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1
악녀는 두 번 산다. 210화
신원은 확실했다.
펠로나 상단만큼이나 규모가 크고 전통 있는 허세이 상단에서 4대째 일하고 있는 자였다.
지금도 대부분의 일가친척이 허세이 상단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직 학업 중인 동생과 관리로 진출한 사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허세이 상단의 직원이었다.
아주 먼 친척까지 뒤져보아도 의심할 구석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로나 상단주는 이자를 마주할 때마다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 아집이 생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펠로나 상단주는 최근에 자신이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 지나치게 인상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자는 아무리 봐도 국제 관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분석과 예리한 직관으로 채워 책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금도 보라. 자신감이라고는 없는 얼굴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마치 좀도둑질을 들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는 아이처럼 말이다.
‘세자 저하께서 이미 채택하셨다. 그리고 카드리올 왕자의 대응도, 리아간 공작가의 대응도, 로이가르 대공이 특사가 되어 내려오리라는 예측도 맞았지.’
자잘하게는 틀리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넓은 시야로 볼 때에 이자의 논책대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자에게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더 전에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났을 것이다.
이언츠 왕국은 세계 어디보다도 가장 능력주의를 지향한다고 자부했다.
스물에 일을 시작하여 서른다섯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허세이 상단의 일개 부점주로 있었을 리 없다.
자신을 숨기고자 했다면, 이런 논책을 써서 상신했을 리 없었다.
펠로나 상단주는 실무자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그가 움츠러들었다.
지금은 눈을 감는다. 세자도, 협회도 논책을 그냥 무방비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이언츠 왕국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자들과 가장 경험이 많은 상단주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이것이 합리적인 계책이라는 결론을 낸 것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을 지원하고 향후 무역을 확대하는 것은 전부터 고려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가 욕심 많은 자이긴 했다. 그러나 이언츠 왕국 입장에서는, 이윤과 돈을 탐하는 황제가 오만하고 귀족적인 황제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들은 로이가르 대공과 잘해 나갈 수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에게 금은보화를 바치는 쪽이 제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시장을 잃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협정서까지 얻어냈으니 좋은 일이었다.
펠로나 상단주는 실무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물었다.
“실무 협상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나?”
“큰 틀에서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실무 쪽에서는 문제없습니다. 세자 저하께서 허락하신 예산이 막대하니까요.”
“그걸 다 쓸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세자 저하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 협정이 파투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었으니까.”
“예.”
실무자는 등에서 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선물은?”
“준비해 두었습니다.”
펠로나 상단주는 실무자가 미리 내놓은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보석함이 하나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열어보았다.
“좋아. 일단 자네는 돌아가도록 하게.”
“예?”
“오래 이 왕궁에 있어서 좋을 게 없지. 아니면 로이가르 대공비까지 뵙고 가려는 건가?”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물러가.”
“예.”
실무자가 비굴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왔다.
펠로나 상단주의 생각처럼 그 논책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제국 수도에서 학업중인 동생이 집에 왔다가 던져준 것이었다.
「형이 분석한 것이라고 하든, 내가 수도에 떠도는 소문을 모아 분석한 것이라고 하든 상관없어. 너무 나대지만 마.」
「형한테 나댄다가 뭐냐, 나댄다가?」
「형이 사촌 형들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출세하고 싶어 하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어쨌든 형이 쓴 건 아니니까 너무 오래 계속되면 뽀록 날 거야. 그런 계책, 읽으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지만, 아무나 생각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일단 정보량이 막대하고.」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동생이 공부를 잘하여 제국까지 유학을 가긴 했다. 그렇지만, 그 녀석이라고 해서 탁월한 천재 같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좀 후회하고 있었다. 동생의 것이라고 말할 것을 그랬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어찌어찌 잘해나가고 있긴 했다. 상신하기 전에 달달 외우고 나름대로 정세 분석도 열심히 했다.
답안지를 두고 이론을 짜 맞추는 공부와 비슷한 일이라서 그도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보다 보니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 보이는 듯도 싶었다.
하지만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가 버렸다. 일부러 그런 것은 동생이 말한 나대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이번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2차 실무 협상이 있기 전에 진상을 고백해야겠다고 작정했다.
동생에게 돌아오라고 이미 편지도 보냈다.
그러나 그의 안목으로는, 그 논책을 진짜로 쓴 것이 동생일 리 없다는 것을 파악할 수 없었다.
동생이 아무나 생각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 게 자부심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펠로나 상단주는 상자에서 꺼낸 보석함을 들고 가넷의 침실로 향했다.
가넷은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이었다.
지난 몇 주 동안 하녀 노릇을 하지 않았다면, 손님으로 여겨져 아예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펠로나 상단주는 완전히 손님만은 아니었다.
시녀와 하녀들은 몇 주 동안 그녀와 서로 얼굴을 익혔다. 좁은 선실에서 북적이며 부대끼는 동안 친밀함도 느꼈다.
시녀 하나가 가넷에게 소식을 전했다. 가넷은 그녀를 침실까지 들였다.
“이야기는 잘 끝났나요?”
“네. 비 전하 덕분에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니라, 상단주가 가져온 이야기가 남편에게도 중요한 이야기였던 것 덕분이겠지요.”
펠로나 상단주가 미소를 띠었다.
“감사의 뜻으로 예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물이라니.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성의를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아무런 성의도 표시하지 않고 가면, 저희 왕께서도 꾸중하실 겁니다.”
