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2
악녀는 두 번 산다 231화
키쇼어는 크게 경악하여 벌떡 일어섰다.
헤일리와 헤젤은 물론이고, 그런 일에 대해 잘 모르는 미엘르마저도 놀라서 입을 벌렸다.
아르티제아는 동요를 숨기기 위해 찻잔 안으로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리고 침착하게 물었다.
“달리 전한 말은?”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서 알려 드리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재상 각하와 함께 로이가르 대공저에 가신다고 합니다.”
“알았다.”
기사가 경례를 올리고 물러갔다.
키쇼어가 말했다.
“제가 로이가르 대공 전하를 어제 댁까지 호위했습니다. 망연자실해 있긴 했지만, 죽음을 택하시리라고는…….”
“뒤늦게야 죄책감이 드셨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저는 황궁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키쇼어는 아르티제아에게 인사하고, 미엘르에게도 단단하게 일러두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나한테 연락하려무나. 절대 외출하지 말고.”
“네.”
그리고 키쇼어는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갔다.
헤일리가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여전히 찻잔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짐작하신 일인가요?”
“아니. 죽을 용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로이가르 대공은 이기적이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다.
이익을 탐하는 자는 대체로 용렬하다. 부귀를 좋아하는 자는 살아서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법이다.
그가 가족을 사랑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마음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것이다. 자신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서 타인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면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대공가의 주인이자 가장인 로이가르 대공이 그런 훈련을 했을 리가 없었다.
흔히 가문이 가족 구성원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문의 목적을 위해 종사할 뿐이다.
이 관계는 가주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그는 황족이었다.
한 세대 한 세대 밑으로 내려갈수록 혈통은 권좌와 영광에서 멀어진다.
그는 적통 황자였다. 그러나 그가 제위에 오르지 못하는 이상 자녀는 방계에 불과했다.
곧, 자신의 희생으로 가문의 영속을 꾀한다는 귀족 가문과도 셈법이 달랐다.
자신이 죽는다고 해서 아내와 아이가 살지 못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죽음을 택하다니.
아르티제아는 차를 다 마시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기 방에 있기에는 심경이 너무 복잡했던 탓이었다.
헤일리가 그녀의 뒤로 따라붙었다.
헤젤은 망설였다. 미엘르가 그녀를 가볍게 떠밀었다.
“너도 어서 가봐.”
“아, 하지만…….”
“너한테 말씀하실 수 없는 거면 물러가라고 하시겠지. 난 그냥 공녀님 옆에 있으면 돼.”
헤젤은 약간 망설였지만, 곧 “미안해.”라고 말하고 얼른 아르티제아를 뒤따라갔다.
아르티제아는 자신의 거실로 돌아왔다.
헤일리는 헤젤을 잠깐 쳐다보았지만,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내고 문을 닫았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헤일리, 외출 준비를 해주렴. 몰래 나가고 싶구나.”
“네.”
“곤란해졌어.”
아르티제아가 흐린 얼굴을 했다.
로이가르 대공의 죽음은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수 없었다.
당장 황제의 압박이 세드릭 한 사람에게 쏠릴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직 동부를 정리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동안은 소금 사업을 정리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다음에도 외교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무력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남부 정벌군을 보낸 지 아직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제아무리 제국의 생산력이 막대해도 연이어 군사를 일으킬 수는 없다.
소금 사업이 중지되어 국고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풍요로운 동부였다.
그러니 황제도 로이가르 대공을 살려두어 이간책을 쓰면서, 언제든 동부에 힘을 투사할 수 있는 명분을 살려두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넷이 자긍심을 지키고 로이가르 대공이 자결함으로써 이 사건은 종결되어 버렸다.
동부가 애도와 추모를 끝내고 힘을 갈무리하면 반드시 화근이 된다.
‘이렇게 된 이상 공녀와 공자라도 찾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죽었다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가짜라도 나타날 것이다. 동부를 결집시키는 데에 이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헤젤은 미엘르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너도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네?”
“내가 편지를 써줄 테니 아버님에게 가서 전해다오.”
“아, 네!”
헤젤은 자신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짜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욕에 넘쳐 대답했다.
아르티제아는 곧바로 종이를 꺼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에 세드릭은 린 재상과 함께 있었다.
둘은 곧바로 로이가르 대공저로 향했다. 달리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 놀랐고, 사실 관계를 확인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근위대원 하나가 새파랗게 변한 얼굴로 둘을 마중 나왔다.
린 재상이 물었다.
“자결이 확실한가?”
“예. 유서도 있었습니다.”
그 유서는 바로 황제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서 막지 못했단 말인가? 감시도 하고 있었을 텐데.”
