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5
악녀는 두 번 산다. 204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루덴 후작가에 당도하여 마차에서 내렸다.
꼬박 이틀이 지났다. 루덴 후작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은밀히 청한 사제가 병자를 위한 기도 대신 마지막 성사를 베풀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대로 죽을 것이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곧바로 후작의 장남을 만나러 갔다.
“왔구나. 앉으렴.”
루덴 소후작이 파리한 얼굴로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맞이했다.
“아버지께서는 어떠신가요?”
“좋지 않아. 내일까지 버티실 수 있을지 어떨지.”
“그렇군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며칠을 더 살든, 덜 살든, 이미 루덴 후작이 죽으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아마 몇 명 안 될 것이었다.
‘비 전하께서 안 계셔서 다행이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가넷은 그 끔찍한 모습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루덴 소후작이 심약한 얼굴로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바라보았다.
마흔다섯의 나이까지 그 루덴 후작의 밑에서 평생을 소후작으로만 살아온 남자다.
그는 아마도 후작이 된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혼란스러우리라.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것을 알기에 굳이 그가 묻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말해주었다.
“소문은 막을 수 있는 한 막아볼 거예요.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어요. 그 화재는 워낙 컸던 데다가 목격자도 있어서요.”
“그렇, 구나. 그래도, 장례식 때까지만이라도 좀, 부탁한다. 어머니께서 아시면…….”
루덴 소후작이 더듬거리고 말했다.
정말 끔찍한 추문이었다.
차라리 그곳이 루덴 후작 소유의 집이고, 같이 자고 있던 여자가 루덴 후작의 정부였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집은 상인의 집이고, 여자는 상인의 정부였다.
루덴 후작쯤 되는 대귀족이 상인의 정부와 밀통을 한 셈이다. 그것도 주위의 눈을 속이고 남몰래 들어가서.
그 끝에 잠들었다가 불에 타죽다니. 심지어 여자는 알몸인 채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보다 추잡한 소문이 어디 있겠는가.
루덴 후작 같은 귀족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잔인무도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더럽고 추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추함은 공포가 아니라 경멸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할 작정이었다. 루덴 후작의 추문이 퍼지면 카멜리아 후작가에도 좋을 게 없으니까.
“마음 단단히 잡으세요, 오라버니. 공격이 있을 거예요.”
“공격?”
루덴 소후작이 흐릿한 눈으로 물었다.
“네. 사업체나 가신들이나……. 모두 아버지께서 장악하고 계셨으니까요.”
루덴 후작을 죽이는 것은 일차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미워서 죽인 것도 아닌데, 죽음 그 자체가 무슨 목적이 될 수 있겠는가.
이 틈을 타서 루덴 후작가의 세력을 집어삼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로 동요가 있었어요. 아버지께서 이런 일을 당하셨으니 분명히 마음이 바뀐 자들도 있을 테고, 이 틈을 타서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들도 있을 거예요.”
“……너도 그러니?”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말에 루덴 소후작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지 않니? 아버지는 네게 혹독하게 대하셨고, 분명히 유서에도 아무것도 남겨주시지 않았을 거야.”
루덴 소후작이 손을 떨면서 물었다.
“메이덜린의 정략결혼 문제에 대해서 내게 알려준 것도 내가 아버지에게 반항하기를 바라서였잖니?”
“네, 그랬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루덴 소후작의 눈동자에 서린 두려움을 읽었다.
그렇게 떨릴 정도라면, 굳이 자신을 떠보는 말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말이다.
아비가 되어서, 결국 메이덜린을 위해서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자가. 사랑하는 딸이라고 부르면서.
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위해서는 말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될까 봐 두려워서일 것이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저는 아버지의 유산이 필요하지 않아요. 아시잖아요. 애당초 입적될 때부터 상속 포기 각서를 썼어요.”
“그래, 그랬지.”
그러고는 루덴 소후작은 말이 없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루덴 소후작은 한참 망설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눈동자에 핏발이 서 있었다.
“네길이, 집주인이었던 상인 말이다…….”
“네.”
“그자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그 날, 독침이 튀어나오는 인장을 가지고 계셨다던데…….”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쓴웃음을 숨기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그 상인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의심했던 모양이다. 이 집의 청소부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굳이 소후작을 만난 것을 보면 말이다.
루덴 소후작은 불안한 얼굴로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내가 허튼소리를 했구나, 잊어다오. 전에 카멜리아 후작가의 누가 인장에 설치된 독침으로 죽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지만,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바란 적이 없어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레티샤 공녀 문제도 있고, 이안 문제도 있고, 상황이 복잡해요.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면, 모두가 위험해져요. 그 정도는 오라버니도 아시잖아요.”
“그래. 그렇지…….”
“독침이 튀어나오는 인장을 제가 설계한 건 맞아요. 하지만 그런 도구가 제가 만든 것만 있는 건 아니죠.”
이것은 면죄부였다. 루덴 소후작에게 더 이상 걱정하고 의심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이다.
