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0
악녀는 두 번 산다. 209화
에이멜 국왕과 로이가르 대공 부부는 두 곡의 춤을 추고 일찌감치 무도회장을 떠났다.
도착한 직후에 알현실에서 인사를 나누었고, 환영회도 열었다.
이것으로 상호간에 갖추어야 할 형식적인 예의는 끝난 셈이었다.
세 사람은 가장 신뢰하는 수행원 한두 명만 거느리고 가넷의 처소에 딸린 작은 응접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펠로나 상단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입고 있던 하녀 옷을 벗어버리고 검은 예복을 입고 있었다.
에이멜 국왕은 놀라지 않았다. 이언츠 왕국에서 전권 대리인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면이로군.”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
펠로나 상단주가 한쪽 무릎을 꿇고 가슴에 손을 올려 예를 올렸다.
로이가르 대공이 손짓했다.
“앉으시죠. 시간이 늦었습니다.”
에이멜 국왕이 먼저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시간이 늦었다. 무도회나 만찬이 끝난 후에 이렇게 자리를 옮겨 대화를 계속하는 것은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국왕의 신분이었다. 귀부인을 오라가라 할 수 없다는 핑계로 이쪽으로 오기는 했지만, 타국 사절의 처소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응접실로 부를 수는 없었다.
호위에도, 시종 중에도 카드리올의 첩자가 섞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손수 작은 브랜디 병을 가지고 왔다. 코르크로 단단히 밀봉하고 밀랍으로 봉인을 찍은 것이었다.
“제 애장품입니다. 동부에서도 가장 유명한 양조장에서 딱 서른 병만 생산해서 80년을 숙성한 것이지요. 지금은 황제 폐하께서도 갖고 계시지 않을 겁니다.”
그가 그 자리에서 봉인을 뜯어 잔에 따랐다.
“폐하의 은덕으로 제 혀가 호사를 하는군요.”
펠로나 상단주가 첫 번째 잔을 받아 기미했다.
로이가르 대공은 두 번째 잔을 국왕의 시종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세 번째 잔을 들었다.
시종이 잔과 술을 다시 확인하고 국왕에게 바쳤다. 국왕이 그 잔을 받았다.
가넷은 그때쯤 되어서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말씀 나누십시오.”
“혼자 가겠소?”
“바로 옆방인데요, 뭐.”
로이가르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넷은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로이가르 대공은 브랜디로 입술을 축였다.
“이미 이언츠 측에서 폐하께 대략적인 사정을 말씀드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이미 이언츠 왕국과 제 사이에는 거시적 차원에서 합의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펠로나 상단주가 한 장짜리 협정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에이멜 국왕은 그것을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에이멜 왕비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이언츠 왕국과 로이가르 대공 사이에 맺어진 무역 협정이었다.
자신이 서명하면, 에이멜 왕국도 그 협정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크라테스 제국과 이언츠 왕국이 맺는 협정이다. 여기에서 빠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에이멜 국왕은 짐짓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과인은 왕비를 시해한 대역죄인을 처벌하고, 그 한을 풀어주고자 하는 것이지, 금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게 아니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까? 실례했습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민망해하지는 않았다.
에이멜 국왕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디까지나 체면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멜 국왕이 헛기침을 했다.
“뭐, 서로 간의 오해가 모두 풀리고 나면, 그때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긴 하겠소.”
왕비를 조문하러 와서 경제적 이익을 논하느냐고 꾸짖어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형식적인 신분으로 따지자면, 지금은 일국의 국왕으로서 그가 존중받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으로 두고 말하자면, 로이가르 대공은 그보다 월등히 강자였다.
제국의 차기 황제라고 생각한다면, 실질과 형식을 구별할 필요조차 없었다.
펠로나 상단주가 부드럽게 말했다.
“대공 전하께서 어찌 국왕 폐하의 비탄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흠.”
“저는 이언츠 왕국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고도 이곳에 혼자 왔습니다. 왕비 시해범이 왕궁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이언츠 왕국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을 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
그래도 에이멜 국왕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침묵했다.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결단하십시오. 이언츠 왕국이 왕비 전하의 시해 배후라는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고, 저는 리아간 공작가에 생긴 문제를 해결했다는 공적을 얻게 되겠죠. 그리고 폐하께서는 정적을 제거함으로써 안정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대공의 말씀에서 틀린 부분은 지적하고 넘어가야겠군. 과인은 왕비를 해친 자를 찾고자 하는 것뿐이오. 정적이라니. 이 나라에 과인과 견줄 자는 없소.”
“그렇지요. 제가 말씀을 잘못 드렸군요. 정적에게 시해당한 왕비 전하의 한을 풀어주실 수 있겠지요.”
로이가르 대공이 말을 고쳤다.
그는 계약서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어구 하나하나로 신경전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정도 일은 에이멜 국왕의 자존심을 지켜주어도 좋을 것이다.
비록 국상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제국에게 위세를 보이려 하는 자라고 해도 말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직접 바라는 바를 말할 수 없는 자와 협상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손해를 떠넘겨도 별말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단지, 돌아가신 왕비께서 리아간 공작가와 소금 사업을 함께 하셨기에 이런 협정까지 포함된 것입니다.”
로이가르 대공은 협정서를 톡톡 쳤다.
“황제 폐하께선 소금 사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계십니다. 리아간 공작을 신뢰하시기도 하셨고요. 황제 폐하께서 타국이 사업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면, 왕비 전하를 시해한 것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될 겁니다.”
“…….”
“그러니 서명하시지요. 이것은 소금 사업 문제를 정리하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입니다.”
