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8
악녀는 두 번 산다 237화
아르티제아의 목소리가 바닥을 타고 들려왔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바구니를 들고 들어온 앤을 바라보았다. 그 앤이 지레 놀라며 말했다.
“나 아니야, 미아. 네가 말한 대로 사람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가게도 두 군데나 지나쳐서 왔어.”
하지만 들어온 시간 간격으로 생각해볼 때 앤이 추적당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미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널 의심하는 것은 아니야.”
상을 노리고 팔아넘겼다면, 아르티제아가 이렇게 은밀히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근위대나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을 것이다.
그쪽이 앤에게는 훨씬 접촉하기 쉬운 상대이기도 하고 말이다.
문제는 아르티제아가 앤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이다.
앤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다락방에서 살던 시절 친하게 지냈던 하녀였다. 그들은 함께 세탁실에서 일했었다.
세탁부 일은 고되고 저택의 하녀들 중에서도 가장 직급이 낮았다.
그 좁은 세상에도 사교계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정치질과 추악한 인간 관계가 다 있었다.
몸이 힘들고 가난하니 위선과 체면의 껍질조차 남지 않아 적나라한 형태로 말이다.
친구라도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시기였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친구는 만나지 않아도 평생 기억할 만한 상대가 되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앤은 그런 상대였다.
가넷의 시녀가 되어 처음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생겼을 때에, 그녀는 앤의 결혼식 비용을 절반쯤 대주었다.
그 뒤에는 만난 일이 없었다. 특별히 이럴 때에 도움을 구하려고 숨겨둔 것이 아니었다.
생활이 바뀌어 만날 일이 없어졌다는 게 가장 주된 이유였다. 그리고 과거와 인연을 끊고 싶었다는 것도.
일이 이렇게 되었을 때에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앤을 기억해냈다.
앤이라면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뒷조사를 상당한 수준으로 한 자도 앤을 조사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준비했던 마차를 모두 더미로 만들어 보냈다. 그중 하나에 진짜 공녀와 공자가 타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몇 가지 준비를 더했다.
그리고 자신은 공녀와 공자를 데리고 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숨겼다.
아이들만이라면 수도에 숨는 게 더 안전할 것이다. 만약의 경우에는 하나씩 나누어 고아원에 보낼 작정이었다.
가넷과 달리 공녀와 공자의 얼굴은 밖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초상화가 있다지만, 아이들은 자라면서도 얼굴이 조금씩 변하는 법이다.
그렇게 숨기면 황제라 해도 찾기 어렵다. 수도에는 수도 없이 많은 고아가 있었고, 결코 그 아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혈통을 기억하고 지위를 유지하게 하려면 동부로 가야 한다.
그러나 도주 중에 사로잡힐 확률은 낮지 않았다. 무사히 동부에 가더라도 권력 투쟁의 도구가 되고,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가넷의 바람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일단 목숨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사태가 가라앉은 후에 부유한 후견인을 시켜 거두게 하면 된다.
그때까지 수도를 빠져나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숨어 있을 작정이었다.
완벽하게 숨기 위해 그녀는 오로지 앤 하나에 의지했다. 정보를 얻는 것도 포기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으로서 정보망을 움직이면 황제의 수사관들 눈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는 앤을 알고 있었다. 돌아오기 이전에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결국 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모, 무서운 사람 온 거야?”
둘째 공녀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제일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아이라 환경을 다듬고 안심시켜 주어도 좀처럼 안심하지 못했다.
“괜찮아요, 공녀님. 안에 들어가 계세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아이를 달래어 안쪽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옷깃을 다듬다가 구겨진 것을 다 펴지 못하고 위에 도톰한 벨벳 망토를 걸치기로 했다.
실내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는 것이 초라해 보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한동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하지만 패배자가 되고 나니 신경 쓰였다.
“앤,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들어오라고 전해줄 수 있어?”
“응? 응…….”
“얼굴 가리고 가서 이야기하고, 넌 집으로 돌아가.”
앤이 안도하는 얼굴을 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밖에 온 사람들이 이미 네 이름과 신원을 모두 알고 있으리라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불안감만 더 부추길 뿐이니까 말이다.
대신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앤에게 주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황금색 보석은 앤이 제값을 다 받고 처분하기는 어려운 물건일 것이다.
“미아.”
“고마우니까 주는 거야. 내가 제일 아끼던 거야. 연루될지도 모르니까 절대 5년 안에는 처분하지 마. 그 뒤에 팔게 되면, 후작 부인이 아끼던 물건이 될 만큼 비싼 거라는 거 잊어버리지 말고 조심해.”
앤은 손수건까지 펼쳐서 그것을 받았다. 반쯤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가서 말을 전해달라고 다시 앤을 재촉했다.
앤이 머뭇거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앤이 가져온 바구니를 열었다.
두통이 멎지 않아서 부탁한 빈랑 열매가 들어 있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뜨거운 물에 찻잎을 넣고, 잘게 썬 빈랑을 조금 넣었다.
