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6
악녀는 두 번 산다 235화
황제가 아르티제아의 표정을 보고는 짐짓 부드러운 얼굴을 했다.
“짐을 속이려 들지 말려무나. 네가 스카일라 카멜리아와 친구라는 사실은 짐도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진짜 인간적인 의미의 친구가 아니리라는 사실은 황제도 짐작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본래부터 대등한 관계의 친구를 사귈 수 없는 법이다. 황제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신분이나 혈통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기질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아르티제아는 분명히 그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었다.
“이안 카멜리아를 불러들인 발상은 훌륭했다. 복숭아 두 개를 던져 사람 셋을 죽였다는 현자도 사람 하나로 나라를 뒤집어엎지는 못했을 게다.”
“송구합니다.”
아르티제아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표정도 태연한 채 그대로였다.
“불화의 씨에서 싹을 틔우려 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미 바닥끝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을 줄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네가 한 일이 이안 카멜리아를 불러들인 것뿐이라는 게냐?”
“스카일라에게 루덴 후작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정통성을 회수하는 것이 향후의 문제를 없애는 데에 더 나을 것이라는 조언도 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말을 이었다.
“이제 시대가 다르고, 스카일라의 입장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과는 다르니까요. 스카일라는 줄곧 세도가의 적장녀로 키워졌고, 사교계에서 따돌려지는 두려움을 모르지요.”
“그렇다 해도 카멜리아 영애가 자기 가문의 세도가 궁극적으로는 루덴 후작가와 로이가르 대공비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을 터인데?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이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게다.”
“네. 하지만 루덴 후작가의 그늘에서도 벗어나 자기 세력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러고 싶겠지요. 루덴 후작은 스카일라를 미워했으니까요.”
아르티제아가 부드럽게 말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이는 모두 폐하께서 뿌리신 씨앗입니다.”
“짐은 카멜리아 후작가에 손댄 일이 없다.”
“로이가르 대공비와 루덴 후작 사이의 불화, 나아가 루덴 후작가의 분열을 기대하며 카멜리아 후작가를 방치하셨지 않은가요?”
“그렇게 생각하느냐?”
“카멜리아 후작가에는 약점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네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에 짐은 다른 큰일을 여러 가지 치러내는 중이었고, 동부 귀족은 똘똘 뭉쳐 있었지. 그 안에 은밀하게 사람을 심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이 대화가 마치 아르티제아를 가르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물며 작위가 걸린 일이다. 외부인에 대한 배척은 수도 사교계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수준이 달라.”
일가는 아니라도 모두가 친척이고 혼맥과 지연으로 얽혀 있다.
그것이 그들이 가문의 재산을 유지하고 유대를 형성하여 동부를 지배해온 방식이다.
“하지만, 이제 스카일라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답니다. 스카일라만이 아니라 매우 많은 영민한 젊은이들이 그러하지요.”
황제는 눈을 깜박거렸다. 나이 든 그로서는 아르티제아의 말이 선뜻 이해가지 않았다.
“제가 에브론 대공비가 되었습니다. 폐하.”
아르티제아가 단정하게 손을 모아 쥔 채로 말했다.
“벨몬드 영애가 제 추천으로 황후궁에서 시녀의 일을 도왔지요. 키쇼어 영애는 비록 몸이 약해 일부러 주변에서 막아주지만, 그러지 않으면 수많은 귀족 영식이 보이는 관심에 시달리게 될 거예요.”
그밖에도 아르티제아는 수많은 사례를 들 수 있었다.
가야의 아들은 일개 군인이지만, 지금 결혼 시장에서 가장 유망한 신랑감 중 하나였다. 가얀의 작위는 세습되는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린 재상의 아내는 파티에서 가장 대우받는 귀부인 중 하나였다. 그들의 자녀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사교계의 일원으로 대접받았다.
비록 신분이 아주 높은 작위의 귀족은 아닐지언정 귀족이 평민과 결혼하게 되었다.
평민이 사교계에 진출하여 귀족만큼이나 존중받는 일은 그것보다 더 흔했다.
“이제 유서 있는 가문에 의지하고 혼맥으로 얽히지 않더라도, 권세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요. 스카일라도 정통성만 회수하면 나머지는 자신의 힘과 지혜로 카멜리아 후작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거겠죠.”
언제가 되었든 루덴 후작의 지배는 결국 스카일라의 도전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바뀐 것은 황제가 수십 년 동안 평민을 중하게 썼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황제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스카일라 같은 고위 귀족의 후계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정말로 세상을 뒤집어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눈치 채지 못했구나.”
“모두 폐하의 은총입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황제가 느낀 것은 자신이 늙었다는 것이었다.
황제는 헛헛하게 웃었다.
“그래서 카멜리아 영애를 다소 부추긴 것만으로도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하냐?”
황제가 손을 내밀자 시종이 다가와 미리 가지고 들어왔던 책자를 바쳤다.
황제는 그것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르티제아는 그린 듯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네가 후원하는 이언츠 왕국 출신의 유학생이 쓴 논책이다. 그 형이 자신이 쓴 것이라고 거짓을 고하고 상부에 바쳤다는군.”
세부적인 과정은 다르지만, 대강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논책의 결과로 이언츠 왕국에서 로이가르에게 협정을 제안하게 된 모양이다. 실질적인 이득을 원하는 로이가르보다 대공비를 꾀어 환심을 사겠다는 계책도 생겼고.”
“현명한 자인 모양이군요. 후원금이 아깝지 않게 되어 다행이에요.”
