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7
악녀는 두 번 산다. 176화
마침내 황제가 결단을 내렸다.
“에이멜 왕국에서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침공당하고도 방어하지 않을 수는 없다.”
황제는 선언했다.
“에이멜 왕국에서 정말로 왕비 암살의 배후를 밝히고자 한다면, 다짜고짜 군사를 일으켜 침공할 것이 아니라 정중히 진상 조사에 협력을 요청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진상이 확실하지도 않은데 제국 신민을 암살범으로 단정 짓고 폭거에 나선 행위는 용납하기 어렵다. 에이멜의 왕자는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군대를 일으키니, 그 진의가 심히 의심스럽다. 짐은 크라테스 제국의 신민과 명예를 지켜야 할 수호자로서, 이 일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에이멜 왕국에 책임을 묻고자 한다.”
황제의 뜻에 더하여 신료들이 항목을 덧붙였다.
그 주된 내용은 에이멜 왕비 암살이 카드리올 왕자와 관계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포목상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무슨 능력과 힘이 있어 그런 대죄를 지었겠는가? 오히려 렉센 부인에게 누명을 씌워 죽여 버림으로써 배후를 밝히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거기에 한 가지 규탄이 더 붙었다.
“국왕이 아니라 왕자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국서를 보내는가? 이는 에이멜 왕국의 국체가 흐트러졌음을 증명했을 따름이다.”
이에는 에이멜 국왕과 왕자 사이를 이간질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기도 했다.
어용 신문과 지식인들이 여론을 형성시켰다. 로이가르 대공이 철저하게 거기에 발을 맞췄다.
모든 신문사에서 일제히 에이멜 왕국을 비난했다. 살롱과 커피하우스는 물론이고 어디든 사람이 모이면 황제의 용단을 칭송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에이멜 왕국 같은 소국에게 국지적으로나마 패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던 자가 많았던 것이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지. 언제부터 제국이 에이멜 따위를 신경 썼단 말인가?”
“어차피 해적이 득실거리는 나라잖아. 이 기회에 아주 시원하게 쓸어버렸으면 좋겠구먼.”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고통을 잊는다.
한 사람이 직접 겪은 개인적인 고통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하물며 중앙에서 전쟁이 있었던 것은 두 세대 이상 전의 일이었다.
총력전을 부르짖는 자들이 다수인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차피 흐르는 것은 타인의 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모이고 약간의 부추김이 더해지자 전면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여론을 휩쓸게 되었다.
에브론 대공저 안에서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공기가 흘렀다.
에브론 대공저에서는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남부와 북부로 아득히 멀어 전쟁의 영향이 직접 닿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는 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헤일리도 걱정을 다 숨기지 못한 채 아르티제아에게 물었다.
“전면전이 벌어질까요?”
“아니.”
아르티제아가 대꾸했다.
“전쟁을 부르짖는 여론을 형성해 두는 것은 에이멜 왕국을 위협하기 위해서야. 지금 에이멜 왕국에서도 제국 정부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고 있을 테니까.”
“실제로 군대를 보낼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보내기는 할 거야. 원래 협박이라는 건 실제 행동이 동반되어야 정말로 무서운 법이잖니?”
“남부 정벌군의 보급 계획은 이미 모두 무너졌다고 들었어요. 중부에서부터 보급로를 이으려면 엄청난 일이 될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낼 수 있으니까 제국인 거지.”
아르티제아는 소파에 몸을 편안하게 기댄 채로 말했다.
“백성이 도탄에 빠지든, 몬스터가 시시때때로 농장을 휩쓸어 망치든, 군사가 몇천, 몇만 피를 흘리든……, 쥐어 짜내면 군사를 계속 동원할 수 있고 물자도 나와.”
숫자놀음을 시작하면 제국은 정말 어마어마한 나라였다.
설령 정병이 있는 에이멜 왕국과 부유한 이언츠 왕국이 힘을 합쳐 군사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제국 일부에서 쥐어짜내는 것보다 많은 군병과 물자를 동원하는 게 불가능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물자가 아무리 빈약하고 처참하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괜찮아. 남부 정벌군을 구성하고 있는 건 폐하의 정예군이야. 로렌스 오라버니를 밀어주기 위해 쓸 작정은 하셨어도,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일에 낭비하고 싶진 않으시겠지.”
“그렇다고 해서 지금 기세를 타고 있는 에이멜 왕국에서 쉽사리 굴복할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려는 걸까요?”
헤일리가 물었다. 아르티제아가 쿠션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리고 그 진상 조사단은 에이멜 국왕과 카드리올 왕자를 이간질하는 게 목적일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왕비가 죽고 나서 석 달이 지났어. 이만 하면 에이멜 국왕의 슬픔도 어느 정도는 가셨겠지.”
그리고 슬슬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경계해야 마땅할 장남에게 너무 큰 권한을 주었다든가.
“이제 겨우 석 달인걸요. 에이멜 국왕님은 왕비님을 엄청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요사이에 아르티제아의 곁에 있으면서 주워듣는 이야기가 많은 소피가 끼어들었다.
헤일리가 대꾸했다.
