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24
악녀는 두 번 산다 223화
연회장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에이멜 국왕마저도 숨을 죽였다.
황제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네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느냐?”
황제가 노하는 것이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이안에게까지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이안은 등골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루덴 후작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몇십 배는 두려웠다.
그레고르 황제는 이십 년 동안 제국을 다스렸다. 이안이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황제였다.
그리고 비록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여염인처럼 살아왔으나 이안은 제국민이었다.
뿌리박힌 위엄과 반사적인 공포가 이안을 떨리게 했다.
이안은 자신이 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슬기롭게 처신하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황제가 싸늘한 눈으로 이안을 일별하고 에이멜 국왕에게 말했다.
“모처럼 자리를 마련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에이멜 국왕은 창백한 낯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환대해 주어 제법 좋아졌던 기분은 간 곳 없었다. 자신이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우연일 것 같지 않았다.
황제가 일어서서 내뱉듯이 말했다.
“연회를 속행하라. 너는 따라와라.”
그대로 그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가얀이 그를 수행하여 뒤따라갔다.
이안은 근위대원들에게 끌어올려지듯이 일어섰다.
이안은 제 발로 걸어가야 했다. 그러나 양옆에서 근위대원들이 바짝 붙어 따라왔으므로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황제의 휴게실까지 따라갔다.
황제가 털썩 소파에 앉았다. 이안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근위대가 어깨를 눌러 두 무릎을 다 꿇게 했다.
황제가 말했다.
“방자하구나. 고발할 것이 있다면, 조용하게 알릴 일이지, 이처럼 에이멜 국왕의 앞에서 짐의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이안은 대거리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너의 신분은 무엇이며, 누가 역모를 꾀했다는 것인지 소상히 고해라.”
“저는 카멜리아의 아들 이안이라 합니다. 고발할 자는 로이가르 대공입니다.”
“허튼 소리!”
황제가 팔걸이를 내려치며 고함을 질렀다.
이안은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움찔했다. 시종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로이가르는 짐의 친동생으로서 대공의 작위를 가지고 있다. 제1 계승권자이기도 하다. 너 따위가 어찌 이런 망발을 저지른단 말이냐!”
황제가 손을 내저었다.
“감히 황족을 무고하려 하다니! 루덴과 카멜리아에 대한 원한으로 눈이 멀어 한 짓이더냐? 끌고 가 불경죄로 다스려라!”
“증거가 있습니다!”
이안은 소리를 지르며 품에 손을 넣었다.
근위대가 재빨리 그를 양쪽에서 붙들어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불룩한 이안의 앞가슴에서 직접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보석함이었다.
남에게 맡기지도 못하고, 대놓고 들고 오지도 못하여 옷매무새가 이상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품에 넣어 왔던 것이다.
시종이 근위대의 손에서 보석함을 받아 들어 황제에게 한 번 보여주고 점검했다.
황제의 노기가 잠잠해졌다. 그것을 살피고 근위대가 이안을 놓아주었다.
이안은 말했다.
“제 아내가 로이가르 대공비의 시녀로 남부까지 따라갔다가,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알고 남몰래 역모의 증거를 제게 맡겼습니다.”
“네 아내란 게 누구냐?”
“카멜리아 가문의 스카일라입니다.”
이 말에는 황제도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스카일라를 가까이 아는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몇 차례 연회에서 부모와 함께 인사를 왔을 때에 만나 보았을 뿐이었다.
그밖에는 황후궁에 탄신연 준비를 위해 몇 번 드나들었다거나 아르티제아와 교분이 있다는 것, 영특하다고 소문이 났지만 아직 모친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카멜리아 후작 가문의 소후작이다.
상속 소송을 건 이안과는 대척점에 있을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확인하시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인데 거짓으로 아뢰어 무엇 하겠습니까?”
“어느 사원에서 결혼 서약서를 작성했느냐?”
이안은 망설이지 않고 사원의 위치를 댔다.
그 서약서는 스카일라가 남부로 향하기 전에 작성된 것이었다.
곧바로 효력을 발효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사원의 혼인 장부에 등재되도록 했다.
또 상호 약속을 어기면 한쪽의 뜻으로라도 혼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제약이 걸려 있었다.
그다음 일부러 수도 밖으로 벗어나 교외의 작은 마을에 있는 사원을 택하여 맡겨두었다.
그러나 스카일라가 돌아와 그와 같은 방에서 밤을 지새웠을 때에 결혼은 완전히 법적으로 성립했다.
황제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카멜리아 후작 부부가 알면 아주 기절하겠군.”
“이미 성인이 된 사람끼리의 일입니다. 이게 싸움을 크게 만들지 않고 수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사랑에 빠졌다고 말해도 황제가 믿지 않을 듯하여 이안은 그렇게 말했다.
스카일라와도 말을 맞춰놓은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종이 보석함에 아무런 장치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다음 황제에게 받들어 올렸다.
황제는 그 보석함 뚜껑을 열어보고 혀를 찼다.
