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8
악녀는 두 번 산다. 177화
세드릭은 수도에 들어와 우선 황궁에 들렀다.
그러나 황제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시종장이 송구스러운 얼굴로 나와 공손히 말했다.
“폐하께서는 지금 오수 중이십니다.”
“그런가.”
“몇 주 만에 겨우 제대로 침수에 드신 터라서 말입니다. 결코 에브론 대공 전하를 박대하고자 하는 뜻은 아니니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본래부터 그런 것으로 자존심상해하는 성미도 아닐뿐더러 사실 황제가 일부러 그런다고 해도 따질 형편은 아니었다.
시종장이 말했다.
“에브론 대공 전하께서 당도하셨다는 말씀은 제가 전해 올리겠습니다. 다급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오늘은 이만 대공저로 돌아가 쉬심이 어떠하실지요?”
“그럴 수 있다면 나야 고맙겠네.”
“예. 폐하께서 기침하시면 여쭈어 보고 내일이든 모레이든 알현 일정을 잡아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세드릭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딱히 보고할 만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부 정벌군의 진영에서 머무르며 군기를 잡고 훈련을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그것도 가얀이 이미 체계를 다 잡아놓은 데다가 정예병이었기 때문에 딱히 크게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다.
그가 일찌감치 황궁을 나서자 부관이 물었다.
“폐하를 알현하지 않으셨습니까?”
“옥체가 그리 평안지 않으신 듯하더군.”
그러자 부관이 입을 꾹 다물었다.
세드릭은 쓴웃음을 지었다. 프레일이었다면, 몇 마디 대놓고 황제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거나 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 말라고 늘 책망했으면서도 자신이 그런 태도에 꽤나 기분전환을 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통합지휘부에 가서 교대가 무사히 이루어졌다고 보고하게.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갈 테니.”
“예.”
부관이 군례를 올렸다. 세드릭도 마주 군례로 답하고 말에 올랐다.
세드릭이 대공저에 도착했을 때에 아르티제아는 정원에 있었다.
경비병들이 정문에서 세드릭을 잡고 그 사실을 알렸다. 말발굽소리에 행여나 회임한 여주인이 놀랄까 봐 염려한 것이었다.
세드릭은 그 자리에서 말에서 내렸다. 수하들에게는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는 혼자서 정원으로 걸어서 들어섰다.
정원사가 정성을 들인 정원은 1년만에 제법 아름다워져 있었다.
세드릭은 새삼스럽게 그것을 느꼈다. 아르티제아가 풀 무더기에 발이 걸려 넘어지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아르티제아는 꽃을 꺾고 있었다.
옆에 하녀 하나가 큰 바구니를 들고 뒤따르고 있었다. 다른 하녀는 은사로 물결을 수놓은 커다란 양산으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세드릭은 일부러 인기척을 내거나 하지 않고 잠시 서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몇 주 못 본 사이에 배가 많이 부풀어 있었다. 떠날 때에는 낙낙한 옷을 입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누가 봐도 임신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르티제아가 전정가위로 꽃대 몇 개를 잘라 꽃송이를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허리를 펴고 상체를 젖히며 휴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고, 가슴 뛰기도 했다.
세드릭은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처음으로 모든 기억을 되찾았을 때에 생각했었다.
먼저 돌아오는 것이 자신 쪽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니, 아르티제아는 아마도 아예 돌아오지 않는 쪽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가 해악에 손대기 전에 구할 수 있었으리라. 선악보다 손익이 인간관계를 만든다고 생각하게 되기 전에, 오로지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믿게 되기 전에 말이다.
그랬다면, 이런 평온에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세드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아르티제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
발소리를 들은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세드릭 님.”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선뜻 생각이 나지 않아서 세드릭은 말을 한 번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저 왔습니다.”
별것도 아닌 말이었다.
그것이 어째서 귓가를 달아오르게 했는지 아르티제아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오늘이나 내일 중에 도착하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세드릭이 남부 정벌군의 새 지휘관에게 인수인계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사람을 보내둔 덕이었다.
하지만 몹시 새삼스러웠다. 세드릭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 마치 떨어져 있던 시간이 없는 것처럼.
세드릭이 손을 뻗어서 그녀의 손에서 전정가위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하녀에게 넘겼다.
차가웠던 아르티제아의 손끝이 조금 따뜻해졌다. 물기가 어려 있었다.
“이런 일 해도 됩니까?”
“아무 용건도 없이 걷는 게 잘 안 되어서요. 이제는 안정기이니까 한동안 몸을 좀 움직여 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르티제아가 시선을 약간 내려뜨렸다. 이런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좀처럼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것을 오해하고 세드릭이 물었다.
“몸이 힘들진 않습니까?”
“괜찮아요. 오래 걸을 수는 없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아기도…… 잘 자라고 있고요.”
세드릭이 쑥스러운 얼굴을 했다.
“활발한 편이라는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당신도, 아기도 건강해서.”