“서재 안에는 이미 수색이 끝난 터라 걱정하지 않고 바깥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총성을 듣고 뛰쳐들어가자 전하께서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신 직후였다고.”
“그럴 수가, 허어…….”
“저택 수색을 담당했단 수사관과 시종, 기사들이 모두 문초를 받으러 갔습니다.”
황제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저택에 날붙이 하나 남기지 못하게 했다.
술병과 유리잔까지 은제품으로 바꾸고 페이퍼 나이프까지 모조리 거두어갔다.
그러나 놓친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저의 경비를 담당했던 근위 기사와 수색을 책임졌던 수사관이 대경실색하여 관련자를 모조리 붙잡아 들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아직 서재에 눕혀져 있었다. 시종이 팔다리를 반듯하게 펴고 이불을 가져다가 머리까지 덮어놓은 채였다.
아직 황제의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결에 사용된 권총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세드릭이 그것을 쳐다보자 근위대원이 송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수사관 말로는 무기라기보다는 귀중품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놔뒀다고 합니다. 단발밖에 발사가 안 되는 총인 데다가 어차피 화약과 탄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으니까요.”
“실탄 상자를 집 안에 놔두진 않았을 텐데?”
“예. 모두 치웠습니다. 그런데 촛대 안에 탄환 한 발이 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반으로 갈라진 촛대가 책상 위에 팽개쳐져 있었다. 빈 공간이 있었다. 본래는 서류나 보석 같은 것을 숨길 수 있게 만들어진 공간인 듯했다.
시종과 수사관, 당일 번을 선 기사가 맹렬하게 싸웠다고 했다.
수사관 말로는 뭔가를 숨길 수 있을 만한 물건은 모두 해체해서 몰수했다고 했다. 비밀 공간이 있는 촛대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사의 주장으로는 외부인이 들어온 적이 전혀 없었다.
시종은 촛대에 비밀 공간 같은 게 있는 줄 조금도 몰랐으며, 대공저에 있는 다른 촛대와 같은 물건으로만 여겼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세드릭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아무것이나 만지시면 안 됩니다, 전하.”
근위대원이 깜짝 놀라 말했다. 하지만 세드릭은 개의치 않고 봉인용 밀랍을 찾아 꺼냈다.
그리고 책상 한쪽에 비치된 초에 불을 붙여 밀랍을 녹였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닫고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세드릭은 바닥에 반듯하게 눕혀진 로이가르 대공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불을 살짝 걷었다.
그리고 부릅뜬 눈을 감겨 밀랍으로 붙여 주었다.
그래도 그 얼굴은 두려운 것을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대공비 전하께서 충격을 받으시겠습니다…….”
두 사람을 뒤따라온 재상부 관료가 중얼거렸다.
세드릭은 로이가르 대공의 얼굴을 다시 덮었다. 그리고 물었다.
“책임감 때문일까요?”
“책임감……. 말씀입니까?”
“유서에는 아마 자백이 적혀 있었겠지요. 숙모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 말에 린 재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글쎄요……. 비 전하께서 죄를 지었다면, 로이가르 대공 전하에게까지 섣불리 연루되지는 않을 겁니다. 로이가르 대공 전하는 황자이니까요. 하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지요.”
“…….”
“수치심이나…… 두려움이 아니겠습니까?”
린 재상이 말했다.
“폐하께서 상당히 심하게 압박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대공 전하를 살려주려고 하신 일이시겠지만…….”
그는 돌려 말했다.
세드릭은 그가 말하는 뜻을 알아들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공포에 저항한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죽음으로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죽음으로 판을 엎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냉정한 상태였을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아내와 자식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세드릭은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숙부라고 해서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진짜로 젊었을 때에는 혐오하고 경멸했었다.
나이가 들며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아르티제아와 레티샤를 위협했을 때에는 진지하게 살의도 품었었다.
황제가 되겠다고 결심했으니, 언젠가는 싸워야 할 상대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역시 마음이 어지러웠다.
‘명예로운 죽음이라는 것은 없지만…….’
세드릭은 일어섰다.
“대공비 전하께 어찌 알려드려야 할지 걱정이 큽니다.”
린 재상이 침통하게 말했다.
세드릭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재상부로 돌아가시지요. 황제 폐하께 알현 신청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지.”
재상부 관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린이 동의하고 세드릭에게 가자고 권했다.
“…….”
세드릭은 입을 다문 채 두 사람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황제를 알현하러 가기 전에 먼저 아르티제아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와 의논한다는 것이 밖에 노출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그리고 재상부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세드릭은 검은 사륜마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마차 창문에 걸려 있는 무늬가 낯이 익었다.
그는 린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말하고 말에서 내려서 마차로 향했다.
그가 다가가자 안에서 문이 열렸다.
아르티제아가 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