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27
악녀는 두 번 산다 226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회의가 있기 전부터 훨씬 용의주도하게 도주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비록 수사관과 근위대가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비비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뿌린 뇌물과 쌓아놓은 인맥은 이럴 때에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황제의 앞에서 로이가르 대공이 반역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증거를 찾는 수사관들 앞을 가로막아줄 수는 없지만, 잠시 눈을 감는 것쯤은 해줄 수 있는 자가 많았다.
위장 마차를 세 대 준비하고, 빠져나갈 길의 병사들을 미리 파악했다.
하급 장교를 매수하고, 가는 길에 써야 할 현금도 미리 빼돌려 여러 장소에 숨겼다.
시녀 하나와 하녀 둘이 목숨을 걸었다.
시녀는 가넷의 옷을 입고 베일을 쓰고 저택에서 버틸 것이다.
하녀들도 각자 가넷으로 위장하고 가짜 마차에 탈 것이었다.
“염려 마세요, 마님. 저희는 마님의 은혜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가능한 한 멀리까지 가실 수 있도록 버텨보겠습니다.”
두 하녀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절을 했다.
이럴 때에 쓰려고 미리 가넷과 체형이 닮은 여자 둘을 골라 은혜를 입혔다.
그것을 알면서도 하녀들은 진심으로 말했다.
아무리 절박해도 제값을 다 주고 가난한 목숨을 사려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한 명은 가족을 병과 기아에서 건졌다. 한 명은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번에 살아남으면, 진짜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후원하고 있던 고아원에서 적당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골랐다.
아이들은 무슨 일이 생긴 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마냥 고운 옷과 좋은 마차에 설레어 했다.
이 아이들은 공녀와 공자로 위장하여 달아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준비를 모두 점검하고 가넷에게 갔을 때였다.
가넷은 멍하게 창가에 앉아 있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비 전하.”
불러도 가넷은 반응이 없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고개를 살짝 빼서 가넷과 같은 시선을 만들었다.
“무얼 보고 계세요?”
“근위대 병사들.”
가넷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정원에 돌아다니고 있어서…….”
“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역모 혐의의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로이가르 대공저는 거친 수색을 피했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황명도 없었다. 근위대나 수사관들로서도 황족의 저택을 무차별로 뒤지기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집에 있는 것은 가넷과 아이들뿐이었다. 굳이 위협을 가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로이가르 대공저는 포위되었다. 사람의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되었으나 금지되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하녀 옷을 입고 비밀통로를 통해 드나들어야 했을 것이다.
위험부담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물론 지금이라고 해도 위험부담이 없지도 않았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따라온 근위 기사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비 전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숨을 살짝 들이마시고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탈출 준비를 해뒀어요.”
가넷의 시선이 처음으로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돌아왔다. 그 눈빛은 지쳐 보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동부의 루덴 후작령으로 가시는 거예요. 어머님께서 함께 가실 거예요. 메이덜린도요.”
“가망이…… 없는 거지?”
“비 전하.”
“그러니까 도망치라고 말하는 거지? 언니는 이렇게 될 걸 다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형부와 스카일라, 루카는 벌써 도망 보냈던 거고.”
“아니에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부정했다.
남편과 아들을 빼돌린 것은 스카일라였다. 자신은 그렇게까지 할 작정은 없었다.
하지만 짐작은 했던 것 같다.
가깝게는 특사단의 배가 기항한 날 스카일라가 혼자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음날 오후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멀게는 아르티제아가 북부에서 돌아와 자신을 협박했을 때에.
더 멀게는 아르티제아가 올가의 심장을 달라며 찾아왔을 때에.
그녀가 위협적인 존재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을 원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카일라에게 아르티제아와 교분을 쌓으라고 말한 것도, 아직 어리니 자신과 대등해지려면 적어도 10년은 더 성장해야 하리라고 믿은 것도 자신의 책임이었다.
어쨌든 이제 판세는 바꾸기 어려웠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동부로 물러가 미래를 도모한다는 이들의 말에 찬동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미래는 이미 자신을 배신해버렸다.
가문의 번영보다도 자신의 소망을 우선시하는 것은, 자신이 진짜 귀족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비 전하께서 이곳에 남아 계시면 방해가 돼요.”
“언니.”
“지금처럼 비 전하께서 인질로 사로잡혀 있으면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서도 행동하기 어려워지세요. 동부로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대공 전하는 제가 어떻게든…….”
“난 언니의 마차에 타지는 않을 거야.”