“누구에게 받았다고 하더냐?”
“협정서에 국왕 대리로 서명한 이언츠 왕국 신하의 개인적인 선물이라고 합니다.”
“…….”
만일에 이것 하나만이라면, 어떻게든 변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공비가 철이 없어 받은 선물이라거나, 열어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협정서와 함께 본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진심으로 내키지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의 내심에 있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기회만 된다면, 자신을 암살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었다.
원한도 제법 있을 테지만, 그보다도 지위를 상실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황제는 지금 로이가르 대공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후계자로 삼을 만한 황족이 세드릭밖에 남지 않게 된다.
유일한 후계자라고 하는 것은 제2인자이며, 황제와 맞설 만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군주가 자신의 장자와 정적 관계에 있었던가.
그러나 후계자가 오로지 하나뿐이라면, 제거할 수조차 없었다.
‘레티샤가 있긴 해도, 아직 일러.’
황제는 보석함 뚜껑을 닫았다.
이안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만일에 이안이 은밀한 루트를 통해 고변했다면, 그는 보석함만 받아두고 이안을 제거했을 것이다.
언제든 원할 때에 이 증거를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제법, 똑똑했구나.”
황제는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괘씸했다. 이안도, 로이가르 대공도.
그러나 어쩔 도리 없었다.
이안은 공식 연회에서 역모를 고발했다. 이 일은 덮을 수가 없다.
역모라는 말이 나왔는데 눈을 감고 지나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타국까지 얽혀 있다면 말이다.
진짜로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라도 확인해야만 했다.
황제는 보석함을 내려놓고 시종에게 명령했다.
“이안 카멜리아에게 황궁의 객실을 내주어라.”
“아, 저는 처소가…….”
“가시지요.”
시종이 상냥한 낯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안은 이것이 절차의 편의를 위해 숙소를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연금하겠다는 뜻임을 깨달았다.
“아…….”
불안감이 솟구쳤다.
그렇지만 참았다. 이런 고발을 하고서도 아무 일 없이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재상과 퍼거슨을 불러와라.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어차피 일어났겠군. 아무튼 그 두 사람더러 들라고 해.”
“예.”
황제는 이번에는 가얀을 바라보고 말했다.
“자네는 근위대를 데려가 로이가르 대공저와 루덴 후작저를 포위하게.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황제가 명령했다.
“감히 타국에 나가 황제를 참칭한 대역죄인이다. 짐이 친히 신문하겠다.”
“명을 받드옵니다.”
가얀이 고개를 숙여 절하고 물러갔다.
황제는 뒷목을 주물렀다. 그의 곁에 남아 있던 시종이 눈치 빠르게 물었다.
“안마사를 불러올까요?”
“그게 좋겠구나.”
황제는 눈을 감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혼자 조용히 머릿속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날 밤에 일어난 혼란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황제는 연회를 속행하라고 명했지만, 제대로 연회가 이어질 수 있을 리 없었다.
악사들은 어색하게 연주를 계속했으나 춤추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아는 사람들과 모여 이게 무슨 일인가 웅성거렸다.
로이가르 대공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역모를 고발한 것이 카멜리아의 이안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더욱 그랬다.
지금까지 그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만큼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일단 일차적인 고비는 넘겼다. 밀염 사건에 대해서도, 협정서 문제도 흠잡을 데 없이 변명했다.
에이멜 국왕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협정서에 서명한 이상 에이멜 국왕은 로이가르 대공을 고발할 수 없었다.
세드릭과 암중에서 음모를 꾸미려 손이라도 잡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대로 황제가 그 일을 전부 흘려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는 물밑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 조사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실무자들을 단속했다.
황제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브레넌 백작이 저지른 일은 용서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상황 판단은 옳았다.
지금 사원과 백성의 지지를 받는 것은 레티샤였다. 브레넌 백작만이 아니라 황제도 세드릭이 레티샤의 생부로서 쥐게 될 권력을 염려할 것이었다.
그런데 역모라니.
이안 카멜리아 따위가 중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그 역모라는 것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었다.
브레넌 백작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제 보좌관 쪽으로는 전혀 들어와 있지 않은 정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간 이안 카멜리아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이건 에브론 대공가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뭐?”
“지금 에브론 대공비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로이가르 대공은 망설였다.
두 사람이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하고 있자 가넷이 끼어들었다.
“심각한 일인가요?”
“당신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소. 아니, 집에 돌아가 있는 게 좋겠어. 오늘 연회는 아마 이대로 중지될 거요.”
“당신은요?”
“여기 남아서 상황을 살펴야지.”
재상과 퍼거슨이 안으로 불려들어갔다.
연회가 사실상 파장이라는 것을 알고 돌아가는 자들도 있었고, 웅성거리면서도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남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근위대가 움직였다.
“이곳에 계셨군요, 로이가르 대공 전하.”
가얀이 그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아.”
“대공비 전하께서는 돌아가시는 쪽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불안해하는 가넷에게 친절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