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6
악녀는 두 번 산다. 215화
설령 황후가 거두어 준다고 해도 그 아이 하나가 살아나는 것뿐이다.
황후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이번 사태를 끝낸다고 해도 역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는 없었다.
세드릭이 지친 얼굴을 하자 아르티제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우선은 씻고, 좀 주무세요. 언제 돌아오실지 모른다고 안스가르가 계속 목욕물을 데우고 있어요.”
“네.”
세드릭이 한숨을 한 번 더 내쉬고 자기 처소 쪽으로 들어갔다.
아르티제아는 걸음을 돌려 아기 방에 들렀다.
레티샤는 잠들어 있었다. 아기 방에서 침식을 함께 하는 마커스가 인기척에 눈을 떴다.
“주인님, 이런 시간에 어쩐 일로.”
“일어나지 않아도 되네.”
아르티제아는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마커스가 편안히 누워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커스가 몸을 일으키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대강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더듬더듬 손을 뻗어 촛불을 켜려 했다.
대신 아르티제아가 먼저 손수 들고 있던 등에서 촛대로 불을 옮겨 붙였다.
“세드릭 님이 이제야 귀가하셨는데, 레티샤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아서.”
“그러셔야죠. 며칠 만에 귀가하시는 건데.”
마커스가 몸차림을 단정히 했다.
아르티제아는 가만히 요람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기는 이제 먹는 것도 제법 잘 먹었고, 움직임도 활발했다.
잘 움직이는 덕인지 밤에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호기심은 원래부터 왕성했지만, 시야가 트이면서부터는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풀 냄새가 묻은 바람이 얼굴에 닿으면 그렇게 신이 나서 웃었다. 안스가르가 그것까지 세드릭을 닮았다고 웃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원을 나가는 것조차 꺼려지는 시기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암살의 위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리 저택의 방비를 단단하게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정원은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아예 나가지 않는 것보다 안전한 일은 없었다.
레티샤는 물론이고 아르티제아 자신도 마찬가지로 저택 밖으로 걸음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유모의 외출도 금지시켰다.
그녀도, 레티샤도, 세드릭과 달리 스스로의 몸을 지킬 능력이 없다.
‘밀염이 터졌으니 우선 시간은 벌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브레넌 백작과 의견이 같지 않았다.
세드릭을 암살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 그를 공격하여 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측근을 매수하거나 포섭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루덴 후작 때처럼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독살에 대해서는 아르티제아가 특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세드릭이 아니라 레티샤를 죽여서 황제의 계획을 무산시켜야 한다.
어차피 핵심은 레티샤였다. 레티샤가 없으면 황제가 세드릭을 양자로 삼을 이유가 없다.
그러면 로이가르 대공의 상속 순위는 여전히 1위로 유지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황제가 명분을 쥐고 대로하여 수사관을 풀었을 때 에는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 결국 황제의 힘이 가장 강력한 방패라는 것은.’
아르티제아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루덴 후작은 자타가 공인하는 로이가르 대공 파벌의 이인자였다. 그가 사망함으로써 로이가르 대공 파벌은 이번 일에 대처할 만한 구심점을 잃었다.
대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공연히 브레넌 백작에게 약점만 쥐여 준 셈이 되었다.
루덴 후작을 암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 것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라는 사실을 로이가르 대공비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아마 쉽게 용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스카일라를 남부에 딸려 보낸 대가는 다 치렀다.
남부에 수행하지 않았으니 이언츠와의 협정에 관여되지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비와 사이가 갈라져 로이가르 대공 파벌에서 떨어뜨려진다면, 회생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 자신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매의 정이라는 건 무척 난해한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뒤에서 뻗어온 손이 가볍게 그녀의 손등을 두드렸다.
“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고 있어요?”
세드릭이 소곤거리듯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머리가 젖어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잠깐 그것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뜨며 대답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말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우웅, 응애애!”
사람이 늘어나자 기어이 인기척에 깼는지 레티샤가 울음을 터뜨렸다.
세드릭이 서둘러 요람 안에 팔을 뻗었다.
“이런. 미안하구나. 조용히 와서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그가 레티샤의 등을 토닥토닥했다.
“이렇게 밤에 깨면 안 좋을 텐데. 미안하군.”
세드릭이 마커스에게도 사과했다. 마커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직 밤에도 종종 깨십니다.”
“자네가 수고가 많네.”
“믿고 아가씨를 맡겨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커스가 진심으로 말했다.
레티샤가 울음을 그쳤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에게도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키운다고 해놓고, 얼굴도 못 보는 날이 많아서.”
“바쁘신 걸요.”
아르티제아야말로 집에 있으면서도 아기의 곁에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레티샤가 세드릭의 앞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무엇이 또 기분 좋아졌는지 금세 웃기 시작했다.
세드릭은 레티샤를 어르다 말고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레티샤가 태어난 뒤로 어린아이들이 더 눈에 박힙니다.”
“인지상정이지요.”
“저는 당신이 말릴 줄 알았습니다.”
“구명하는 것을요? 별달리 리아간 공작의 편을 들고 계신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당신은 폐하의 환심을 사라고 권했으니까요.”
