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3
악녀는 두 번 산다 232화
세드릭은 놀라지 않고 마차에 올라탔다.
아르티제아가 베일을 걷었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흐릿하게 온기가 번졌다.
“익숙해지셨네요.”
“당신의 방식에 익숙해지려면 훨씬 더 옛날에 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이번에는 웃지 못했다.
“미안합니다. 날카롭게 굴려는 게 아닙니다. 당연한 것처럼 알아본 게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세드릭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이렇게 나와도 됩니까? 아직 저택 주위에 비밀 수사관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
“상황이 난처하게 되었으니까요.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서 자결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저택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정말로 자결이었나요?”
“…….”
세드릭이 선뜻 확신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아르티제아에게 알려줄 수 없는 항목이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가슴 안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숙부님 스스로 한 일이 맞습니다. 권총 자살이었습니다. 유서도 있다더군요.”
“어떻게 된 일이죠? 폐하께서 죽도록 놓아두셨을 리가 없는데.”
“총은……. 그 권총은 무기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습니다.”
세드릭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세드릭이 단순히 무기에 대한 평을 한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전하는 게 몹시 불편하기 때문에 한 발밖에 쏘지 못합니다. 결투용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는 수집품으로나 의미 있는 것입니다.”
총알을 더 가지고 있더라도 재장전하여 상대를 다시 쏘지 못하도록 일부러 그렇게 제작된 것이다.
“제가 숙부님에게 그것을 선물했습니다.”
협박이었다.
진짜로 쓰게 되는 일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로이가르 대공이 자신에게 그 총을 쏠 수 있는 날이 올 리가 없었다.
자신과 결투를 해서 승산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것을 자기 입에 물고 총구를 당길 일이 생길 거라고는, 그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생겨도, 그럴 사람일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총알은 모두 치웠는데, 비밀 공간이 있는 촛대에 하나 들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세드릭은 수사관들이 그런 촛대를 모두 치웠다고 주장한다는 이야기까지 아르티제아에게 알려주었다.
아르티제아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했다.
“수사관들이 그런 물건을 찾아내지 못했을 리는 없으니 아마…… 외부에서 반입된 게 맞겠죠.”
“그렇습니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일 거예요. 대공저에 쓰는 것과 완전히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루덴 후작가 아니면 카멜리아 후작가일 테니. 그리고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서도 그것을 알아보셨겠지요.”
그 총알이 죄책감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혹은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죽으라고 강요하는 의미로 느껴졌거나.
세드릭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결정한 것을 아르티제아에게 말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시나요?”
“숙모님과 아이들을 살려야겠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지는 알고 하시는 말씀이죠?”
아르티제아가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우리도 역모에 말려들어가고, 잘되더라도 동부에 내란 요소를 남기는 꼴이 되겠지요. 숙모님께서 그럴 뜻이 전혀 없으셔도, 단지 생존해 계시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도.”
세드릭이 말했다.
“숙모님께서 스스로의 희생으로 사태를 최소화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 뜻을 존중하려고 했습니다. 숙부님이 살아 계신다면, 아이들의 생사 문제에 대해서 폐하와 협상도 가능했을 것이고.”
“네.”
“하지만 숙부님이 자결하셨다면 이제 문제가 달라지죠. 게다가…… 약속을 했습니다.”
아르티제아가 무언으로 대답을 요구했다. 세드릭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대의 목숨은 거두더라도, 가족을 돌봐주자고.”
그것은 상호간에 맺어진 약속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일방적으로 내던진 메시지였다.
하지만 로이가르 대공이 그 총을 골라 자신의 목숨을 버렸을 때에, 과연 그 메시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까?
어쩌면 쓸 만한 총기가 그것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마도 의식하고 있었으리라고 세드릭은 생각했다.
죽어 있는 로이가르 대공의 얼굴은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에 물들어 있었다.
세드릭은 그가 죽음으로 도망쳤다기보다는 이유가 있어서 자결했다고 느꼈다.
착각일 것이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어떤 큰 결심을 한 자도, 혹인 삶을 포기한 자도, 죽는 순간에는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그래도 만일에 그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믿고 자결한 거라면, 그 믿음에 응해야 했다.
세드릭은 조용하게 말했다.
“당신이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아르티제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었다.
“내전이 일어나더라도 감수하실 정도의 각오가 있으시다면.”
“세상사가 계산대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반대로 훗날 숙모님께서 절 도와주실 수도 있겠지요.”
“그럴 일은 절대 없어요. 로이가르 대공비가 상징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은 동부에서 가장 오래되고 세력 있는 가문의 적녀이기 때문이에요. 동부 세력을 해체하는 데에는 보탬이 될 수가 없죠. 또다시 이간책에나 이용하면 모를까.”
