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9
악녀는 두 번 산다. 208화
에이멜 왕궁에서 환영 무도회가 열렸다.
수천 개의 양초가 무도회장을 환하게 밝혔다. 수정이나 보석보다는 꽃송이가 주먹만 한 생화가 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남국의 꽃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남성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가넷은 좀 놀랐다.
국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환영 무도회가 열린 것 자체가 좀 의외였다.
그런데 치장까지 이렇게 화려하게 했을 줄은 몰랐다.
특사단 일행은 모두 무채색 계열의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조문객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로이가르 대공의 예복에는 장식도, 자수도 없었다. 단추도 광채를 내지 않은 은제품을 달았을 뿐이다.
가넷 자신도 채도 낮은 보랏빛 드레스 차림이었다. 러플도, 보석도 달지 않고 노출도 없었다. 고급품이기는 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옷감을 골라 일부러 따로 맞춘 것이었다.
목에도 목걸이 하나 걸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카일라에게 역시 그 붉은 드레스를 입힐걸. 그게 제일 예쁜데.’
가넷은 아쉬워졌다.
그녀는 스카일라에게만은 화사한 드레스를 입으라고 권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이모님. 외교적인 자리인 걸요. 조문객다운 모습을 보이는데, 저 한 사람이 튈 수는 없죠.」
「약혼자도 없는 어린 숙녀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이미 국상도 끝난 다음이라서 무도회를 연다고 하는데.」
「이모님, 설마 진지하게 저를 왕자와 엮을 생각이신 건 아니죠?」
스카일라가 너무 심각한 얼굴로 말해서 가넷은 웃었다.
「말도 안 돼요. 전 수도에서 떠날 생각 없다고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거 없잖니? 꼭 카드리올 전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혹시 또 아니? 수도에서야 늘 보는 얼굴이 그 얼굴이고, 너도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겠지만, 여기에서 정말 멋진 남자를 만날지?」
「이모님.」
「그때 안 꾸미고 있었다고 후회하면 어떡해?」
가넷은 진심으로 말했다.
「약혼하고 결혼하면 못 하는 일이니까, 그전에 연애를 잔뜩 해봐야지.」
「전 남자한테 관심 없어요.」
스카일라는 그렇게 말했지만, 가넷은 기어이 그녀의 목에 핑크 사파이어를 걸었다.
그래도 이 안에 있으면 너무 수수해서 묻힐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로이가르 대공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가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들 화려하구나, 하고요. 스카일라를 치장해줬는데, 이렇게 손님들이 화려할 줄 알았다면 더 제대로 할 걸 그랬어요.”
그때에 연회의 주인인 에이멜 국왕이 등장했다.
국왕도 금과 보석 장식이 달린 흰색 예복을 입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시종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짙은 남색 옷을 입은 카드리올이 뒤따르고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가넷도 무릎을 반쯤 구부려 우아하게 절을 올렸다.
뒤이어 특사단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멀리에서 찾아오신 손님들을 환영하려고 했는데, 도리어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그럴 리가요.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왕이 손을 내밀었다. 가넷이 그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국왕이 로이가르 대공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이렇게 고운 부인의 손을 빌려주려니 섭섭하시겠소.”
“사실 그렇습니다. 특별히 양보해 드리는 겁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털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넷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었다.
“과인에게 딸이라도 있었다면 좋을 것을, 이렇게 시커먼 사내놈만 있으니 유감이라오.”
국왕의 시선을 받고도 카드리올은 미소 띤 얼굴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국왕이 가넷의 손을 이끌고 계단 아래로 향했다. 시종이 외쳤다.
“국왕 폐하와 로이가르 대공비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홀에 있던 참석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절을 올렸다.
카드리올과 로이가르 대공이 서로 먼저 내려가라고 사양했다. 손님인 로이가르 대공이 먼저 계단을 밟았다.
카드리올은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시종 몇이 그에게 눈짓을 건넸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카드리올은 고개를 저었다.
춤추는 것에 관심이 없는 스카일라는 테이블 옆의 티 코지로 화해 있었다.
“국왕 폐하와 로이가르 대공비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녀는 외침 소리에 시선을 돌렀다.
가넷이 에이멜 국왕의 손을 잡고 기품 있는 자태로 내려오고 있었다.
옷자락이 긴 데도 계단을 밟는 발걸음에는 위태함이 없었다. 왈츠라도 추는 듯 가벼운 발걸음이지만, 예절에 어긋나는 바가 없었다.
평생을 그것만 연습한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적지 않은 숙녀들이 어릴 때부터 드레스 자락을 밟지 않고 경쾌하게 걷는 연습을 한다.
스카일라도 연습했었다. 그것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가지고 있는 모순된 심리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스카일라가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배우지 못 했던 모든 것을 다 배우기를 바랐다.
그중에는 동부 귀족 가문의 숙녀 다운 자태를 갖추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
그런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가넷도 마찬가지였다.
가넷은 스카일라가 부럽다고 때때로 말했다. 그것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딸이라서 부럽다는 뜻일 때도 있었고, 그녀가 자유로워 보여서 부럽다는 뜻일 때도 있었다.
스카일라에게는 둘 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자유로워 보여서 부럽다면, 무엇 때문에 고집을 부려서 고운 옷을 입히고 남자와 춤을 추기를 바라는 걸까.
‘위브 자작 부인까지 부추기니까.’
