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4
악녀는 두 번 산다 203화
북부에 갔던 상단이 돌아왔다.
“조르딘 백작조차 만나지 못하고 왔더란 말인가?”
루덴 후작은 날카롭게 되물었다. 상단주 네길이 고개를 숙였다.
“교착 상태이긴 하지만, 카람과 싸움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며 에브론 본성에서 일절 외인을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이가 없군. 15년도 넘게 거래한 자네가 외인이라니.”
“그나마도 오랫동안 거래한 사이이기에 저희가 성안 마을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여태까지 그런 적 없었잖나?”
“새로운 조르딘 백작은 아주 엄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네길이 말했다.
“아론 경과 달리 본토인을 경계한다는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루덴 후작은 잠시 눈을 감았다.
네길은 그냥 상인이 아니다. 과거에는 중앙에서 재무부 관료로 일했고, 은퇴 후에는 상단을 차려 성공했다.
그는 양쪽 모두에서 능력이 있었으며, 특히 불공정한 일을 공정한 것처럼 꾸미고 축재하는 것에 도가 터 있었다.
루덴 후작은 그를 포섭했다.
둘은 공모하여 북부의 가죽과 모피 도매를 일원화시켰다.
본토에서는 루덴 후작이 다른 가죽상을 압박하여 북부와 거래를 트지 못하게 만들었다. 북부에서는 네길이 아론이 상재가 없는 것을 이용하여 가격을 후려쳤다.
상재가 있는 자가 있었어도 쉽사리 북부에서 네길 외의 다른 가죽상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가죽상이 직접 북부로 찾아오는 일은 없고, 이쪽에서 먼저 다른 상단을 찾아보자니 본토로 손을 뻗는 듯한 형태가 될까 봐 염려했던 것이다.
루덴 후작 입장에서는 꼭 돈을 노리고 한 일은 아니었다.
에브론의 거래 창구가 되면서 정보를 획득하고, 조금이라도 경제적 영향력을 얻으려 한 것이었다.
후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오히려 본토의 가죽상을 장 악하고 금전적 이익을 크게 얻었다.
“여러 의미가 있는 말이로군. 본토인을 경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라…….”
그것은 세드릭의 태도 변화와 관련 있는 것일 것이다.
“헌데, 그건 그렇다 치고, 올해 가죽 판매 수익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닐 게 아닌가? 어느 상단인가?”
틀림없이 배후에 다른 상단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루덴 후작은 물었다.
네길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공비가 전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쪽에 가서 협상하라고 하더군요.”
“…….”
루덴 후작은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불쾌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긴, 그래. 대공 부부가 둘 다 수도에 있는데, 굳이 북부에서 대리인이 상거래를 주관할 리가 없지.”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관행대로 해 와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내가 생각이 모자랐지. 대공비가 어린 계집아이라고는 해도 예사 인물은 아닌데. 대공도 요즘 전과 달리 수도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명명식 이후로 레티샤의 존재는 더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북부에서 뭔가 세드릭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알아오기를 바랐는데, 그른 모양이었다.
“공연히 멀리까지 다녀오느라고 여비만 썼겠군.”
“완전히 수확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네길이 조용히 말하고 작은 상자 하나를 루덴 후작의 앞에 내놓았다.
“이게 뭔가?”
“북부에서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과 달리 허가된 지역이 너무 적어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15년 넘게 북부를 오가면서 쌓아온 인맥이 있었다. 네길이 말했다.
“사제 하나가 급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제에게 걸맞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네길이 상자를 가리켜 보였다. 그 물건이 그것이라는 뜻이었다.
“통째로 은으로 만들어진 인장입 니다. 복사가 훔쳐서 가지고 있다가 제게 팔았습니다.”
루덴 후작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장미 문양의 인장이 있었다.
루덴 후작은 장갑 낀 손으로 그것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순서대로 장식을 눌러 비틀었다.
달칵.
문양이 바뀌면서 손잡이 쪽에서 독침이 튀어나왔다.
루덴 후작은 이런 물건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찔릴 일은 없었다.
그는 인장을 내려놓았다. 20초 정도가 지나자 독침이 다시 들어갔다.
“제법 잘 만들어진 물건이군.”
“침에 발라진 독에 대해서도 조사했습니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네.”
네길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루덴 후작이 눈살을 찌푸리고 인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파이프를 들어 다시 길게 한 모금을 빨아 들였다.
“당분간 이 일은 함구하게.”
“알겠습니다, 후작님.”
“가죽 거래 문제는 알아서 하고. 내가 자네 사업을 방해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예. 감사합니다.”
네길이 고개를 숙였다.
루덴 후작은 침묵한 채로 파이프의 담배가 전부 타들어갈 때까지 뻑뻑 피웠다.
그는 이 인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암살도구는 옛날부터 있었다. 하지만 이 인장 자체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설계한 것이다.
카멜리아 후작가를 갈아치울 때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루덴 후작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에브론 대공비를 계속 신경 쓰고 있었지. 북부에 따로 사람을 심고, 실패하면 자폭하게끔 미리 책략을 심어둔 건가? 아니면, 에브론 대공비에게 이 인장을 선물한 건가?’
어느 쪽이든 루덴 후작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북부에 손을 쓰려 했다면, 자신에게 먼저 허락을 구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때 먼저 자리를 뜬 네길 대신 아름답게 치장한 여자가 들어왔다.
루덴 후작은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후작님, 또 이렇게 담배를 피우시고. 건강에 좋지 않으세요.”
