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4
악녀는 두 번 산다 233화
황제는 자리를 응접실로 옮겼다.
잠깐 숨을 돌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자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를 수십 년 동안 모셔온 시종장의 조언은 틀리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등에 식은땀이 나서 그는 팔걸이를 손으로 가볍게 내리쳤다.
“꿀물을 가져와라.”
마시지 말라고 권하기는 했으나 준비는 되어 있었다.
곧 꿀물이 들어왔다. 간단한 다과가 함께 준비되었다.
세드릭이 응접실 문을 통과한 것은 그가 벌컥벌컥 꿀물을 들이켠 다음이었다.
단 것이 들어가자 훨씬 살 것 같았다.
“정무장관 에브론이 폐하를 알현합니다.”
세드릭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제는 그에게 손짓했다.
“일어나 앉아라.”
“황공합니다.”
“차를 마시려던 참이다.”
황제가 자리를 권했다.
세드릭은 그리 어색해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곧 찻잔이 놓여지고 향기로운 찻물이 부어졌다. 우유병과 설탕그릇이 나왔다.
황제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부럽구나. 젊어서. 이제 시종들은 짐에게 좀처럼 설탕그릇을 주지 않으니 말이다.”
“어의의 권고가 있었다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옥체를 돌보셔야지요.”
세드릭은 난처한 기분으로 말했다. 황제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황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 당분이 돌자 상태가 나아졌다. 황제는 몸을 이완시키고 말했다.
“로이가르 놈이 저지른 어리석은 짓 때문에 왔느냐?”
“예.”
“들어줄 말은 없다. 그 차를 다 마시고 나면 돌아가 네 할 일이나 하여라.”
“숙모님의 처형을 재고해주십시오.”
“반역은 삼족을 멸하는 법이다. 예외는 없다. 게다가 대공비는 스스로 황후를 참칭한 자야.”
“숙모님께서 역심을 품고 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숙부님께서 자결하셨으니 로이가르 대공가는 이미 끝났습니다.”
세드릭이 안색과 말씨를 부드럽게 유지한 채로 말했다.
“목숨을 살려주어 폐하의 자비로움을 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세드릭, 너도 이제 꿈꾸는 소리나 할 나이가 아닐 텐데.”
황제가 내뱉듯이 말했다.
“대공비가 천진난만하고 다른 마음이 없어 오로지 남편과 자식들을 구할 마음에 나선 줄 짐이 모르겠느냐? 그러나 대공비 하나가 문제가 아니다.”
가넷을 살려주려면, 그 뒤에 따라붙어 감히 황권에 도전한 자들까지 모두 살려주어야 한다.
이것은 자비로 대할 일이 아니었다.
“권위는 성벽 같은 것이다. 너도 에브론 땅을 다스려 왔으니 알겠지. 값싼 동정심 때문에 죽여야 할 자를 살려두었다가 권위가 무너지면, 그것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피와 시간이 한없이 들어가는 법이야.”
“숙모님을 처형한다고 해도 동부 귀족들을 꺾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애초부터 그자들은 죽음으로써 폐하의 앞에서 끝까지 당당했노라 주장할 자들이니까요.”
황제가 소파에 푹 파묻고 있던 몸을 조금 일으켰다.
“어차피 숙모님은 상징에 불과합니다. 상징은 죽음으로써 더욱 강하게 기능할 수 있습니다.”
세드릭은 거침없이 말했다.
“숙부님이 살아계신다면, 숙모님을 버려서 죽게 했다는 소문을 냄으로써 숙부님을 지지하는 자와 원망하는 자 사이를 갈라 싸우게 할 수 있겠지요.”
동부는 로이가르 대공을 통하여 황제의 관을 쥐고자 했다.
로이가르 대공이 살아 있는 한 그 목표가 유효하다고 여기는 자가 남아 있을 것이다. 로이가르 대공 자신이 수습하여 휘하에 세력에 둘 수 있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무산되었다.
동부는 이제 황제의 관을 놓고 정계의 규칙에 따라 싸울 수단을 잃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저항할 것이다.
“숙모님은 살아 있어도, 돌아가셔도, 폐하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후환이 된다.”
“숙모님은 후환이 될 능력이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동부를 조직하여 저항하지 못할 테니까요.”
세드릭이 말했다.
“이간책을 쓴다는 것도, 실질적으로 동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살아 있다면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죽은 이상에는 불가능하다. 황제도, 세드릭도 외부인이었다.
그리고 동부 귀족들은 설령 자기들끼리 이전투구를 하고 있다가도 외부의 힘이 뻗치려 하면 곧바로 일치단결하여 맞설 것이다.
동부의 행정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대농장을 해체하고 중앙 정부에서 땅과 백성을 장악해야 한다.
