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
악녀는 두 번 산다 23화
로이가르 대공비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맏언니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어머니처럼 따른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카멜리아 후작가는 로이가르 대공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 이름이 나올 것이리라고는 세드릭도, 프레일도 상상하지 못했다.
여자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거의 전 재산을 털어서 성녀 올가의 심장에 투자하셨어요. 이익을 많이 보려고는 생각하지도 않으셨고요. 그런 유서 깊은 보석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보석상에게는 상당한 경력이 되니까요. 하지만 이 빛바랜 종이 한 장만 남았네요.”
평민인 화이트로서는 서명된 계약서와 어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재판에 그것을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판사가 감히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상대로 평민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주겠는가.
“이것 때문에 아버지는 파산했어요. 돌아가시던 날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하시다가 쓰러져 급사하셨죠. 그자들이 저희 아버지를 죽인 셈이에요.”
그녀는 호소하면서도 세드릭이 무얼 어떻게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의 어느 누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위해서 고위 귀족과 싸워주겠는가.
하물며 귀족이 평민을 위해서.
사연 이야기를 한 것은 서럽고 억울해서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예의 바르게 대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족인 세드릭에게 그 원망을 전가한 것이었다.
세드릭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음의 액면가에 이자와 약간의 위로금을 더한 금액으로 모든 서류를 인수했다.
“이건 이제 종이쪼가리나 다름없는 것이에요. 태워 버리지 않은 것은 아버지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기 때문이에요.”
“화이트 씨에게라면 그랬겠지.”
그러나 세드릭에게는 다르다. 그가 가진 서류를 부정하거나 의심할 수 있는 재판정은 없다.
여자는 눈물을 다 거두지 못한 채로 인수계약서에 서명했다. 이것으로 성녀 올가의 심장의 소유권은 그에게 이전되었다.
몇 마디 위로의 말을 더하고 두 사람은 화이트 가를 떠났다.
세드릭은 우선 수도의 에브론 대공저로 귀가했다. 군영까지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늦었던 탓이다.
겉옷을 벗어 하인에게 던져주고 그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술 생각이 났다.
그것을 알아챈 듯 프레일이 선반에서 브랜디 병과 잔을 내려서 가져왔다.
세드릭은 프레일에게 브랜디 잔을 받아들었다.
“흥미롭더군요.”
프레일의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흥미?”
“저는 로산 후작 영애가 값진 보석을 청혼 선물로 요구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설마 로이가르 대공과 연관된 이야기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밀라이라와 그 딸은 다르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이해 갑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밀라이라의 딸이라고 부르더니, 이제 마음이 바뀐 모양이었다.
“나는 생각하지 못했었어.”
“어떻게 할까요? 로산 후작 영애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과 싸울 명분을 전하에게 쥐어 주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돌려달라고 소송하면, 카멜리아 후작가의 명예를 완전히 뒤엎어 버릴 수도 있겠는데요.”
세드릭은 미묘한 기분으로 프레일을 바라보았다. 프레일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량한 상인이 보석을 빼앗기고 파산에 이른 끝에 사망하고, 그 어린 자식들만 남은 사건입니다. 게다가 화이트 양은 제법 예뻐요. 큰 스캔들이 될 겁니다. 전하께서 청혼 선물을 구하다가 생긴 사건이라면 더더욱이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명예를 더럽히자고 화이트 일가를 대중 앞에 끌어낼 생각은 없네. 숙녀의 명예를 진창에 처박는 싸움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가?”
카멜리아 후작 부인만이 아니라 화이트의 딸과 아르티제아까지 추문에 휩싸이게 된다.
화이트의 딸은 그나마 동정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그녀는 다칠 것이다. 이런 추문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못 된다.
심지어 아르티제아의 경우, 훌륭한 다이아몬드를 원했다는 이유로 밀라이라의 딸이 탐욕스럽기까지 하다는 악평을 듣게 되리라.
“차라리 다이아몬드를 얻지 못했으면 못했지, 그럴 수는 없네.”
“하지만, 전하.”
“그리고 후작 부인은 단순히 귀한 선물을 받았을 수도 있어. 적어도 그렇게 말하겠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한 가문의 가보가 될 정도로 귀한 보석인 데다가, 심지어는 황후 폐하의 시녀가 자살함으로써 멸문한 가문의 가보입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뒤가 구린 구석이 없다면, 이미 사교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랑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도로프 보석상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그 보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 하더라도 공개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위험 부담을 안고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곧, 후작 부인은 그 보석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선물이 아니라면 뇌물로 준 거겠죠.”
“선물이든 뇌물이든 뭐가 다른가? 로이가르 숙부님은 돈을 좋아하고, 재물을 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 로이가르 숙부님이 뇌물을 받는 건 딱히 비밀도 아니고, 주변 사람도 마찬가지라네.”
세드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뇌물을 좀 받았다고 해서 로이가르 숙부님이 그녀를 내칠까? 그럴 리가 없지. 하물며 숙녀에게 주는 보석만큼 순수한 선물이라고 말하기 좋은 것도 없는데.”
