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5
악녀는 두 번 산다. 174화
로이가르 대공이 응접실에 들어서자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삼십 대 전후로 보이는 남자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로이가르 대공 전하. 리아간의 보어츠라 합니다.”
“만나서 반갑네.”
“리아간 공작님께서 제 삼촌이 되십니다. 아버지가 리아간 공작님의 넷째 동생이지요. 지금은 멜드 시의 시장을 맡고 있습니다.”
보어츠는 그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남부에서 살아왔다. 남부에서는 리아간 공작가를 배경으로 한 덕에 제법 이름이 있었지만, 로이가르 대공이 알 리는 없었다.
“멜드 시라면, 남부의 교통 요지가 아닌가?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시장을 맡고 있다니, 놀랍군. 자네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지 알겠네.”
로이가르 대공의 말에 보어츠야말로 놀랐다.
멜드 시는 남부에서는 상당히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교통도시였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까지 알려져 있을 법한 대도시는 아니었다.
남부까지 거래를 하러 다니는 상단이나 알 이름인데, 로이가르 대공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보어츠는 멜드 시장으로서 조금 뿌듯해졌다. 그리고 로이가르 대공에 대해서 약간의 존경심도 생겨났다.
“삼촌께서 저를 신뢰하고 기회를 주신 덕분입니다.”
“리아간 공작에게 아주 감사하고 있겠군.”
“예.”
보어츠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보통 이런 출세는 아주 탁월하게 빼어난 자가 아니라면 대귀족의 일가친척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보어츠는 리아간 공작의 조카들 중에 가장 유능하여 공작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보어츠는 공작 부부가 리아간 공작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만일에 과거에 리아간 공작 부부가 선대 공작 부부를 배신하고 황제에게 붙지 않았더라면, 그는 고작해야 리아간 공작가의 먼 친척이었을 것이다.
방계도 방계 나름이다.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자녀를 시종이나 시녀로 들여보내면서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어츠의 집안은 그렇지 않았다.
보어츠가 적극적으로 찾아 인사를 드리러 들락거린다 해도 다른 식객 들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어츠는 지금 리아간 공작의 조카가 되었다.
리아간 공작은 능력 있는 조카를 귀여워하여 큰 기회를 주고 뒷배도 되어 주었다.
당연히 헌신해야 마땅했다.
그렇기에 리아간 공작가가 에이멜 왕국군에게 둘러싸였을 때에 보어츠는 곧바로 시정을 팽개치고 공작가로 향했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인근에 머무르며 내부와 접촉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공작과 연락하는 데에 성공했다.
공작은 보어츠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수도에서 대응책이 너무 늦게 나오는 것이 불안하구나. 남부 정벌군이 출정한 지가 오래인데, 설마 돌려세운 것은 아니겠지.
폐하께서 내게 노화를 내시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이멜 왕국에서 내세운 명분을 믿고 계시진 않을 거다.』
보어츠는 남부 정벌군이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길 도중에 멈춰 섰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작에게 그것을 알려줄 도리가 없었다.
『수도로 가서 폐하께 호소해 보아라. 편지를 쓰기는 했지만, 그것 하나로는 불안하구나.
전쟁이 되면, 제국의 체면을 지킬 수 있겠지. 하지만 리아간 공작가는 반드시 멸망할 테니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만일에 제국에서 선전포고를 한다면, 카드리올 왕자는 리아간 공작가를 불태우고 약탈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주화파를 설득하되, 리아간 공작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에이멜 왕국에 적당당한 수준의 보상을 해주고 화해한다는 결론을 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부부는 이 문제의 책임자로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령 리아간 공작가의 이름은 존속할 수 있을지 몰라도 더 이상 지금의 공작 부부에게 맡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리아간 공작이 몰락하면, 보어츠의 집안도 망한다. 단순히 출세길이 막히는 문제가 아니라 죄인의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일단은 폐하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폐하께서는 어쩌면 이번에도 사람을 완전히 뒤집어 바꾸어 당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실 터란다.
우리 부부가 폐하의 눈을 가리고 남부에서 멋대로 행동했다고 여기셔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니까.
부디 네가 폐하께 우리 부부에게 진정으로 불충한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라 소인배라서 그저 약간의 재물 욕심을 부린 것뿐이라는 사실을 폐하께 고해다오.
폐하께서 우리 부부를 용서하시기만 하면, 나머지는 폐하의 중신과 참모들이 계책을 낼 것이다.
내 인장과 위임장을 함께 보내니, 수도의 상단에서 자금도, 인맥도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끌어 쓰도록 해라.』
보어츠는 그래서 수도로 달음질쳐 왔다.
하지만 리아간 공작의 말처럼 황제를 알현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는 리아간 공작의 대리인으로 입성하는 대신에 조용히 수도로 들어왔다.
리아간 공작은 황제를 설득하라고 했지만, 보어츠는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부 지방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들은 소식이 남부 정벌군에 대한 것이었다.
에이멜 왕비 암살에 로렌스가 연루되는 바람에 남부 정벌군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제를 설득하는 것도 녹록하지 않을 것이었다.
비록 지금까지 리아간 공작가가 중앙의 권력다툼에 개입하지 않았고, 그럴 만한 입장도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제국의 후사가 어찌 될지 그 향방에까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황제는 후사로 삼으려던 아들의 실책을 어디까지 덮어줄까? 핵심적인 문제는 에이멜 왕비도, 전쟁도 아니라 그것이었다.
