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99
악녀는 두 번 산다 198화
스카일라는 식사를 일찍 마쳤다.
카멜리아 소후작이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스카일라는 시녀들 중에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는 아니었다.
가넷의 조카로서 총애받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고 시녀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시녀장인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편애한다는 말을 원치 않아 일부러 엄격하게 대한 탓도 있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위브 자작 부인을 비롯하여 다른 시녀들에게도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스카일라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도 굳이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리아간 공작의 비서가 물었을 뿐이었다.
“어딜 가십니까?”
“아직 정리하지 않은 짐이 마음에 걸려서요.”
짐 정리 자체는 하녀에게 맡긴다 해도, 윗사람이 아주 손을 놔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잡무는 막내가 하게 마련이라 비서는 의아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델러웨이 백작 영애도 고개만 끄덕였다.
스카일라는 만찬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일단 가넷의 투왈렛 룸으로 돌아갔다가, 수수한 숄을 덮고 다시 나왔다.
가넷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녹회색의 수수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치마도 부풀리지 않았다.
덕분에 러플이 달린 상의를 가리는 것으로 신분을 함께 가릴 수 있었다.
스카일라는 장식 없는 보닛을 가지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복도를 지키고 있던 호위병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어디 가십니까, 카멜리아 후작 영애?”
“잠깐 바람을 쐬려고.”
스카일라는 그렇게만 대답하고 복도 밖으로 나갔다.
가넷의 처소 근처를 벗어나자 스카일라는 보닛을 썼다.
지금 리아간 공작가에는 로이가르 대공의 일행과 카드리올 왕자의 일행이 뒤섞여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 소식을 알린다고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들도 있어서 혼잡했다.
그래서 낯선 여자가 지나간다고 해도 딱히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카일라의 수수한 보닛과 드레스를 흘끗 보고는, 누군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의 수행원이려니,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스카일라는 저택 꼭대기로 향했다. 그리고 나무 문 앞에서 주위를 몇 번 살펴본 후 열쇠를 꽂았다.
기름칠을 잘 해두었는지, 열쇠는 소리도 없이 돌아갔다.
스카일라는 안으로 들어갔다. 자질구레한 물건을 두는 창고였다. 고용인들이 거기에서 쉬기도 하는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나이 든 하녀 하나가 앉아 있다가 스카일라를 보고 깜짝 놀라 일어섰다.
“연극할 필요 없어.”
스카일라는 하녀에게 열쇠를 내밀었다.
창고이니 열쇠는 밖에서만 잠기게 되어 있을 것이다. 괴롭힘을 당해 감금된 게 아니라면, 동료가 잠갔을 것이다.
스카일라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애당초 하녀는 그다지 연기력이 빼어나지도 못했다.
하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스카일라의 손에서 열쇠를 받아들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멜리아 후작 영애.”
“신분을 밝혀.”
“이언츠의 펠로나라고 합니다.”
스카일라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펠로나 상회는 스카일라도 알 만큼 유명한 직물상이었다.
“당신이 펠로나 상회의 주인이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펠로나는 신분패를 보여주었다.
스카일라가 이언츠의 신분패를 이 자리에서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나중에 따로 알아봐야 할 일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적어도 상대가 신분 확인에 협력할 것이고, 적대적인 의사가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언츠 인이라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스카일라는 내심으로 한숨을 쉬었다.
쪽지를 받고 혼자 몰래 나오면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가넷의 조카이자 카멜리아 후작 영애인 자신이 살해라도 당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외교 문제로 비화할 것이다.
그것을 노리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가능성이 낮다 해도 스카일라 자신의 목숨은 하나뿐이다.
다행히 그게 목적은 아닌 듯했다.
“절 불러낸 이유가 뭐죠?”
“로이가르 대공비 전하께 청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나이 어린 막내 시녀에 불과해요. 저를 통해 비 전하께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회주님은 잘못 생각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영애께서는 로이가르 대공비 전하의 조카이시죠. 카멜리아 후작 영애이시고요.”
펠로나가 상냥하게 말했다. 그 태도는 비굴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이언츠 왕국에서 접근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었다.
로이가르 대공비에 대한 영향력을 생각해보아도 그렇고, 로이가르 대공의 참모격인 위치를 생각해도 그랬다.
카멜리아 후작가의 문제로 갑작스럽게 후작 부인이 수행원에서 빠지면서 처음의 계획이 무너졌다.
스카일라에게 접촉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이었다. 충분한 정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우선 비위를 거스르지 않아야겠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스카일라는 그것을 알아챘다.
펠로나 상회주라면 이언츠 왕국에서는 귀족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라 해도 존중했을 것이었다.
그런 자가 이렇게 조심하면서 접근한 것이 예삿일일 리 없었다.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세요. 비 전하께서 들으실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자리를 주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펠로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이언츠 왕국은 에이멜 왕비 전하의 암살에 개입한 바가 없습니다.”
“이언츠 왕국의 대외적인 입장이 그러하시다는 것이지요.”
스카일라가 쌀쌀하게 말했다.
“암살범은 제국민이고, 신분 또한 제국 귀족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자가 작위를 사들이는 데에 쓴 돈은 이언츠에서 나왔습니다. 힘없는 하급 귀족이 그런 큰일을 스스로 했다기보다는 돈을 댄 배후의 뜻이었다고 해야 옳겠지요.”
