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81
악녀는 두 번 산다. 180화
로렌스는 서재의 불도 켜지 않고 앉아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끌려와 자택에 감금된 지 3주째였다.
근위대 병사들이 안팎을 빈틈없이 지켰다. 무슨 명령을 받았는지, 로렌스가 말을 걸어도 석상처럼 대답이 없었다.
집 안에서는 행동이 자유로웠다.
식사는 전과 똑같이 호화롭게 나왔다. 어디로 가든 간섭받지 않았다. 침실에서는 혼자가 될 수도 있었다.
저택의 관리에는 빈틈이 없었고, 아침에는 시중드는 자가 옷을 갈아 입히러 왔다.
그러나 정원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되었다.
방문객은 아무도 없었고, 소식을 전해주는 자도 없었다.
집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집사만이 아니라 상급 고용인 대부분이 그랬다.
아마 조사를 받기 위해 끌려갔을 것이다. 로렌스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혐의가 없더라도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바깥과 소통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을 테니까.
로렌스는 본래부터 하녀나 하인과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렇지만 직접 말을 걸 시중인이나 집사가 사라지고 나자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병사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을 걸 사람이 없어지자, 하루 종일 입을 열 일이 없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후우.”
술을 한 잔 따라놓고 무료하게 혼자 카드를 뒤집다 말고 로렌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병사들 중에는 틀림없이 자신을 관찰해서 위에 보고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통하는 상급자를 불러달라는 말에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가얀이든 키쇼어이든, 근위 기사 누구 하나라도 만나봐야 무엇이라도 해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가능성이 원천 차단되어 있었다.
‘이대로 날 말려죽일 작정이신가, 아바마마는?’
그럴 턱이 없었다.
로렌스는 코웃음을 쳤다.
황제에게는 자신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배다른 두 누이 중 하나는 일찌감치 수도의 정계와 사교계에 두려움을 느끼고 먼 지방 도시로 달아났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나름대로 욕심을 부렸지만, 부황으로부터 총애를 되찾고 몇 가지 독점적 이권을 얻고 나자 거기에서 만족했다.
로이가르 대공은 어린 시절에는 공포로 지배당하고, 성장하고 나서는 정당한 권리를 빼앗겼다고 불만을 품었다. 이제 와서 황제와 화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세드릭을 끌어올릴 것인가?
‘…….’
그것은 가능성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남부 정벌군의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에, 황제가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넌 자질이 모자라. 세드릭은 물론이고, 로이가르보다도 못하다.」
그 말이 진심이었다면, 황제가 세드릭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권력은 칼끝에서 나온다. 세드릭은 자기 칼을 이미 쥐고 있다.
두통이 났다. 로렌스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어쨌든 바깥과 소통이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매일처럼 두통이 심했다. 이것이 밀라이라가 자주 앓던 편두통과 같은 것인지, 그냥 스트레스 때문인지 로렌스는 분별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하인 하나가 허락도 없이 조용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치즈 접시를 두고 나갔다.
로렌스는 접시를 끌어당겼다. 접시 밑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남부 정벌군이 에이멜 공격 예정. 총사령관 보이든 장군. 특사는 로이가르 대공.』
로렌스는 그 쪽지를 구겼다.
그렇다면 세드릭은 수도에 남는다는 뜻이다.
남부에서의 일이 어찌되었든 확실한 것 하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리라는 것이다.
군을 이끌고 오가는 데에만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타국과의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최소한 반년 이상, 길면 1년도 넘게 걸릴 수 있었다.
그동안 세드릭은 수도에서 충분히 세력을 부풀릴 수 있다.
‘아바마마께서 그것을 노리시는 거라면 로이가르 대공은 확실히 판단을 잘못한 거지.’
충성하는 자는 얻기 어려우나 이익을 구하는 자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누가 더 쉽게 상대방의 세력 범위를 빼앗아올 수 있을지는 생각할 것도 없이 명백하다.
그리고 세드릭은 이미 타협하기 시작했다.
로렌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쪽지를 촛불에 대어 태웠다.
두통이 있음에도, 판단은 빨랐고 생각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머리 안에 얼음이 들어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진짜로 위기에 몰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이가르 대공이 잘못을 저질렀든 아니든, 세드릭이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총애를 잃은 지금으로서는 이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법에 따르면 여전히 크라테스의 핏줄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것이다.
돌아설 수 없게 된 다음에야 로렌스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 * *
저녁식사를 끝내고, 아르티제아는 거실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 쪽에서 뭔가 사건이 생길 때까지 아르티제아 쪽에서 당분간 할 일은 없었다.
상황을 살피며 예상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만 확인할 작정이었다.
세드릭은 안스가르가 가져다준 숙제를 두고 앉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우선 유언장을 다시 써야 했다.
