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9
악녀는 두 번 산다. 178화
로이가르 대공은 몹시 난처한 얼굴을 했다.
“내가 가면 분명히 바쁠 텐데 당신 챙겨줄 시간도 없고, 서운해할까 봐 그러지.”
“거짓말.”
로이가르 대공비가 말했다.
“내가 도움이 안 되니까 그러는 거죠?”
“여보.”
“그렇잖아요. 내가 언니처럼…… 똑똑하면 도움이 되니까 분명히 같이 가자고 했을 텐데.”
말하다 말고 로이가르 대공비는 서러운 마음이 왈칵 치솟았다. 사실 말하려던 것은 언니가 아니라 포드 영애였다.
그녀는 자신이 그다지 똑똑하게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귀부인으로서 교양을 쌓았다. 음악과 댄스는 좋아했고, 예법에도 밝았다.
그러나 도무지 공부는 좋아지지 않았다. 역사와 문학을 암기해도, 이게 현실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물며 카멜리아 후작 부인처럼 한두 가지 일을 보고 들은 것으로 그 뒤에 숨은 열 가지 일을 파악하는 것이 될 리 없었다.
정치적 수사가 오가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열심히 들어도 의미를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에서 로이가르 대공비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앉아 있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다가 음식이나 음료에 대한 이야기, 날씨 이야기처럼 평범한 화제가 나오면 거기에 끼어들었다.
그러면 남편이나 언니가 맛있는 것을 챙겨주고, 사람들로부터 축복의 말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허용되었다.
여섯 살 때부터 그녀의 운명은 이미 로이가르 대공의 아내로 결정되어 있었다.
사랑받으며 예쁘게 키워졌다. 평생 할 일은 남편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친정에 의지하고 도움받고,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 외의 일은 섣불리 하지 말라고. 혹 무슨 일이 하고 싶어지면, 꼭 카멜리아 후작 부인과 의논하라고 말이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 살아갈 인생에 의심을 품은 적이 없었다.
포드 영애라는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로이가르 대공비는 사교계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에 익숙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늘 그녀의 귀에 좋지 않은 소문 같은 게 들어갈까 봐 신경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들려왔다.
로이가르 대공이 한미한 귀족의 딸에게 열중하고 있다고.
로이가르 대공비는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높은 신분의 다른 남자들과 달리 로이가르 대공에게는 그 흔한 정부 하나 없었다.
어린 자신과 약혼했으면서, 성장하여 결혼할 때까지 혼외자 하나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질투하는 자들이 멋대로 지어내어 이간질하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실이었다.
로이가르 대공비는 남편이 포드 영애에게 꽃을 건네는 것을 보았다. 그녀와 같이 걸어가기 위해 수행원을 물리고 마차를 먼저 보내는 것도 보았다.
남작의 작위도 없는 귀족의, 그것도 가주도 아니라 일개 영애에게 자기가 주최하는 중요한 모임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는 것도 알았다.
하소연하는 그녀에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공연한 생각이세요, 비 전하. 설령 대공 전하께서 포드 영애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해도, 포드 영애의 재치를 아끼시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구나. 재치가 있는 사람인 거구나. 분명히 똑똑하겠네? 그렇지, 언니?」
「그야 로이가르 대공 전하의 모임에도 참석할 수 있는 영애라면 영특한 인재이겠지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로이가르 대공비는 불행하게도 언니의 거짓말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포드 영애는 틀림없이 남편과 대화도 잘 통하고,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일에 대해서도 조언해줄 수 있는 그런 숙녀일 것이다.
「포드 영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렇지만…….」
「대공 전하께서 전과 달라지신 것도 아니잖아요.」
로이가르 대공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려고 애썼다. 똑똑하고 매력적이니 잠깐 쳐다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잘생긴 남자를 보고 그녀가 간혹 멋지다고 언니의 귓가에 소곤댄 것처럼 남편도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달랐다. 어디가 다른지 로이가르 대공비로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달랐다.
그녀도 소녀 시절에는 정략결혼이 아닌 로맨스를 꿈꿔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른 남자에게 선물을 건넬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수행원을 떼어놓고 단둘이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권력을 이용해서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생각 같은 것은 더더군다나 해 본 적 없었다.
결국 그녀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까지도 비밀로 하고 몰래 포드 영애를 만나러 갔었다.
포드 영애는 그녀를 보자마자 새파랗게 안색이 변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저는 결백하며, 대공 전하께서도 그러합니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지켜보고 있지 않은 곳에서 결코 그분 가까이에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포드 영애는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보다 확실한 대답은 없었다.
그 모든 일이 포드 영애가 아니라 남편의 책임이었다.
그래서 로이가르 대공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안해, 언니. 너무 불안해. 포드 영애는 너무 잘났더라. 너무 부럽더라.」
자신이라면 결코 그렇게 흠 없이 훌륭하게 처신하는 일도, 그런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서 해야 할 이야기를 정확하게 하는 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만, 울면서 그렇게 하소연했다.
