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97
악녀는 두 번 산다 196화
세드릭은 콜튼 수사가 떠나기 전에 그를 따로 불러 만났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사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수사님의 인품과 진실함은 믿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사님 개인의 사람됨을 믿는 것이고요.”
“제게 죄송하다고 말씀하실 일은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을 겪으셨지요. 오히려 제가 송구할 따름입니다.”
콜튼 수사는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세드릭은 씁쓸한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콜튼 수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는 아킴 주교가 아르티제아를 역모에 엮으려고 했던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몹시 실망스럽고 분노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원이라는 조직 전체에 실망감을 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르티제아는 불신자에 가까웠다. 사원과 깊은 관계를 쌓았지만, 그 관계는 기부와 후원이라는 이름의 뇌물로 쌓인 것이다.
사원 밖의 정치에도, 사원 안의 정치에도 관여되어 있으니, 상대 파벌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녀에게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세드릭은 사원이 성녀를 어떻게 대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신을 섬긴다는 자들이, 신탁과 성녀를 어떻게 취급했는지에 대해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안전에 관한 문제가 없었더라도, 설령 아르티제아가 가진 성력이 하늘을 뒤덮었더라도, 세드릭은 그녀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부탁했을 것이었다.
“이번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이든 저는 상관없습니다. 신의 뜻에도 그다지 관심 없고요. 아내에게 무슨 역할이 부여되었는지도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대공 전하, 신탁은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신탁을 들은 제 아내입니다.”
세드릭이 부드럽지만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사원에서 일절 제 아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공 전하.”
“수사님께서 믿으시는 것처럼 신탁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며, 신께서 제 아내를 보호하신다면, 제 아내가 스스로의 뜻으로 그것을 따를 겁니다.”
세드릭의 말을 콜튼 수사는 부정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사원에서는 성녀의 현현을 이용할 생각도, 신탁에서 말하는 운명을 좋을 대로 해석하여 이 땅에 끌어다 실현시킬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수사님께서 제 뜻을 잘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콜튼 수사는 고개를 숙이고 그러겠노라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아르티제아가 스스로 따를 것이라고 세드릭은 말하기는 했지만, 본심으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신은 성녀를 보호하지 않는다.
신탁이 성녀의 운명이라면, 그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아마도 신의 입장에서 인간 하나 따위의 삶은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받았다는 신탁은 어떤 것입니까?”
세드릭이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소파에 앉아 밀린 편지를 읽다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침묵했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됩니다.”
“아뇨.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워서 그래요.”
아르티제아는 다시 말없이 제 안에서 생각을 그러모았다.
“굳이 말하자면, ‘되돌려라’. 그런 것이었어요.”
“무얼, 말입니까?”
세드릭이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또다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되돌려라, 그런 의미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랬다면 아르티제아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이라는 것도 순순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감은 시계를 다시 되돌리라는 뜻도 아니었다.
“콜튼 수사님의 말씀이 옳다면, 때가 되면 알게 되겠죠.”
세드릭이 생각에 잠긴 채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리시아의 축복이 돌아온 뒤에 내려진 거라면, 그 애도 여전히 성력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한 시대에 두 명의 성인이 나타나기도 합니까?”
“기록된 전례는 없어요.”
아르티제아는 확답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신성이 과거에서 미래로만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지요.”
시간을 돌렸어도 미래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했다. ‘돌아온 자’의 기억이 그것을 증명했다.
어쩌면 신은 그냥 신탁을 평범하게 두 번 내렸을 수도 있었다.
“리시아에게…….”
세드릭이 말하려다가 말았다.
지금 시점에서 신에 가장 가까운 것은 리시아일 것이다. 신탁과 성녀에 관해서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녀일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이 삼킨 말이 무엇인지 짐작했지만, 되묻지 않았다.
리시아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아직은……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요.”
아르티제아가 중얼거렸다.
궁금하기는 했다. 신탁의 의미도, 신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도.
하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아르티제아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면한 현실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의문을 풀기 위해 리시아에게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언은 정말로 필요해진 순간에 구하면 된다. 그때까지는 리시아가 여러 가지 일을 모두 잊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랐다.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별로 없었다.
세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성력이 없다고 했는데, 키쇼어 영애 일은 어떻게 된 겁니까?”
아르티제아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세드릭이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있긴 있어요. 단지 너무 힘이 미약하고, 방향성이 없어서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할 뿐이지요.”
“꼭 치유력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어쩌면, 아직 당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보지 못한 종류의 일일 수도 있겠죠.”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염려하지 마세요. 사원이 어떤 곳인지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신탁을 위해서 저 자신을 희생할 생각도 없으니까요.”