여자가 루덴 후작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후작의 손에서 파이프를 살짝 받아내듯이 하며 빼앗았다.
어차피 거의 다 태운 상태였기에 후작은 여자가 파이프를 가져가게끔 놔두었다.
“주무시고 가실 거죠?”
여자가 아양을 부리며 후작의 허벅지에 뺨을 비볐다.
후작은 마지막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이대로 가시면 섭섭해서 어떻게 해요?”
“그래. 알았다.”
루덴 후작이 대답했다.
이미 밤늦은 시간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였으니, 회포를 풀고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느 틈에 슬그머니 일어난 여자가 루덴 후작의 크라바트를 느슨하게 풀었다. 루덴 후작은 손을 뻗어 여자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네길의 집이 불탄 것은 그날 밤의 일이었다.
* * *
“하하!”
보고를 듣고 브레넌 백작은 시원스럽게 웃어젖혔다.
검은 베일을 쓴 여자가 그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아프진 않은가?”
“아픕니다.”
베일 안의 얼굴은 절반 정도 녹아 있었다. 여자는 민소매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붕대를 감고도 팔을 소매에 꿸 수 없었던 탓이다.
안가는 전소해 버렸다.
술에 취해 깊이 잠들어 있던 루덴 후작은 제때 일어나지 못했다.
루덴 후작의 경호원들은 후작을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경호원의 등에 업혀 나왔을 때에 후작은 이미 기식이 엄엄했다.
누구도 여자를 의심하지 않았다. 루덴 후작이 고함을 질러도 깨어나지 못할 만큼 취해 있다가 질식한 것에도, 불이 안가 깊숙한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에도.
아름다운 얼굴과 진주 같은 피부가 모조리 지독한 화상에 불탔다. 여자는 알몸으로 그 집에서 혼자 뛰쳐나왔다.
누구도 그 아름다운 여자가 스스로 그렇게 했을 리가 없었다고 믿었다.
‘미모가 수단이라면, 그것을 버리는 것도 충분히 수단이 될 수 있지.’
그래서 브레넌 백작은 굳이 여자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여자는 네길의 정부였다.
루덴 후작이 여자를 마음에 들어 했기에 네길은 그녀에게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놓아준 것이 아니었다. 루덴 후작을 위해 뇌물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시킨 것이다.
“결과는 만족스럽나?”
“그건 이제부터 백작님께서 제게 지불을 제대로 하시느냐에 달려 있는 일이지요.”
브레넌의 질문에 여자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브레넌은 봉투 하나를 여자에게 주었다. 그 봉투 안에는 각종 소규모 가게의 차용증 뭉치와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 열쇠는 수도 중심가에 있는 어느 작은 하숙집의 열쇠였다. 가져다 놓은 것은 금조각이었다.
대가를 그렇게 받기를 원한 것은 여자였다.
작은 가게들은 빚쟁이가 바뀐 것을 알아도 상대를 추적할 능력이 없었다.
이런 조그만 채권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그녀가 적은 액수의 빚을 여럿 모아 큰 돈을 만들더라도 알아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금조각도 마찬가지였다. 부서진 장식품의 모서리나 장식품은 금괴나 보석과 달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기회가 있기를 빌며 마음속으로 계획을 다듬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약속한 금액이 아니거나 제가 일주일이 지나도 약속한 사람과 만나지 못한다면, 고발자가 자백서를 들고 루덴 후작가로 달려갈 겁니다.”
“알고 있네. 자네가 이중으로 돈을 챙기려 들지만 않는다면, 내가 굳이 소란을 만들 필요도 없지.”
브레넌 백작이 말했다.
여자가 봉투 안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부시 절을 하고 나갔다.
휘장 뒤에 숨어 있던 비서가 나왔다.
“추적할까요?”
“됐어. 저 여자는 행방을 감출 거야. 제대로 숨는지, 며칠 후에 한 번 찾아보는 것으로 하지.”
브레넌 백작은 권력자였으나 여자였으므로, 여자의 목적이 돈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루덴 후작은?”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쯧.”
브레넌 백작은 혀를 찼다.
그러다가 비서가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 이해가 안 되나?”
“예. 지금 상황이 좋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 않습니까? 에브론 대공녀가 황제 폐하께 세 번째 이름을 받았고……. 로이가르 대공 전하의 위치가 위험한데, 이럴 때에 내분이 일어나면…….”
비서가 자신 없는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루덴 후작을 제거할 방법은 없어.”
루덴 후작을 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로이가르 대공이 권좌에 오르고 나면 그때에는 기회가 없을 것이었다.
“제거해둘 수 있을 때에 제거해둔다, 그 말씀입니까?”
“그래.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미 로이가르 대공 전하의 제위 계승은 어려워.”
비서가 긴장한 얼굴을 했다.
브레넌 백작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창밖에 시선을 돌렸다.
“이럴 땐 폐하의 충신이 되는 게 답이지.”
신이 은총을 내리고 황제가 세 번째 이름을 가진 황족이 있다. 레티샤 공녀는 황제와 사원의 뜻을 같이 얻었으며, 백성들도 맹목적으로 그녀를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 뜻은 레티샤에게 있지, 세드릭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파고 들 틈은 얼마든지 있다.
어린 황제의 섭정역을 꼭 부모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진외종조부가 해도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정도가 로이가르 대공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의 한계라면 더욱 좋다.
뒷받침할 인척이 없다면 더욱 좋고.
브레넌 백작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