가넷이 광채가 도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마 눈에 물기가 고인 탓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리라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생각했다.
“들었어. 언니가 배신자라고.”
“아니에요, 비 전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깜짝 놀라 언성을 높였다.
근위 기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넷이 젖어든 눈가를 손가락으로 닦았다.
“절대 언니의 마차에 타지는 말라고 하더라.”
“브레넌 백작인가요? 그자가 언니에게 무슨 소리를…….”
“아버지 이야기가 아니야. 내가, 스카일라에게 보석함을 바다에 던져 버리라고 말했었어.”
가넷이 갈라져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잠깐 목을 울렸다.
가넷의 말은, 자신이 루덴 후작의 죽음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스카일라가 한 일도.
거기에서 변명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몰랐다.
오히려 가넷이 말했다.
“브레넌 백작은 몰라. 내가 이야기 안 했어.”
“비 전하…….”
“언니는 알고 있었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또다시 침묵했다.
그녀는 보석함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다. 위브 자작 부인에게 남부에 있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모두 캐물어 자세히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이안 카멜리아가 역모를 고발했다고 들었을 때에, 그 증거로 보석함을 내밀었으리라는 것도 짐작했다.
그러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부정했다.
“보석함 탓이 아니에요.”
보석함이 어쨌단 말인가? 가넷은 진짜로 역심을 품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로이가르 대공은 역심을 품었다.
비록 황제가 되리라고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으되 차기 황제가 될 것을 전제로 그 협정서를 만들었다.
참칭한 것으로 죄를 받는다면, 가넷이 아니라 로이가르 대공이 죄인이었다.
그게 진실이다. 모든 책임은 로이가르 대공을 비롯하여 다른 귀족들, 가문의 뜻을 결정하는 가주들에게 있었다. 또 자신에게도.
가넷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이 시점에 이르도록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게 있다고 해도, 그것은 대부분 타인에게 유도된 것이다.
누구보다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넷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도망가지 않을 거야.”
“비 전하!”
“브레넌 백작의 마차에 타지도 않을 거야. 내가 달아나면, 그이는 어떻게 하겠어?”
가넷은 그렇게 말했다.
가슴이 뜨거웠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 벌어졌고, 감정적으로도 그랬다.
언니가 아버지를 죽이는 데에 손을 보탰다.
조카는 자신을 배신했다.
여태까지 서 있던 바닥이 모조리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까지 가넷은 자신의 삶이 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사랑하고, 아버지와 언니도 사랑했다. 때때로 화가 나기도 하고, 뭔가를 욕망하기도 하고, 매우 즐겁거나 슬플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합쳐도 그녀의 삶은 마치 허공에 매단 시렁 위에 얹힌 구름처럼 몽글몽글하고 허망했다.
그런 기분이 극도에 달할 때면 몸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을 때가 있었다.
안락한 저택을 박차고 나가면, 어딘가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 삶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하더라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제 와 가넷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굳어지고, 머리도 전에 없이 명징했다.
늘 보잘 것 없어 보였던 의무들이 아니라 이것이 진짜 자신의 의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 일로 언니를 원망하지는 않으려고. 아버지가 언니한테 그다지 좋게 대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 생각해보면 뻔하지.”
“비 전하…….”
“생각한 적 없어서 미안해. 나 같은 게 후작 영애라서 미안하고……. 언니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분명히 이런 일 안 생겼겠지. 아버지도 바라던 일 이루셨을 테고.”
가넷이 말했다.
“내가 이러니까, 스카일라도 언니를 지킬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도, 내가 그이 아내니까.”
가넷은 현명한 선택을 하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제시하는 것만큼 현명한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일이니,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데려가줘.”
가넷은 숨결이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위험한 일 하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사람 만나서 가정 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려운 일인 줄은 알지만, 부탁해. 내가 남아 있으면 그래도 좀 쉬울 테니까…….”
가넷이 한 번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가 놓고 일어섰다.
“언니를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거야. 원망은 안 할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니를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비 전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녀를 막아서지 못했다.
가넷은 자기 뜻이 거의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고집이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루덴 후작이 안 된다고 했는데도 자신을 시녀로 달라고 한 달 내내 매일 울고 굶으면서 졸라댔을 때처럼.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서 일부러 자신이 살고 있는 다락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뜻을 관철시킨 것은 가넷 자신이었다.
그게 비록 루덴 후작에게는 사소한 일이고, 또 이익이 있어서 들어준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