희생한다면 세드릭을 위해서이든가, 리시아를 위해서이다. 혹은 레티샤를 위해서라도 좋다.
신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세드릭이 그녀의 이마에 한 번 입을 맞추었다.
아르티제아는 편지더미에 다시 손을 뻗었다.
“무슨 중요한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겉으로는 모두 축하뿐이에요.”
행간에 좀 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읽고도 대부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레티샤의 탄생에 정치적인 의미가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회로 다른 모략까지 꾸미고 싶지는 않았다.
“급한 게 없다면, 잠깐 레티샤를 보러 갈까요?”
세드릭이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힘들면 안고 가고.”
“걷는 게 좋아요.”
아르티제아는 그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아기 방 쪽으로 걸었다.
“손님들에게 레티샤를 보여주는 건 명명식 때 이후로 미루기로 해요.”
“그럽시다.”
“에브론에서 오는 사람들은 명명식 전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요?”
“그제 항구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늦춰도 될 텐데요.”
“여러 가지로 말이 나오고 있으니까 빨리 끝내고 싶습니다.”
명명식이란, 아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법적 관계를 확립하는 예식이었다.
그리고 이때에 친척이나 다른 어른들이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약속을 해주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그 덕분에 여러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세드릭은 예외적인 일을 만들지 않을 작정이었다.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들이 모여 충성을 맹세하거나 하는 예식도 보여주지 않을 셈이었다.
가능한 한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게, 남들 모두가 하는 절차 그대로 할 작정이었다.
“대면은 집 안에서 우리들끼리 해도 되니까요.”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있겠네요.”
아르티제아도 그다지 화려하고 특별한 예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눈에 띄지 않는 게 제일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옛 상처를 안은 채 에브론 대공가가 안정되기를 소망해온 가신들로서는 아쉬운 일일 것이었다.
세드릭이 미소를 지었다.
“다들 레티샤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겁니다.”
“……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게 아르티제아에게 얼마나 신기하고 특별하며 안심되는 일인지, 아마 세드릭은 모를 것이었다.
정치적인 위험성과 별개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게 기뻐하며 레티샤의 탄생을 축복하고 있다.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달랐다.
마치 제가 축복을 받기라도 한 양 아르티제아는 기쁨과 감사를 느꼈다.
아기 방문을 살짝 열자 젖어미가 일어섰다. 레티샤는 요람에 누워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요람 안을 들여다보았다. 레티샤가 까만 눈을 땡글땡글 떴다. 코가 쫑긋댔다.
입이 우물거리듯이 달싹거리는 것을 보고 아르티제아는 중얼거렸다.
“배가 고픈 걸까?”
“조금 전에 드셨습니다. 그냥 그러시는 거예요.”
젖어미가 공손히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젖은 결국 거의 돌지 않았다.
모두가 무리해서 노력하지 말라고 권했다.
귀부인이 아기에게 직접 젖을 먹여 키우는 일 자체가 흔치 않았으므로 아르티제아도 굳이 애쓰려 하지 않았다.
건강하지 못한 모친보다는 건강한 젖어미가 나을 것이었다.
“힘들 텐데, 정말 수고하네.”
아르티제아의 말에 젖어미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순한 아기님이랍니다. 제 자식만도 넷이고, 적지 않은 아기들을 보살펴왔지만, 이렇게 순한 분은 처음이에요.”
“명명식이 끝나면 유모를 결정할 거야. 자네의 부담도 좀 줄어들겠지.”
“예.”
“헤일리가 저에게 하소연을 하러 왔던데 말입니다.”
세드릭이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으음, 하고 신음했다. 원치 않는 일을 맡길 생각은 없지만, 달리 적임자를 생각해내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레티샤가 작은 입을 벌려 하품을 했다.
아르티제아는 요람 안으로 손을 넣어 토실토실 살이 오르는 아기의 뺨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뭐가 불편했는지 레티샤가 얼굴을 찡그렸다. 곧 울음을 터뜨릴 기미라, 아르티제아는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드릭이 레티샤를 안아 올렸다. 그러자 아기가 끙끙거리고 투정부리는 소리를 냈다.
아비가 똑 닮은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임신 중이었을 때에는 마음이 너무 복잡했고, 막 낳았을 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야 비로소 레티샤가 제 아기이고, 세드릭의 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에브론의 기대와 축복 속에서 어디 하나도 잘못된 곳 없이 태어났다는 것도.
그 사실이 마음을 물처럼 적시며 스며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