물론 위브 자작 부인은 스카일라를 아름답게 해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녀가 주인보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시중을 들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위브 자작 부인은 스카일라를 견제한 것이었다.
기회를 잃은 셈이라 마음이 썩 편하지 않았다.
가넷을 실수하게 유도하는 건 마음 무거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살짝살짝 부추기는 정도로 가넷이 움직이지 않으니 그것도 그것대로 초조했다.
펠로나 상단주를 만나게 했을 때에도 그랬다.
「렉센 부인이 이언츠 왕국의 뜻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는 상단주의 말은 이해했습니다.」
가넷은 펠로나 상단주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진위를 가리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로군요. 남편을 만나게 해드리죠.」
그렇게 해서 펠로나 상단주는 가넷의 처소에서 은밀하게 로이가르 대공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스카일라는 가넷이 조금 더 동요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데어리 포드를 이언츠 왕국으로 보낸 것이 로이가르 대공인가 하는 의심이 다 씻겨 나갔을 리가 없었다.
이곳까지 따라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결국 그것을 누르고 남편을 믿기로 결정한 것이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 뒤에 가넷은 딱 한 번 말한 적 있었다. 그때에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피곤한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바보 같지?」
「뭘요?」
「너는 영특하고 똑 부러진 애니까. 내가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이겠지. 남편이 바람피웠으면, 이혼해 버리면 될 텐데, 하고.」
스카일라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실 수 없다는 거 잘 알아요.」
정략결혼으로 얽힌 것이 너무 많았다.
재산, 후계자, 그런 것이 사소할 정도로 큰 것이 얽혀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 부부의 결합은 그냥 대귀족 간의 정략결혼과도 달랐다.
루덴 후작가와 로이가르 대공의 사이가 갈라지면, 세력 전체에 대한 로이가르 대공의 장악력이 줄어든다.
그러면 황제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설령 승리를 거둔다 해도 로이가르 대공은 허수아비가 되고, 그다음에는 공신들끼리의 전쟁이 될 것이다.
루덴 후작가가 제일 먼저 공격당해 갈기갈기 찢길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가넷이 눈을 감은 채 말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쩔 수 없잖니. 그이가 내 남편이고, 애들도 있는걸. 엄마도 있고…….」
「이모님…….」
「그냥 없던 일로 하는 수밖에. 믿는 수밖에. 진짜로 바람피운 것도 아니니까, 한 번은 용서하고 넘어가야지. 나한테 전보다 더 잘하잖니.」
계속 불행하게 살 수는 없으니까.
가넷이 아주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스카일라가 보기에 가넷은 이미 불행해 보였다. 사실 그렇게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도 그 사람한테 미안해.」
스카일라는 가넷이 말하는 미안함에 대해서 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어째서 데어리 포드의 언니를 죽였는지는 절반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카일라는 아르티제아가 계획을 잘못 세웠다고 생각했다.
이 일에 포드라는 이름이 얽혀 있지 않았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가넷은 옛일을 잊어버린 채 더 큰 것을 가지고 싶어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가넷은 불행을 인지해버렸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쥐고 있는 것조차도 눈 조각처럼 녹아 사라질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따라온 것은 단순히 불안해서일 뿐이다. 황후가 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딱히 가넷이 욕망하는 일이 아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함께 가도 좋다고 고집을 꺾었을 때에 가넷의 목적은 전부 달성되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자신의 뜻을 들어준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중요한 자리에 동반함으로써 부부라는 것을 주위에 증명하고, 존중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말이다.
임무는 실패였다. 더 부추기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스카일라는 눈을 들었다.
귀부인 몇 사람이 부채를 펼치고 가까이 다가왔다.
“왜 이렇게 혼자 쓸쓸하게 계세요? 춤이라도 추시지 않고.”
“이건 저희 쪽 신사들이 잘못하고 있는 거죠. 좀 꾸짖어 줘야겠어요. 이렇게 젊고 예쁜 숙녀를 테이블 옆에 세워두다니.”
“전 원래 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스카일라가 태연하게 말했다.
이들이 호의로 말하는 것이든, 기 싸움을 하려는 것이든, 그다지 상대할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평판 관리를 할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타국이다. 게다가 그녀는 결혼 시장에 나선 게 아니었다.
귀부인들이 면박을 당한 듯이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스카일라는 그녀들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돌아보다가 깨달았다.
무도회장 밖에서 남자들 여럿이 움직이고 있었다. 참석자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는 애매한 옷차림의 남자들이었다.
‘뭐지, 이거?’
스카일라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서둘러 가넷 쪽으로 향했다.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실례.”
“카드리올 전하.”
스카일라는 황급히 무릎을 구부리고 절을 올렸다.
카드리올이 코끝을 긁적였다. 전혀 실례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였다. 애당초 앞을 막은 것도 의도적인 것이 분명했다.
“음. 카멜리아 후작 영애로군.”
그녀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앞을 막은 것은 아닌 듯했다.
카드리올이 난처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무도회장을 쓱 돌아보았다.
스카일라는 초조해졌다. 하지만 카드리올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춤이라도 한 곡 추겠어?”
“죄송합니다. 비 전하께 가봐야 해서.”
“영애는 재원이라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설마 이 뜻을 헤아리지 못했을 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해.”
카드리올이 내민 손을 흔들었다.
스카일라는 창백해진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카드리올은 그때까지 온건한 방식으로 그녀를 잡아두려는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