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50
악녀는 두 번 산다. 249화
나탈리아는 다음날 혼자 초대에 응했다.
그녀는 자신이 인간관계에 그다지 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치에는 더욱 그러했다.
아르티제아가 순수하게 친목 도모를 위해 부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탈리아도 짐작하고 있었다.
베르나트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대공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비우겠다고 답장해요. 그리고 오늘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내일 가도록 해요.」
「그러면 오늘 가면 되지 않아요? 오늘이든 언제든 시간이 나면 방문하라고 했으니까요. 전하와 동반하는 걸 제외하면, 제 용건은 중요하지 않은 것뿐인걸요.」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먼저 다른 사람을 만나서 대공비를 뒷전으로 미뤘다는 인상을 줄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신경을 쓸 만큼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될 거라면, 전하께서 같이 가세요.」
베르나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별로 현명한 일은 못 됩니다. 제가 가면, 순수한 친목이 아니라 외교적 의미를 띠는 자리가 될 겁니다.」
「그래요?」
「그 자리에서 정치적 결단을 요구당할 수도 있고요. 대공비와 대면하기 전에 그녀에 대해서 정보를 더 모아야 합니다.」
「에브론 대공비가 그렇게 조심해야 할 상대라면, 제가 휘말려 들어갈 수도 있잖아요. 실수로 뭐 하면 안 될 결정 같은 거라도 저지르고 오면 어쩌시려고요.」
나탈리아의 말에 베르나트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하지 말아요.」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명목은 어차피 친목도모를 위해 티타임을 갖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환영 무도회날에 주고받은 선물 이야기나 여행 이야기 같은 걸 해요.」
「으음…….」
「중요한 일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면, 모두 나한테 밀어붙여요. 그건 할 수 있겠죠?」
「네.」
나탈리아는 마음이 편해졌다.
여러 제안이나 상황을 재고 미묘한 언행의 뉘앙스와 표정까지 고려하며 정치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정말로 재능 없는 분야였다.
그러니 몽땅 베르나트에게 미루고 마음 편하게 차나 마시며 수다나 떨다 와도 된다면 기쁜 일이었다.
나탈리아는 아르티제아가 마음에 들었다.
여리지만 꼿꼿한 자태와 말랐지만 우아한 골격이 이언츠 왕국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그림 같은 귀부인이었다.
‘다시 봐도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네.’
나탈리아는 생각했다.
황자궁은 나탈리아의 생각보다 조용했다. 이때쯤이면 선물을 가지고 눈도장을 찍으려는 사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 대부분이 정말로 정문 앞에서 정지당했다.
나탈리아의 마차는 정원까지 통과되었다. 헤일리와 미엘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나탈리아 왕세자비 전하.”
“환대해 주어서 고마워요.”
나탈리아는 마차에서 내려서 그녀들과 마주 인사를 나누었다.
나탈리아의 시녀가 미엘르에게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선물이었다.
헤일리와 미엘르는 나탈리아를 탁 트인 정원에 면한 테라스로 안내했다.
실크로 만든 널찍한 차양막이 햇빛을 딱 좋을 정도로 투과시켰다. 자작나무 테라스에 차양막이 만드는 오색 빛이 물들었다.
하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르티제아가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나탈리아 전하. 갑작스러운 초대였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국의 별이여.”
“제국의 별은 제가 아니라 제 딸이지요.”
아르티제아가 말하면서 옆을 살짝 바라보았다.
레티샤가 마커스에게 안긴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탈리아를 보았다.
나탈리아는 레티샤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안녕, 공녀님.”
지나치게 허물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귀여워서 그러는 것이 역력하여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레티샤가 나탈리아를 향해서 팔을 휘저었다. 낯선 사람이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나탈리아가 집게손가락을 내밀었다. 레티샤가 그 손가락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악수하는 거예요? 악수.”
나탈리아가 마주 손가락을 흔들어 주자 레티샤가 또다시 까르르 웃었다.
“잘 웃는 아기님이네요.”
나탈리아가 웃음이 머문 얼굴로 말했다.
“얼굴이라도 보여드릴까 해서 데려오게 했어요. 무례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공녀님을 만나게 해주신 게 비할 바 없는 호의 표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신뢰 표시이기도 했다. 어린 아기를 외부인과 만나게 하는 게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 나탈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레티샤 같은 위치에 있는 아기라면 더할 것이다.
레티샤는 옆사람들의 복잡한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웃다가 마커스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아르티제아가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곧 준비된 다과가 나왔다. 하녀들이 테이블에 설탕과자와 케이크를 예쁘게 올린 접시들을 늘어놓았다.
헤일리가 차를 우렸다. 데운 물이 담긴 찻잔이 나탈리아의 앞에 놓였다.
레티샤가 소리를 지르며 팔을 마구 휘둘렀다.
“가! 까! 꺄아!”
“안 됩니다, 아기씨.”
마커스가 레티샤를 추어 안았다. 나탈리아는 물었다.
“과자 달라는 건가요?”
“네. 먹는 걸 좋아해요. 아마 엄마 아빠보다 까까를 먼저 할걸요.”
레티샤의 대답에 나탈리아가 웃었다.
