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8
악녀는 두 번 산다 18화
“뭐? 자기가 뭔데 그딴 소리를 해?”
“로산 후작가의 주인은 아르티제아 아가씨이니 이 일을 주인에게고 하겠다고도요.”
“티아가 주인이라고? 넌 그 말을 듣고만 있었어?”
“상대는 에브론 대공 전하이신걸요. 저 따위가 감히 무슨 말씀을 올리겠습니까? 당장 그 자리에서 제 목을 베셔도 될 분인데요.”
“하.”
밀라이라는 목이 타는 것을 느끼고 손을 내밀었다. 빌이 재빨리 찬물을 따라 내밀었다.
밀라이라는 쭈욱 물컵을 비우고 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털썩 소파에 앉았다.
“이상하네. 고것이 어디에서 에브론 대공을 만났을까?”
촉이 왔다.
남녀 관계에 한해서 밀라이라의 촉은 들어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아르티제아 같은 별 볼 일 없는 애가 에브론 대공을 잡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 가서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촉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왠지 불쾌하고, 몹시도 기분이 나빴다.
못난 계집애였다. 밀라이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는지. 18살이나 되었는 데 여자다운 면모는 조금도 없고 애교도 없다.
그나마 자신이 낳은 어미라 끼고 사는 것이다. 어딜 시집을 보낸들 그게 예쁨이나 받고 살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에브론 대공이라니.
계집애들은 다 그렇다.
꽁꽁 막아 가둬놓고 키우더라도 빗물 새는 창틀처럼 무슨 틈이라도 만들어내서 남자를 꼬여냈다.
“다 저를 생각해서 그러는 줄도 모르지. 못된 년.”
그때였다. 하인 하나가 문을 급히 두드렸다.
빌이 밀라이라에게 작게 사죄의 말을 하고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총집사님, 에브론 대공 전하의 종자가 왔습니다.”
“종자가 왜? 무슨 일로?”
“그게, 엔다르 백작가에서 에브론 대공 전하가 아르티제아 아가씨의 마차를 타고 같이 어디를 가셨다고 합니다. 로산 후작가로 돌아올 테니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고요.”
“뭐?”
빌은 밀라이라가 표독한 얼굴로 변하는 것을 곁눈으로 살폈다.
그때 로렌스가 나타났다.
외출에서 막 귀가하는 길이었다. 밖에서 뭔가 기분 상하는 일이라도 있는지 얼굴이 찌푸려져 있었다.
“도련님,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빌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하인은 얼른 한쪽 무릎을 꿇었다.
로렌스는 총집사인 빌에게도 내킬 때에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내키는 날인 모양이었다.
“빌. 밖에 에브론 대공의 종자가 와 있다는데, 무슨 일이냐?”
“아, 그것이…….”
“로렌스, 우리 황자님, 어서 오렴.”
밀라이라가 얇은 가운 위에 제대로 된 겉옷을 걸치고 환한 웃음을 띠며 방 밖으로 나왔다.
로렌스는 신경질 나는 얼굴로 모친을 바라보았다.
“에브론 대공과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습니까?”
“아니. 내가 대공과 상관할 일이 어디 있겠니? 그런 전쟁터에서나 굴러다니는 무부와. 오후에 티아를 찾아왔었더란다.”
밀라이라는 투덜거렸다. 로렌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 화나는 일이라도 있었니?”
“대공에게 뭔가 무례한 짓을 하지는 않으셨겠지요?”
“난 만나보지도 못했는걸. 티아가 외출했다는 것을 알고 그쪽으로 갔다더라.”
“알았습니다. 혹시 오더라도 어머니는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왜 그러니?”
“에브론 대공은 청렴결벽한 사람이니까요. 모처럼 티아가 쓸모 있는 일을 했는데, 어머니 같은 사람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이니?”
밀라이라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로렌스가 냉랭하게 말했다.
“대공은 어머니를 경멸합니다. 모르셔서 묻습니까? 그리고 불행히도 저 역시 경멸하지요. 아바마마께서 제게 황태자의 자리를 맡기지 못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말입니다.”
그 언중에 숨어 있는 뜻은 명백했다. 밀라이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르티제아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폭군인 그녀도 아들에게는 하잘 것 없는 취급을 받는 모친이었다.
로산 후작가로 돌아와 도와달라는 이야기에 마커스는 몹시도 오래 망설였다.
심적으로는 아르티제아를 소후작으로 받아들이고 말았으나 로산 후작가로 돌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저는 조만간에 결혼을 하고, 어머니의 손에서 로산 후작가를 되찾을 거예요. 그때 한슨 씨가 필요해요.」
그때로부터 18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 로산 후작가의 고용인 중 관리직에 있는 사람은 모두 밀라이라의 사람으로 채워졌다.
로산 후작가의 영지는 크고 재산은 막대했다. 그들을 한꺼번에 쳐내기는 어려웠다.
