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20
악녀는 두 번 산다. 219화
그 뒤로 한동안 황제의 수사관들은 로이가르 대공을 건드리지 않았다.
비밀 조직이 은밀하게 움직여 특사단의 수행원을 조사하고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전에 핵심적인 실무를 맡은 자 몇몇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거나 가족과 함께 행방불명시켰다.
그런 물밑싸움은 치열했지만, 적어도 국정회의에서 정식으로 로이가르 대공을 죄인으로 논하자는 말은 없었다.
언론도 조용했다. 아르티제아는 헤젤을 통해 최대한 이 일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비록 수확제의 날에 레티샤에게 이적이 발현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홍역도 치르지 못한 아기니까.”
“비 전하께서는 설레지 않으세요?”
“레티샤가 황제가 되리라는 신탁이 내려온 것도 아니잖니? 설령 그런 신탁이 내려왔다 하더라도 나는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을 거야.”
“공연히 로이가르 대공 전하를 자극할 뿐이니까요?”
“그렇지. 벨몬드 지가 비록 살롱과 대학에서 제법 높은 권위를 갖고 있지만, 로이가르 대공 전하에게 미운 털이 박혀서 좋을 것은 없으니.”
헤젤의 질문에 아르티제아는 마치 대답을 잘한 학생을 보듯이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심 깊은 자라면 모를까, 슬슬 처음 이적을 목도했을 때의 충격은 가실 때가 되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지금 자신의 세력을 모두 모아 황제에게 맞서서 버티고 있다.
섣불리 그를 밀염 사태의 공범이라고 조사하여 처벌하려 하면 귀족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설령 레티샤를 지지한다고 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로이가르 대공을 편드는 자가 많았다.
기껏해야 뇌물을 받은 게 아닌가.
그 정도의 뇌물, 그 정도의 특혜, 그 정도의 밀실 계약은 그들에게 당연하게 허락된 것이었다.
황제에게 잡힌 약점이 있으니,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로이가르 대공이 앞에 나섰다. 그 뒤에 서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관료가 신흥 귀족과 평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귀족들이 일제히 맞서면 국정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황제의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치고 관료가 된 자라 하더라도 귀족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을 아예 맺지 않은 자는 없다.
하급 관리 같은 경우에는 아무런 연맥에 얽히지 않아도 감히 귀족들에게 대설 수 없었다.
국정이 마비되는 것 자체가 황제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군사력을 동원하여 갈아낼 수도 없었다. 그만 한 명분은 없었다.
헤젤이 물었다.
“지금까지 로이가르 대공 전하는 폐하께 정면으로 맞선 적이 없었잖아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는 걸까요?”
“그건 잘못된 단어 선택이로구나.”
아르티제아는 입가에 검지를 대며 말조심하라는 표시를 했다.
“폐하께서는 패배하시는 일이 없단다.”
그건 당위를 말한 것인지, 정말로 황제가 이길 것이라는 뜻인지 헤젤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폐하께서도 고심이 크시겠지. 대귀족을 쓸어낼 수 있는 명분은 기껏 해야 대역죄나 내통죄 정도니까.”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 마침내 리아간 공작 일가가 호송되어 왔다.
이미 죄목은 확정된 상태였다. 증거도 쌓여 있었다.
적어도 지난 5년 동안 재무부의 장부를 조작한 것은 틀림없었다.
수사관들은 폐쇄되었다는 소금 제조장 수십 곳에서 지속적으로 소금이 생산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새로운 소식이 도착할 때마다 빼돌린 소금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설령 리아간 공작이 공작가의 적통이었다 하더라도 도저히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황제는 리아간 공작을 대면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너무 기가 막혀 만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짐이 자네에게 그리 서운하게 대했던가?”
무릎 꿇려진 리아간 공작은 겁에 질려 있었다.
일이 잘될 때에는 한없이 잘될 것처럼 느껴졌다.
확장을 하고, 에이멜 왕비와 손을 잡을 때에도 내리막길에 들어서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금 사업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상업에 관심이 있는 자는 어지간해서는 그를 좋게 대접해주었다.
남부 사교계에서 위세를 부렸고, 때때로 수도에 올 때에는 로이가르 대공가와 에브론 대공가의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를 경시하는 자도 있긴 했다. 리아간 공작은 그들이 고루하고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선대 리아간 공작 부부와 친하여 원한을 가졌으리라고 믿었다.
그게 아니면 부유한 리아간 공작가를 질투하고 있다고 믿거나.
실은 그는 자주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그런 만큼 더더욱 자신이 진짜 리아간 공작인 것처럼 굴었다.
영광이 눈앞에 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렇게 황제의 노기 띤 얼굴을 마주하자 18년 전의 자신이 무의식 밑바닥에서 갑자기 얼굴을 내밀었다.
잊고 있었던 일들도 기억났다.
「짐이 자네를 택한 것은, 자네가 야망이 있으면서도 두려움을 알기 때문이라네.」
황제는 그를 굽어보며 그렇게 말했었다. 자식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아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냉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짐이 자네에게 바라는 것은 옥좌에 바쳐 마땅한 충성일세. 자네가 짐에게 충실하면, 짐 또한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할 것이야. 알겠는가?」
리아간 공작의 손끝이 벌벌 떨렸다.
지금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에이멜 왕비를 암살한 것은 대체 누구인가.
