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22
악녀는 두 번 산다. 221화
마차가 멈추었다.
항구에서 수도로 오는 길에 에이멜 국왕은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자신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이 어디로 왔는 지를 알아챈 것은 시종이 문을 열었을 때였다.
“황궁으로 가는 게 아니었던가?”
에이멜 국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던 시종이 공손히 답했다.
“단기간 머무르실 것이 아니시니까요. 이쪽이 편하실 겁니다.”
에이멜 국왕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타국의 국왕을 불러다 놓고 당연하다는 듯이 장기간 머무를 것이라고 말하는 것부터, 황궁의 귀빈관에 처소를 마련하지 않은 것까지, 모두 다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그레고르 황제가 시종단과 근위대를 보내어 예의를 갖추었어도, 그것은 겉보기뿐이었다.
그러나 국왕이 저항할 도리는 없었다. 이곳은 제국의 심부였다.
“안으로 드십시오. 여독을 푸시고 나면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되실 겁니다.”
“음.”
국왕은 짧게 신음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저택이 화려해서 다소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그 마음을 알아챈 듯 시종이 말했다.
“폐하께서 황태자로 책봉되시기 전에 머무르셨던 저택입니다. 한때는 봄의 별궁이라고 불렸던 적도 있지요.”
“그런가.”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의 눈이 많은 황궁에 있는 것보다 이곳에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황궁에서라면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할 사람과 부대껴야 한다.
황후야 숙녀이니 존중한다 치더라도, 황제를 상대로 매일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것도 내키지 않는데, 현실적으로 로이가르 대공이니 에브론 대공이니 하는 자들도 자신보다 낮다고 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존중한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결코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은 그레고르 황제와 카드리올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에이멜 국왕을 제국 수도에 둠으로써 손상된 위엄을 되찾고자 했다.
카드리올은 자기 손에 부친의 피를 묻히지 않고 왕권을 손에 넣고자 했다.
지금 당장은 왕국 내의 무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귀족들을 순응시켰다. 국왕은 연금되었다.
그러나 국왕이 상왕으로서 버티고 살아 있으면, 결국 왕권은 둘로 갈라진다. 언젠가는 그를 추종하여 카드리올과 대립하려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국왕이 건강하게 살아서 에이멜 왕국 내에 있는 것 자체가 위험요소였다.
「네 이놈, 제아무리 크라테스가 제국이라 해도, 타국의 왕을 보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네놈이 나라를 팔아먹을 작정이로구나!」
「뭐, 어쩌겠습니까? 제국은 대국이고, 우리는 약소국인 걸요. 남해에서 콧바람 좀 세다고 해도, 제국에서 작정하고 우리를 압박하려고 하면, 사방팔방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와 교역하지 않을 겁니다.」
제국의 물산 없이 성장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이웃 나라와 교류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남해의 소국들에게 단교는 치명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두 해도 지나지 않아 아사자가 즐비하게 나올 것이다.
「부왕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수중에 넣고 휘두르셨던 무력과 금력은 모두 제국의 소금 사업에서 일부를 훔쳐 온 것이었습니다. 잊어버리셨나 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 소금의 주인과 맞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텐데.」
에이멜 국왕은 푸들푸들 떨었다. 그러나 반박하는 말은 고작해야 이런 것뿐이었다.
「제국 황제가 그렇다 해도, 네놈이 불충하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저는 그래도 부왕의 명예를 지켜드리려는 겁니다.」
「명예?」
「부왕께서 제국에 가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해명을 위해서 가시는 것이지, 죄인으로 가시는 게 아닙니다. 제국에서도 부왕을 예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카드리올……!」
「호화로운 것을 좋아하시지 않았습니까? 국정을 돌보는 것을 썩 좋아하지도 않으셨고요.」
「네 감히, 감히……!」
「제국 수도는 에이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화려한 곳이니, 아무 염려도 하지 말고 가서 마음껏 사치스 럽게 지내십시오. 생활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으시도록 내탕금도 넉넉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카드리올은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국왕에게 얼굴을 가까이 한 채 말했다. 그것은 이미 아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아들을 죽이거나 아들의 손에 죽은 왕이 되는 것보다는 비운의 왕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그는 제국 수도로 향하는 배에 실려졌다.
카드리올의 말마따나 예우는 충분했다. 표면적으로는 에이멜 국왕이 크라테스 제국 수도를 방문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이곳에 억류될 것이다. 한두 해가 지난 뒤에 에이멜 왕국의 국정 공백을 이유로 양위 조서를 쓰게 요구할 것이다.
카드리올은 그를 제국의 압력에 스러진 비운의 왕으로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카드리올 자신이 부친을 몰아낸 것이 아니라 제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레고르 황제는 비난을 받는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위상 높아진 셈이었다.
‘흥,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것 같으냐.’
국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시종이 그를 안내하여 무도회를 열 수도 있을 만한 큰 홀과 널찍한 응접실, 중후한 서재와 큰 드레스룸을 보여주었다.
저택은 만족스러웠다. 크기는 작지만, 품격은 에이멜 왕궁보다도 오히려 나았다. 국왕은 그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요리사와 정원사를 수배해두었습니다. 데려오신 자가 있다면, 물러가게 하겠습니다.”
“아니, 그대로 되었네.”