제대로 차를 덮는 단계에서 넣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넣으면 다향을 해치게 된다. 하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곧 창고 바닥과 연결된 문이 열렸다.
먼저 들어온 것은 벨몬드 편집장이었다. 그 뒤를 따라 아르티제아가 내려왔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덤덤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따르는 사람이 벨몬드 편집장과 헤젤, 앨리스뿐이라는 게 의외였다.
“여전히 용감하시군요, 비 전하. 제가 호위 몇은 대동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여전히’라고 말한 것은 아르티제아가 혼자 자신을 찾아왔던 그 밤의 일을 말한 것이었다.
그날 일을 연상한 것은 아르티제아가 초라한 하녀 옷을 입고도 당당했기 때문이다.
그날에도 닳아진 소매와 수선해 입은 드레스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놀랍다고 생각했었다.
품위는 외견으로 좌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반면, 자신은 그것의 도움이라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지금도 수수한 실내복 차림으로 아르티제아를 맞이하기 싫어서 망토를 걸치고 있으니 말이다.
“앉으세요.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향기를 맡아 보니 빈랑 열매를 넣으신 것 같은데, 몸에 맞지 않아서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니 양해하세요. 따뜻한 물만 한 잔 주셨으면 좋겠군요.”
“…….”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손수 따뜻한 물을 찻잔에 따라 아르티제아에게 건네주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한 모금 마셨다. 헤젤도, 벨몬드 편집장도 놀랐다. 두 사람 다 자기가 기미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아르티제아가 말하기를 기다리지 못했다. 아쉬운 것은 자기 쪽이었다.
“대공비 전하께서 여기까지 오신 것은 제안하실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네. 제안이기도 하고, 정보이기도 해요.”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띠었다.
“지금부터 할 말을 의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후작 부인. 부인에게서 남은 것을 모두 빼앗을 작정이었다면, 이렇게 혼자 찾아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이미 모든 것을 다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스카일라가 그녀를 배신했을 때에 이미 자신에게는 희망도, 바람도 전부 사라져 버렸으니까.
하지만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서 자결하셨다는 소식은 들었나요?”
“…….”
“권총을 쓰셨다더군요.”
“아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입술에서 짤막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짙게 한 채로 말했다.
“아마 부인께서는 그 권총에 제 남편이 무슨 약속을 했는지 알고 계셨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랬다.
로이가르 대공의 죽음으로 사태를 끝내는 쪽이 그나마 제일 가넷을 살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태를 종결지으려면 죄를 안고 갈 최종 책임자가 필요하고, 또 밖에서 황제를 설득하여 가넷의 목숨을 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 권총 상자를 서재 책상에 꺼내놓았다. 총알이 든 촛대도 서재 한쪽에 놓아두었다.
그가 제 나름대로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믿고, 또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능성은 반반 정도라고 생각했다.
방아쇠를 당기면서 로이가르 대공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뜻대로 죽어주었으니 고마웠다.
세드릭이 약속을 지키려 할지 어떨지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을 해두었다.
동부가 어찌되든,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는 이제 관심 밖이었다.
자신이 욕망했던 권력과 지위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스카일라는 첫 번째 배신자로서 달콤한 꿀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가넷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녀를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남편이 결정한 일이니, 제가 꺾을 생각은 없어요. 그러나 모든 일을 전부 해드릴 수는 없어요.”
“…….”
“로이가르 대공비께서는 처형되지 않고 유배될 거예요. 폐하께서도 그 뒤의 일은 마음 쓰지 않으실 거예요. 해드릴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유배 길에 빼돌리면 된다. 아르티제아의 말은 너무 공개적으로 저지르지만 않으면, 황제도 양해하겠다는 뜻이었다.
“원하는 대가가 있으시겠죠?”
“저희 쪽에서 마련한 은신처로 오도록 하세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르티제아가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말했다.
“북부가 춥긴 하지만, 중앙 정계와 거리가 멀고 폐하의 눈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하지요. 염려하실 것 없어요. 지금까지처럼 호화롭게 지내시기는 어렵겠지만, 귀부인으로서, 또 귀한 가문의 자녀로서, 부족함 없이 지내실 수 있도록 해드릴 테니까요.”
동시에 인질이자 동부에 대한 히든카드가 되기도 할 것이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 뜻을 이해했다.
그녀는 목을 울렸다. 굴욕감을 느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것은 아르티제아 쪽이었다.
황실의 피를 받은 아이들은 어차피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존재였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으리라.
조용한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가넷이 원하는 삶이기도 할 것이었다.
동부에서 가짜를 내세운다거나 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는 한, 아르티제아도 그냥 그들을 죽은 것처럼 살게 놔두는 쪽을 택할 것이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결정을 끝내고 말했다.
“공녀님과 공자님을 수도에서 빼내는 것을 도와주세요.”
“그러도록 하지요.”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