에이멜 국왕은 망설였다.
그도 알고 있었다. 리아간 공작가가 에이멜 왕비를 파트너로 삼았던 것은, 제국 중앙에 밀염 사업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렸으니 그것을 에이멜 왕실의 손에 놓아둘 리 없었다.
그래도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해에 인접한 소국 몇 곳과 동부 대륙으로 가는 물량의 수익 일정 부분을 나눠 받는 것만으로도 매년 내탕고로 들어오던 액수를 상회하는 수입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욕망을 말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께서는 밀염 사업을 손에 넣고, 이언츠 왕국에서 제국에 바치는 7년분의 조공과 같은 액수의 세폐를 받으실 거라고 들었소.”
“어차피 황제가 되실 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조금 앞당겨 바치는 것뿐이지요.”
펠로나 상단주가 부드럽게 말했다.
뇌물이었지만, 투자로서의 의미도 분명히 있었다. 로렌스가 실각했기에 결정한 일이기도 했다.
이 협정서는 그 대가이기도 했다.
핵심적인 내용은 관세를 철폐하고, 무역 물량을 대폭으로 늘리는 것에 대한 합의였다.
거래처의 절반을 로이가르 대공이 지정하는 상단으로 한정해야 했다. 관세를 없애서 거두는 이익의 7할은 다시 로이가르 대공에게 바쳐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 해도 이언츠 왕국의 성장과 확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무역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이언츠 왕국으로서는 로이가르 대공을 지원해서 나쁠 것 없었다.
에이멜 국왕이 협정서를 바라보고 혀로 윗니를 두드렸다. 혀를 차는 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여유롭게 말했다.
“이 협정서에 반드시 폐하께서 서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서명을 하시든, 하시지 않든, 우리는 왕비 시해범을 잡을 것이고, 폐하께서는 아무런 정치적인 부담 없이 한을 푸실 수 있겠지요.”
“과인이 이 협정서에 대해 황제 폐하께 고하면 어찌하겠소?”
에이멜 국왕이 말했다. 그러자 로이가르 대공이 씩 웃었다.
“제국 수도와 남부는 상당히 멀죠. 그리고 제가 지지할 수 있는 것은 국왕 폐하 한 분이 아니고요.”
펠로나 상단주가 중재하듯이 말했다.
“왕비 시해범이 왕궁 내부에 있으니, 정리하시고자 하면 손이 많이 필요하시겠지요. 재정도 적지 않게 들어가실 테고.”
“…….”
“당분간 남부의 바다가 빌 겁니다. 에이멜 국왕 폐하의 도움이 없이 저희가 배 한 척이라도 제대로 띄울 수 있겠습니까?”
지금 카드리올은 에이멜 해군과 해적을 함께 쥐고 남해를 통솔하고 있다.
상선은 해적을 만나면 통행료를 주고 지나간다.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대형 상단이나 귀물을 실은 배는 에이멜 해군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카드리올을 제거하고 나면, 통솔을 잃은 해적은 멋대로 날뛸 것이다.
그 때문에 협정서에는 남해의 관리와 해적 토벌에 관한 협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의 말처럼 에이멜 국왕은 서명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에이멜 해군이 현재 강력한 것은 카드리올 덕분이다. 에이멜 국왕이 그만큼의 통솔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조만간에 해군력 자체가 약해져 제값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이언츠 왕국에서는 추측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항목을 넣어 에이멜 왕국에 보호비를 지불하려는 것은, 협정서에 서명하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이언츠 왕국에서는 관련된 자를 늘림으로써 로이가르 대공이 협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드는 것을 막고자 했다.
로이가르 대공 입장에서는 제위를 손에 넣을 때까지 비밀을 지키게 해야 했다.
에이멜 국왕은 잠시 더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펜을 들어 서명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건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일이지요. 모두가 이득을 거두는 협상 말입니다.”
뒤이어 로이가르 대공과 펠로나 상단주가 서명했다.
“남부에 계시는 동안 세부적인 항목을 논의할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펠로나 상단주가 말했다.
“그러면 왕비의 문제는…….”
“염려 마십시오. 폐하께서 결단을 내리시면, 언제든지 제 호위 병력이 함께 움직일 겁니다.”
에이멜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축배부터 들까요?”
“그럽시다.”
로이가르 대공이 먼저 술잔을 들어올리고, 에이멜 국왕이 그 뒤를 따랐다.
여유가 생긴 에이멜 국왕이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향긋한 술이로군.”
“중대한 결단을 하고 난 뒤의 술 맛은 각별한 법이지요.”
로이가르 대공이 두 번째 잔을 따라주었다.
펠로나 상단주는 첫 잔을 비운 뒤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일찌감치 물러가겠습니다.”
“한 잔 더 하고 가지 않고?”
“대공비 전하께 인사를 드리러 가려고 합니다.”
“그렇군.”
에이멜 국왕이 가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로이가르 대공이 고맙다는 뜻을 담아 살짝 고개를 숙였다.
펠로나 상단주는 두 사람에게 공손히 절을 올리고 거실에서 물러나 왔다.
협회 측에서 보낸 실무자가 그녀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협정은 무사히 끝나셨습니까?”
실무자는 등을 쭉 편 채 허리만 굽혀 펠로나 상단주에게 인사했다.
“그래.”
“고생하셨습니다. 하녀 역할까지 하시면서…….”
“나라를 위한 일이야. 내가 적임인데, 사양할 수 있겠나?”
펠로나 상단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남자가 이번 일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자였다.
옳다고 생각하여 채택하기는 했으니,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