아르티제아는 책자를 펴보지 않고 말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전 양잠 사업에 손을 대고 있어요. 이언츠 왕국의 동향에는 언제나 관심이 있습니다. 우수한 학생에게 은혜를 입혀 가문의 사업을 맡길 작정으로 여럿 후원하며 옥석을 고르고 있고요.”
변명에는 흠이 없었다.
황제는 등받이에 편안히 몸을 묻고 잠시 동안 말없이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가 권좌를 바라고 로이가르 대공 파벌을 분열시키려 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황제는 아르티제아가 처음부터 황후의 자리를 노리고 이런 일을 시작했는지, 아니면 로렌스를 위해 깔기 시작한 덫이었는지 궁금했다.
이제 와 그때의 심중을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억지로 위협하고 캐낸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로렌스는 이미 틀렸으니까.
다만 황제는 놀랐다.
이언츠 왕국에 손을 쓴 것은 그녀의 시선이 단순히 궁정과 사교계를 넘어서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소후작으로서의 교육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녀가 귀족으로서 받은 교육은 대부분 로렌스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다.
그것만으로 거기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아직 나이도 어렸다.
‘신의 뜻이라.’
황제는 문득 레티샤가 받은 은총을 생각했다.
그는 신성을 믿지 않았다. 신의 존재는 믿을지라도, 이 세상이 신의 뜻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제위에는 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운때 같은 것이 작용하곤 했다.
황제는 이제는 옛일이 되어버린 과거를 떠올렸다.
그에게도 그런 운이 밀려왔던 때가 있었다.
자식이 없는 선황후가 선황제의 여러 사생아들 중에 그를 골라 종이꽃을 주었을 때에.
길고 긴 가뭄 끝에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린 서부에 도박을 거는 심정으로 뛰어들자마자 기적적으로 비가 내렸을 때에.
동부군 사령관이 은밀히 그에게 향기로운 술잔을 건넸을 때에.
그리고 리아간 공작가의 적장녀가 그의 침실 문을 두드렸을 때에.
지금 그 운은 세드릭에게 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폐하.”
황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어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황제는 이내 표정을 온화하게 바꾸었다.
애당초 그녀를 불러들인 것은 세드릭이 할 수 없는 일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드릭과 타협할 수 없어도 아르티제아와는 할 수 있다. 그녀는 이해득실과 두려움을 천칭에 올릴 줄 안다.
남편의 신념을 적당히 꺾어 구슬려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드릭이 로이가르 대공비를 구명하고 싶다더군.”
“……네.”
“놀라지 않는구나.”
“충분히 그러실 만한 분이니까요.”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겠지. 대공비도 대공비이지만, 공녀와 공자를 살려두면 훗날 너와 레티샤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리라는 것도.”
“네.”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사실 그녀도 이 일을 위해 외출 준비를 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역모가 용서하기 어려운 죄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죠. 동부의 문제를 해결하되 불쌍한 자는 살려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이고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제국을 다스리셔야 하는 분. 소금 사업을 정비하여 생필품을 백성들에게 온전히 돌게 하고, 에이멜 왕국과 이언츠 왕국에 책임을 물어 제국의 이름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시할 수는 없으실 겁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티제아가 말하는 방식은 아첨이었으나 내용은 매우 옳았다.
“그렇다면 답은 결국은 폐하께서 동부에 손을 대실 수 있을 때까지 분열을 계속해서 유도하는 것이지요. 얕은 생각이지만, 지금 로이가르 대공비와 함께 감옥에 있는 자의 절반만 처형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황제가 아르티제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절반만?”
“폐하께서는 동부 귀족들의 핵심 인사라고 할 만한 자리에 사람을 심어두셨지요?”
황제가 신중한 눈으로 아르티제아를 살폈다.
아르티제아는 사실 브레넌 백작이 황제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황제이니 그렇게 했으리라는 믿음을 담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치자.”
황제가 흥미로워하는 얼굴이 되어 그렇게 대답했다.
아르티제아는 안심하고 말을 이었다.
“절반은 처형하고, 절반은 살리며, 그중 몇몇을 이유 없이 풀어주십시오. 그리고 폐하께서 가지고 계시는 정보를 마음껏 이용하여 상대를 공격하고, 이권을 강탈하십시오.”
“놈들이 속겠느냐?”
“세상 사람의 대부분은 폐하보다 훨씬 어리석으며, 마음속에 아주 조그만 불신의 씨앗만 심어주어도 거기에 스스로 물을 줍니다.”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황제가 자신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 중에 배신자가 있으리라고 믿고 쉬지 않고 싸울 것입니다. 그 싸움이 극에 달했을 때에 백성을 구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황은임을 느끼게 하십시오.”
이것은 세드릭에게는 절대 직접 내놓을 수 없는 계책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함박웃음을 머금을 정도로 기뻐했다.
“네 말이 옳다. 대공비를 처형하고 허공에 유언비어를 나포하는 것보다 살아 있는 자들이 싸우는 쪽이 훨씬 오랫동안 분열을 유도할 수 있지.”
“황송합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대답했다.
황제가 빙긋 웃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사할 준비를 하려무나.”
“네?”
“황자궁을 치워두도록 하겠다.”
아르티제아는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생각보다도 너무 빠른 이야기였다. 좀 더 줄다리기를 하게 될 줄 알았다.
성인이 되지 못한 황자녀는 황후궁에서 지낸다.
결혼하거나 성인이 되면 대공의 작위를 받아 외부로 독립한다.
그러니 황자궁은 오로지 단 한 명만을 위해 열리는 궁이었다.
황태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