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0
악녀는 두 번 산다 229화
알현실 문이 활짝 열렸다.
가넷이 제일 먼저 앞장서서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귀족들이 뒤따라 꿇어 앉아, 넓은 알현의 절반을 채웠다.
황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넷은 뒤에 선 사람들에게 짓눌려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뒷받침으로 삼아 힘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가넷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넷이 황제 폐하를 알현합니다.”
인사말은 간략했다. 신분을 따로 밝히지 않은 것은 이 자리에 개인으로 왔다는 뜻이었다.
“죄를 청하러 왔나이다.”
그러자 잠시 뒤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가넷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황후를 참칭한 것은 저입니다. 귀한 보석함이 욕심 나 그것이 대역인 줄 알면서도 앞뒤 가리지 않고 받았습니다. 남편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습니다.”
“비 전하?”
노귀족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이것은 그들이 생각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벌하여 주십시오. 저를 벌하시고, 남편과 다른 이들에게는 저를 제대로 권계하지 못한 책임만 물어 주십시오.”
가넷이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엎드렸다.
황제는 웃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초조하게 방을 빙글빙글 돌았다. 정원에 귀족들은 가넷의 뒤를 따라가고 남아 있지 않았다.
“여봐라. 폐하께 내가 알현하고자 한다고 청해라.”
경비병들은 그 말을 듣고서도 움찔도 하지 않았다. 따로 받은 명령이 있는 듯했다.
로이가르 대공은 어쩔 줄을 모르고 다시 방을 빙빙 돌았다.
가넷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구명을 청하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 쪽이 나을 것이다.
다른 자들에게 부추겨져서 이 일이 에브론 대공가에서 꾸민 음모라고 주장하려는 것일까.
그런 일이야말로 가넷이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보석함, 보석함…….’
가넷이 스스로 온 것이라는 사실은 로이가르 대공도 알 수 있었다. 주위에서 흔들어서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라면 태도가 달랐을 것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가넷은 수도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때였다.
시종 하나가 방의 물병을 바꾸러 왔다. 화병을 대신하는 신선한 과일바구니도 함께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를 흘끗 쳐다보고 가까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시종이 과일바구니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로이가르 대공에게 낮은 목소리로 전했다.
“대공비 전하께서는 스스로 죄를 청하러 오셨습니다.”
“뭣?”
로이가르 대공은 몸을 일으켰다.
“그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시종은 오래된 물병을 챙기며 여상하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를 따라가려 했다. 경비병들이 장창을 교차시켜 그를 막았다.
로이가르 대공은 그 자리에 굳어졌다.
소리를 지르고 억지로 뛰쳐나가려 했다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황족이었다. 그 몸에 흐르는 피는 감히 황명 없이 타인이 흘리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창칼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작정 몸을 내밀 수도 있었다.
혹은 황제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황제는 그의 결정을 기다리겠노라고 말했다. 지금 그 결정을 하겠다고 시종에게 전달하라고 할 수도 있었다.
감시를 달고 알현실로 가는 것이라면,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로이가르 대공은 발을 내딛지 못했다.
가넷이 죄를 청한다. 아마도 자신 대신 희생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황제의 제안은 그가 받아들이지 않아도 이루어졌다.
로이가르 대공은 도로 소파로 돌아와 주저앉았다. 팔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소식은 그 이상 전해지지 않았다.
저녁을 가져오는 시종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
결론이 난 것은 해가 지고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석방되었다.
* * *
브레넌 백작은 황제의 앞에 엎드려 있었다. 황제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놀라운 일이지, 안 그런가?”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가넷이 자백하러 온다는 것은 브레넌 백작이 상정한 적도 없는 이야기였다.
황제에게 그럴 가능성에 대해 보고하지조차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식 농사라 하더니, 루덴 후작도 실패했어.”
황제가 혀를 끌끌 찼다.
전부터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루덴 소후작보다는 훨씬 루덴 후작을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하긴, 루덴 후작이 살아 있었다면, 대공비도 이렇게 나서지 못했겠지.”
“…….”
“재미있지 않은가? 루덴 후작이 낳은 자식이 열 명도 넘는데, 그중에서도 영특하고 판단력 있는 자식은 모두 사생아였어. 적자와 적손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제 머리로 생각할 줄을 몰랐는데.”
황제가 깍지를 끼고 몸을 뒤로 젖혀 등받이에 잠시 뻣뻣한 뒷목을 기대었다.
“그중에서도 아비가 가장 생각이 모자라고 어리석다고 여긴 딸이 가장 중요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군.”
브레넌 백작은 머리만 조아렸다. 황제가 딱히 자신을 향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입가를 비틀었다.
결국 루덴 후작 자신이 자식의 타고난 자질을 비틀어 발휘하지 못하게 한 것인가, 하고 생각하면 씁쓸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못 가르쳐 자식을 망쳤다는 말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황제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냈다.
그리고 브레넌 백작을 굽어보며 말했다.
