호덴 자작을 비롯하여 데어리 포드와 접촉했다는 의혹이 있는 자는 모두 구금되어 가혹한 심문을 받았다.
그중 일부는 그 과정에서 다른 비리가 드러나 처벌되기도 했다.
수도에서는 남부 지방에서 일어나는 타국과의 분쟁보다도 이 일에 관심을 가진 자가 더 많았다.
어차피 에이멜 왕국은 소국이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제국에 별일이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귀족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리아간 공작가의 처지와 후계자의 향방이었다.
이 일로 인해 로렌스가 정무장관에서 해임되어 자택에 연금되었기 때문이다.
데어리 포드가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원한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자 더욱 의혹이 짙어졌다.
그러나 결국 배후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모든 증거가 이언츠 왕국에서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의 조사관들이 알면서도 덮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것이 로렌스가 꾸민 일이라는 주장의 근거였다.
황제가 밀어주지 않는다면, 로렌스에게는 내세울 만한 정통성이 없었다.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황제의 총애가 허물을 더 이상 덮을 수 없다면, 그는 더 이상 황제의 후계자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의 불똥은 로이가르 대공에게 튀었다. 그것도 그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방향이었다.
“아직도 가넷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나?”
로이가르 대공은 겉옷을 벗어 집사에게 맡기며 물었다.
집사가 송구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예.”
“식사는?”
“스카일라 님께서 가지고 들어가셨지만, 입에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이게 벌써 나흘째야. 어쩔 셈인가?”
타박하는 말에 집사가 고개만 숙였다.
로이가르 대공비가 드러누워 곡기를 끊은 것이 나흘째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달래고, 루덴 후작 부부까지 다녀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침대에 드러누워서 오로지 언니 카멜리아 후작 부인과만 대화하고 다른 사람과는 일절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애들은?”
“마님께서는 아가씨들은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걱정할까 봐 그러시는 것이겠지요.”
로이가르 대공은 혀를 찼다.
“석류 주스라도 좀 가져오게. 서늘하게 식혀서.”
“예.”
자신이 얼굴을 비쳐 봐야 역정을 낼 테지만, 그렇다고 아내가 앓아누웠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곧 집사가 석류 주스 한 잔을 가져왔다.
로이가르 대공은 손수 그 잔을 들고 대공비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가넷. 나요.”
안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들어가겠소.”
말하고 나서도 로이가르 대공은 예의를 지켜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문이 빼꼼 열렸다. 스카일라가 고개를 내밀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서 오세요, 이모부님. 이모님 기분이 지금 아주 많이…… 안 좋으세요.”
“나흘째가 아니냐. 저 사람은 좀 어떠냐?”
“제가 뭐라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해요.”
“시녀는 너 혼자냐?”
“네.”
로이가르 대공은 스카일라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들어가 봐야겠다.”
스카일라는 로이가르 대공을 굳이 막지 않았다. 나흘이면 로이가르 대공도 충분히 많이 참은 것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침실로 들어서자 숨죽이고 여기저기에 대기하고 있던 하녀들이 모두 발소리를 죽여 밖으로 사라졌다.
“나 왔소.”
아마도 진즉 기척을 듣고 알았을 텐데도 로이가르 대공비는 돌아누운 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석류 주스를 가져왔어요. 당신 좋아하는 거잖소. 한 모금만 마셔 봐요.”
머리맡에 주스를 내려놓고 곁에 앉아 로이가르 대공은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로이가르 대공비가 입을 열었다.
“내버려두세요. 콱 굶어죽을 거니까.”
“여보. 그러지 말아요. 나는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하지 않았소.”
로이가르 대공비가 뺨을 쓰다듬으려 하는 대공의 손을 탁 쳐냈다.
그리고 울화병 가득한 얼굴로 로이가르 대공을 바라보았다.
“거짓말하지 마요.”
“내가 당신한테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당신은 내가 멍청한 줄 알죠? 그러니까 포드 영애라는 계집애가 누굴 말하는지 다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포드 영애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알고 있잖소. 당신 언니가 확인까지 해줬는데 잊었소?”
“나한테는 귀도 없는 줄 알아요? 그러면 그 데어리 포드라는 여자가 무슨 돈이 있어서 작위까지 사들여서 제대로 귀족 행세를 했다는 거예요?”
로이가르 대공비가 벌떡 일어나려다가 현기증을 일으켰다.
로이가르 대공은 얼른 그녀를 부축해서 쿠션에 기대게 해서 앉혔다. 그리고 입가에 석류 주스를 대어 주었다.