「단 한 가지도 로산 후작가의 것을 빼돌리지 못하게 막고, 제대로 회수하고 싶어요. 한슨 씨라면 로산 후작가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고, 또 대부분의 나이 든 고참 고용인들이 한슨 씨를 잘 알고 있지 않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니 상황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슨 일가가 전부 와서 도와준다면 더욱 좋을 거예요.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와 저를 도와 주세요.」
「하지만 저희 일가가 그때의 독살죄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18년 전 일이에요. 당시의 독살은 이미 먼지 덮인 일이 되었어요. 폐하께서 개입하셔서 사태를 정리했지만, 진짜 범인을 판명하지는 않았어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한슨 일가에 누명을 씌우려 했지만, 증거도 없었을 뿐더러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요. 유야무야로 덮어버리는 쪽이 낫다고 여기셨던 거죠.」
「소후작님…….」
「그러니까 이 일 자체를 꺼내지 못하게 하실 거예요.」
후작가가 몰살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그 범인을 덮어주었다는 것은 황제에게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만일에 다시 한 번 당시의 사건이 불거지면, 이번에는 후계자인 제가 있으니 같이 끝까지 싸워 봐요. 그래도 걱정이 되신다면, 모든 일이 정리될 때까지 이름을 바꾸고 정체를 숨기셔도 돼요.」
「저는 60년이나 로산 후작 저택에서 살았고, 그중 45년을 미카엘 님의 바로 옆에서 봉사했습니다. 고용인들만이 아니라 귀족들 중에도 절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면 어떤가요? 어머니가 그 독살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것도, 눈 가리고 아웅한 일이었어요.」
아르티제아는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전 로산 후작이 될 거예요, 한슨 씨. 유일한 상속자로서, 로산 후작가에서 일어났던 일을 제 임의대로 처리할 수 있어요. 한슨 씨가 돌아올 마음만 있다면, 나머지 문제는 제가 해결할 겁니다.」
그러나 마커스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상처가 너무 깊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
마차로 돌아와 세드릭은 제일 처음 이렇게 말했다.
“영애에게 감탄했습니다.”
“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제일의 방법은 그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잖습니까? 영애는 아직 어린데도 그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 한슨 씨를 감동시키려고 한 게 아니에요. 적절한 핑계를 만들어 주려고 한 것이죠.”
“핑계 말입니까?”
“한슨 씨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제 겨우 14살인 손녀도 떠안고 있고요. 레비 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적당한 핑계 없이는, 제 손을 잡지 못할 테지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사과했노라고 말이다.
세드릭이 빙그레 웃었다. 아르티제아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왜 웃으시나요?”
“영애는 자신을 악인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아르티제아에게 그것은 아침 해가 뜨는 것만큼이나 진실이었다.
그렇지만 세드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명예로운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불명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는 자기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지요. 영애는 한슨에게 핑계를 만들어준 게 아니라 명예로운 순간을 기억하게 해준 겁니다. 그러니 그는 영애를 위해서 돌아올 겁니다.”
“저를, 위해서요?”
“그렇습니다. 그는 로산 후작가를 사랑하고, 영애는 그 마지막 후손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미카엘 님의 친자식이 아니에요.”
“총집사라면 아마도 영애의 생부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영애는 후작가의 적계 자손이 맞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선대 후작이 영애를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일이 없었어요.”
세드릭이 물었다.
“생부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네. 알아도 의미 없는 일이니까요. 생부가 누구이든 간에, 법적으로는 가주의 아내와 통정한 배덕자이고, 실질적으로는 황제의 애첩과 음행을 저지른 얼간이인 걸요.”
아르티제아는 입술을 깨물고 그렇게 말했다.
마차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면서 터덜거리는 진동이 몸에 전해졌다.
아르티제아는 한참이나 말없이 있었다.
세드릭도 아무 말 없었기 때문에 마차가 로산 후작가 앞에 도착할 때까지 마차 안에는 침묵만 가득했다.
이번에도 세드릭이 먼저 내려 아르티제아를 부축해 주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같이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가 아니었다면, 한슨 씨는 저를 믿어주지 않았을 거예요. 밀라이라의 딸이 음모를 꾸미러 왔다고 생각했겠죠.”
“천만의 말씀을. 오늘의 일이 영애와 로산 후작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 될지 충분히 짐작합니다. 그런 자리에 동석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한 일이 있다면, 또 불러주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로 부담 없이 이것저것 요청할 거예요. 제게는 지금 힘도, 재산도, 사람도 없으니까요.”
“영애에게는 이것이 있지 않습니까?”
세드릭이 가볍게 자신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톡톡 쳤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게 정말로 쓸 만한 것인지 아닌지는 이제부터 보여드려야겠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세드릭의 종자가 말을 끌고 나왔다.
황급히 종자를 따라 나온 것은 집사 빌이었다. 그는 로렌스의 명령을 받고 나온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공 전하.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빌을 바라보았다.
빌이 소맷자락을 쥐면서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이미 세드릭을 한 차례 기분 상하게 했기 때문에 그가 자기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렌스의 명이 엄하여 전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전하, 오시거든 꼭 저녁식탁에 초대하고 싶으시다는 로렌스 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세드릭은 종자가 건네주는 승마 장갑을 끼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빌을 내려다보았다.
몇 마디 더 꾸짖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지. 영애께서 초대한다면 다른 이야기이지만.”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미혼의 몸으로서, 늦은 시간에 친척도 아닌 남자분을 초대하는 건 좀 꺼려지네요.”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올가의 심장을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지요.”
세드릭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르티제아도 한쪽 무릎을 구부려 공손하게 그에게 절했다.
세드릭이 말에 올랐다. 아르티제아는 뒤늦게야 생각난 것이 있어서 그를 불러 세웠다.
“아참, 그러고 보니 뭐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왜 저에게 경어를 쓰시나요? 지난번에는 하대하셨잖아요.”
아르티제아가 세드릭을 올려다보았다.
세드릭은 그녀의 청록색 눈이 밝으면서도 깊은, 풍부한 빛깔이라고 생각했다.
“밀라이라의 딸을 존중할 필요는 없지만, 아내가 될 사람은 마땅히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드릭이 그렇게 말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아르티제아는 얼굴로 화기가 올라 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