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9
악녀는 두 번 산다. 218화
로이가르 대공이 입궁한 것은 수도에 도착하고 사흘째 날이었다.
황제로부터 한 번 입궁하라는 재촉이 있었다. 그러나 가넷이 자리보전을 한 것이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어차피 카드리올의 두 번째 국서는 이미 황궁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여기에서 서둘러 변명을 하더라도, 황제는 의심을 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준비라도 충분히 해서 가는 게 나았다.
“무궁한 영광을 누리소서. 로이가르가 제국의 태양을 알현합니다.”
“먼 길 다녀오느라 수고했다.”
“폐하께서 맡겨주신 중요한 임무입니다. 다소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어찌 수고라 하겠습니까?”
로이가르 대공이 사양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집무 책상의 건너편에 시종이 가져다놓은 의자에 앉았다.
황제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타국에 사절로 다녀왔으니 알현실에서 만나는 것이 옳겠지만, 이게 정식 보고는 아닐 것이라 집무실로 불렀다. 너도 여러 사람 눈이 있는 자리에서 임무에 실패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원치 않을 테고.”
“황공합니다.”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끝까지 대화를 마치지도 못하고 협상 대상인 국왕이 반란으로 사로잡힌 데다가 자신도 강제로 송환된 셈이니, 실패했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에이멜 왕국에서도 고초를 겪었다지?”
“왕실의 내분에 휘말려 다소 곤란한 일을 겪은 것은 사실입니다.”
“처가 놀랐겠구나.”
“염려해주신 덕분으로 별일 없었습니다. 카드리올 왕자가 과격한 성품이기는 하지만, 태양이 하늘을 밝히고 있는데 감히 제국의 대공을 위협할 수 있겠습니까?”
로이가르 대공이 공손히 말했다.
황제가 팔걸이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로이가르 대공은 생각했다. 카드리올의 국서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
그가 국왕이 가져간 협정서를 얻었으리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에 관한 내용을 황제에게 알렸는가 아닌가에 따라 자신의 대응도 달라져야 했다.
‘그자는 분노에 넋을 놓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결국은 에이멜 내부의 문제.’
자신이 비록 국왕을 도와 카드리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긴 했지만, 카드리올 개인에게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카드리올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국 내부의 정쟁에 끼어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타국에서 공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랬다가 자신이 실각하지 않고 즉위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원한을 쌓는 셈이다.
그게 아니라 해도 감히 소국에서 제국 황족을 공격한다고 황제가 노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카드리올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편의를 봐주며 돌려보내준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에 기어이 원한으로 나를 실각시키려 한다면, 에이멜 왕국 따위에서 제국 내정에 관여하려 한다는 것으로 초점을 바꾼다.’
로이가르 대공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황제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까닥까닥 두드렸다. 아직 점심이 지났을 즈음인데도 눈언저리가 움푹 패어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렇지. 에이멜 따위가 짐의 동생을 위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예.”
“왕실의 내분이라……. 카드리올 왕자는 에이멜 왕비를 죽인 것이 에이멜 국왕이라 주장했지만, 계모의 죽음을 핑계로 군사를 일으켜 친부를 구금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구나. 반란이 아닌가?”
황제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정말로 왕비를 죽인 것이 국왕이었더냐?”
로이가르 대공은 들키지 않을 정도로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였다.
“황공합니다, 폐하. 무능함에 변명을 붙이고 싶지는 않으나 왕자가 군사를 일으킨 것은 제가 에이멜 왕국에 도착한 바로 그날의 일입니다. 왕비 암살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흠.”
“그러나 국왕이 왕비와 금실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건 왕자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였다고 생각됩니다.”
에이멜 왕비는 국왕과 열여덟 살 차이가 났다. 차라리 카드리올과 어울릴 연령이었다.
국왕이 왕비를 사랑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욕심 많고 속물적인 남자가 어리고 예쁘며 부유한 아내를 좋아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
거기에 더해 왕비는 국왕이 바라는 역할까지 충실하게 해왔다.
그러나 그 애정이 진실이었는가는 둘째치고, 오래 가긴 했을까?
그럴 확률은 낮았다. 왕비는 유능했고, 국왕은 유능하다는 이유로 아들마저 미워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것은 카드리올을 위협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왕자이거나, 국왕이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고 생각합니다.”
황제의 뒤에 서 있던 자가 움직였다. 그자의 이름은 퍼거슨이었다. 황제의 수사관 중에 신원이 알려진 몇 안 되는 자 중 하나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흘끗 그자를 쳐다보고,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말했다.
“그러나 에이멜 왕비가 리아간 공작가와 함께 남해 소금을 밀매하였고, 국왕이 그 실질적인 주인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로이가르 대공은 추궁당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이것은 그가 카드리올에게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표시하는 일이기도 했다. 카드리올이 에이멜 국왕을 친 것을 정당화시켜준 것이다.
더불어 자신도 이 사건을 황제에게 숨길 마음이 없었다는 표시를 한 것이었다.
“음…….”
황제가 애매한 소리를 냈다.
퍼거슨이 말했다.
“감히 일개 수사관 따위가 외무에 관해 말씀 올리기는 송구스럽습니다만, 에이멜 왕비가 밀염 같은 커다란 문제에 연루되어 있다면, 꼭 왕실 내부 문제 때문에 암살당했다고 볼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로이가르 대공이 퍼거슨을 노려보았다. 퍼거슨이 태연하게 말했다.
