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96
악녀는 두 번 산다 195화
하필 치유력이 수확제의 제단 위에서 그 많은 사람의 눈에 노출되었느냐 하는 생각은 이제 와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생겨버린 일이다.
그게 없었으면, 아르티제아는 죽었을 것이다. 십중팔구 레티샤도 세상 빛을 보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위험부담이 생겼다.
주목을 모은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위험을 안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신의 은총이다.
모르텐 남작이었던 리시아조차도 성녀가 되고 나서 수많은 견제와 위험을 겪어야 했다. 아르티제아가 신탁을 위조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준하는 것을 에브론 대공녀가 받았다고 알려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정치적인 중요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안게 되었다.
태중에 있을 때에도 황제의 입으로 황족이라는 발언을 분명하게 하게 만들었다.
주범이 급사하여 흐지부지 되었으나, 위험에 처하게 한 자들이 대역죄로 규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것이 레티샤가 황족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세드릭에게 황위 계승권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는 기회도 되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수확제에서 결실로서 축복받았다는 것이 더해지면 너무 위험했다.
신의 은총을 받은 황족을 차기 황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틀림 없이 나올 것이었다.
사원이 거기에 부채질을 할 것이다. 아킴 주교가 있을 때만큼 적극적이고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세드릭이 콜튼 수사를 바라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수사님. 잠시 아내와 둘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 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두 분 말씀 나누십시오.”
콜튼 수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르티제아가 성녀라는 사실을 지금에야 알았다면, 세드릭이 놀라고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가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세드릭은 그다음에야 긴 침음을 흘리며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르티제아는 걱정을 억지로 내리 눌렀다. 세드릭이 화를 내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세드릭이 긴 한숨까지 한 번 내쉬었다.
“당신이 위험해집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네, 저도 알아요. 제가 얼마나 잘 아는지, 세드릭 님도 아시잖아요.”
아르티제아는 과거의 리시아보다도 위험했다.
과거에 리시아가 처음으로 성녀로 현현했을 때에, 그녀는 누구의 적도 아니었다. 리시아를 이용하려는 자들은 모두가 그녀를 탐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에게는 이미 적이 많았다. 에브론 대공비이니, 그녀를 차지할 수단도 따로 없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성력은 너무 미약하여 그 이름에 합당한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콜튼 수사처럼 성인은 신탁을 받은 자이지, 치유력이나 이적을 발휘하는 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는 사원 안에서도 드물 것이 틀림없었다.
죽여 없애고자 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그래도 그게 제일 나은 수단이었다.
“신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저는 짐작도 가지 않고, 신탁 역시 의미 없고, 제가 성녀로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르티제아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 핑계를 댈 수는 있어요.”
“…….”
“레티샤가 아니라 제가 당사자가 되면, 신의 은총을 받은 건 제가 돼요. 주목을 받는 것도 그렇고요.”
“레티샤 대신 당신이 암살 대상이 되는 것뿐입니다.”
“네. 그걸 바라는 거예요. 레티샤는 갓난아이에요. 갑자기 죽더라도 타살인지 아닌지 분간조차 하기 쉽지 않아요.”
아르티제아가 아래턱에 힘을 주었다.
갓난아이를 암살로부터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질리도록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황제의 제일 공신이었을 때에도, 황궁 심처에서 황자를 지켜내지 못했었다.
아르티제아는 어금니 안쪽에서 피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가신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말해서 에브론 사람들이 음모에 취약한 건 사실이지요.”
“…….”
“제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긴다고 해도 부족해요. 충성심과 인품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급박한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어떨지, 판단했을 때에 그에 맞는 권한을 갖고 있을지 어떨지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아르티제아 자신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판단에 따라 가진 자원을 모두 활용할 수도 있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본래 이런 일에는 창이 방패보다 강한 법이다.
공격자는 빈틈 하나만 찾으면 되지만, 방어자에게는 빈틈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방어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창날이 방패 틈을 찌르고 들어왔을 때에 그것을 붙잡아 공격자 자체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아르티제아 자신이 목표물이 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안정적이었다.
“안 됩니다. 나는 당신을 미끼로 쓰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위험을 안고 있어요. 폐하께서 레티샤를 후사로 원하신다고 하더라도요.”
권력자의 후계자란 단순히 물적, 인적 자산을 물려받을 핏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 철학을 가르치고 자신이 평생 동안 이룩해온 일을 유지, 발전시키도록 해야 의미가 있었다.
