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0
악녀는 두 번 산다 199화
말을 뱉자마자 카드리올은 후회했다.
공식적으로 그는 제국 수도에 방문한 적이 없었다. 세드릭도, 아르티제아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이채를 띠며 그를 바라보았다.
카드리올은 안색을 굳이 수습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제 와 표정을 바꾸어 보아야 본심이 드러났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놀람을 더 드러냈다. 대화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양 말이다.
“후사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들은 적 없지만, 카드리올은 태연하게 그렇게 말했다.
사원에서 아르티제아를 감금했다가 역모죄를 뒤집어쓸 뻔했다는 소식은 제국 전체를 휩쓴 일이었다. 타국에도 자연히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회임했었다는 말을 카드리올은 진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태를 키우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으리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유산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야 사원을 더 강한 올가미에 묶을 수 있고, 거짓말도 탄로 나지 않을 테니까.
가넷이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잘못된 소식을 들으셨군요. 다행히 아기도, 대공비도 모두 무사하답니다.”
“아무래도 소식 전해 듣기가 어려운 사정이었어서요.”
“천행이었군요.”
리아간 공작 부부도 말했다.
그들은 역모 사건이 있었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었다. 그 뒤로 줄곧 에이멜에 포위당한 채라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세드릭이 제 안전을 돌보지 않는 성미라 늘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지 않습니까? 에브론의 후사가 생겼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처자식이 생겨서 그런지 이제 안정을 찾을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분위기는 곧 화기애애해졌다. 혼사와 아기 이야기는 언제나 모든 사람이 웃는 낯으로 나눌 수 있는 화제였다.
이권이 얽히지 않은 남의 집안 이야기라면 더욱 더 말이다. 이 자리에서 그 문제로 머릿속이 복잡할 만한 것은 로이가르 대공뿐이었다. .
겉으로는 그랬다. 실상 속이 시끄러운 것은 카드리올 쪽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세드릭은 성녀의 약혼자였다.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카드리올은 의심한 바 없었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 자기 모든 것을 던지는 일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다.
‘하긴, 눈깔 뒤집어진 걸 봤을 때에 알았어야 했는데.’
아르티제아가 너무 태연해서 깜박 속았다.
세상이 이미 바뀌었다.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첫 번째와 같은 삶을 산다는 법은 없다.
이미 결혼도 했고. 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지조도 없는 놈이라는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날 뭐가 어찌되든 일단 신병부터 확보하고 봤어야 했는데.
아니면 그 자리에서 죽였거나.
정말로 후사가 생겼다면, 정세가 정리된 후에 유혹하러 간다는 선택지가 사라졌다.
세드릭은 황제가 되기 위해 성녀가 부여하는 정통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혼은 이미 결혼으로 성립했다.
세드릭이 계위한다면, 아르티제아의 아이가 차기 황제가 될 것이다. 정치적인 위험을 무릅쓴다고 해도 무리인 건 마찬가지였다.
가족의 정에 굶주린 아르티제아가 제 자식을 포기할 것 같지도 않았다.
‘양심도 없는 자식. 그 몸 약한 여자를. 나는 그래도 3년은 기다릴 생각이었다고.’
술이 아주 물처럼 넘어갔다.
* * *
보통 만찬 후에는 술자리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대로 파했다. 카드리올도, 로이가르 대공도 각자 생각이 복잡했던 탓이었다.
로이가르 대공비의 팔짱을 끼고 나온 로이가르 대공은 주위에 남은 게 자신의 수하뿐이라는 확신이 들자 말했다.
“카드리올 왕자가 북부나 중부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 알아봐.”
“북부, 말씀입니까?”
“해로가 연결되어 있잖나. 가려고 하면 못 갈 건 아니지.”
발달된 남부와 동부를 두고 굳이 북부까지 갈 이유가 없을 뿐이다.
하지만 카드리올은 틀림없이 세드릭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연통하겠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빨리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서둘러 조사시켜.”
비서가 다급한 걸음으로 물러갔다.
가넷은 불안한 태도로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 있어요?”
“별것 아니오. 만일에 카드리올 왕자가 제국 안에 아는 사람이 여럿 있다면, 협상을 다르게 할 수도 있으니까.”
카드리올이 세드릭과 관계가 있다면, 리아간 공작가와의 관계도 다르게 규정할 수 있었다.
황후는 리아간 공작을 증오하며, 아르티제아는 황후의 시녀이다.
‘에브론 대공비에게는 정치적인 감각이 있지.’
아르티제아가 황후궁의 문을 열었던 당시에는, 모두가 그녀를 밀라이라의 불쌍하고 못난 딸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일에 리아간 공작가까지 연관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이 일에 아르티제아가 관여하고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가넷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로이가르 대공은 눈치 채지 못하고 그녀를 투왈렛 룸까지 에스코트했다.
“푹 쉬어요. 내일까지는 아무도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알았어요.”
“모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모습으로 나타나서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줘야지.”
가넷은 고개만 끄덕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고 돌아섰다.
거리를 두고 따르던 수행원들이 우르르 로이가르 대공의 뒤에 바짝 붙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다른 수행원을 불러 빠르게 말했다.
“북부의 정보망은 아직 살아 있나?”
“아킴 주교의 일이 있었던 이래 연락은 일단 끊었습니다.”