“소금 사업은 막대한 이권입니다. 리아간 공작가에서는 왕비와 자기들 사이에 아무 원한이 없는데 왜 왕비를 죽이겠느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동업자 간에 의견충돌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살인까지 가는 경우도 왕왕 있고요.”
“리아간 공작가가 정말로 범인이라면, 자기들 이름을 걸고 암살범을 왕비와 만나게 했겠는가?”
황제가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 퍼거슨이 대답했다.
“송구하지만 폐하, 어리석은 살인 범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리아간 공작이 직접 계획한 암살이 아니라 아랫사람이 저지른 일일 수도 있고요.”
퍼거슨이 한 번 말을 끊었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게 아니라면, 소금 사업에 개입하고자 하는 다른 누군가가 저지른 일일 수도 있겠지요.”
아마 마지막 말이 퍼거슨의 본론이었을 것이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퍼거슨은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개인적인 의문입니다만, 리아간 공작가에서는 에이멜 왕비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벗겨달라고 대공 전하께 청원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진상 조사를 위해서 가는 대공 전하께 왕비 시해의 동기가 될 수도 있는 핵심적인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말씀이십니까?”
“닥쳐라. 감히 나를 용의자로 보고 심문을 하겠다는 것이냐?”
로이가르 대공이 내뱉었다.
황제가 톡톡 팔걸이를 두드렸다.
“퍼거슨, 공적을 다투어 근거 없는 소리를 하지 마라.”
“황공합니다. 제가 수사를 시작하면 앞뒤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퍼거슨이 사죄했다.
그 사죄는 로이가르 대공에게 한 것이 아니다. 황제에게 했다 해도, 형식적인 말에 불과했다.
어차피 퍼거슨은 황제의 입과 손이었다. 그가 여기 있는 것도 황제를 대변해서 추궁하기 위해서일 것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말 했다.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데어리 포드라는 자는 저와 무관합니다.”
“그래.”
“리아간 공작가에서 받은 예물에 소금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리아간 공작가를 구원해주고, 소금 사업의 이권을 다소 나눠 받기로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약속받은 것은 동부에서 제가 지정한 상단에게 우선 거래권을 주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로이가르 대공은 주장했다.
“재무부 장부를 조작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에이멜 왕국과 손을 잡고 국제적으로 밀매하고 있었다는 것도 남부에 가서야 알게 된 일입니다.”
여기에는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었다.
재무부 장부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에이멜 왕비가 밀염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규모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남부에 가서의 일이 맞았다.
그리고 증거로 남은 것은 우선 거래권과 리아간 공작가에서 직접 준 소금 정도였다.
이것은 문제 삼는다 해도 큰 타격이 될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도매상에 소금을 넘기느냐 하는 것은 리아간 공작가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정도의 밀실 계약은 없는 경우가 더 드물었다.
받아들인 현물은 리아간 공작가의 보유분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협정서에도 소금에 대한 것은 일절 적혀 있지 않았다.
리아간 공작가의 청원을 받아들였다, 에이멜 국왕과 협정했다, 이 같은 것은 정치 논리에 의해 판단될 것이다.
황제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로이가르 대공은 손안에 땀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겉으로는 흔들림 없는 안색을 유지했다.
황제가 이내 부드럽게 말했다.
“네 뜻은 잘 이해했다. 나머지는 공식적인 보고를 받고 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예.”
“루덴 후작이 갑자기 그리된 일로 처가 충격을 받았을 터인데, 잘 위로해주어라.”
“예. 감사합니다.”
로이가르 대공은 몸을 폈다.
황제가 말했다.
“오늘 샬럿이 저녁을 먹으러 오기로 했는데, 어떠하냐? 네 처가 괜찮다면, 오랜만에 가족 간에 식사라도 함께할까? 위로하는 뜻으로.”
“죄송합니다. 오늘 약식으로나마 장인의 추모식을 거행하기로 했습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임종을 지키기는커녕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못했으니까요. 아내의 충격이 보통 큰 것이 아니라, 이렇게라도 작별 의식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구나. 잘 치르도록 해라.”
황제는 그렇게만 말했다.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테지만, 장인의 추모식을 한다는데 다른 말을 얹을 수는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황제에게 절을 하고 물러났다.
비서와 수행원들이 우르르 따라붙었다.
황궁에서 벗어날 때까지 로이가르 대공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퍼거슨에게 당한 모욕감이 스물스물 몸 안에 퍼져 불쾌감을 참기 어려웠다.
그는 곧바로 추모식장으로 향했다.
루덴 후작가에 차려진 추모식장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모두 고위 귀족과 그 직계, 가장 중요한 측근이었다.
밖에 따로 마련한 접대 장소에는 추모식장에 직접 들어오지 못하는 하급 귀족이나 신분이 부족한 상인, 지식인들이 모였다.
지금까지 로이가르 대공파로 여겨진 사람 거의 모두가 모인 셈이었다.
여주인의 역할을 맡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다가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시간이 촉박했는데, 훌륭하게 해내셨습니다, 처형.”
로이가르 대공은 미소 띤 낯으로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말했다.
황제와 정면 대결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그의 힘이었다.
증거는 없고, 남은 것이 정치 논리라면, 황제는 결코 그를 쉽게 밀어내지 못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