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29
악녀는 두 번 산다 228화
가넷은 꼿꼿한 자세로 황궁으로 들어섰다.
결심은 굳혔다. 하지만 마차 안에서는 계속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의외로 황궁 앞에서 내리자 의연하게 걸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다듬어온 우아한 자태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그녀는 걸었다.
모여 있던 노귀족들이 길을 열어 주었다.
“비 전하.”
“이런 곳에 왜 오셨습니까?”
가깝게 지내던 몇몇 귀족들이 염려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가넷이 나타날 자리가 아니었다.
동부로 몸을 피신해서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은 자라도 그 생각에는 모두 동의했다.
오히려 황제에게 약점만 내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실질적으로도.
하지만 가넷은 창백한 얼굴을 똑바로 들고 말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똑바로 퍼졌다.
걱정이나, 혹은 불평을 웅얼대며 왜 가넷이 이곳에 있는가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남편을 위해서 이곳까지 와서 힘든 순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저는 죄인으로서 이곳에 왔으나…….”
가넷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로이가르는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남편과 아이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가넷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연설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만일에 정말로 이 일이 자기 한 사람 벌 받고 끝날 수 있다면, 이들이 계속해서 남편의 힘이 되어줄 사람들이다.
만일에 남편까지 기어이 벌을 피해갈 수 없다면, 훗날 이들의 가문이 아이들을 지탱해줄 것이다.
달아나거나 배신할 수도 있는데, 이들은 그러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가넷은 순진할 정도로 그들을 믿었다.
작은 술렁임이 퍼졌다. 가넷은 루덴 후작의 적녀이자 로이가르 대공비의 신분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할 상대는 황제와 황후뿐이었다. 부모에게도 이렇게 정중한 태도를 할 필요 없었다.
가넷이 고개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길을 비켜주었다. 가넷은 망설이지 않고 황궁으로 향했다.
그 뒤를 몇몇 노귀족이 따랐다. 죽을 때까지 함께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로이가르 대공비의 뒤에 각 가문의 가주들이 모여 걷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의사를 표시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은 황제에게 압박이 될 것이다.
가넷은 죄인으로서 왔다고 했다. 그렇지만, 설령 용서를 빌기 위해 왔다 하더라도 이러한 집단행동은 의미를 띠는 법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자들이 또 뒤에 따라붙었다.
이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일을 모함이라고 주장할 셈이었다.
황제는 아직도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었다. 틀림없이 진짜 증거가 없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안 카멜리아와 그 배후를 조사하기 전까지는 물러나지 않으려 했다.
그 배후에 진짜로 에브론 대공비가 있는 게 맞다면, 그때부터 이 일은 역모가 아니라 정쟁이 된다.
하지만 가넷이 옴으로써 상황은 변했다.
사람들은 가넷이 구명을 청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작정이었다.
가넷은 본궁까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들어갔다.
황궁의 경비는 전시에 준하여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가넷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평소에 그녀는 로이가르 대공비로서 황궁 출입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현실 앞에서 처음으로 가넷은 길을 막는 사람과 만났다.
세드릭이었다.
가넷은 놀라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돌아가십시오, 숙모님.”
세드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입니까?”
뒤에 바로 붙어 따라오던 하멜턴 자작이 앞으로 나서며 대거리했다. 가넷을 지키려는 듯한 동작이었다.
“같은 대공가의 신분이라 하나 엄연히 숙질의 차이가 있습니다, 에브론 대공 전하.”
“이렇게 직접 나서는 것을 보니, 드디어 야욕을 드러내시려는군.”
하멜턴 자작의 말에 뒤이어 저 뒤에서 비난이 나왔다.
세드릭은 그런 비난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신 가넷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시면 안 됩니다, 숙모님.”
“에브론 대공가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가넷은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했다.
그녀는 세드릭과 교분이 거의 없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마주쳐 인사를 하더라도 기껏해야 몇 마디 의례적인 안부를 건네는 것이 다였다.
아르티제아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이번에는 진짜로 친척다운 교류를 해보려고 생각했었다.
회임한 것을 알았을 때에도 생각했었다. 비록 아이들이 오촌 숙질간이 되겠지만, 그래도 친척이 거의 없고 나이가 가까우니 남매처럼 교류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계속해서 여러 일이 터지고, 또 자신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 이 순간까지도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세드릭은 마치 오라비나 되는 것처럼 말했다.
“진실한 마음으로 결정하신 일인 줄은 압니다. 하지만 숙모님께서 책임지실 일이 아닙니다.”
“책임은 행한 자가 지는 게 맞지 않나요?”
“말씀은 옳습니다만……. 옳은 마음으로 행한다고 해서 늘 옳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
“지금 숙모님께서 이렇게 나서시는 것은 폐하께서 바라시는 상황을 만들 따름입니다.”