위브 자작 부인이 펠로나 상단주의 손에서 보석함을 받아서 가넷의 앞에 내려놓았다.
가넷은 보석함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온갖 아름다운 세공이 된 카메오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 뒷면에는 장인의 서명도 새겨져 있었다.
“값진 보석이라면 무엇이라도 가지고 계실 테니까요. 그냥 정성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이언츠의 명인이 만든 것인데, 그냥 정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가넷은 품위 있는 태도로 말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펠로나 상단주가 고개를 숙였다.
가넷은 보석함 뚜껑을 만지작거렀다.
사실 진짜 값진 것은 보석함 자체였다. 그것은 반투명한 녹옥을 통으로 깎아 만든 것이었다.
이만한 크기가 되면, 그다지 희귀하지 않은 보석이라도 엄청난 가격이었다.
세공한 솜씨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이 자체가 보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넷이 망설이는 것은 그것이 너무 값비싸기 때문이 아니었다. 비싼 것으로 따지자면 그녀는 이것보다도 값비싼 물건을 선물 받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보석함 뚜껑 안에 별 세 개를 안은 달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산과 강물에 달빛이 내리쬐는 모습까지 섬세한 손길로 양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금으로 글씨가 상감되어 있었다.
『만세의 달이여, 온 누리를 비추소서.』
달과 별의 문양은 흔한 것이다.
그러나 제국의 달은 황후를 의미하는 것이다. 만세는 오로지 황제와 황후에게만 바쳐지는 축복이다.
별 셋을 안은 달이 가넷 자신과 아이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다지 지식도, 추리도 필요 없었다.
가넷은 뚜껑을 덮었다.
“섣부른 일이 아닌지…….”
“미리 드리는 예물입니다. 저희가 로이가르 대공 전하와 비 전하께 영광된 미래가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뜻에서요.”
펠로나 상단주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가넷은 그렇게 대답하고 보석함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펠로나 상단주에게 답례품을 주었다.
스카일라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카드리올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네 곡 연속해서 춤을 추었다.
네 번째 춤은 템포가 빠른 폴카였다. 그때쯤 와서는 입에서 단내가 났다.
“전하, 제발.”
“이런, 영애는 체력이 별로 없군.”
“쉬지 않고, 후, 네 번이나 춤추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하아, 그러세요?”
첫 번째에는 그다지 관심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카드리올은 굳이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여자와 네 번이나 춤을 추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 상대가 제국의 후작 영애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관심이 집중되었다.
스카일라는 그런 관심에까지는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카드리올의 리드는 훌륭했고, 스카일라도 춤을 잘 추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있었고, 드레스는 제법 묵직했다.
몸에서 긴장도 빠지지 않아서 더 힘들었다.
네 번째 춤곡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카드리올이 멈추었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카드리올이 댄서처럼 스카일라의 손을 잡은 채 박수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왕자가 인사를 했는데 가만히 있는 게 아니지.”
카드리올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스카일라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절을 했다.
카드리올이 그녀를 테이블 쪽으로 이끌어갔다. 스카일라는 다 됐고 일단 찬물을 마시고 싶었다.
“시간은, 충분히 끄셨나요?”
스카일라는 목을 축이고 나서 날카롭게 말했다.
카드리올이 여유롭게 말했다.
“나로서는 영애를 배려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로이가르 대공비도.”
“배려라고요?”
스카일라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비난이었다.
카드리올이 웃었다.
“영애가 대공비에게 가서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면, 대공비는 대공에게 가서 말할 거고, 그러면 무력 충돌이 커지는 와중에 대공비나 영애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무력 충돌이요?”
스카일라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타앙!
밖에서 총성이 울렸다.
“꺄아악!”
무도회장에 있던 귀부인들 중 여럿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자들도 그런 자가 많았다.
일부는 무거운 장식을 떼어버리고 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그러나 입구에서 막혔다.
스카일라는 경악하여 카드리올을 바라보았다.
“무얼 어쩌실 작정이에요?!”
“무척 불행한 일이군. 부왕께서는 돌아가신 왕비 전하와 함께 크라테스 제국의 밀염 사업에 한 손 거들고 계셨거든.”
카드리올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불초자식이 그 사실을 황제 폐하께 고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으신 게지.”
“그게 전하가 쓴 시나리오인가요? 그걸 누가 믿는다고요.”
“시나리오의 정합성은 중요하지 않잖나.”
요는 그레고르 황제에게 쓸 만한 이야기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밀염에 에이멜 국왕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아마 사실일 것이다.
스카일라는 숨을 삼켰다.
“영애는 영특하군. 재원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러고 보니 영애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딸이었지.”
카드리올이 말했다. 그리고 스카일라를 쳐다보고 말했다.
“갈 곳이 없어지면 나를 찾아와.”
“뭐라고요?”
“미래의 카멜리아 후작이니 작위로 꼬실 수도 없고, 금전을 제시해 봤자일 것 같으니까, 망하면 영입해 보려고.”
스카일라는 황당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카드리올이 씩 웃었다.
“농담 아니야. 에이멜은 아직 확장할 여지가 넓은 나라야. 인재가 많이 필요해. 크라테스처럼 쓸데없이 정쟁으로 무덤에 쓸어 넣고 썩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스카일라를 놔두고 되어가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