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5
악녀는 두 번 산다 25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표정을 감추기 위해 천천히 찻잔을 들었다.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의 간격을 보면 생각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침착성을 잃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서 이츠 남작과 무슨 관계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영애는?”
그녀가 구슬이 구르는 듯 미려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마음은 복잡했다.
이츠 남작은 로이가르 대공의 중요한 자금줄 중 하나였다.
그가 로이가르 대공 일파에서 무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막대한 돈을 바치고, 약간의 보호를 받았다. 치안청장과 재무부 장관은 모두 로이가르 대공파의 사람이었고, 주요 간부들도 그랬기 때문이다.
충성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므로 잘라내도 상관은 없었다.
아니, 이 자리에서 발을 뺄 수 있다면 그 편이 좋다. 세드릭이 이츠 남작의 장부를 확보한 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세드릭이 끼어든 이상 막후교섭이나 정치적 타결로 일이 조용히 마무리될 가능성은 없다.
여자와 보석이 얽혔으니 신문은 흥밋거리를 섞어 이 일을 엄청나게 떠들어대리라.
황제는 민중의 공분을 억지로 막는 모험을 하는 대신 희생양을 던져 줄 것이다.
이츠 남작 하나로는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테니, 그보다 더 신분이 높은 대형 먹잇감을 내밀어야 한다.
그 대상이 되는 일은 막아야 했다.
어차피 이츠 남작이 내놓는 것은 돈뿐이다. 큰돈이었지만,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선뜻 아르티제아의 말을 따를 수는 없었다. 이 소녀가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세드릭 에브론은 밀실 정치를 싫어한다.
그가 로산 후작 영애에게 반했다는 소문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도 들었다.
그는 반한 여자의 부탁으로 해야 하는 일을 포기할 사람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세드릭은 젊은 남자이고, 많은 남자들이 여자에게 반하고 나서야 본성을 드러낸다.
아르티제아가 이츠 남작의 일에서 로이가르 대공과의 연결고리를 끊어 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못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찻잔을 내려놓고 푸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츠 남작은 천박한 자입니다. 제게 이익 될 법한 자라면 누구에게라도 뇌물을 주었을 겁니다. 인사의 의미로 귀한 선물을 여기저기 주었겠지요. 이럴 때 약점을 잡고 자기를 비호해 주기를 바라서요. 그런 자에게서 선물을 받은 것은 신중치 못한 일이지만…….”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짓고 말을 마무리지었다.
“후작 부인처럼 품위 있는 분이라면, 설마 남작에게 선물 받은 보석이 양민에게서 강탈한 보석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셨을 테지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손끝이 가볍게 찻잔 끝을 쓸었다.
아르티제아는 찻잔을 다시 입술에 대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아르티제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의 입가는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고, 눈매는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환했다. 동작은 우아하고 침착했다.
몇 번을 빨았는지 낡은 소맷자락이 길이마저 짧아 싸구려 천으로 러플을 이어붙인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도 그게 눈에 띄지 않았다.
나이는 아직 어린데, 행동거지가 모로 봐도 사교계의 노회한 귀부인이다.
지금까지 그녀는 아르티제아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밀라이라의 딸, 불쌍한 계집애. 그것이 그녀가 아르티제아에 대해서 가진 인상의 전부였다.
그녀는 로산 후작가의 상속녀이면서도 그것을 제 손에 쥐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로렌스의 여동생이지만 정략결혼용으로도 쓰이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밀라이라에게 기생당한 채로 뜯어 먹힐 것이고, 로렌스는 집착이 심한 어머니에게 여동생을 먹이로 붙여줌으로써 자유를 얻으려 하리라.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밀라이라는 결코 딸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었다.
많은 부모가 자식을 자기의 분신으로, 그보다는 소유물로 여겼다.
괴롭히고 휘두르며 상대를 학대하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는 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타인인 하녀나 하인을 때리는 것과 자식을 학대하는 것은 명백히 그 궤가 다르다.
어린 자식을 죽도록 때리고서, 그 아이가 울면서도 팔을 내밀고 안아달라고 갈구할 때에 느끼는 쾌감만큼 저열한 권력욕과 소유욕을 만족시키는 일도 드물다.
그렇게 길들여놓은 좋은 소유물을 놓아 보낼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관심 가질 상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소녀는 그녀가 생각하던 불쌍한 여자애가 아니라 완성된 숙녀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눈에는 아르티제아가 내면에 푸르고 환한 불을 간직한 것처럼 보였다.
‘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쉽구나.’
후작 부인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때때로 우정은 열정보다 열렬할 수 있지만, 그녀의 딸은 이 소녀를 사로잡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아들은 어떨까? 아들은 그런대로 쓸 만했지만, 세드릭이 먼저 그녀를 만나고 말았다.
그녀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벨벳을 씌운 보석 상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안에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가운데에 박힌 보석이 성녀 올가의 심장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이 목걸이는 성녀 올가의 심장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에요. 이것을 이대로 가져가도록 하세요.”