“늙은 권력자가 새로 얻은 딸뻘의 젊은 아내에게 빠지는 것이야 흔한 일이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그때 그 순간에야 진심이었겠지만…….”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쨌든 국왕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슬픔으로 생각 없이 카드리올 왕자에게 전권을 맡겼을지 몰라도, 이제는 정신이 좀 들었겠지. 왕비와 카드리올 왕자의 사이가 어땠는지는 국왕도 잘 알고 있을 테고.”
“네…….”
“왕비를 위한 일이라는 핑계까지 더해지면, 국왕이 마음을 바꾸기 쉬워져.”
그리고 진상 조사단의 우두머리는 로이가르 대공이 될 것이다.
카드리올 왕자를 넘어서서 에이멜 국왕과 대등하게 대화를 나누려면, 그만한 신분을 갖추어줄 필요가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궁중 안의 정보망으로부터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황제에게 포드 가문의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주장을 했다.
「데어리 포드의 오해는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오해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으니까요.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지 않은 저 역시 책임감을 느낍니다.」
물론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데어리 포드와 관계없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일이 자신의 치부와 관련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어 자신과 황제의 목표가 같다는 것을 알렸다.
데어리 포드를 의미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데어리 포드와 카멜리아 후작가, 로이가르 대공 사이의 원한을 아는 것은 제국 내에서도 극소수뿐이다.
그러니 그 일은 묻어버려도 된다. 데어리 포드의 배후를 캐다 보면 제국 내의 정치적 상황에 타국의 왕비를 휘말려 들게 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지금은 데어리 포드가 아니라 에이멜 왕비에게 시선을 집중시켜야 할 때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이쪽에서 먼저 에이멜 왕비 암살범을 카드리올 왕자라고 주장하여 공격하자고 황제를 설득했다.
「이 암살로 인해 이익을 가장 크게 보는 자는 카드리올 왕자입니다. 그게 아니라 해도 결국은 남부의 누군가일 겁니다.」
로이가르 대공은 주장했다.
애당초 제국 중앙에는 에이멜 왕비와 원한 관계를 맺을 사람도, 협력 관계였던 사람도 없다.
죽여야 할 동기가 없었다.
리아간 공작가에서 에이멜 왕비와 사이가 틀어져 암살했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없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정성스러운 공작을 거쳐 만들어낸 위장 신분을 리아간 공작 부인이 다 드러나는 형태로 소모해 버리겠는가.
「무엇보다도 데어리 포드를 렉센 부인으로 만든 재물은 이언츠 왕국에서 나왔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네.」
황제는 로이가르 대공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은 관계없다.
이언츠 왕국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언츠 왕국은 작지만 부유한 나라였다. 제국 안에서 쓰이는 사치품 다수가 이언츠 산 제품이었다.
압박하여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군대를 일으켜 에이멜 왕국과 이언츠 왕국을 위협한다. 동시에 협조를 요구한다.
이언츠 왕국도 협조하는 게 낫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호전적이고 강인하며 군대를 움켜쥔 이웃 나라 왕자의 존재는 기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승산은 충분했다.
그리하여 황제는 로이가르 대공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헤일리가 물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수완가인데……. 별로 걱정하시지 않는 듯합니다.”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어차피 에이멜 왕국의 실권은 이미 카드리올 왕자에게 넘어갔어. 로이가르 대공이 간다고 해도 판세를 완전히 뒤집을 수는 없지. 애초부터 진짜 목적이 진상 조사도 아니니까.”
“…….”
헤일리는 아르티제아가 남해인들에게 납치되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세드릭은 그 일을 묻었다. 남해인은 해적 출신 용병이며, 주범은 로산 후작가에 원한이 있던 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정리를 끝냈다.
세드릭이 끝난 일이라고 말했으므로, 에브론 인들은 모두 끝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의문을 느끼는 자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헤일리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공비는 타지인이었고, 로산 후작이었다. 로산 후작가에 원한 있는 자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알아내려고 해도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때에 왔던 남해인들은 틀림없이 에이멜 왕국 사람일 것이다.
헤일리는 설마 그중에 카드리올 본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에 아르티제아와 카드리올 사이에 뭔가 협정이 맺어진 것은 분명했다
지금 남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르티제아의 손을 거친 일이다.
헤일리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르티제아가 이런 중대한 사건을 앞에 두고 이렇게 한가하게 노닥거리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런 헤일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 가르치듯이 조곤조곤 말했다.
“헤일리, 하나 염두에 두렴. 전쟁을 하든, 외교 협상을 하든, 수도의 정치에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밖에 없어.”
그것은 아르티제아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황실과 권력이란다.”
“황실과 권력…….”
“남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한 나랏일이지만,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일은 아니야. 지금 제국 황실과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렴.”
“……로렌스 경인가요?”
“그래. 폐하께서는 로렌스 오라버니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묻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전쟁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과 고양감, 에이멜에 대한 적개심이 로렌스에 대한 의혹을 싹 쓸어가 버렸다.
그것이 황제가 가장 바라던 일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폐하에게 에이멜 왕비 암살 사건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고 제안함으로써, 자신이 로렌스 오라버니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하게 했어.”
황제와 로이가르 대공 사이에서 일어난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은 그 부분이다.
그 대가로 황제는 로이가르 대공이 공을 세우고 남부 지방에 약간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을 용납하기로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 * *
그리고 그로부터 3주 후에 새로운 남부 정벌군의 지휘관과 교대한 세드릭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