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43
악녀는 두 번 산다. 242화
20. 황태자 책봉식
갑판 위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중부의 바다나 남부의 바다나 짜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해협이 좁은 탓인지 바닷바람에 소금기가 덜 묻어나는 것 같았다.
바람은 순풍이었다.
카드리올은 아예 긴 의자까지 갑판 위에 가져다 고정시켜 놓고 누워 있었다.
여름과 겨울에는 해양성 기후인 남부가 최고지만, 봄은 제국의 봄이 제일이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말했다.
“오랜만이로군. 제국 수도는.”
“작년, 아니지, 재작년에 한 번 오셨잖습니까?”
“쉿.”
기밀을 말하는 보좌관에게 카드리올은 입을 다물라는 몸짓을 했다.
그가 수도에 와서 아르티제아의 소식을 수소문했던 것도, 에브론 대공령까지 다녀왔던 것도 모두 비밀이다.
그러나 보좌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바다 한가운데의 갑판 위, 여기저기 수행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화를 훔쳐들을 사람은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쓸데없는 생각?”
“유부녀를 어떻게 해보겠다거나.”
“인마.”
“불륜까진 괜찮은데 납치는 안 됩니다.”
“인마!”
“생각해보니 불륜도 안 되겠습니다. 신왕이 즉위식 하자마자 제국 황태자에게 결투로 박살나면 그게 무슨 개쪽입니까? 역사에는 이름을 남기겠네요.”
“닥쳐. 내가 왜 져? 땅개 새끼한테.”
“그렇다고 강에 배 띄워놓고 싸우자고 할 수는 없잖습니까?”
“도대체 왜 결투가 전제야?”
“싫다는 유부녀를 쫓아다니면 당연한 귀결이죠.”
“불륜이라며? 그거 서로 좋아야 하는 거 아니냐? 왜 싫어할 거라고 전제를 까는데?”
보좌관이 논리적으로 대답하는 대신 느물거리며 위로했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입니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전하의 짝도 있을 겁니다.”
카드리올이 들고 있던 나무 수통을 보좌관에게 집어던졌다.
보좌관은 얌전히 얻어맞는 대신에 그것을 잡아챘다. 그리고 안에 들어 있는 럼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바닥에 늘어졌다.
배가 흔들거렸지만, 그들에게는 전혀 신경 쓸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래간만에 취하는 휴식이 꿀맛이었다.
“제국 땅이 좋긴 좋습니다, 습하지도 않고.”
“괜히 제국이 제국이 아니지. 확 네 조각으로 찢어놔야 되는데.”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인데, 정략 결혼은 어떻습니까?”
“누구랑?”
“조세권과 사법권은 모두 황제가 쥐고 있다고 해도, 큰 땅을 가진 지주와 결혼하면 거기에서부터 제국 정치에 개입할 기회가 생길 겁니다.”
“으음.”
“빨리 왕비를 맞이하셔야 저희도 마음 놓고 지내지 않겠습니까?”
“제국 정치에 끼어들고 나서 행여나 마음 놓고 지내겠다.”
카드리올이 대꾸했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관여하면, 에이멜의 왕인 내가 고작해야 제국 귀족의 부군이라는 입장으로 내려앉는 셈이 되지 않나. 제국은 그런 나라이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그럼 국내에서 간택하거나…….”
“그레고르 황제에게 나이 찬 딸이 없어서 다행이야.”
보좌관의 말도 듣기 싫어진 카드리올이 엉뚱한 말로 화제를 돌렸다.
망루 위에서 선원이 외쳤다.
“항구가 보입니다!”
내릴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제국이었다.
* * *
“까! 마! 마! 마!”
쿵!
“공녀님!”
엉덩방아 찧는 소리가 났다. 아기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는데, 보모 하녀들이 비명을 올렸다.
유니스 백작 부인도 기겁하여 벌떡 일어섰다.
이 황궁의 하나뿐인 아기가 아닌가. 자칫 다친 곳이라면 사원까지 난리가 날 귀한 아기였다.
하지만 레티샤는 별로 아프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시 일어서겠다고 버둥거리면서 야단이었다.
“괜찮아요. 다치지 않도록 바닥을 푹신하게 깔아두었으니까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휴우 하고 큰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커스가 부드럽게 레티샤를 잡아서 다시 테이블에 세워 주었다.
테이블은 아기 키에 맞는 높이로 새로 만든 것이었다. 레티샤는 테이블을 짚고 손을 뻗어 말린 과일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따! 빠! 따따따! 에…….”
“에구, 재밌으세요?”
“미! 마!”
레티샤가 한손에 장난감을 쥐고 테이블에 내려쳤다.
그러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 다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번에는 넘어지기 전에 마커스가 보듬어 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유니스 백작 부인이 웃었다.
“한참 키울 맛 날 때이시겠어요.”
“아무거나 입으로 가져가서 눈을 뗄 틈이 없어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공감을 표시했다.