“다시 이을 수 있다는 말이로군. 본성에서 별다른 일 없었는지 알아 봐.”
“전시 체제에 들어간 이후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없습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알아볼까요? 전반적으로 훑어보면 됩니까?”
“그래. 그리고…… 도적질을 하려던 에이멜 상인들이 본성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로이가르 대공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때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남부 상인은 본래부터 반은 도적 같은 것이다. 군사력이 있고 정비가 잘 된 도시에서는 교역을 하고, 망망대해에서 뒷일 걱정 하지 않고 삼킬 수 있는 배를 만나면 해적으로 돌변한다.
그런 자가 에브론 본성에 나타났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직후에 카람의 습격이 있었다. 전쟁이다 뭐다 해서 그 일은 묻히다시피 했다.
하지만 분명히.
‘조르딘 백작가까지 처벌을 받았어.’
카람이 습격해온 위험한 상황에서 그 딸이 본성의 정보를 에이멜 상인에게 흘렸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에브론처럼 군기가 엄한 곳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때에만 해도 세드릭을 적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정보를 가져갔든 자신에게는 쓸모없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작의 말녀가 알고 있는 정보라고 해봐야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카드리올과 연관되어 있다면?
지나친 비약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카드리올이 북부 일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 대(對) 카람 전쟁은 처음에 말이 나왔던 것에 비해서 너무 수월하게 끝났지.’
지금도 북녘에서 카람과 대치중이기는 했다. 군사 보고는 지금도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조작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북부에서 에브론 대공은 마치 왕과 같은 지위를 갖고 있다.
북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황제는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순간까지 로이가르 대공은 북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외에도, 특이한 사항이 있으면 모조리 가져와. 한적한 지역이니 별다른 이야기가 많진 않겠지.”
“북부까지 사람이 다녀오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겁니다.”
“알고 있네. 이곳에서 협상이 완료되기 전에 정보 수집을 마치라는 건 아닐세.”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어쨌든 에브론 대공가를 대상으로 쓸 무기를 확보해둘 필요가 있었다.
스카일라가 돌아온 것은 가넷이 목욕을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난 뒤의 일이었다.
“만찬 중에 안 보이던데 어디 가 있었니?”
“잠깐 짐 정리 할 게 생각나서요.”
“내일은 아무 공식 일정도 없으니까 그냥 미뤄놔도 괜찮았는데.”
“저녁밥 따로 잘 먹었어요. 걱정 마세요.”
“카드리올 왕자에게 널 소개시켜 줄까 했는데, 아쉽게 됐지 뭐니. 아니다. 오늘은 아무 생각 안 하고 나갔으니까, 그것보다는 차라리 무도회 때에 제대로 꾸미고 만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스카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 왕자한테 관심 없어요.”
“아주 매력 있는 남자던데, 아깝잖니.”
“수도를 떠나고 싶지 않은걸요. 불장난 같은 연애에는 관심 없고요.”
그보다는 스카일라는 남자 전반에 대해서 관심 없었다. 결혼은 카멜리아 후작가를 안정시키기에 적당한 상대와 할 것이라고 마음먹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것을 가넷에게 납득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네 개인의 행복도 중요한 거라는 말이나 들을 것이 분명했다.
“그보다요, 이모님.”
가넷이 고개를 갸웃했다. 스카일라가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언츠 왕국 사람이 이모님을 뵙고 싶다고 해요.”
“이언츠 사람이?”
가넷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스카일라의 말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만나고 싶다면, 접견 신청을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침실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지만, 스카일라는 몸을 낮추어 가넷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죽여 조용하게 말했다.
“펠로나 상회의 회주예요. 펠로나 상회는 이모님도 알고 계시죠?”
가넷이 고개를 끄덕였다. 펠로나 상회의 물건은 그녀도 자주 쓰는 것이었다.
“상인 협회의 대표로 왔다고 해요.”
“그런 사람이 왜 나를 보자고 해?”
가넷도 이쯤 오자 그 만나보고 싶다는 말 앞에 ‘은밀히’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이멜 왕비 암살범이 제국 작위를 사들이는 데 쓴 돈이 이언츠 왕국에서 나왔잖아요.”
“응.”
“그것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 같아요. 아마 이모님에게 탄원을 하려는 거겠죠.”
가넷은 망설였다.
죄를 경감하게 도와달라는 탄원은 종종 받는 것이었다. 가넷은 일정 부분 그것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있기도 했다.
신분 높은 귀부인으로서, 아랫사람들의 어려운 일을 두루 보살펴주는 것은 당연한 책무였으니까.
하지만 이 일은 국제 관계가 얽힌 것이다. 먼저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게 아닐까?
혼자 타국인을 만나보는 게 두렵다는 마음도 있었다.
이럴 때에 언니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줄 텐데.
스카일라가 말했다.
“먼저 만나보시고 나서 결정하셔도 되지 않겠어요?”
“그런가?”
“그럼요. 이모님은 머지않아 황후가 되실 분인 걸요. 앞으로 타국에서 이런 청원도 많이 들어올 텐데요. 혹시라도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싶으면, 그때 이모부님과 의논하면 되잖아요.”
스카일라의 말은 그럴 듯했다.
아무튼 만나기만 하는 것이라면 해가 될 일은 없을 듯했다.
가넷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