“그러면 준 놈이 구린 놈이겠죠.”
프레일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
세드릭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이 잔을 기울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단순히 보석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소송을 하면 된다.
먼저 소송을 걸고, 그다음 물밑에서 협상을 한다. 아마도 서로의 명예와 손익을 따져 적당한 액수에서 합의를 본 다음 돈을 주고 다이아몬 드를 인수받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그에게 요구한 것이 진짜로 그것인가?
갖고 싶은 다이아몬드가 누구에게 있는지 몰라서 그녀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시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해하기 쉬우실 거예요. 성녀 올가의 심장을 손에 넣은 뒤에도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게 청혼해 주세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고 세드릭은 생각했다.
자신이 아르티제아를 이해하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르티제아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내놓고,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옛날이야기 생각이 나는군.”
“옛날이야기요?”
“동방의 어느 아름다운 공주가 자기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으면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아, 그거요.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끝에 어느 거지 소년이 지혜를 발휘해서 문제를 전부 풀고 공주와 결혼하는 이야기였죠?”
“그래.”
세드릭은 문제가 이 하나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아르티제아의 말이 틀리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아주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그리고 로산 후작가 깊은 곳에 들어앉아서도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되돌아가보지. 로산 후작 영애가 요구한 것은 성녀 올가의 심장이야. 공식적으로 그 다이아몬드는 지금 이츠 남작의 수중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이츠 남작에 대해서 좀 알아보죠.”
프레일이 말했다.
그가 집사를 시켜 귀족 연감을 가져오게 하는 동안 세드릭은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아르티제아의 목적은 보석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포석인가?
그러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추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
후작 부인과 개인적인 원한이 있거나, 사교계에서 위세 싸움을 하는 게 목적이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이가르 대공의 세력에 타격을 입힐 만한 일은 못 된다.
게다가 세드릭은 아직은 로이가르 대공과 싸우기에는 너무 이르다.
우선은 중앙 정계에 중량감 있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우선이었다.
프레일이 귀족 연감을 뒤지며 말했다.
“있습니다. 이츠 남작. 본래의 작위명은 란드 남작이었군요. 란드 남작가의 상속녀와 결혼을 하면서 가문을 상속받았는데, 성을 자기 것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사실상 작위를 사들였다고 봐도 되겠군요.”
“많이 부유한 모양이군.”
크라테스 제국에서는 엄밀하게는 작위를 사고 팔 수 없다.
그러나 몰락가문의 상속자와 결혼하면서 배우자가 대신 작위를 상속 받고, 성을 바꾸는 방식으로 작위를 주고받는 일은 간혹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난 뒤에 거액의 위자료를 주고 이혼하면 가문의 주인이 바뀐다. 편법으로 작위를 거래하는 방법이었다.
“이츠 남작이요?”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의 주위를 지키고 서 있던 호위 기사 중 하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왜? 대닐. 뭐 아는 거라도 있나?”
“란드 남작의 딸과 결혼한 이츠 남작이라면 도박장 주인입니다. 폰틴 가에 본점인 큰 도박장이 있고, 제법 규모 큰 도박장이 수도에만도 서너 개 있습니다.”
“귀족이 도박장 사업에 직접 손을 대다니, 그것도 놀랍군.”
프레일이 고개를 들고 기사를 꼬나보았다.
“대닐, 왜 이렇게 잘 알아? 설마 도박에 손을 댄 건 아니겠지?”
“설마요!”
대닐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제 동생이 좀 양아치 같은 놈이라서 이츠 도박장에서 빚을 진 적이 있습니다. 그거 몇 번 갚아주다 보니 알게 된 겁니다. 불법 도박장이면 엎어버리려고 했었거든요.”
“그랬는데 생각보다 뒷배가 단단했다 이거로군.”
프레일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또 수상하다는 눈으로 대닐을 바라보았다.
“그 과정에서 설마 에브론 대공가의 이름을 팔아먹지는 않았겠지?”
“절 어떻게 보고 그러십니까?”
대닐은 억울한 얼굴을 했지만, 틀림없이 어느 정도는 대공가의 이름을 팔았을 것이었다.
세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됐어. 그보다도 도박장 주인이라니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대강 알 것 같군. 아마 로이가르 숙부님의 마르지 않는 돈줄 중 하나인 거겠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은가?”
프레일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양민이 도박장 주인에게 등쳐 먹히고 죽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몰랐으면 모르되, 알고서도 못 본 척하실 수는 없는 분이시죠.”
“맞아.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세드릭이 일어섰다.
아르티제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모범 답안을 내놓으려고 애쓸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제 이 일의 끝에 무엇이 나올지 궁금했다.
세드릭을 따라 일어선 프레일이 물었다.
“지금 움직이실 겁니까?”
“도박장이라면, 지금이 한창 시간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
프레일이 싱긋 웃었다.
“기사대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러고 그가 앞서서 뛰어나갔다.
세드릭은 혼자서 천천히 브랜디 잔을 모두 비웠다. 아르티제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