“저희 첫째 말이 무척 늦게 트였는데, 제일 먼저 한 말이 배고프다는 것이었답니다.”
“어머.”
“비 전하.”
마커스가 레티샤에게 쥐어뜯기면서도 점잖게 말했다.
“아기씨께서 심심하신 것 같은데, 정원을 산책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레티샤는 다과상에서 멀어지자 서러운 소리를 냈다. 통곡이라도 할 기세였다.
호위기사 절반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나탈리아의 염려하는 얼굴을 보고 아르티제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곧 괜찮아질 거예요.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거든요.”
“정원을 많이 다듬어야겠어요. 어른들에게는 지금이 좋지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정원이었지만, 아기가 놀기에는 너무 수풀이 깊었다.
“네,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궁이다 보니 이제 바깥쪽부터 조금씩 정리하고 있어서요. 나무도 많이 베어내야 할 거라고 하더군요.”
“저 나무는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공녀님께서 걷게 되시면 그네를 달면 좋겠어요.”
나탈리아는 가까이에 있는 큰 나무를 가리켰다.
그리고 잠시 그리운 기분으로 이언츠 왕궁을 떠올렸다. 아직 떠나온 지 두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녀가 미소 짓는 낯으로 정원을 시선을 던졌다. 아르티제아는 조용히 그 시선을 살폈다.
헤일리가 찻잔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내고 붉은 찻물을 조르르 따랐다.
미엘르가 아르티제아의 앞에서 나탈리아가 가져온 상자의 포장을 풀었다.
안에는 주먹만 한 작은 도자기가 들어 있었다. 뚜껑을 열자 그윽한 향기가 퍼졌다.
안에 연노랑색 액체가 찰랑찰랑하게 들어 있었다.
미엘르가 향기를 음미하며 말했다.
“굉장히 좋은 용연향이 들어 있을 것 같아요.”
“잘 아는군요, 키쇼어 영애.”
“조금 바다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향수인가요?”
“향수로 쓸 수 있는지 어떤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탈리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도자기를 테이블에 꺼내서 뚜껑 언저리를 살짝 만졌다. 그러자 뚜껑에 작은 구멍이 열렸다.
“응접실 같은 데에 가져다 두면 아주 기분 좋은 향기가 나요.”
“또다시 이언츠 왕국의 물품이 크게 유행하겠군요.”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자기 바깥쪽에는 수금과 청화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이미지는 이언츠 왕국의 신작인 실크 자수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부를 상징하는 것이다.
게다가 향료는 아주 비싼 것이다. 용연향은 원료만 해도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다.
그것을 이렇게 아름다운 도자기에 넣어 응접실에 두고 향기를 머무르게 하다니, 이보다 부귀를 과시하기에 좋은 수단은 없었다.
지금 제국의 모든 관심이 집중된 이 황자궁의 응접실에 두는 것은 아주 좋은 홍보 효과를 거둘 것이다.
‘베르나트 왕세자는 현명하지.’
이언츠 왕국은 거리와 국력을 생각했을 때에, 경계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만일에 에이멜 왕국이라면, 국력이 충분히 축적되고 나면 영토를 넓히기 위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것이다. 카드리올이 호전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언츠 왕국은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을 하는 것보다 자본을 축적하고 문화를 잠식하는 쪽이 훨씬 가능성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베르나트도 신중하고 유능했다.
그런 자가 이언츠 왕국처럼 중요한 인접국의 국왕이 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로이가르 대공을 지원하고자 했다는 것은 이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좋았다. 이쪽이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관계를 이끌어갈 수 있으니까.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향긋한 연록색 냄새가 섞여왔다.
테이블에 놓아둔 도자기에서 퍼지는 향기가 거기에 섞여 은은하게 공기를 물들였다.
나탈리아가 말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감사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니의 머리 장식을 받아주신 거요. 그날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할 것 같아서요.”
나탈리아가 멋쩍게 말했다.
“전 나름대로는 대공비 전하를 곤경에서 구해드리려고 드렸던 건데, 오히려 제가 더 큰 도움을 받아버렸으니까요.”
“무슨 말씀을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 머리칼에 딱 어울렸는걸요.”
아르티제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장신구 자체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언츠 왕국과 에이멜 왕국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친분을 과시한 것 쪽이다.
하지만 나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벌써 초대장과 편지가 쌓이고 있어요. 이곳에 지부를 갖고 있는 이언츠 상단 이곳저곳에서, 그 장신구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좋으냐고 허락을 구하더라고요.”
이언츠 왕국이 부유하다고 해도 모든 곳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나탈리아의 고향은 가난한 곳이었다.
한때에는 품질 좋은 보석이 산출되었으나 이제는 광맥이 고갈되고 있었다. 산출량이 줄어들면서 마을에는 돈이 말라붙었다.
하지만 그곳에 새로운 산업이 생겨날 가능성이 생겼다. 이것은 부흥으로 이어질 것이다.
게다가 제국 수도 사교계의 유행은 아래로, 또 사방으로 퍼진다.
보석 자갈은 그렇게 비싼 물건이 아니다. 평민들에게까지 팔리는 장신구를 만들 가능성이 생긴 셈이었다.