“하긴, 중요한 시기이니까요.”
황자궁으로 들어와 이제 한 달 가량 시간이 흘렀다.
레티샤의 주변에는 최대한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배치시켰다.
그렇지만 청소하는 하녀부터 시작해서 궁을 드나드는 시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통제할 수는 없었다.
에브론 대공저와 면적 자체가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드나드는 사람의 규모가 달랐다.
일의 진행이 빠른 것은 좋은 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대신 준비할 시간이 그만큼 모자랐다고 할 수도 있었다.
황제의 합법적인 상속자가 세드릭과 레티샤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세드릭은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황제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자는 적지 않았다.
그리고 정무장관이 되면서 중앙 정계에 관여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최근의 일이다.
제국 중앙 정계에서는 그는 외부인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북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런 건 내가 어쩔 수 없으니까.’
아르티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브론 대공령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황자궁으로 들어올 때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에브로 대공령의 사람들은 세드릭이 황제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안심하고 기뻐하는 자가 없지는 않았다. 세드릭이 황제가 된다면, 더 이상 북부가 핍박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주군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중부 귀족인 아르티제아와 결혼하는 것에조차도 거부감을 느끼는 자가 있을 정도였다.
하물며 황제의 양자가 된다니.
아르티제아는 가신들이 배신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나 수도에까지 따라와 있는 가신들의 충성심은 공고했다.
반발심이 있다고 해서 다른 귀족과 손을 잡고 배신하거나 할 이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적극적인 반발이 없다는 것이, 구멍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약간의 소극성, 불안감, 이런 것도 이용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황궁에서라면 집중력도 빠르게 깎여나갈 것이다.
‘하지만 레티샤는 괜찮아. 목숨을 걸고 지킬 테지. 폐하께서도 보호하실 테고.’
그러니 가장 큰 구멍은 자신이다.
로산 후작가에는 자신밖에 없다. 로산 후작가와 친인척으로 엮인 가문도 없었다.
사실상 레티샤에게는 외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권신을 꿈꾸는 자 전원이 손을 잡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우선 황태자비 자리를 공석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들끼리 경쟁하여 그 자리를 차지한다.
차기 황후의 자리와 신의 은총을 받은 의붓딸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지금은 보잘 것 없는 가문이라도 단번에 제국 제일의 가문으로 뛰어오를 수 있다.
대귀족 가문이 모두 역모로 몰려 멸문당하거나 쫓겨나간 시점이라 밑에서 올라오려는 압력도 거세게 작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래도 동부 일로 워낙 심하게 뒤집어놔서, 당분간은 아무 짓도 하지 못하겠지. 아직 황궁 안까지 손을 쓸 수 있는 자도 많지 않을 테고.’
게다가 아르티제아의 기억으로는 이로부터 몇 년 동안은 천재지변도 없이 모두 평작 이상의 수확을 거두었다.
그러니 레티샤와 자신의 안전만 보살피면 되었다.
“공녀님!”
또다시 보모 하녀가 소리쳤다. 레티샤가 일부러 과일이 담긴 그릇을 쳐서 테이블 아래로 쏟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말했다.
“이제 공녀님이 아니라 황태손 전하이시죠.”
“아직은 아니에요. 섣불리 호칭을 바꾸었다가 폐하의 오해를 살까 두려우니 그런 말씀은 마세요.”
“책봉식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걸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호호 웃었다.
아르티제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자궁으로 들어왔으니 황태자 책봉식은 시간 문제였다.
처음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이라는 게 늘 같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말했다.
“폭풍처럼 두 해가 흘러갔네요.”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남부 정벌군도 이제 곧 철군한다지요?”
“네, 그렇다더군요.”
“소금 사업도 이제 재개될 거라고 들었고요.”
“네. 몇 년어치 재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해야 할 테니까요.”
아르티제아가 찻잔을 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유니스 백작님도 소금 사업장 하나를 불하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아바마마께서 절 생각해주신 덕분이지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방실방실 웃었다.
“덕분에 올해 비 전하의 생신에는 좋은 선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생일…….”
아르티제아는 멀거니 정원으로 시선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물었다.
“설마 잊고 계셨다고 말씀하시지는 않겠지요?”
“아아, 아뇨. 잊어버렸던 것은 아니었어요.”
아르티제아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생일 축하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이혼 때문이었다.
스무 살이 되면 후견인이 필요 없으므로 이혼해도 상관없다는 계산을 세웠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물었다.
“설마 올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실 작정이신가요? 작년 이맘때에는 큰 일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지만, 올해는 서운하시게 그러시면 안 돼요.”
“글쎄요. 책봉식도 하기 전에 유난 떨고 싶지 않아요.”
“그러시지 않을까 했어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 가까운 사람들끼리만이라도 모여서 저녁식사라도 해요. 아바마마께서도 이제는 서운해 하시지 않으실 거예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그렇게 말했다.
아르티제아가 생일을 챙기지 않는 이유를 황제의 눈치를 봐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