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5
악녀는 두 번 산다 234화
아르티제아는 한 시간만에 입궁했다.
그녀는 세드릭과 만나고 돌아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벨몬드 편집장에게서 연락이 오든, 황궁의 상황이 변하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호출이 가장 먼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뭔가 변화가 생기긴 했다는 건데.’
세드릭이 골치 아픈 일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세드릭이다.
그를 황제로 만들겠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머리 위에 황제의 관을 올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바라는 방식대로 세상이 움직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상은 원래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꿈같은 소리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허점을 보완해서 목표를 이루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
아내가 되기 위해서 그의 곁에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녀가 혼자 마차에 오르자 헤일리가 염려스럽게 물었다.
“정말로 혼자 가시려고요?”
“황제 폐하께서 날 해치려고 하시면 어차피 네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에브론이 총동원되어도 마찬가지야.”
“예…….”
“걱정할 것 없어. 독대는 영광된 일이니.”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황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황궁에 도착하자 아르티제아는 황제의 개인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시종장이 몸소 그녀를 마중 나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일찍 당도하실 줄 모르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러시군요. 제가 너무 일찍 오긴 했지요.”
귀부인의 입궁 준비가 보통 두어 시간씩 걸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당도한 아르티제아가 너무 빨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화려하게 치레하지 않고, 소박한 드레스 그대로 입궁했기 때문이었다.
시종장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요사이에 폐하께서 연일 격무에 시달리셨던 터라, 푹 주무시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연히 제가 기다려야지요.”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말동무로 시녀를 불러올까요?”
“괜찮아요. 서재에 책이 있다면 한 권 빌리고 싶군요.”
“예.”
시종장은 그녀가 말하는 책의 제목을 메모해서 심부름꾼에게 맡겼다.
그리고 손수 간식거리와 꿀차를 가져왔다.
타고난 신분과 별개로 시종장의 지위는 결코 낮지 않았다. 황제를 모시는 그에게 시중을 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황후뿐이었다.
그러니 그가 아르티제아의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 손수 차를 따라주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황제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한다는 뜻일 것이다.
아르티제아도, 보고 있는 시종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시종장에게는 그 정도 황제의 뜻을 대행할 권한은 있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숨을 멈췄다.
시종장이 연노랑색 꿀차를 투명한 잔에 넘칠 듯이 찰랑찰랑 따랐다.
그랬다가 손을 멈추고 두 방울을 더 떨어뜨렸다. 이제 꿀차는 넘치기 직전이었다. 표면장력으로 당겨진 수막이 둥글게 찻잔 위에 맺혔다.
한 방울이라도 더 부으면 균형이 무너져 넘쳐버릴 것이다.
시종장은 그 직전에 손을 멈추었다.
차는 당연히 이렇게 따라서는 안 된다. 마시려고 하면 쏟아버리게 된다.
하지만 시종장은 평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니스 백작 부인께서 보내주신 약초 꿀입니다. 폐하께서도 아껴 드시는 것이지요.”
아르티제아는 눈을 크게 뜨고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목구멍 밖으로 말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시종장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 시녀가 유니스 백작 부인 댁에 가서 함께 만든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거의 같은 것을 저도 마시고 있어요.”
“건강에 좋으니까요.”
시종장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책을 찾아오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물러났다.
아르티제아는 꿀차를 한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시종장과 별달리 친분이 없었다. 돌아오기 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시종장은 정쟁에 끼어들기보다는 안분지족하는 성향이었다.
젊었을 때에는 어땠을지 모르나 한 번 황제를 모시기로 결정한 후에는 일평생 그에게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세드릭에게 정보를 주었을 때에 혹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포섭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모시는 것이 로렌스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린 재상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세드릭에게 할 수 있다면 그와 친분을 쌓아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때 벨론 경의 이름을 말한 뒤에도 시종장은 변함없었다. 세드릭은 그를 포섭하기는커녕 서로 신분에 따른 예의 바른 교제 이상의 것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가 왜 벨론 경에 대한 정보를 주었는지,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아르티제아의 안에 계속 남아 있었다.
무시하기에는 시종장의 위치가 너무 중요했다.
지금 아르티제아는 그가 왜 누구의 접근도 불허하고 변함없이 황제에게 충실한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왜 그 사실을 자신에게 알려주었는지도.
‘혼자서…….’
아르티제아는 시종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외나무다리는 혼자 건너는 편이 낫다. 실수로 떨어지더라도 다른 사람을 끌고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곧 심부름꾼이 책을 가져다주었다.
아르티제아는 수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무릎에 놓았다.
그러나 글자는 한 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꿀차를 노려보았다.
눈 안쪽이 시큰거렸다.