“그것이 제국의 입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언츠 왕국에서 무엇 때문에 제국을 끌어들여 왕비를 암살하겠습니까? 그럴 이유도 없지만, 만일에, 이유가 있어서 그래야 했다면, 제국을 끌어들이지 않고 남부인들끼리 처리하는 쪽이 훨씬 유리합니다.”
펠로나는 조곤조곤 말했다.
렉센 부인의 신원에 대해서 첫 번째로 밝혀진 것은 이언츠 왕국 출신의 상인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언츠 왕국에서는 그때부터 총력을 기울여 렉센 부인의 경력을 추적했다.
렉센 부인이 크라테스 제국에서 작위를 사들이고 상단을 만드는 데에 쓴 돈은 확실히 이언츠 왕국을 경유해 간 게 맞았다.
그러나 출처는 다시 크라테스 제국으로 돌아간다. 몇 개나 되는 경로를 거쳤지만, 이언츠 왕국의 상인 협회가 추적한 바로는 그랬다.
그 이상은 추적할 수 없었다. 지금 제국 내부를 뒤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언츠 왕국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에이멜 왕비가 암살당한 것은 크라테스 제국 내부의 권력 다툼 때문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카드리올 왕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진짜로 리아간 공작가이거나, 리아간 공작가의 밀염 사업을 망가뜨림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렉센 부인은 너무 대놓고 리아간 공작 부인의 소개로 에이멜 왕비를 만났다.
후자라면, 곤란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밀염 사업 같은 거대한 이권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로이가르 대공뿐이었다.
로이가르 대공 본인이 아니라면, 그의 측근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쪽이라 해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냥도 이언츠 왕국에서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심지어 황제로부터 이 문제 처리를 일임 받았다.
이언츠 왕국에서 보기에는 범인에게 수사를 맡긴 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레고르 황제에게 탄원할 수도 없었다.
그거야말로 이리를 쫓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었다.
결국 이언츠 왕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었다.
“저희는 비 전하께서 저희의 탄원을 대공 전하께 전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 대공 전하를 직접 찾아뵙지 않으시나요? 그것이 정말로 이언츠 왕국의 뜻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펠로나 상회주의 신분으로도 대공 전하께 직접 연통을 넣을 수 있으실 텐데요.”
그러자 펠로나가 미소를 지었다. 스카일라가 떠보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카드리올 왕자가 있는데, 저희가 나선다 한들 얼마나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언츠 상인 협회도 카드리올 왕자의 행동은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왕비의 죽음을 기회로 삼아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공모한 것인지 말이다.
우선 대공비부터 만나보자 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적어도 대공비는 확실히 공모자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스카일라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언츠 왕국이 밀실 거래를 하고자 하는 뜻은 이해했다.
에이멜 왕비가 누구에게 죽었는지는 이제 조금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와 누가 손을 잡고, 누구를 뜯어먹을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이모부님은 어느 편에 서든 뜯어 먹는 쪽이겠지만…….’
구멍은, 복잡한 거래에서 생기는 법이다.
스카일라는 어지러운 마음이 되었다.
아르티제아에게 승부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넷이 무작정 미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손으로 구멍을 내려고 생각하자 정이 모래알처럼 위 안에서 구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결국 스카일라는 말했다.
“비 전하께 말씀 올려 보겠어요.”
“감사합니다.”
“연락은 어떻게 해야 하죠?”
“아침에 베갯잇 사이에 빈 종이를 넣어두시면 저희가 찾아뵙겠습니다.”
“알았어요.”
스카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열쇠를 돌려주고 살짝 창고를 나왔다.
그리고 애초에 말했던 목적대로 짐을 정리할 겸 바람을 쐴 겸, 로이가르 대공비가 타고 온 마차로 향했다.
* * *
만찬은 시종 가벼운 분위기로 이어졌다.
리아간 공작 부부 입장에서는 위태로운 바늘 끝에 서 있는 것 같겠지만 말이다.
카드리올은 흥미로운 기분으로 로이가르 대공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전의 생에서 로이가르 대공을 몰락시키는 데에 일조했었다. 그러나 정작 대공과 말을 섞어본 적은 없었다.
자신을 파멸시켰던 게 누구인지도 모르고, 친밀한 웃음과 술잔을 건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글쎄.’
카드리올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티제아와 적대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목이 잘려도 잊지 못할 만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다시 말해서 제국 중앙에 아르티제아를 두는 건 오래도록 위험하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세드릭은 북부와 서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남부까지 손을 뻗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로이가르 대공이 황제가 되면 하이에나떼처럼 대귀족과 제국 동부의 거상들이 남부로 침투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더 만만했다.
결국 문제는 아르티제아다.
아르티제아의 말이 맞다. 카드리올은 그녀를 믿고 있지 않았다.
잠깐 일시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묵시적인 협력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주군에게 손해가 된다고 판단한 순간 카드리올을 찢어 버리려고 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에브론놈과 동맹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로이가르 대공비가 리아간 공작 부인에게 말하는 내용이 들려왔다.
“에브론 대공비는 이제 곧 출산일이 될 거예요. 그래도 친척이니까 마음 써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게 진짜였습니까?”
카드리올이 저도 모르게 끼어들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