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89
악녀는 두 번 산다 188화
황제가 직접 말한 적은 없어도,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세드릭을 의중에 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유니스 백작 부인은 황제의 뜻에 자신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믿었다.
자연히 로이가르 대공 파벌의 핵심 인사인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염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심지어 만삭인 몸 아닌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쩔 것인가.
하지만 유니스 백작 부인이 대신 인사하기 전에, 아르티제아가 먼저 말했다.
“잠시 앉으시겠어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
“비 전하.”
유니스 백작 부인이 말리려는 듯이 아르티제아를 불렀다.
아르티제아는 후우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몸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올려다보기 힘드네요. 두 분다.”
아르티제아는 진심으로 말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느릿한 동작으로 자리에 앉았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시위하듯 따라온 귀부인 몇이 눈치를 약간 보더니 자리를 피했다. 자기들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아르티제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건강은 좀 어떠신가요? 회임하신 게 힘드시긴 하겠지만, 너무 두문불출하셔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했답니다.”
“제가 그리 건강한 몸이 아니다 보니 주위에서 걱정이 많아서요.”
“로이가르 대공비 전하께서 서운해하셨어요. 결혼 직후에는 신혼여행 때문에 교분을 쌓을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에야말로 숙모 노릇을 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셨었거든요.”
아르티제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로이가르 대공비라면 순수한 의도로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순수한 의도로 말했을 리 없었다.
“염려 마세요. 남편은 폐하의 바로 뒷자리에 서더라도, 숙부님이 계신 것을 잊을 사람이 아니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아르티제아는 말을 이었다.
“국가 중대사를 맡으셨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의외로군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께서 함께 가지 않으셨다니.”
“…….”
“부인은 현명하시고, 또 세상 경험도 많으시며, 자매간의 애정과 신뢰도 깊은데, 이처럼 중요한 일에 함께 가지 않으시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한두 달 걸리는 일도 아닌데, 아무리 자매의 일이라 한들 그렇게 쉽게 함께 갈 수 있겠어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안절부절못하고 끼어들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로이가르 대공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상속 소송 때문이었다.
소송에 대응하는 것 자체보다도 그런 추문을 달고 로이가르 대공비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정말로 이유를 몰라서 말한 것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후 하고 웃음과 한숨을 섞어 내쉬었다.
“하잘 것 없는 일로 비 전하를 모욕하려다가 도리어 제가 어리석은 소리를 하고 말았군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온화한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말했다.
“그래도 별걱정은 하지 않는답니다. 가넷 님께서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시고, 보좌할 사람도 여럿 있으니까요.”
솔직히 로이가르 대공비가 좋은 대공비가 되려고 애쓸수록 다루기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 자체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비는 본성이 선량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썩 좋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철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로이가르 대공비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의 존재를 인정할 줄 알았다. 편견도 없었다.
그러니 세상 경험을 쌓게 하고, 보는 시야를 넓혀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무는 아랫사람들이 하면 된다.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다. 시녀로 따라간 귀부인들도 모두 신중한 사람들이었다.
로이가르 대공비가 돌출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사교계 경험이 많고 사려 깊은 사람들로 주위를 둘렀다.
스카일라도 있다. 스카일라와 연로한 위브 자작 부인이 의논하면, 큰 실수를 저지를 만한 일은 없었다.
처음 스카일라가 로이가르 대공비의 시녀가 되겠다고 했을 때에는 무척 화를 냈었다.
로이가르 대공비는 제일 좋아하는 언니의 딸이자 똑똑한 조카를 시녀로 삼고 싶다고 전부터 졸랐었다. 신분을 생각해도, 관계를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계속 그것을 거절했다. 나이가 어리다, 공부할 것이 많다는 핑계를 계속 댔다.
자신이 로이가르 대공비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나, 그녀를 보살피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스카일라가 남의 시중을 들기를 원치 않았다.
대공비의 시녀라면, 시중꾼이라기보다는 보좌관이라고 해도 그랬다.
「이모님의 시녀가 되려고 해요. 어머니가 내켜 하시지 않는 건 알아요. 이모님이 특별히 정치적인 일에 개입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잘 알고요. 하지만 대공비의 위치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있잖아요. 비록 이모님 스스로는 보실 수 없다고 하더라도요.」
그건 옳은 말이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말로 설명해준다고 해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만은 하지 못할 것이었다.
스카일라 스스로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보니 다행이었다. 스카일라가 없었더라면 안심하고 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그 마음을 짚어낸 것처럼 말했다.
“스카일라 영애가 곁에 있으니 걱정 없으시겠죠. 영특한 따님이 있어서 기쁘시겠어요.”
“……그래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대답했다.