루덴 소후작은 금세 납득했다.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는 다른 생각 마시고 집안 단속에만 신경 쓰세요. 이제 루덴 후작가의 주인이 되시는 거예요.”
루덴 소후작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를 위로하듯이 등을 몇 번 쓸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복도에서 검은 천을 든 하녀들과 마주쳤다. 하녀들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복도 좌우로 비켜나 고개를 숙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느릿하게 걸었다. 하녀들이 그녀가 지나간 뒤에서 서둘러 움직이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루덴 후작 부인의 처소는 조용했다.
‘메이덜린이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에 없다면 루덴 후작의 병실에 있을 것이다. 그 사랑스러운 소녀는 자신을 몹시 사랑해준 할아버지가 불행한 일을 당한 것을 슬퍼하며 울고 있을 것이다.
루덴 후작 부인의 시녀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녀의 앞길을 막지는 않았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루덴 후작 부인은 자수틀을 무릎에 놓고 창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저 왔습니다, 마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마치 하녀처럼 그녀의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입적하면서 그녀는 호칭을 고쳤다. 루덴 후작을 주인님이 아니라 아버지로, 소후작을 도련님이 아니라 오라버니로 불렀다.
그러나 루덴 후작 부인만은 마님이었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었다.
루덴 후작 부인은 마른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 슬픔은 엿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퇴적된 피로도 잘 숨겨져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알아채기 어려웠다.
“어쩐 일이니?”
“그냥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살피러 온 건 아니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있고요.”
“마음 쓸 것 없다.”
“마님께서는 제게 잘 대해 주셨어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하녀가 낳은 사생아 따위는 용서할 필요가 없으셨는데.”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더럽다고 손가락질해도 되는 사람은 이 사람뿐이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루덴 후작 부인은 그러지 않았다.
항상 눈감아 주었다. 그녀가 이 집의 다락에서 사는 것도, 소후작의 공부시간에 강의를 몰래 훔쳐 듣는 것을 알고서도.
도피였을지도 몰랐다. 아예 그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척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다른 모든 사생아들을 모르는 척한 것처럼.
하지만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가넷을 꾀었을 때에도 눈감아 주었다.
루덴 후작 부인이 말했다.
“난 네가 태어난 걸 용서한 적이 없다.”
“네…….”
“하지만 사라는 불쌍한 애였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이번에는 “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루덴 후작 부인이 잠시 자수틀을 내려다보았다가 도로 시선을 멀거니 던졌다.
“나도 안다. 사라가 널 지우거나 집사가 주는 돈을 받아 나가지 않은 것은 널 낳아서 팔자를 고쳐보려고 했던 일이라는 건.”
“마님…….”
“어리석다고 해서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루덴 후작 부인이 중얼거렸다. 일일이 마음 쓰기에는 그녀는 그런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
“마님…….”
“내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나중에…… 가넷을 잘 위로해 줬으면 좋겠구나. 그 애는 널 보면서도 제 아버지가 어떤 인간인지 끝까지 몰랐으니까.”
“아버지는 비 전하의 앞에서는 제게 잘 대해 주시니까요.”
“미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몸을 떨었다.
그녀는 입적될 때에 이름을 바꿨다. 미아라는 이름은 귀족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덴 후작 부인에게는 죽을 때까지 미아일 것이었다. 그녀에게 루덴 후작 부인이 마님인 것처럼 말이다.
“넌 내 딸이 아니고, 루덴의 딸이었던 적도 없다. 하지만 넌 가넷의 하나뿐인 친구이지.”
“네…….”
“그러니 내게 용서를 빌거나 할 필요는 없어. 부디 그 애를 잘 이끌어다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돌아서서 나오는데, 형언할 수 없이 마음이 복잡했다.
루덴 후작 부인은 이 살인에 자신이 끼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브레넌 백작에게 네길과 네길의 정부에 대해 알려준 것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었다.
‘이렇게까지 과격한 수단을 동원할 줄은 몰랐지만.’
추문을 터뜨려 입지를 좁히고, 로이가르 대공비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파이를 나누는 문제로 다툴 때가 아니다. 아직 차지하지조차 못했으니까 말이다.
브레넌 백작의 생각은 짐작이 갔다.
레티샤 공녀를 건드릴 수 없다면, 섭정이 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황제의 외척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힘을 써온 루덴 후작이 호락호락하게 거기에 동의할 리가 없다.
그러니 미리 제거하여 세력을 꺾어버리기를 선택한 것이다.
브레넌 백작은 이 기회에 로이가르 대공까지 억제하고 자신이 주도권을 잡을 생각일 것이다.
‘군주는 무력한 상징으로만 있어주면 된다는 거겠지.’
그것은 레티샤에게도, 로이가르 대공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적어도 브레넌 백작에게는 말이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비의 후광을 입는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감정을 떠나 그녀의 정치적 입장은 언제나 루덴 후작과 일치했다.
‘그런데, 정말로 암살할 줄 몰랐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내면 깊은 곳이 문득 솟은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 추악하게 죽기를 바랐으니 네길의 집도, 정보도, 언제 아버지가 그 집에 가는지까지 모두 알려주었지.’
그게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