세드릭은 그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반응하지 않으시는 것은 로이가르 대공을 살리기 위해서일 거예요.」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어떤 자들은 폐하께서 진짜 증거가 없기에 지금까지 그것을 내놓지 않고, 협정서에 관계한 자들을 잡아들여 자백을 받아내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지만요.」
그자들이 이안의 배후로 자신을 지목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아르티제아는 헛웃음을 쳤다.
만일에 자신이 음모를 꾸며 참소했다면, 절대로 들키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증거를 위조했을 것이다.
혹은 황제가 대신 위조해주고 싶을 만큼 그의 마음에 차는 상황을 만들었든가.
「그 증거는 대공비에 관계된 것이에요. 스카일라가 로이가르 대공의 주변에서 중요한 증거를 빼돌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숙모님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뜻이군요.」
그만 하면, 역모 사건을 마무리 짓기에 충분한 거물이면서, 독단적으로 저지른 실수라고 주장할 수 있다.
로이가르 대공을 살려주기에는 적당한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동부 귀족의 혈통에 이어진 황족도 제거할 수 있다.
제국의 권력 다툼은 결국 황제의 자리를 두고 벌어진다.
동부 귀족 세력은 황실의 피를 잃어버림으로써 정통성을 주장할 방법을 상실한다.
「로이가르 대공과 동부 귀족 세력을 분열시킨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겠죠. 폐하께서는 로이가르 대공의 약점과 동부에 손을 댈 기회를 함께 얻으시게 될 거예요.」
원망은 로이가르 대공에게 쏠릴 것이다. 황제는 그를 방패로 내세울 수도 있고, 명분으로 내세울 수도 있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저는 판단의 가부를 결정하는 자가 아니에요.」
아르티제아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목적은 세드릭 님이 즉위하시기 전에 폐하의 손을 빌려 동부를 치우거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두는 것이에요. 로이가르 대공비를 반드시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요.」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세요.」
그래서 세드릭은 이 자리에 서 있었다.
황제가 의도하는 정국 때문에 가넷이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기를 바라서.
옳다고 생각한 일이 늘 결과마저 옳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당위대로 행동했어도, 그조차도 그저 음모가들의 실이 당기는 대로 움직인 결과일 수 있었다.
크라테스의 정계는 외눈박이 괴물들의 세상이다. 가넷은 그 사실을 알아야 했다.
“사실이 늘 진실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숙모님께서 행한 일이 사태의 도화선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원인은 결코 숙모님이 아닙니다. 숙모님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여러 사람의 욕망과 사정, 황제의 체면이 뒤얽혀 생겨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엮어 폭탄으로 만든 것은 아르티제아였다.
그 안에서는 오히려 가넷만이 죄가 없었다.
차라리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아르티제아에게, 또 자신에게 있었다.
“고마워요.”
세드릭이 진심으로 말해주는 것을 가넷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말을 누르고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하지만 제게는 책임이 있어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로서의 책임, 아이들 엄마로서의 책임이요. 그건 제가 선택한 거예요.”
가넷은 맑은 눈으로 세드릭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숙모님께서 다치는 것은 숙부님도 바라시지 않는 일일 겁니다.”
“…….”
세드릭은 마지막으로 말해보았다. 하지만 가넷이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은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자신에게 먼저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가넷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드릭은 옆으로 비켜났다.
가넷은 우아한 걸음으로 열린 길을 걸어갔다. 그 뒤를 노귀족들이 따랐다.
여러 귀족들이 세드릭에게 기묘한 시선을 던졌다. 둘 사이에 오간 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세드릭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가넷에게 말을 건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던 것이다.
마침내 행렬의 꼬리가 보였다. 그 행렬은 어떻게 보면 장엄하게까지 느껴졌다.
좀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프레일이 세드릭의 옆으로 왔다.
“저 자리의 맨 앞에 선 것이 대공이 아니라 대공비라는 게 기분이 이상합니다.”
“어쩔 수 없지.”
세드릭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숙부님에게 가봐야겠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프레일이 대답했다.
“비 전하의 명으로 이미 시종을 보냈습니다.”
“그래?”
세드릭은 달리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기분으로 밖으로 향했다.
황제는 알현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가넷이 황궁에 왔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다. 귀족들이 그 뒤에 따라 붙었다는 것도 들었다.
‘무엇을 하러 온 건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가넷은 매우 무력한 존재였다.
만일에 다른 자들이 부추기고 그 기세에 몰려서 왔다면, 혼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와는 관계없이 남편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구명을 탄원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겠지.’
루덴 후작가에서 그녀를 혼자 움직이도록 놓아두었다는 것이 우선 납득 가지 않았다.
‘소후작은 그 정도도 생각할 수 없는 그릇이었나?’
제법 골치 아픈 자였던 루덴 후작에 비해 인상이 픽 흐린 그 장남을 떠올리고 황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로이가르 대공비께서 알현을 청하였습니다.”
“들여라.”
황제가 말했다.
문이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