에이멜에서 데려온 요리사라고 해서 믿을 만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오히려 그레고르 황제가 신경 쓴 요리사가 나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제국에 도착하자마자 죽으면 입장이 곤란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런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었다.
“모처럼 제국 수도까지 왔으니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연락해야겠네.”
국왕은 그렇게 말했다.
일단 로이가르 대공과 접촉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종은 부드럽고 순종적인 얼굴로 말했다.
“이틀 후에 황제 폐하를 알현하시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푹 쉬시지요. 여로가 길었으니 피로하실 겁니다.”
국왕은 안색을 수습하지 못하고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시종은 그것을 알아봤을 것이면서도 낯빛을 바꾸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온천에서 떠온 물을 다시 데워 욕실에 준비해두었습니다. 폐하께서 안마사를 보내주셨고요. 목욕을 먼저 하고 나오시면,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에이멜 식으로 할까요?”
“……알았다.”
국왕은 자신이 영어의 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다.
* * *
어두운 다락방에 촛불이 하나만 일렁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먼지 쌓인 낡은 침대에 앉아 그 촛대 밑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에이멜 국왕은 항구에서부터 저택까지 근위대의 엄중한 경호 아래에 이동되었다. 외부인과 접촉할 기회는 없었고, 지금 저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왔다는 소식까지는 막지 못했다.
‘협정서를 미리 공개함으로써 변명은 할 수 있는 한까지 했어. 이 이상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지금 이대로 버티면서 사건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작정이었다.
뭔가 일을 벌인다면 후폭풍이 지나간 다음의 일이다. 일단 레티샤를 먼저 암살하고, 그다음 에브론 대공가를 음모에 빠뜨리든가 해야 했다.
하지만 에이멜 국왕이 쓸데없는 소리라도 나불거린다면, 만사가 허사였다.
‘설마, 본인에게도 불리한 소리를 지껄이진 않겠지.’
그러나 에이멜 국왕은 로이가르 대공과는 또 입장이 다르다.
본국에서 밀려나서 이곳에 왔지만, 반대로 그는 이제 더 이상 목숨의 위협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레고르 황제가 제시하는 것에 따라서는 없는 일까지 자백할 수도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는 알현 전까지 접촉해야 해.’
똑똑.
누가 문을 노크했다.
“어머니, 저예요.”
문밖에서 부른 것은 스카일라였다.
“들어오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스카일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초가 여섯 개 꽂힌 큰 촛대를 들고 있었다.
좁은 다락방이 한순간에 환해졌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왜 혼자 계세요? 춥고 습한데.”
“혼자 생각하기에는 여기가 좋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니?”
“어디에도 안 계셔서 찾아보고 있다 보니, 외할머니께서 이리 올라가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녀는 지금 루덴 후작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넷은 추모식이 끝나고도 루덴 후작가에 남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슬픔을 위로하고,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는 데에 손을 보태고 싶어했다.
그녀는 자신이 루덴 후작의 죽음을 가장 슬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루덴 후작가에 남아 있는 것도 가넷 자신을 위해서라고 여기고 있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래서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그녀가 가넷의 곁에 붙어 있는 것은, 순수하게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루덴 후작의 죽음에 관해 괜한 말을 가넷의 귀에 흘려 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후회하고 계세요?”
스카일라가 후작 부인의 앞쪽 바닥에 앉아 물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잠시 스카일라를 내려다보고는, 그녀가 루덴 후작의 암살에 관해 이미 알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버린 일은 어쩔 수 없지.”
“전략적으로서는 실패였을지 몰라도, 잘못된 일을 하신 건 아니에요.”
“사람을 죽이는 건 잘못된 일이다, 스카일라.”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략적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더욱.”
“어머니가 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제가 했을 거예요.”
물론 스카일라가 꿈꾸는 복수는 사고사로 종결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루덴 후작이 저 먼 시골로 쫓겨나 그가 그렇게 경멸하는 이들과 같이 흙을 파고 밭을 갈며 거기에서 나는 수확물의 1 할을 겨우 얻어 연명만 하다가 외롭게 죽는 것이었다.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어요.”
“잘된 일?”
“외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이제 루덴 후작가에서 야심을 가진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이모님을 이혼시켜요.”
스카일라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아시잖아요. 레티샤 공녀가 태어나는 바람에 상황이 너무 어렵게 되었어요.”
“…….”
“이번 일을 버텨내면, 기회가 올까요? 공녀를 암살해서 시간을 번다 해도 마찬가지예요. 아킴 주교 때 있었던 일을 잊으셨어요? 황제 폐하께서 그것을 빌미로 삼아 어머니와 이모부님을 역모로 몰 거예요.”
“스카일라…….”
“아니면, 에브론과 공녀를 모살하는 건 가능할까요? 대공비가 버티고 있는데?”
스카일라가 말했다.
“결국 이건 황제 폐하의 마음의 문제예요. 그리고 폐하는 이모부님을 후계자로 삼지 않으실 거예요. 이번 일이 있었으니 더더욱.”
“아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생각해본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어머니. 이모님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이모님을 이혼시키고, 에브론 대공비와 협상해요. 굴욕적인 조건이 붙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우리 집안과 루덴 후작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에요.”
스카일라가 그녀의 두 손을 제 손으로 꽉 잡고 간곡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