황후 탄신연을 준비하는 동안에 스카일라와 아르티제아 사이에 교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분도 약간 있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비록 아군은 아닐지언정 스카일라가 아르티제아와 교유함으로써 친분을 쌓을 수 있고, 배우는 것도 많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에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진짜 적은 로렌스이며, 아르티제아는 양측을 오가며 어부지리를 얻으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군은 아니지만 적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제 에브론 대공은 킹메이커가 아니라 로이가르 대공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만일에 로이가르 대공 부부가 남부에 가 있지 않았다면, 오늘 나란히 황제의 뒤에 서 있을 것이다.
세드릭이 조당에서 정무장관으로서 큰 역할을 맡고 있는 지금,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명백했다.
이 상황이 단순히 정계의 세력 균형을 맞추려는 황제의 뜻으로 만들어졌을 리 없다.
지금까지 모두가 알아온 세드릭이라면, 황제의 뒤에 서느니 그냥 제례에 참석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바뀐 것은 아르티제아와 결혼한 이후였다.
부부 사이에 오간 이야기와 세드릭의 심경 변화까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진짜 적이 아르티제아라는 것은 분명했다.
‘좋지 않은데.’
스카일라는 아르티제아에게 경도되어 있다.
가장 질시하기 쉬운 상대인 동성의 또래였다. 그런데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아르티제아를 높이 평가하는 것에 반발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부모가 한 사람을 그렇게 지속적으로 높이 평가하면, 비교되었다고 여기고 충분히 감정 상해할 수 있는 나이인데 말이다.
‘돌아오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이야기해 봐야겠구나.’
무엇보다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스카일라가 누구에게도 마음으로부터 굽히지 않기를 바랐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의식적으로 표정을 미소로 유지했다.
어쨌든 스카일라가 있어서 안심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르티제아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의 말을 꺼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스카일라 영애가 있으니 후작 부인께는 걱정이 없겠네요.”
“로이가르 대공비 전하와 후작 부인 사이에 우애가 얼마나 두터운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대답했다.
아르티제아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상황이 반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다가 혹 말싸움이라도 될까 봐 걱정되었다.
아르티제아는 유니스 백작 부인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요. 잘 알고 있죠. 그러니까 카멜리아 후작 부인께서 솥이 데워질 걱정을 하시지야 않겠지만요.”
“네?”
“본디 권력은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하니까요.”
유니스 백작 부인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이해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긴장시켰다.
최근 루덴 후작의 동향이 수상했다.
그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싸늘하게 대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중요한 의논 상대이기도 했다. 카멜리아 후작가는 루덴 후작이 휘하에 둔 가문 중 가장 작위가 높은 가문이었으며, 후작 부인은 로이가르 대공의 조언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최근에는 뭔가 달랐다. 루덴 후작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멀리했다. 이안 카멜리아를 암살하라는 말을 거역한 이후부터였다.
어쩔 수 없었다. 암살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히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처럼 죽었다 하면 바로 범인으로 지목될 위치에서라면 더욱 더 그랬다.
애당초 이안 카멜리아를 죽여 버리라는 게 루덴 후작의 상한 자존심 때문이니 더욱 그랬다.
‘나로서는 알아낼 수 없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루덴 후작가 쪽으로 별도의 정보망을 뻗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루덴 후작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자신의 동향을 캐는 것을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더욱 불안했다. 아르티제아가 상당한 수준의 정보망을 갖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엇을 알고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냥 일반론인가? 이간책이거나 떠보는 말에 불과한가?
분간할 수 없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에브론 대공가의 사정을 살필 작정이었다. 이안 카멜리아의 일에도 어디까지 개입해 있는가 알고자 했다.
그러나 오히려 제 마음만 어지럽혀진 채 어두운 표정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귀부인들이 인사를 올리러 다가섰다. 분분히 축복의 말이 던져졌다.
“비 전하께서는 몸이 편치 않으시니 그렇게 소란을 떨지 마세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사람들을 정리했다.
그녀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작년 초에만 해도 아르티제아는 밀라이라의 천덕꾸러기였다.
자신은 손찌검까지 하려 했다.
그때 진짜로 원하던 만큼 뺨을 때리고 고함을 질러대지 못해서 천만다행이었다.
황제의 마차가 도착했다.
세드릭은 그쪽으로 다가섰다. 호위 책임자인 키쇼어가 그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세드릭은 휴우 하고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마음을 다스렸다. 슬쩍 아르티제아 쪽을 돌아보자 귀부인들이 쓰고 있는 양산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근위 기사 하나가 말에서 내려 마차 문을 열었다. 세드릭은 황제를 부축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직 그만큼 늙진 않았다.”
황제가 핀잔을 주었다. 세드릭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이 자리에 있는 속인 중에 제가 제일 신분이 높습니다.”
“예법이라 이거지.”
“영접이 오기 전에 내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황제가 중얼거리고는 세드릭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
법의를 입은 주교들이 성물과 촛대를 앞세우고 행렬을 만들어 마차 쪽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