아르티제아에게 따로 친정이 없으니, 유모를 제외하고도 유사시 아기의 보호자와 후견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여럿 골라 뽑아두어야 했다.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만이 아니라 믿을 만한 수도의 대귀족에게도 부탁해야 했다.
수도에서 출산할 것이니,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수도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린 재상에게 부탁할 겁니다.”
“좋은 인선이에요.”
“마르타 백작 부부에게도.”
“나쁘지 않네요. 황후 폐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덜 부담스럽지요.”
“그다음은 아인 장군과 클랜시 경에게.”
“세드릭 님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괜찮아요.”
“같이 생각해줄 마음은 없는 겁니까?”
세드릭이 한탄하듯이 물었다.
자신이 고르려고 생각하면, 대부분 인선이 군부에 치우쳐 있었다.
이게 과연 아기를 위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상호 신뢰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없어요. 있더라도 남에게는 알려서는 안 될 친분뿐이라서요.”
아르티제아가 그렇게 말하니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호위 병력도 새로 구성해야 했다. 아기가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아르티제아의 호위에 더해서 떠넘길 수는 없었다.
머리와 손발이 여러 개여야 하나가 잘리더라도 계속 기능할 수 있었다.
영지에 남아 있는 가신들도 어린 새 주인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할 터이니, 교대로 수도에 올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다.
“유모로 헤일리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압니다만, 형식상으로라도 더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맡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형식상으로라도 다른 사람을 유모로 해놓으면 헤일리가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권을 쥐지 못할 테니까요.”
아르티제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마거릿을 불러들여 유모로 삼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헤일리에게 여러 일을 부탁하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후계자의 양육 담당이라는 것은 막강한 자리다. 자리와 실권을 이원화시켜 놓으면, 아르티제아 자신에게 만약의 일이라도 생겼을 경우에 분쟁이 일어날 것이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하죠. 헤일리 자신도 내켜 하지 않는 듯하고.”
“네. 안스가르에게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해달라고 말해두었어요. 제 시녀도 두어 명 더 늘릴 작정이에요.”
“생각해둔 사람이 있습니까?”
“벨몬드 가의 헤젤 영애가 똑똑하니 권해 볼까 해요. 미엘르 영애도 형식상으로라도 인연을 맺어두어도 괜찮을 거고요.”
“키쇼어 경을 생각하고 그러시는 거군요.”
“조금 복잡한 일이 될 거 같긴 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키쇼어 경은 놓치기 아까운 사람이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하녀가 문을 두드렸다.
“리시아 님이 오셨습니다, 비 전하.”
소파에 편안하게 반쯤 누워 있던 아르티제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무심코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리시아를 더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드릭은 처음에는 왜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시선을 돌릴 때에야 알아챘다.
“아.”
“들어오라고 해.”
아르티제아가 먼저 말했다.
곧 문이 열렸다.
리시아는 간편한 바지와 셔츠 위에 저녁용 숄을 두른 차림새였다. 얼굴에는 수심이 깃들어 있었다.
요사이 자주 그랬다.
한동안은 식욕조차도 별로 없는 듯이 보였다. 사람을 피해 혼자 말을 타러 나가거나 하는 일도 잦았다.
헤일리가 걱정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불성실하다고 화를 냈겠지만, 리시아는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르티제아도 염려했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리시아가 로렌스에게 마음을 기울일 뻔했다는 사실을 아르티제아는 알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자세히 이야기해 보지도 않았다. 행여나 기억을 건드릴까 봐 두려웠다.
로렌스가 미남이기 때문에 잠깐 시선이 끌린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어린 영애들 중에는 그런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를 사랑하려고 애썼던 옛 시간들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르티제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건드리지 않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냥 피하고 싶은 것인지 분별할 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리시아는 공손히 세드릭과 아르티제아에게 번갈아 인사했다.
“무슨 일이니?”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시아가 창백한 입술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아르티제아는 새삼스럽게 그 입매를 바라보았다.
늘 혈색 좋았던 입술인데 몇 주 만에 초췌해 보였다.
“청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비 전하.”
“뭔데?”
“서부로 돌아갈까 해요.”
아르티제아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리시아를 바라보았다.
“제게 서부 환곡 사업에 관한 일을 맡겨주셨잖아요. 제가 멋대로 돌아와 버린 거고…….”
“리시아…….”
“대공 전하께서도 돌아오셨으니 저는 가도 될 것 같아요. 이제 곧 가을걷이에 관한 계획을 시작해야 할 때이니까요. 맡은 일을 완수하고 싶어요.”
아르티제아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리시아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뒤가 켕기는 마음과, 이것이 로렌스 때문인가 하는 복잡한 심정이 뒤섞였다.
그때에 세드릭이 말했다.
“그렇게 하라고 해요.”
아르티제아는 깜짝 놀라 세드릭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