“그렇다면 나머지 보석에 합당한 값을 치르겠습니다.”
“로산 후작 영애, 이 일을 거래로 만들지 마세요. 영애는 이미 그에 합당한 값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영애가 어느 귀한 분을 위해서 이 보석을 찾으려 하는지 정도는 나도 짐작하고 있답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추억을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옛날에, 내가 루덴 후작의 딸이라는 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또 숙녀라고 불리지도 못했던 시절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게 되실 어떤 숙녀분도 종종 나와 같은 무도회장에 있었답니다.”
“네.”
아르티제아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대답했다.
“지금이야 남편이 나를 아끼고, 또 로이가르 대공비 전하께서 언니라 부르며 따르시니 남들도 귀부인이라고 부르지만 말이지요. 그때에는 감히 그분에게 인사를 건넨다거나 초대장을 보내는 일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답니다.”
카멜리아 후작부인이 말했다.
“그러니 그분이 그리 신분 높지 않은 친구를 다정하게 대하며 그 집에 있던 귀한 보석에 관해 찬사의 말을 하셨을 때에, 무척 부러워서 그게 잊어지지 않더군요.”
아르티제아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것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황후에게 보내는 선물로 만듦으로써 부드럽고 호의적인 분위기를 유지한 채 이츠 남작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귀한 보석을 진짜 귀족도 아닌 천박한 남자가 가지고 있다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나이 든 여자가 그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수중에 넣고 나니 귀하게 꾸미고 싶어 안달이 나더군요. 이제 성녀 올가의 조각상은 사라져서 찾을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임시방편을 취한 거랍니다.”
“그러셨군요.”
아르티제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후작 부인이 그런 것을 추억이라고 말할 만한 성격도 아니거니와, 설령 정말 그게 황후에 대한 동경과 추억 탓이라면 이미 황후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바쳤으리라.
아르티제아는 이것이 아마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는 전리품이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페셔 자작 부인에게도 밀렸던 소녀 시절에 대한 보상. 이제 페셔 자작 부인보다 자신이 훨씬 더 신분 높은, 황후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권세가가 되었다는 증거로서 손에 넣었으리라.
하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보다는 페셔 자작 부인 쪽이 훨씬 충만한 인생이었으리라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목숨을 바칠 만한 주군을 만나고, 또 그 주군에게 신뢰를 얻고 그녀를 위해 죽을 수 있었으니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영애가 내 마음을 그분께 잘 전해주시리라고 믿어요.”
“유념하겠습니다.”
아르티제아는 보석 상자를 손수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밤늦게까지 실례가 많았습니다. 밤의 여신의 손길이 부인의 잠자리를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시길.”
“우리가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요? 앞으로 종종 놀러 와요.”
아르티제아는 미소만 지었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녀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망년지우가 될 일은 결코 없었다.
카멜리아 후작부인은 세드릭을 로이가르 대공파로 만들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아르티제아는 언젠가 로이가르 대공을 끌어내릴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르티제아가 카멜리아 후작가를 나섰을 때에, 달은 이미 서편으로 기울었고 샛별이 동편에 떠올라 있었다.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제는 멈출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로산 후작가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후문 근처에서 마차를 내렸다.
오늘밤의 외출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올 때에도 걸어 나와 특징 없는 마차를 탔다.
밤바람이 찼다. 알폰스가 그녀의 어깨에 망토를 걸쳐 주었다.
“리제.”
아르티제아는 뒤따르는 두 하녀 중 한 명을 불렀다.
어제 로산 후작가에 당도하여 아직 제가 무슨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어린 리제 한슨은 목을 움츠리며 “네.”하고 대답했다.
“너의 할아버지는 지금은 에브론 대공가에 계시지? 다른 친척도 같이 있니?”
“아뇨. 하지만 큰아버지가 수도에 살고 계세요.”
리제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르티제아가 물어볼 때를 대비해서 마커스가 가르쳐준 답변이었다.
“그렇구나.”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나이 든 마커스 대신 장남이 다른 일가친척들에게 연락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녀는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그렇다면, 큰아버지에게 가서 이 편지를 전해주렴. 할아버지보다는 그쪽이 좋겠구나.”
에브론 대공가로 야심한 시간에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남의 눈에 띌 우려가 있었다.
한슨 일가를 로산 후작가에 다시 들이는 것은 아직은 물밑에서 준비해야 할 일이었다.
“걱정 말렴. 넌 전해주기만 하면 돼. 중요한 일은 네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의논해서 결정할 테니까.”
“네.”
“내 마차를 타고 가렴. 시간이 늦어서 대여 마차를 잡기 어려울 것 같구나. 편지를 전해주고 나면, 네 할아버지를 보고 와도 괜찮아. 다른 하녀들에게 눈치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행동하렴.”
“네. 감사합니다.”
리제가 편지를 받아 품에 넣고 공손히 아르티제아에게 절을 올렸다.
곧 마차가 떠났다. 아르티제아도 저택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로산 후작가를 손에 넣을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