“그러나저러나 경은, 결국 분열을 일으키는 것에도 실패하고, 군사를 일으키게 하는 것에도 실패했으며, 심지어 십여 년을 살피고도 대공비의 측근에게서 제대로 된 정보 하나 빼내지 못했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변명 한 마디 정도는 해보라고 독대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닌가.”
황제가 싸늘하게 말했다.
“왜? 이제 에브론 대공비가 한 일이라고 주장해도 판세를 뒤집지 못할 것 같으니 의욕이 나지 않는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하오나 폐하, 이 일에 에브론 대공비가 개입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브레넌 백작은 엎드린 채로도 확고하게 주장했다.
“이안 카멜리아에게 연회의 초대장을 구해준 것은 에브론 대공비의 시녀입니다. 그자가 머무르고 있었던 곳도 에브론 대공저의 별채입니다. 십중팔구 수도로 불러들인 것은 에브론 대공비일 겁니다.”
“짐이 조사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가?”
“에브론 대공은 감히 폐하의 수사관들을 저택에 들이는 것을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정식 수사관과 근위대가 별채를 수색했네.”
요컨대 공개적인 절차를 밟은 수사만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세드릭이 할 만한 일이었다.
“사실 할 것도 없었지. 이 같은 일을 일으키면서 증거를 남길 만큼 에브론 대공비가 허술하지도 않으니까.”
“하오나…….”
“짐을 상대로 얕은 수작을 부리지 말게, 브레넌 백작.”
브레넌 백작은 배에 힘을 주고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생각은 추호도…….”
“이제 와 에브론 대공가를 끌어들이려 해도 끝난 일일세. 로이가르 대공비가 자백해 버렸네.”
“하오나…….”
“에브론 대공비가 수작을 부렸든 아니든 지금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니고.”
황제가 말했다.
“에브론 대공비가 이안 카멜리아를 불러들였지. 상속 소송을 걸게 했을 수도 있고, 이안 카멜리아에게 자금을 대줬을 수도 있어.”
“예.”
“그러나 결과적으로 작금의 사태를 일으킨 것은 스카일라 카멜리아야. 본래부터 존재했던 루덴 후작가와 카멜리아 후작가의 갈등이 가시화되었을 뿐이네.”
나머지는 모두 파생된 결과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루덴 후작을 암살한 경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터.”
황제는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턱을 괴며 브레넌 백작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경 역시도 에브론 대공비에게 속아 저지른 일이란 말인가?”
그 말에 브레넌 백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본래는 루덴 후작이 에브론 대공령의 약점을 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했다. 에브론 대공비가 제위를 노리고 로이가르 대공을 공격할 개연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루덴 후작을 암살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결정이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때마침 로이가르가 수도를 비웠지. 경은 기회주의자에 지나지 않아. 이 기회에 동부 세력을 경의 것으로 재편하고자 한 것뿐이겠지.”
“폐하, 저는 폐하의 밀명을 잊은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능한 탓이로군. 에브론 대공비가 사람 하나를 불러들여 일으킨 균열을 경은 10년 동안 내부자로 있으면서도 만들지 못했단 말인가?”
브레넌 백작은 굴욕감을 느꼈다.
균열을 내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로이가르 대공 파벌 안에서 루덴 후작과 맞섰고, 적지 않은 수의 동지를 만들었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능했다. 황제가 말하는 것과 다른 의미에서였으나 틀림없이 그러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루덴 후작을 죽이고 그 자리에 들어가려고 했다. 로이가르 대공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황제에게 자신의 공적을 주장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하나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로이가르 대공은 추모식을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맡겼다.
대공비는 황제에게 자백함으로써 에브론 대공가를 끌어들여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려던 계획까지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실패했으니 굴복해야 했다. 브레넌 백작은 종순하게 물었다.
“제가 앞으로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황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분열을 일으키라고 로이가르 대공 파벌에 심어놓았더니, 오히려 제가 권력을 쥐고 휘두르려 했던 브레넌 백작의 행위는 괘씸했다.
그러나 이번 일의 결과가 그럭저럭 만족할 만했다.
로이가르 대공이 직접 가넷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가넷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로이가르 대공은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브레넌 백작은 필요한 후속 조치에 쓰기 적당한 자였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 배신할 우려를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경은 동부로 도주하게. 굳이 거기에서 무슨 행동을 일으킬 것은 없어.”
“예.”
“로이가르 대공이 대공비를 보호하지 않고 대신 희생양으로 내밀었다는 루머를 퍼뜨리게.”
그것 말고도 황제는 브레넌 백작에게 몇몇 자잘한 명령을 내렸다.
가넷의 의연한 태도와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자백을 했음에도 순순하게 뒤를 따르기로 결정한 노귀족들의 행동은 훗날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다.
브레넌 백작이 물러가고 나자 퍼거슨이 서재로 들어왔다.
“로이가르 대공비는 지하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예우를 갖추었습니다.”
“알았다.”
황제는 퍼거슨에게도 비밀 조직을 통해 가넷에 대한 유언비어를 유포하도록 명령했다.
동부에 긍지를 남겨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