“그런 건 어차피 전술적인 제안일 뿐이에요. 방편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시는 일을 못하시면 안 되지요. 정말로 해서 위험한 일도 아니고요.”
“폐하께서는 상당히 불쾌해하고 계십니다.”
“연좌제의 완화를 청했다고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훗날 빌미로 삼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위험한 일이었다면, 린 재상께서 막으셨겠지요.”
“음…….”
“관료들이 연명이라도 해서 세드릭 님의 뒤를 받치려 한다면 폐하께서 위기감을 느끼시겠지만, 린 재상님도, 세드릭 님도 지금은 개인으로서 탄원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오히려 의롭고 온후하다는 인상을 유지시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물론 아르티제아는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그의 행동을 입 밖에 내어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자기가 바라는 대로, 스스로의 삶을 뜻대로 관철하면 된다.
“아으아우웅.”
세드릭이 눈을 맞추자 레티샤가 버둥대고 옹알이를 하다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신가 봅니다.”
마커스가 그렇게 말했다.
세드릭이 레티샤를 마커스의 손에 돌려주었다. 마커스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아기를 데리고 유모 방 쪽으로 갔다.
세드릭은 먼저 일어서서 아르티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둘은 침실로 되돌아왔다. 세드릭이 협탁에 놓인 촛대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겁니까?”
“무얼요?”
“당신이 벨론 경에게 뭔가 충고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카드리올 왕자가 터뜨린 것도 그렇고…….”
말하다 말고 세드릭은 잠시 이상한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놈이…….”
“그놈이요?”
“아닙니다.”
세드릭이 말을 씹어 삼켰다. 카드리올을 떠올린 탓이었다.
그러나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조금도 마음 쓰지 않고 있는데, 자신이 의식한다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을 돌렸다.
“아무튼, 이렇게 대규모였다는 것은 몰랐으니까요. 리아간 공작이 밀염을 유통하고 있다는 것쯤이야 다들 대강은 짐작하지만요.”
창고에서 소금을 빼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재무부 장부를 속여 제조장을 별도로 확보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에이멜 왕비가 소금 유통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것이 자국에서 소금을 제조한 것이 아니라 리아간 공작가와 손을 잡고 하는 일이라는 것까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짐작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죠. 리아간 공작은 본래 기회주의자인 데다가 진짜 리아간 공작이 되고 싶어 했었잖아요.”
육촌이면 대단히 가까운 친척은 아닌데도 리아간 공작은 선대 공작에게서 신임을 얻었었다.
그런데도 배신해 버렸다. 돈이 아니라 욕망이 문제였다.
그의 목표는 황제의 총신이 되는 것도, 권력도 아니라 리아간 공작가 그 자체였다.
그러나 황제도, 제국 귀족들도, 그를 결코 황후의 부모였던 선대 리아간 공작처럼 대우하지 않았다.
애당초 혈통도, 존경도 단기간에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다. 진짜가 되고 싶다는 리아간 공작의 욕망은 본디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익 때문에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두 번째에도 이익 때문에 배신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살펴보면, 제법 명확하게 보여요.”
“그렇군요. 전에는 드러난 적이 없는 일이라서 솔직히 놀랐습니다.”
“전에는 굳이 폐하의 노기를 부추길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리아간 공작은 협조적이었고……. 재무부를 개혁하게 되면 그때에 손댈 생각이었지만, 그럴 때가 오지 않았죠.”
아르티제아는 차가워진 손끝을 쥐고 가만히 손톱 끝에 시선을 두었다.
리아간 공작은 그전에 찍혀 나갔다. 밀염 때문이 아니라, 로렌스의 비위를 거슬렀기 때문이었다.
“그랬군요.”
“리아간 공작이 매년 소금 이익을 조금씩 증가시켜 보고한 것은 꽤 좋은 생각이었어요. 하급 관리들은 세수가 줄어들었다고 보고했다가 문책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니까요. 그리고 폐하는 연세가 드셨어요.”
자기 마음에 맞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보이는 대로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한 번 판단한 것을 고치기 어려워지고, 관계가 변화해가는 것을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는 것도 그렇다.
“보통 이상으로 격노하신 것에는 그 탓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깨닫지 못하고 리아간 공작을 신뢰한 당신 자신에게도 울분이 터지셨을 거예요”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특별히 역심을 품지 않았어도, 황제가 나이 들면, 신하들은 자연스럽게 미래를 생각한다.
후계자가 확립되지 않은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국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면, 적당한 때에 권력 이양을 시작해야 한다.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이제 그는 실패에 이어 자신이 기만당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까지 보여준 셈이 되고 말았다.
아르티제아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공작은 모두 끝났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것만이 남았다.
세드릭이 자신의 미간을 한 번 문지르더니, 아르티제아의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아르티제아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움찔하여 고개를 들었다.
세드릭이 침대에 털썩 누워서는 아르티제아의 올려다보았다.
“아…….”
“동이 트기 직전이라서요. 저는 이제 눈을 붙여야겠습니다.”
“네, 아……. 그렇죠.”
아르티제아는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세드릭의 곁에 누웠다.
세드릭이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