로렌스는 황제의 적자라 하더라도 추궁당할 만한 일을 저질렀다. 그러니 황제가 아무리 그를 아끼더라도 쉽사리 없던 일로 만들 수 없었다.
황제가 로렌스를 보호하려고 작정했다면, 에이멜 왕국의 주장을 전면 부정하고 전쟁을 할 것이다.
아니면, 모든 것을 다 리아간 공작에게 뒤집어씌워 처리할 것이다.
황제가 리아간 공작가를 구원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리아간 공작이 쓴 탄원서를 받았을 때에 벌써 뭔가 대책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어츠는 그렇게 해석했다.
그렇다면, 설득해야 하는 건 황제가 아니다. 황제가 리아간 공작가를 구원하는 쪽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야 했다.
보어츠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황후궁이었다.
수도에 있는 리아간 공작저의 집사가 그간의 소식을 알려주면서 황후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황후 폐하께서는 퍽 누그러지셨습니다.」
「누그러지셨다는 게 무슨 말인가?」
「황후궁의 문을 열고 나온 데다가 시녀에게 살롱까지 열게 하셨습니다. 에브론 대공의 결혼식 때에는 대공비의 웃어른으로 참석하여 황제 폐하의 에스코트도 받으셨고요.」
보어츠는 그 뒤의 일들까지 듣고 나서 신중하게 검토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 와 리아간 공작과 싸우기보다는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가문의 이름을 지키는 쪽을 택할 수도 있었다.
황후는 리아간 공작가의 적녀로서 긍지 높은 사람이라 했다.
그러니 황제의 뜻에 두 번이나 리아간 공작가의 운명을 좌우하려 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었다.
선대 공작 부부 암살에 지금의 리아간 공작 부부가 관여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보어츠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충분히 승산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보어츠는 황후궁에 막대한 뇌물을 뿌렸다. 황후의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라도 좋은 말을 보태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렵게 허락받은 알현 자리에 나온 것은 황후가 아니라 시녀 마르타 백작 부인이었다.
「마르타입니다.」
나이 지긋하고 충실한 시녀는 짧게 대답했다.
보어츠는 불만을 갖지 않았다. 마르타 백작 부인이 남부 출신으로 미혼 시절부터 황후를 모신 시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르타 백작 부인은 보어츠가 내보인 리아간 공작의 인장과 위임장을 보고도 무감정하게 말했다.
「황후 폐하께서는 이제 정치적인 일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리아간 공작가가 멸문합니다.」
「본인이 저지른 실책으로 인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리아간 공작 부부는 가문의 보존을 일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후 폐하께서 구원해 주신다면, 마땅히 황후 폐하의 것을 황후 폐하의 손 안에 돌려드리고, 또 사죄도 할 것입니다.」
보어츠는 간곡히 말했다.
「알현할 기회만 주선해 주십시오. 황후 폐하께 리아간 공작가의 진심을 증명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황후에게 바치는 예물 상자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주먹만 한 사파이어 하나를 세 개로 나누어 만든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가 들어 있었다.
이런 귀품은 제국에서도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남부의 어느 사파이어 광산에서 채굴되었을 때에 리아간 공작이 남 몰래 사들여 만든 것이었다.
그에게는 훗날 손녀딸을 리아간의 적녀로 수도에 데뷔시키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 그때에 쓰려고 아껴 두었던 것이었다.
그것 외에도 리아간 공작이 수도에 장만해둔 예술품들이 마차 하나 가득 실려 밖에 대기하고 있었다.
보어츠는 거기에 더하여 마르타 백작 부인에게도 연마된 보석이 가득한 상자를 뇌물로 내밀었다.
그래도 마르타 백작 부인은 시큰둥한 얼굴인 채였다.
「예물은 거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황후 폐하께서 알현을 받아주시지는 않을 겁니다.」
「백작 부인, 부디…….」
「성의를 보아 조언은 해드리도록 하지요.」
보어츠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평생 황궁에서 황후의 시녀로 살아온 귀부인이 보물에 대한 대가로 주는 조언이었다. 마땅히 경청할 가치가 있었다.
마르타 백작 부인은 말했다.
「리아간 공작가에 남은 자산 중에는, 수도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유력자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차기 황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대귀족 세력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 말이 옳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리아간 공작가도 진즉 수도로 올라와 계승 다툼에 한몫 끼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제국의 국고를 떠받치는 막대한 사업의 경영이 여전히 리아간이라는 이름에 맡겨져 있지요. 누가 그것을 탐낼지 생각해 보십시오.」
보어츠는 어리석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말을 금세 알아들었다.
리아간 공작가에는 대귀족으로서의 권리와 세력이 없다. 그러므로 파벌에 들어가 그 보호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조선과 무역, 소금, 광산에 이르기까지 남부 지방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국가사업들을 관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다른 지역에서 대체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누가 그것을 탐낼 것인가. 그 가치를 알아줄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정치 논리가 아니라 거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누구인가.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그리하여 보어츠는 곧바로 로이가르 대공의 저택으로 향한 것이었다.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 탄원을 드리러 왔습니다.”
보어츠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로이가르 대공이 턱을 한 번 쓰다듬었다.
“황후 폐하께서는 들어주시지 않던가?”
보어츠는 놀란 마음을 가다듬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제국의 첫 번째 상속권자였고 수도의 세력가였다.
보어츠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