이제부터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일이 이것으로 해결되었다. 퍼즐 조각의 끝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아르티제아는 어금니를 물었다.
이렇게 많은 패를 쥐고 자신이 실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찻잔을 툭 쳐서 쓰러뜨렸다. 쏟지 않고 마셔 없앨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수로 찻잔을 넘어뜨렸으니 새로운 것을 가져와라.”
“예, 비 전하.”
시종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넘어진 찻잔을 가지고 물러갔다.
황제는 네 시간 이상 푹 잔 뒤에야 일어났다.
몸은 따뜻하고 기분도 좋았다. 목덜미에 묵직하게 얹혀 있던 뻐근함도 상당히 줄어들였다.
자고 일어나면 자주 저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종들이 그의 손발을 주물러 주었다.
시종장이 따끈따끈한 물이 가득 담긴 대야를 가지고 들어왔다.
“짐이 오래 잠든 것 같은데.”
“예. 저녁이 다 되어 갑니다.”
“에브론 대공비를 오래 기다리게 했겠구나. 깨우지 않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성에 안 차 손수 대야의 물에 세수를 하고 나서 황제가 말했다.
“모처럼 숙면 중이시기에 기침하시기를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에브론 대공비에게도 사실대로 전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직 기다리고 있나?”
“예. 응접실에 모셨습니다. 책에 열중하고 계십니다.”
“다행이군. 하긴, 자네가 알아서 잘 챙겼겠지.”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 물에 젖은 손을 닦았다.
시종들이 달라붙어 구겨진 셔츠와 바지를 갈아입히고 머리를 빗겼다.
황제는 곧 평소의 풍채를 되찾았다.
그는 자신감을 되찾고 성큼성큼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 문이 열렸다.
아르티제아는 책장을 넘기고 있다가 그것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에브론의 아르티제아가 황제 폐하를 알현합니다.”
그녀는 공손히 절을 올렸다.
황제가 앉으라고 손짓하고 자신도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오랜만이로구나. 명명식 때 보고 처음이니.”
“네.”
“건강은 여전한 게냐?”
“이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출산 후에는 몸조리를 잘해야 할 터인데, 짐이 신경 써주지 못했구나.”
“집에서 아무 일 없이 푹 쉴 수 있는 것도 모두 폐하의 은덕인걸요.”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레티샤는?”
“건강합니다. 세드릭 님을 닮아서 그런지 아주 활발하고요.”
“그래. 이제 많이 컸겠어.”
황제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데리고 입궁하라는 말이 나올까봐 아르티제아는 긴장했다.
레티샤가 건강하고 많이 자랐다고는 하지만, 아직 데리고 황궁 같은 곳에 올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황제가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하여라. 노리는 자에게서 보호하는 것은 부모가 노력할 수 있는 일이나, 신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은 인력으로는 막아내지 못하니.”
“예…….”
황제가 떠올린 것은 아마 죽은 자녀들의 일일 것이다.
황후 소생의 자녀들이 연이어 죽었을 때에 황제가 전혀 슬퍼하지 않았으리라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 슬픔보다도 자신의 권력이 더 중요했으리라.
황제는 오래된 회한을 곰씹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바꾸었다.
그가 주름진 눈으로 아르티제아를 잠시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아직도 어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소녀는 아니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순식간이다. 늘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어른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황제는 그것을 제 자식에게서 경험한 적이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자식을 얻고 어른이 되었고, 세드릭도 전장에서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로이가르 대공비가 둥지의 어린 새가 아니라 그것을 날개로 감싸려 할 만큼 자라는 순간을 그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자식들은 그러지 못했다.
어려서 죽은 자식들은 마음속에 그대로 묻혔다.
로렌스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로 떠났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자식을 둘이나 낳고도 여전히 그에게는 어린 딸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어린 아르티제아가 이 자리에 영민한 소녀가 아니라 황궁의 귀부인으로 앉아 있었다.
황제는 자신이 그녀가 자라는 것을 보았다는 착각을 느꼈다.
“네가 짐의 딸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황제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황후 폐하께서는 저를 돌아가신 장황녀 전하의 친구로 삼아주었으리라고 말씀하셨지요. 폐하께서도, 황후 폐하께서도, 결코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신 줄 알고 있습니다.”
황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랬다.
아르티제아는 황좌의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위엄을 두려워하며, 그로 인해 충성하고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쓴다.
손발이 맞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본디 사람의 마음이 당연히 하나로 일치하는 법은 없다.
일치했다면, 그것은 상대가 자신에게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리한다는 것은, 상대가 권력을 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황제는 편안하게 앉아 있던 자세를 풀어 아르티제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물었다.
“로이가르 문제에 어디까지 개입했느냐?”
“…….”
아르티제아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