그러려면, 어릴 때 그들 부부에게서 아기를 빼앗아야 한다.
또, 친부모가 살아 있어 자신의 후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황제가 레티샤를 후계자로 삼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들 부부를 죽이는 것은 필수적인 단계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르티제아가 안고 있는 위험부담은 성녀임을 공표하나 하지 않으나 상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녀임을 공표하면 적어도 레티샤는 황제와 로이가르 대공의 관심사에서 벗어난다.
반대로 말하자면, 수확제에서 은총을 받았다고 알려지면 레티샤가 추가적인 위험 부담을 안게 될 뿐이다.
세드릭이 깍지를 끼고 그늘진 눈으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그 위험성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반대입니다.”
“세드릭 님.”
“당신 마음은 이해합니다. 만일에 당신이 아니라 내가 미끼로서 움직일 수 있다면, 나도 기꺼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지요.”
세드릭이 깍지 낀 손을 들어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전에도 내 희망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요, 티아.”
세드릭이 말했다.
“나는 레티샤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드릭 님…….”
“부모를 어려서 잃고, 황제 폐하의 손에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알고, 복수와 안존 사이에서 고민하고, 너무 이른 나이부터 여러 목숨을 어깨에 얹고, 에브론을 지키고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떠안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르티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책임감은 어른이 되어가는 나이부터 져도 충분합니다. 어른이 되고 나면, 죽을 때까지 그 짐을 져야 할 테니까요.”
“네…….”
“그러려면 무조건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내 말뜻, 이해합니까?”
“…….”
아르티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속 깊은 곳이 아렸다. 그 동통이 배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것인지, 가슴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세드릭이 다시 말했다.
“분명히 말하는 건데, 나는 당신이 스스로를 희생시켜서 내게 명분을 만들어주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평생 원망할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이번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딱히,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 아니었어요.”
“압니다. 그리고 당신이 레티샤에게 할 수 있는 어머니 노릇이 밖에서 지켜주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짐작이 갑니다.”
아르티제아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세드릭이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머뭇머뭇 일어섰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마음을 흔드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옳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흔들렸을 때에는 어찌 하는 게 옳을까.
세드릭이 그녀의 허리를 당겨 안아 제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무엇이라도 하나 해줘야 한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목숨을 걸고 지켜주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살아서 한 번 안아주는 쪽이 행복할 겁니다. 나라면 그랬을 겁니다.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아르티제아는 숨을 들이켰다.
출산 즈음부터 계속해서 안정되지 못하고 있었던 감정이 요동쳤다.
세드릭이 안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을 어깨에 묻게 하고 머리를 토닥였다.
소리 없이 어깨가 젖었다. 그것을 느끼면서 세드릭은 나직하게 말했다.
“몇 년은 괜찮을 겁니다. 갓난아이를 빼앗는 것보다 부모 슬하에서 자라게 하는 게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폐하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적어도 홍역을 치를 때까지는 괜찮겠죠.”
“네…….”
“대역죄 같은 것으로 누명을 씌울 리도 없고요. 대역죄인의 딸을 황실의 후사로 삼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폐하가 정말로 레티샤를 후계자로 삼고자 하신다면, 원한을 사는 것도 원치 않겠죠.”
그것도 세드릭이 바라는 일 중 하나였다.
이기적인 희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에브론에 새로운 원한이 생기더라도 레티샤만은 그것을 이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르티제아가 비로소 개미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세드릭은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더 쓰다듬었다.
아르티제아가 애써 고개를 들었다. 눈자위가 빨개져 있었다. 세드릭은 그 눈가를 엄지로 쓸었다.
그리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어차피 그 안에 결론을 낼 작정 아니었습니까?”
“으음…….”
“나는 당신이 2년 안에 대강 구도를 마무리 짓고 달아나려고 2년의 계약결혼을 제시한 건 줄 알았는데요?”
“……설마요. 그냥…… 세드릭 님이 이해하실 수 있을 만한 시간을 대려던 것뿐이었어요.”
2년이라면 몇 번 실패하고 늦어진다고 해도 밀라이라까지는 밀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아르티제아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이혼을 한다고 해서 꼭 주종 관계까지 해소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어설픈 생각이었습니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진짜로 이익 관계로만 맺어진 관계였다면 모를까, 당신과 나 사이에서 그게 될 리 없지요.”
“그랬, 었네요…….”
아르티제아도 이제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순순히 눈을 감았다.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