“가넷, 고집 부리지 말고. 이러다가 당신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나랑 애들은 어떡하라고.”
로이가르 대공비는 움찔했다.
그러나 본래부터 귀하게 자라서 괴로운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나흘이나 고집을 부렸으면 버틸 만큼 버틴 것이었다. 갈증도 심한 데다가 석류 주스는 너무 향기로웠다. 원래부터 가장 좋아하는 음료이기도 했다.
로이가르 대공비는 결국 주스를 한 모금 받아마셨다.
그러고는 목소리는 애써서 냉정하게 냈다.
“아무튼 난 당신 안 믿어요. 당신 그 여자 언니를 좋아했었잖아요.”
“데어리 포드와 나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정말이오. 사람들이 그게 다 로렌스가 한 짓이라고 말하는 걸 못 들었소? 당신 언니를 모함하기 위해서 말이오.”
로이가르 대공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로이가르 대공으로서는 상상한 적도 없는 발상이었다.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가능하면 대공비의 귀에는 안 들어가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로렌스가 연금되고, 그 이상의 조치가 취해질 기미가 보이면서 사교계와 살롱이 온통 그 이야기로 불타올랐다.
로이가르 대공비의 귀에도 에이멜 왕비 암살범인 렉센 부인이 데어리 포드라는 여자라는 사실이 들려왔다.
그리고 로이가르 대공비는 포드 영애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가졌던 일은, 굴곡 없는 그녀의 인생에서 드물게도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언니 책임으로 돌리지 말아요. 언니가 하는 일은 항상 날 위한 거였어요.”
“그렇지. 미안하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로이가르 대공이 할 수 있는 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로이가르 대공비가 눈물 때문에 빨개진 눈매로 말했다.
“그래서, 언니가 한 일 때문에 미안해서 당신이 해준 거 아니에요?”
“당신 언니는 아무 일도 안 했소. 그 여자의 언니는 자살했다고 하더군. 아마 그 여자도 로렌스에게 속았겠지. 불쌍하게도.”
“…….”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거금을 투자해서 그 여자에게 남부의 상단을 주었겠소. 폐하께서도 로렌스가 한 일이거나, 아니면 이언츠 왕국 쪽에서 하는 공작에 넘어갔을 거라고 하시더군. 알지도 못하고 떠들어대는 작자들 말은 믿지 말아요.”
로이가르 대공비가 침묵했다. 그러다가 눈물을 주르륵 쏟아냈다.
“속상해요.”
“자아, 이제 그만 울고 석류 주스를 더 마셔요. 고운 얼굴이 다 붓겠소.”
“당신이 자꾸 날 힘들게 하잖아요.”
“다 오해라고 하지 않았소.”
결국 로이가르 대공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제대로 먹을 거지?”
“…….”
“날 너무 슬프게 하지 말아요.”
로이가르 대공비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퍽 누그러져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녀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일어섰다.
그는 데어리 포드의 일이 밝혀졌을 때에 크게 놀라고 당황했다. 위브 자작가를 통해서 자신의 파벌 귀족들이 연루될까 봐 그것만 걱정했다.
설마 로이가르 대공비가 이런 식으로 오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튄 불똥이었다.
밖으로 나오면서 그는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카일라에게 말했다.
“부드러운 수프 같은 것이라도 좀 챙겨드려라. 이제 여러 번 권하면 못 이기는 척 먹을 거다.”
“이모님은 괜찮으실까요?”
“그냥 투정 부리는 거니까 괜찮아. 네가 잘 위로해드려라. 가넷이 널 무척 좋아하지 않으냐.”
“네.”
스카일라는 고분고분 고개를 숙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성큼성큼 서재 쪽으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일에 크게 한몫 낄 수 있었을 것이다. 로렌스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서나, 남부 지방에 대한 영향력 확장 수단으로서나.
그러나 지금은 손도 발도 내밀 수 없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소식을 전해들은 대공비가 오해해서 울 것이 틀림없었다.
‘쯧.’
그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러나 이럴 때에는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아내보다 좀 더 동지적인 배우자가 있었더라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재에서 기다리게 했노라고 집사가 말했다.
응접실이 아니라 바로 서재로 맞이하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오늘 밤에는 딱히 올 사람이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의아하게 집사를 바라보았다. 집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리아간 공작가에서 온 사람입니다. 황후궁에서 나와 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기에, 서재로 모셨습니다.”
로이가르 대공은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