세드릭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래요……. 황족이 너무 없으니까. 제대로 확보할 수 있다면, 미래를 위해서 괜찮은 일일 수도 있을 거예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 문제는 제가 카멜리아 후작 부인과 의논해보도록 하죠. 위의 둘은 절대 공식적으로 살려놓을 수 없겠지만, 이미 도주했으니 숨길 수 있을 거예요.”
“예.”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서 로이가르 대공비의 형벌을 유배형 정도로 낮춰보도록 해보세요. 불가능하다면…… 감옥에서 바꿔치기할 수밖에 없겠죠.”
아르티제아가 말을 이었다.
“다행히 대공비가 투옥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으니…….”
하지만 지금의 황궁은 로렌스 치하의 황궁과는 완전히 다르다. 들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때에는 베냐가 내부인으로서 열쇠를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다.
“유배형으로 낮추는 것에 실패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봐요. 어쨌든 이제 폐하와 직접 맞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군요.”
“미안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왔을 일인 걸요.”
아르티제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세드릭이 고개를 숙였다.
『귀품에 대한 탐욕을 자제하지 못하여 아내에게 불측한 선물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하였다.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피가 묻은 유서에는 그 한 문장뿐이었다.
얼마나 손을 떨었는지 중간부터는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였다.
황제가 유서를 구겨서 책상 위에 내던졌다.
그 유서를 가져온 수사관과 전날 밤의 경비 책임자였던 가얀은 황제의 분노를 각오하고 몸을 움츠렸다.
전날 로이가르 대공을 호송한 키쇼어도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황제는 노호성를 지르는 대신에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골치 아파졌군.”
그 말은 들으라고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집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고 무릎을 꿇었다.
황제는 두통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숨길 수 없는 피로가 몸을 무겁게 했다.
유서가 있다는 것을 숨길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로이가르 대공이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것은 또다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유서를 위조할까. 그러나 그것 역시도 문제의 소지를 남기는 일이다.
생각만 해도 골이 아팠다.
‘살려준다고 했는데도, 멍청한 놈.’
어쨌든 버텨서 살아남기만 하면, 여생은 황숙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가얀.”
“예, 폐하.”
“행방불명 중인 공녀와 공자를 찾아라. 죽이게 되면, 시체라도 가지고 와. 짐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가얀이 군례를 올리고 나갔다.
황제는 이번에는 시종장에게 말했다.
“탄환을 반입한 자가 시종 중에 있는지 확인하게.”
“예.”
황제는 수사관을 향해서는 잠시 망설였다. 믿어도 될지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대공저에 드나든 수사관들을 확인하라고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앞일이 막막했다. 이렇게 치열하게 생각해야 했던 때가 대체 언제였던가.
황제의 관을 머리에 쓰기만 한다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황제는 입가를 비틀었다.
“황명이다.”
비서관이 큰 종이를 꺼내어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로이가르는 처로 하여금 황후의 물건을 쓰게 함으로써 역심을 드러냈으니 용서할 수 없다. 대공의 작위를 박탈하고 폐서인하며, 재산은 모두 몰수한다. 목을 베어 효수하되 몸은 매장하는 것을 허락한다.”
“폐하, 잠시 쉬신 후에 결정하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종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제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 올리는 말씀입니다.”
“자네가 정사에 관여하려고 하는 건 처음 보는군. 뭐, 청할 것이라도 있나?”
황제가 눈을 뜨고 의아하게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큰일이 아니라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시종장은 정말 오랫동안 사사로운 마음 없이 그에게 봉사해왔다.
그의 친인척이 로이가르 대공 파벌에 섞여 있기라도 했던가. 얼핏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데, 시종장은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신 채로 중요한 결정을 하셨다가 나중에 후회하시는 일이 생길까봐 그렇습니다.”
“후. 그래.”
황제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로이가르 대공이 주범이라면, 내려야 할 처벌은 뻔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종장의 정성이 있으니 잠시 차라도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목 뒤가 뻣뻣해질 정도로 피곤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언츠 왕국이로군. 재상과 외무부 관료들을 들라고 해야겠어.”
“잠시만 아무 생각 말고 눈을 감고 계십시오.”
시종장이 따뜻한 차를 올렸다.
쟁반에 설탕 그릇이 없었다. 황제가 투덜거리기 전에 시종장이 말했다.
“의사의 권유는 잘 들으셔야지요.”
“그래, 알고 있네.”
그가 첫 모금을 들었을 때였다.
시종이 들어와 방문객이 찾아왔음을 고했다.
“에브론 대공 전하께서 알현을 청하고 계십니다.”
황제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