그것은 모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이번처럼 역모에 얽어 가문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는 명분이 생기더라도, 군사력을 투사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모략도, 이간책도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반대?”
“동부에 있는 것은 귀족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다스리셔야 할 것은 백성이니까요.”
“…….”
“지금까지 황실의 권위가 닿지 않았던 지역입니다. 민심을 안정시키고 하급 관리들의 신뢰를 받으려면, 상징이 필요합니다. 숙모님은 권력욕이 없으니, 폐하께서 쓰시기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겁니다.”
“제법 멀리 내다보고 말하는구나. 북부 일에만 신경 쓰는 줄 알았더니, 나라를 통치할 방도를 궁리하기라도 한 모양이구나.”
황제의 말에 세드릭은 긴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황제는 그것까지 꿰뚫어 보았다.
“꾸짖지 않겠다. 대공비를 살리겠다고 이유를 만들어내느라 애썼다.”
“폐하…….”
“하지만 그것이 역모자의 처자식을 살려주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아. 역모자의 삼족을 멸하는 것이 어찌 단순히 정략 문제이겠느냐? 옥좌의 권위를 세우고 세상에 경계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비단 이번의 일, 짐의 치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통합과 황실의 미래에 관한 일이다. 짐을 설득하고 싶다면 다른 이야기를 해보아라.”
“부탁드립니다.”
세드릭은 정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세드릭이 말했다.
“숙부님이 자결하시는 데에 쓴 권총은 제가 선물한 것입니다.”
“…….”
“서로를 공격할 일이 있다면, 오로지 당사자에게 하고, 그 가족은 돌봐주자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공개된 장소인 살롱에서 했던 것이다.
황제가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숨길 필요 없었다.
“비록 숙부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참람한 일을 저지른 탓에 그 대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결한 것이라 하나, 아마 그 권총을 사용하실 때에는 제게 바라는 바가 있으셨을 겁니다.”
“흠.”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먼저 약속한 것입니다.”
세드릭이 무릎에 얹어놓고 있던 손에 깍지를 끼었다.
“숙부님께서 죽음으로써 제게 약속을 지키기를 요구하셨으니, 저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게 옳을 줄로 압니다.”
황제가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세드릭이 지킬 만한 어리석은 신의였다. 혈육이라 해도, 로이가르 대공을 위해 위험한 다리를 건널 만큼의 정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하게도 황제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황제는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로이가르가 그렇게 된 이상 짐에게 합법적인 후계자는 너밖에 남지 않았다. 레티샤가 있다고는 하나, 결국 네게 속한 아이이지.”
“……예.”
“짐이 레티샤에게 이름을 내렸을 때에 너도 짐작하는 바가 있었을 게다.”
세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공비는 둘째 치더라도 공녀와 공자는 장차 너와 레티샤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넌 그 아이를 보호할 테냐?”
“아직 생기지 않은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보호해야 할 아이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으니까요.”
“세드릭.”
“대역죄에 관한 일입니다. 제가 어떻게 대가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다만, 목숨만은 건져주시길, 그리하실 수 없더라도 아직 어린 막내만은 연좌에서 풀어 살려주셨으면, 하고 청할 따름입니다.”
세드릭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저를 살려주셨듯이.”
황제가 침묵한 채로 다시 차를 마셨다.
그리고 손대지 않은 채 식어 있는 세드릭의 찻잔을 보고 말했다.
“그 찻잔을 비워라.”
“…….”
세드릭은 황제를 한 번 바라보고,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식은 차를 단숨에 비웠다.
차는 그냥 차였다. 쓴맛도 나지 않았고, 독이 들어 있지도 않았다.
식었지만 매우 향기로워 뒷맛에 꽃향기가 감돌았다.
황제가 말했다.
“물러가라. 이런 일은 너와 이야기하기 적절하지 않다.”
세드릭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잘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각오는 했다.
오늘만 날이 아니다. 황제는 분명히 조금이지만 심정 변화가 있었던 듯이 보였다.
처형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회는 또 있을 것이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는 일어서서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린 후에 물러갔다.
황제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종장에게 손짓했다.
시종장이 따뜻한 새 차와 배가 찰 만한 간식거리를 함께 올렸다.
마침 배고팠던 참이라 황제는 접시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말했다.
“에브론 대공비에게 사람을 보내서 조용히 입궁하라고 전하게.”
“예.”
“교지 쓰던 것도 중단하고 다들 쉬다가 오라고 해. 짐도 쉬어야겠으니.”
“예, 폐하.”
시종장이 물러가 문간에서 다른 자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아르티제아가 입궁하려면, 두어 시간은 걸릴 것이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재 옆에 붙은 휴게실에서 잠시 눈이라도 붙일 작정이었다.
식은땀은 멎었지만, 몹시 피곤하여 눈이 감겼다. 시종장의 말마따나 자신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아르티제아가 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