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1
악녀는 두 번 산다 200화
레티샤 모린 에브론의 명명식은 집에서 조촐하게 이루어졌다.
명명식은 아기가 신의 가호를 받을 인간으로서 이름을 올리는 의식이었다.
그렇기에 갓 태어난 아기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죽어간다면, 부모는 당장 아무 이름이라도 지어 안고 사원으로 달려갔다.
귀족에게는 신앙과 별개로도 의미가 있는 예식이었다.
명명식을 치른 아기는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상속권도 발생한다. 비로소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니 후사가 될 적장자의 명명식은 언제나 중요한 행사였다.
대귀족이라면 대사원에서도 가장 큰 예배당을 빌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저택에서의 피로연은 따로 열린다.
하지만 세드릭과 아르티제아는 그러지 않았다.
둘은 아기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많은 사람의 눈에 노출시킬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행사가 조촐하다고 해서 참석자의 면면까지 소소하지는 않았다.
세드릭이 아기의 후견인을 부탁한 린 재상을 비롯하여 정부와 군부의 몇몇 중요 인사들은 당연히 참석해야 했다.
가족으로는 출산에 맞추어 출발했던 에브론 대공령의 가신단이 당도해 있었다.
아무도 명령한 바가 없었으나 기사들은 판금 갑옷을 반짝거리도록 닦아 입고 창검을 들고 도열했다.
레티샤의 탄생 당시부터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몇 주나 계속되었다. 이대로 나가서 성벽을 뚫으라고 해도 가능할 것처럼 사기가 올라 있었다.
세드릭은 난처하여 아르티제아에게 말한 바 있었다.
“괜히 황궁을 자극하거나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어차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기사들은 괜찮아요. 에브론이니까.”
다들 그러려니 할 것이다. 유난 떨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아기 방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가신과 기사들은 공연히 그 앞에 서성거리기 일쑤였다.
백일이 되기 전에는 나올 일 없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레티샤의 보부로 정식으로 임명된 마커스가 매번 단호하게 호통을 쳤다.
군홧발 소리가 바닥을 울려 소중한 아기님의 잠을 깨운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기사들은 발뒤꿈치를 들었다. 며칠 후에는 안스가르가 그것을 불쌍하게 여겨 복도에 두꺼운 융단을 깔았다.
사원 측에서는 니코스 주교를 비롯하여 여러 주교들이 성물을 들고 방문했다. 주교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주교의 방문을 미리 정중히 거절해 두었기에 그 정도에서 그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황제가 참석했다.
이것만으로도 이 명명식의 위상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국의 태양께서 누옥에 친림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세드릭과 아르티제아는 황제의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황가의 혈통이 몇 되지 않아 걱정인 와중에 이렇게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으니 짐이 어찌 축하하러 오지 않을 수 있겠느냐?”
“황공합니다. 폐하께서 친림하실 줄 알았다면, 좀 더 제대로 된 장소를 마련했을 텐데요.”
“너희들 집이 누옥이라면, 이 제국에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황궁뿐이지.”
황제가 농담처럼 말했다.
“사원에서는 별말 없더냐?”
“폐하의 은덕 덕분에 수확제의 제단에 신의 은총이 내려진 것뿐입니다. 덕분에 저와 레티샤가 목숨을 구했으니, 성은이 망극할 따름입니다. 사원이 무슨 관여를 하겠습니까?”
아르티제아는 거의 바닥에 이마를 댈 기세로 고개를 깊이 조아리며 말했다.
황제는 아르티제아의 정수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세드릭을 돌아보고 물었다.
“너도 그리 생각하느냐?”
“아내의 뜻이 제 뜻입니다.”
아르티제아의 말이 진심일 리 없다는 것을 황제도 알고, 아르티제아 자신도 알고, 세드릭도 알았다.
하지만 황제가 두려우니 그런 것으로 해두겠다는 것이다.
황제는 그것이 기꺼웠다.
“너희가 선하게 살고자 하니 신께서도 축복하신 것이겠지. 좋은 일이니, 짐이 이름을 하나 내리고자 하느니라.”
세드릭이 무심결에 주먹을 쥐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 안에 쥐어진 것이 아르티제아의 손이라 애써 힘을 뺐다.
아르티제아의 손가락이 그의 손바닥을 가볍게 건드렸다. 세드릭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황제가 참석을 통보했을 때에 예상하던 일 중에 하나였다.
“헬게라고 하자. 신성한 축복을 받았으니, 그 의미를 남겨야지.”
“좋은 이름입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니코스 주교가 희색만면하여 끼어들었다.
레티샤 문제에 대해서, 그저 제례 중에 이적이 나타나 대공비와 공녀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으로 주교 회의는 합의를 끝냈다.
사실 그 이상의 것을 알고 싶어도, 그들로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공녀가 받은 축복에 걸맞은 높은 지위를 얻고 대우받음으로써 신성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다.
세드릭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감당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황제가 이름을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세 번째 이름을 안 되었다.
이름을 세 개 가지는 것은 황족의 일이다. 황족의 직계는 크라테스 가문의 일원이되 감히 제국의 이름을 제 이름에 붙일 수 없으므로, 마지막 이름이 성씨 대신 쓰였다.
황자 황녀가 있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경우에 세 번째 이름을 내려 영광을 더해주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레고르 황제에게는 지금 황자도, 황녀도 없다. 레티샤 하나만 이름을 세 개 갖는 것은 상징성을 띠게 되고 만다.
황제가 싱긋 웃었다.