그리고 잊기로 했다. 되씹는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포드 영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남편의 사랑을 빼앗길 일 없을 것 같아 안심도 했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남몰래 처리했다는 이야기도 로이가르 대공비는 이번에 데어리 포드의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알았던 것이다.
‘죽게 할 생각은 없었어. 죽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또 자신이 모르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똑똑하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고 한다.
자신이 아는 건 다 현명하지 못한 머리로 오해한 것이고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한다.
싫은 일은 모두 언니가 대신해줄 거고, 남편은 다른 곳에서 이야기 통하는 사람들과 미래를 이야기할 것이다.
억지로 덮어놨던 뚜껑이 무너지자 쌓인 의심과 꺾어진 자존감이 우르르 끓어올랐다.
남편이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실은 포드 영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언니의 말처럼 남편은 전과 달라 지지 않았다. 그것은 전에도,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그냥 루덴 후작의 딸이니까 잘해 주는 게 아닐까? 그냥 아이 엄마이니까 아내인 게 아닐까?
로이가르 대공비가 기어이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대공이 깜짝 놀라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가넷. 왜 울고 그래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소?”
그러자 로이가르 대공비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정말이잖아요. 나 같은 건 당신 하는 일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니오. 그럴 리가 있나.”
로이가르 대공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등을 쓸어안았다.
하녀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하녀들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오면서 방문을 닫았다.
“휴우.”
긴 한숨이 나왔다.
결국은 로이가르 대공이 질 것이다. 아내와 함께 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로이가르 대공에게는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함께 간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었다. 처음에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은 여정이 늦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로이가르 대공비에게는 인생 전부가 달린 일이었다. 그녀의 인생에는 오로지 남편밖에 없었으니까.
한쪽에는 사소한 문제이고, 다른 한쪽에는 인생이 달린 문제이니, 이기는 게 어느 쪽인지는 빤했다.
그러니 카멜리아 후작 부인으로서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뒷감당은 항상 내 몫이니.’
스카일라를 수도에 남기고 가야겠다.
머릿속으로 여장을 어떻게 꾸릴까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오는데, 측근 하녀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무슨 일로 비 전하의 처소 앞에서 이리 소란이냐?”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하녀를 꾸짖었다. 하녀가 창백한 얼굴로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안 카멜리아라는 자가 주인님에게 상속 소송을 걸었습니다.”
두통이 몰려왔다.
* * *
세드릭이 부재중이었던 짧은 시간에 또 변한 것이 있었다.
아기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출산준비가 이른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이 워낙 많으니까요.”
안스가르가 그렇게 말하며 아기방을 보여주었다.
아기 침대와 안락의자, 어른들이 사용할 테이블이 벽 쪽에 놓여 있었다. 기저귀와 싸개, 배냇저고리 같은 자잘한 물품들도 만드는 중이었다.
바닥에는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고, 벽에는 에브론 대공가의 문장이 수놓인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었다.
“황후 폐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세드 님이 어리실 때에 벽에 걸었던 물건입니다만…….”
당연히 세드릭으로서는 기억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황태후 폐하께서 궁에 세드 님의 방을 만들면서 걸었던 것인데, 철거한 뒤로 계속 황후궁에서 보관해온 모양입니다.”
“감사한 일이로군.”
세드릭은 벌게진 뺨을 쓰다듬었다. 산실도 설치하는 중이라는데, 자신은 이제 곧이라는 게 도통 실감나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지친 태도로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힘듭니까?”
“괜찮아요. 아, 그런데…….”
아르티제아는 조금 망설였다.
의사가 놀랄 만큼 유난히 활발한 아기가 오른쪽 배꼽 언저리에서 또 움직거렸다.
“……만져보실래요?”
세드릭의 얼굴이 더욱 상기되었다.
그가 아르티제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배에 손을 얹었다.
크고 따뜻한 손이 배꼽 언저리를 감쌌다. 아르티제아는 너무 긴장하지 않기 위해서 호흡을 조절했다.
마침 아기가 발길질을 했다. 아르티제아는 움찔했다.
“아.”
“아, 저도 느껴집니다. 지금 발로 찬 거죠?”
세드릭이 신기해하는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올려다보았다.
안스가르가 흐뭇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말씀을 많이 걸어주시면 좋습니다. 모친의 뱃속에서도 다 듣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한가한 시간은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세드릭의 부관이 긴장한 얼굴로 방문을 두드렸다.
“쉬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전하. 다급한 일은 아니지만, 빨리 알려드리는 쪽이 좋을 듯하여 방해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카멜리아 후작가에 대한 상속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루덴 후작이 선대 카멜리아 후작의 장녀를 살해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