그 일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갑자기 사건이 불거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주위에서는 리아간 공작가 때문에 왕비를 암살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를 리 없다고 말했다. 재수 없는 우연이 겹쳐진 결과가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리아간 공작은 그런 궤계를 꾸밀 수 있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었다.
그레고르 황제였다.
원래부터 황제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의 경중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언제부터 준비했을까?
목을 조이듯 사방팔방에서 음모를 꾸미고 자신을 미끼로 삼아 진짜 목표를 낚아낼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온전한 정신으로 내린 판단이 아니었다.
경쟁자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황권을 다지기 위해 정적을 숙청하던 시절도 아니다.
황제에게는 이제 그렇게 음모를 꾸밀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리아간 공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떨림이 혈관을 타고 번져가 온몸이 후들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허.”
“제, 제가 욕심에 눈이 어두워 그만 감히 폐하의 것에 손을 댔습니다.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페르난도.”
“저, 저 같은 것이 목적이 아니실 것이 아, 아닙니까? 제, 제가 불충했으나 이미 거둬 가실 것을, 다, 다 거둬가셨으니 부디 이제 용서, 해 주십시오.”
황제는 허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리아간 공작이 야심을 드러내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기가 막히지 않을 것 같았다.
황제는 말하기도 싫다는 듯이 손짓했다.
리아간 공작을 호송해온 수사관들이 다시 그를 끌어냈다.
“폐하! 폐하! 잘못했습니다! 폐하!”
리아간 공작이 부르짖는 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멀어져 가다가 끊겼다.
황제는 안락의자에 몸을 푹 파묻으며 이마를 짚었다.
“소인배라서 택하였으니 이제 와 소인배라고 실망할 것도 없지.”
그러나 황제는 몹시 실망했다.
차라리 리아간 공작이 제대로 야심을 품고 목숨을 던질 각오로 꾸민 일이었다면, 배신이 뼈아플지언정 이토록 실망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멀리 볼 줄 모르는 줄은 알았지만, 제 몸에 닥칠 위험 정도는 계산할 수 있는 놈인 줄 알았는데.”
소금 결정이 반사하는 빛을 영광이라고 착각한 얼간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그 얼간이를 믿고 중요한 사업을 맡겼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시립해 서 있던 퍼거슨이 물었다.
“어떻게 처분할까요?”
“군주 기망죄와 내통죄로 목을 쳐라. 일가는…….”
황제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도 세드릭은 복도에 서 있을 것이었다.
열 살 아이는 부모를 기억할 수 있다. 다섯 살 아이라면 이름을 바꾸고 시설로 보내면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높지만, 열 살이라면 확실하게 원한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눈을 감은 채 손을 내저었다.
“열 살까지는 살려두되 이름과 성을 바꾸게 하고, 서부의 수도원으로 보내 각각 흩어두어라.”
어차피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가질 원한을 감당할 것은 자신이 아니다.
“리아간 공작에게서 다른 정보를 더 얻지 않고 그대로 교수형해도 되겠습니까?”
“됐다. 어차피 보어츠인가 하는 놈이 다 불지 않았더냐?”
“하오나 그것만으로는 로이가르 대공을 확실하게 연루시킬 수 없습니다.”
황제가 톡톡 팔걸이를 손톱으로 두드렸다.
아르티제아의 말처럼 그는 고심 중이었다.
황제의 손에는 보어츠의 증언이 있었고, 카드리올 왕자가 보낸 로이가르-이언츠-에이멜 협정서의 사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은 본래 비밀에 붙일 작정이었던 협정서를 공식 보고에 포함시켜 버렸다.
황제 특사로서 두 왕국과 무역에 관한 협상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실상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협정서 자체에 로이가르 대공 즉위 후의 무역 정책이 될 것이라는 뉘앙스는 조금도 남지 않게 신경을 썼다.
이언츠 왕국의 지원 약속이나 소금 같은 단어가 하나도 쓰여 있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언츠 왕국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도 역시 고작해야 소국에서 황제의 특사가 뇌물을 받은 일에 불과하다.
황제는 찬찬히 그 일들을 되새겨 본 다음 말했다.
“어차피 페르난도는 알지도 못하는 일일 게야.”
“예.”
퍼거슨이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그에게 이만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애당초 로이가르 대공을 연루시켜 숙청해야 하는가?
로렌스가 있었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리해서까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세력을 모아 감히 자신에게 맞선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적당히 세력을 약화시키는 선에서 그치고, 로이가르 대공을 살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하나도 뭉쳐 있다. 그러나 압박을 풀어주면, 내분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루덴 후작이 죽은 지금, 내분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 본인은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야 지지 세력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할 수 없다.
레티샤를 후사로 삼는다면, 세드릭의 세력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견제할 자도 필요하다.
‘동생이기도 하고.’
생각하다 말고 황제는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나, 자신이 한 일을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와.”
시종장이었다.
“폐하, 약 시간입니다.”
“벌써.”
황제는 의자에 파묻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약은 자잘한 지병과 건강 때문에 먹는 것이었다.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았으나 나이가 들고 기력이 예전 같지 않으니 거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시종장이 직접 기미했다.
황제는 쓴 약을 마시고, 시종장이 건네주는 꿀물을 받았다.
“샬럿이 보낸 건가?”
“예. 피오나 님과 함께 약초를 넣어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렇군. 왜 이렇게 조금인가?”
“의사가 단것을 조심하라고 한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손녀딸 정성인데.”
황제는 투덜거리며 작은 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