“네…….”
바구니를 든 하녀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양산을 들고 있던 하녀는 잠깐 망설였지만, 곧 양산을 접고 물러갔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손이 아직 세드릭의 손 안에 있었다.
빼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주잡을 정도의 용기까지는 아직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별일 없이…… 잘 다녀오셨어요?”
그것은 전과 다르지 않은 인사였다.
하지만 달랐다.
예전에 말했을 때에는 의미 있는 정보를 요구하는 말이었다.
다니러 간 곳에서 있었던 일 중 차후의 정세에 영향을 주거나 그런 사건이 있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었다.
다녀오셨느냐는, 그런 평범한 가족 같은 인사를 한 것이다.
세드릭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아르티제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입술이 맞닿았다.
세드릭의 손이 그녀의 등에 감겼다.
* * *
세드릭이 당도했다는 소식은 곧 여러 곳에 전해졌다.
로이가르 대공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정벌군의 소식은?”
“에브론 대공의 부관이 자세한 보고를 올렸다고 하니, 곧 알 수 있을 겁니다. 지금쯤이면 남부로 진군을 시작했을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로이가르 대공에게 관여할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남부로 갈 황제 특사이므로 공식적인 라인으로도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로이가르 대공은 군부와는 인연이 거의 없었다. 중앙군 자체를 워낙 황제가 단단히 잡고 있었던 데다가 본인이 군사에 관련한 적도 없다.
비공식적인 루트로 항상 상당한 양의 뇌물을 쓰고도 한 발 늦은 정 보밖에 듣지 못했다.
그 군부가 알아서 소식을 가져다 준다. 실질적인 효용도 효용이었으나 만족감도 컸다.
이 일을 계기로 포섭할 수 있게 된 요직 인사도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로이가르 대공은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검토한 두툼한 서류를 비서에게 밀어주었다.
그것은 이번 남부행에 따라갈 수행원 목록이었다.
황제 특사로서 타국과의 교역 중 심지로 가는 것이다. 하물며 황제 특사로 가는 것이다.
비록 교역 문제로 가는 것은 아니라 해도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일개 수행원이라 해도 상당히 높은 권위를 쥘 수 있었다.
제국의 위세를 빌려 교역 협상을 할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니 로이가르 대공 파벌에 있는 상단 중에는 한몫 끼려 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상단주가 로이가르 대공과 대화할 수 있는 위치라면, 직접 와서 부탁을 했다.
그렇지 않은 작은 상단주나 소귀족이라면 비서나 집사를 통해서 청탁했다.
그렇게 쌓인 뇌물도 제법 쏠쏠해서 로이가르 대공은 매일 싱글벙글이었다.
물론 그 뇌물만으로 수행원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포목상의 비중이 너무 높아. 이언츠 왕국과 접촉할 거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하나 같이 다 그 생각들만 하는 건지 모르겠군.”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의 6할 정도로 줄이고, 빈자리는 작은 상단과 장인들로 채워보게. 미래를 생각하면 교역 부문을 다각화할 생각을 해야지.”
“예.”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져오는 자라면 내가 직접 만나보겠네.”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그때였다.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하녀장이었다.
“무슨 일이냐?”
“마님께서 주인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그게…….”
하녀장이 쩔쩔맸다.
로이가르 대공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비서에게 말했다.
“기다리지 말고 가서 할 일 하게.”
“예.”
비서가 그를 따라 일어서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혀를 차며 대공비의 처소로 향했다.
“가넷, 나요.”
로이가르 대공비의 처소는 발칵 뒤집어진 형상이었다.
쿠션이 여기저기 던져져 있었고, 화병과 옷가지도 널려 있었다. 하녀들이 커다란 가방을 열어놓고 그 주위에 각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한쪽 구석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비는 씩씩거리느라 빨개진 얼굴로 지쳐서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내심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오, 가넷? 무엇 때문에 또 뿔이 났어?”
“나도 갈 거예요.”
“가넷……. 놀러가는 게 아니라니까…….”
“포드 가문 일을 해결하러 가는 거라면서요.”
로이가르 대공비가 날카롭게 말했다.
“설명하지 않았소? 공연한 소문 없애고 폐하를 설득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몇 달이나, 아니면 반년 가까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혼자 가겠다는 거예요?”
로이가르 대공은 힐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쳐다보았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대공비에게 들키지 않도록 살짝 고개를 저어 보였다.
자신은 말릴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였다.
“수상한 짓 할 거 아니면 내가 같이 못 갈 이유 없잖아요.”
“당신에게는 재미없는 일 하러 가는 거예요.”
대공비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내가 어린애예요? 당신 바쁜 일 하는데, 붙잡고 놀아달라고 할까 봐 그래요?”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당신 혼자 못 보내요.”
로이가르 대공비가 단언했다.
제법 오랫동안 잊어버린 듯이 생활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익애하는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눈을 두었던 것을 어떻게 잊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