“자녀를 통해 그 부모가 영예를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드릭이 얼굴을 굳히기 전에 아르티제아가 그의 손을 다시 잡아당겼다.
그리고 세드릭 대신 대답했다.
“황공합니다.”
“그럼 그리 하자꾸나.”
니코스 주교가 손수 금이 섞인 잉크로 명명식의 제단에 올릴 문서를 고쳐 썼다.
문서를 다시 제단 위에 올리고 나자 검푸른색 예복을 입은 마커스가 레티샤를 안고 나왔다.
흰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가 무어 대단한 모습일 리도 없건만, 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몇 번이나 위에서 주의를 주었건만 소용이 없었다.
“응애!”
놀란 레티샤가 울음을 터뜨렸다. 기사들이 함성을 뚝 그쳤다.
제일 먼저 함성을 지른 기사가 양 옆에서 응징을 당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참석자들이 소리 죽여 웃었다.
마커스가 레티샤를 보듬어 안고 제단 앞으로 향했다. 세드릭과 아르티제아도 그 곁으로 갔다.
제단에 올린 문서에 축복받은 술을 붓고 태우는 것으로 명명식은 간단히 끝났다.
그다음에는 귀족원에 보관된 에브론 대공가의 계보에 레티샤의 이름을 기록하고, 또 에브론 대공가에서 보관하는 문서에도 새로운 기록을 더함으로써 짧은 절차가 완전히 끝났다.
세드릭은 그다음에야 서둘러 레티샤를 받아 안았다.
불편한지 레티샤가 팔을 버둥거렸다. 마커스가 도로 그에게서 아기를 데려가 안았다.
한참이나 안아주어서야 겨우 레티샤가 울음을 멈추고 눈물에 젖은 눈동자를 굴렸다.
니코스 주교가 레티샤의 얼굴에서 무슨 성스러운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듯 신중한 얼굴로 들여다보았다.
레티샤가 투정부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황제가 웃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어디 종손녀를 한 번 안아보자.”
“아, 그것은 너무, 황공합니다.”
아르티제아가 당황하며 끼어들었다. 마커스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염려 마라. 짐이 아기를 떨어뜨리기라도 할까 봐 그러느냐? 너나 네 남편보다는 능숙할 게다.”
황제가 하겠다는데 막을 도리는 없었다.
황제는 제 말대로 능숙하게 아기를 받아 안았다. 그는 아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직접 기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제 자식들도, 손자들도 모두 안아주곤 했었다.
“어디 보자. 세드릭을 아주 빼다 박았구나.”
“예.”
세드릭이 불편한 태도로 대답했다.
“저런.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들이 아주 안달이 났구나.”
황제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레티샤를 번쩍 올려 안았다.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는 명백했다.
* * *
명명식이 끝나고 아기 방에 처음으로 초대된 손님은 헤젤과 미엘르였다.
아르티제아는 진즉부터 그 두 사람을 시녀로 맞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헤젤 같은 경우에는 기민한 행동력과 탐구심, 관찰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사교계의 소문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벨몬드 가의 딸이라는 특수성도 갖고 있었다.
수도에서 가장 큰 언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엄밀하게는 귀족이 아닌 가문일도 사교계의 일원이 될 수 있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런 변화는 최근의 것이다.
헤젤 자신도 쓸모 있는 인재였지만, 그 이상으로 아르티제아는 레티샤가 새로운 세상을 어릴 때부터 이해하기를 바라서 헤젤을 측근에 두기로 한 것이었다.
미엘르는 헤젤과 반대로 안정을 위해 받아들여졌다.
미엘르가 시녀로서 제대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다만 이종사촌 자매를 함께 들임으로써 헤젤이 느낄 신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미엘르가 평범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키쇼어 부부의 바람을 이루어 주기 위해 한 일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다른 세력에 회유되어 아기를 해칠 리 없다는 신뢰도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용당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배신할 뜻 없이 저도 모르게 이용당하는 것까지 생각해서 레티샤 님의 주위를 채울 수는 없지. 그건 사실 아무리 충성심 깊은 기사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헤일리는 두 사람을 안내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명명식 때의 이야기는 들었어요. 공녀님이 그렇게 대공 전하를 닮으셨다면서요?”
헤젤이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헤일리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사실 갓난아이 얼굴은 구별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진짜 똑같으니 알겠더라고요.”
“대공 전하께서는 무척 남자답게 생기셨는데. 그래도 잘생기셨으니 공녀님도 미인이 되시겠죠? 기대돼요.”
“헤젤.”
미엘르가 부끄러운 듯 헤젤의 팔을 가볍게 치며 말렸다.
헤일리는 그 모습을 시큰둥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헤젤에게 상당히 기대를 갖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헤젤의 미래를 모르는 헤일리 입장에서는, 참 밝고 사교적이고 대화를 사랑하는 영애로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여러 의미에서.
「입 단속하는 법과 의심하고 역정보를 흘리는 방법을 익힐 때까지는 제가 더 많이 신경 쓸 수밖에 없겠죠.」
일이 가중된다는 헤일리의 한탄을 잠자코 듣고 있던 프레일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솔직히 좀.」
「솔직히 좀?」
「질투하시는 거 아닙니까? 헤젤 영애에게.」
「미쳤어요?」
헤일리는 즉답했다. 프레일은 어깨만 으쓱했다. “아니면 말고.”라는 말이 얼굴에 쓰여 있었다.
헤일리는 너무 빨리 대답했다고 생각했지만, 뒤늦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